디에프롤 왕국의 왕성.국왕의 집무실에는 오늘도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넓은 책상 뒤에는 카일과 닮은 남색 머리카락과 보라색 눈동자를 지닌 남자가 앉아 있었다.디에프롤의 국왕, 카시온이었다.사각, 사각—펜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소리만이 조용한 집무실을 채웠다.한참 동안 서류를 처리하던 카시온이 지친 듯 펜을 내려놓았다.“하아…….”자연스럽게 옆에 놓인 찻잔으로 손을 뻗었다.이미 식어버린 차였지만 새로 가져오라고 할 여유도 없었다.그런데 손끝이 찻잔에 닿기 직전—휘익!갑자기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쨍그랑!찻잔이 그대로 책상에서 밀려나 바닥으로 떨어졌다.갈색빛 차가 바닥을 적셨다.카시온은 놀라지도 않았다.한동안 깨진 찻잔을 바라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었다.“……하아.”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또인가…….”웅—주변의 마나가 대답이라도 하듯 작게 진동했다.카시온이 미간을 눌렀다.“알았어. 안 마시면 되잖아.”똑똑.마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들어와.”문이 열리고 붉은 눈동자를 지닌 중년의 기사가 들어왔다.“폐하.”그러다 바닥에 깨져 있는 찻잔을 발견한 아그라트의 시선이 멈췄다.“……또입니까?”카시온이 책상에 팔꿈치를 올린 채 턱을 괴었다.“아그라트.”“예, 폐하.”“단둘이 있을 때만큼은 그 호칭 좀 그만해.”아그라트가 작게 웃었다.“알겠습니다, 카시온님.”그는 깨진 찻잔을 바라봤다.“이번에도 마나가 차를 엎은 겁니까?”“응.”“허허…….”“벌써 이번 달에 몇 번째인지 모르겠어.”카시온이 피곤한 얼굴로 의자에 등을 기댔다.“대체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건지…….”“그럼 제 저택에서 가져온 차라도 드시겠습니까?”카시온의 눈이 조금 살아났다.“있어?”“마침 조금 가져온 것이 있습니다.”“부탁할게.”카시온이 다시 서류를 내려다보다 중얼거렸다.“형님도 없는 마당에 이것들까지 이러니…… 하아.”아그라트가 문으로 향하다 걸음을 멈췄다.“
Last Updated : 2026-09-10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