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조향사님, 선을 넘으셨습니다: Capítulo 11 - Capítul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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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데이트는 퇴근 후부터

퇴근 시간보다 십오 분 먼저.한유리는 시계를 세 번째 봤다.17시 45분.별것도 아닌 숫자였다.평소라면 마무리해야 할 시향 기록이 남아 있으면 여섯 시가 넘든 일곱 시가 넘든 신경 쓰지 않았을 시간.그런데 오늘은 달랐다.오늘은.데이트가 있었다.그 단어 하나 때문에 평범한 퇴근 시간이 이상하게 특별해졌다.유리는 작업대 위에 놓인 마지막 시향지를 들었다.B-9.이제는 더 이상 B-9라고 부를 필요도 없었다.오늘 오후 회의에서 최종 확정된 〈BORDERLINE〉 마스터 포뮬러.첫 향에서는 베르가못과 쁘띠그랭의 차가운 초록빛이 열리고, 바이올렛 리프가 경계를 세운 뒤 아이리스가 그 선을 부드럽게 흐렸다. 마지막에는 시더우드와 아주 얇은 앰버, 피부 가까이에서만 살아나는 머스크가 남았다.멀리서는 차갑고.가까이 갈수록 따뜻한 향.유리는 시향지를 내려놓으며 아주 작게 웃었다.이 향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몰랐다.결국 자신과 권재헌의 관계를 닮게 될 줄은.“선배.”옆에서 세아의 목소리가 들렸다.유리는 바로 표정을 정리했다.“왜.”“지금 웃었죠?”“안 웃었어.”세아는 노트북 화면 너머로 유리를 빤히 바라봤다.“요즘 선배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 그거예요.”“뭐.”“안 웃었다. 안 피했다. 안 빨갛다.”유리는 펜을 내려놓았다.“윤세아.”“네.”“퇴근 안 해?”“해야죠.”세아가 일부러 시계를 봤다.“근데 오늘은 선배가 더 급해 보여서.”“안 급해.”“오늘 데이트죠?”유리의 손이 잠깐 멈췄다.세아가 바로 웃었다.“맞네.”“목소리 낮춰.”“아무도 없어요.”“그래도.”세아가 의자에서 몸을 조금 당겨 앉았다.“어디 가는데요?”“몰라.”“네?”“그냥 저녁 먹고 걷고 커피 마시기로 했어.”세아의 표정이 순간 묘해졌다.유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왜.”“아니.”“말해.”“생각보다.”세아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엄청 평범해서.”유리의 눈썹이 올라갔다.“데이트가 원래 그런 거 아니야?”“이사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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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것과 조사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누가 들어온 거지.”유리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휴대전화 화면에는 여전히 자신의 이름이 떠 있었다.USER : HAN.YURI18:42:16BORDERLINE_MASTER_1.0PRINT : 1 COPY몇 번을 다시 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볼수록 기분이 이상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늘은 좋은 것들로만 가득한 하루였다. 처음으로 회사 밖에서 재헌과 손을 잡았고, 별다른 목적도 없이 거리를 걸었고, 카페에 앉아 파리와 미래에 관해 이야기했다.그런데 이제 가장 선명하게 남는 숫자는 18시 42분이었다.재헌이 휴대전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세아 씨는 아직 회사에 있습니까?”“네. 아카이브 확인하다가 발견한 것 같아요.”“혼자고요?”“아마도요.”재헌의 손이 곧바로 기어 쪽으로 향했다.유리가 그를 바라봤다.“회사로 가려고요?”“가야 합니다.”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유리는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 조금 전까지 데이트하던 남자와 지금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차가워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감정 때문에 판단이 흔들리지 않도록 일부러 더 단단해진 얼굴이었다.재헌이 시동을 걸기 전 유리를 돌아봤다.“유리 씨.”“네.”“지금부터는 제가 몇 가지를 물어볼 겁니다.”유리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재헌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당신을 의심해서가 아닙니다.”“알아요.”대답했지만 목소리가 조금 딱딱했다.재헌은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정말 압니까?”유리가 그를 봤다.“아까 제가 아니라고 했을 때 바로 믿어줬잖아요.”“그건 지금도 같습니다.”“그런데요?”“믿는 것과 조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그 말이 정확해서 유리는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재헌은 시선을 잠깐 화면으로 내렸다가 다시 그녀에게 돌렸다.“제가 당신을 믿는 것과 회사가 이 기록을 확인해야 하는 건 별개입니다. 오히려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제가 먼저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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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BORDERLINE〉 관련 자료 외부 전송 전면 중단하십시오.”재헌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회의실 안을 단번에 정리했다.“생산 이관도 보류합니다.”품질관리 책임자가 바로 몸을 앞으로 숙였다.“이사님, 그러면 안정성 테스트 일정부터 밀립니다. 이미 해외 시험 기관에도 샘플 발송 준비가—”“알고 있습니다.”재헌이 말을 잘랐다.“그래서 더 확인해야 합니다.”화면에는 여전히 해외 향수 커뮤니티 게시물이 떠 있었다.베르가못.쁘띠그랭.아이리스.바이올렛 리프.시더우드.앰버.스킨 머스크.유리는 그 목록을 한참 바라봤다.향료만 보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조합일 수도 있었다.문제는 순서였다.구조였다.그리고.〈BORDERLINE〉의 핵심으로 잡았던 ‘차갑게 시작해서 가까이 갈수록 따뜻해지는’ 방향성과 지나치게 닮아 있다는 점.우연이라고 생각하려면 너무 많은 부분이 겹쳤다.세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이 게시물만으로 유출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죠?”법무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입니다. 향료 조합 자체는 보호 대상이 아니고, 실제 배합비도 공개된 게 아닙니다.”유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근데.”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이 순서.”유리는 화면을 가리켰다.“좀 이상해요.”재헌이 물었다.“어떤 점이.”“아이리스 다음에 바이올렛 리프를 놓고, 그 밑에 시더와 스킨 머스크를 붙이는 건 흔할 수 있어요. 그런데 쁘띠그랭을 베르가못 바로 뒤에 놓고, 앰버를 아주 약한 따뜻함으로 쓰는 구조까지 같다면.”유리는 말을 멈췄다.자기 머릿속에서 직접 만들었던 구조.며칠 동안 수십 번 수정했던 흐름.재헌의 체향을 분석하면서 만들어낸 변화.그걸 누군가 그대로 따라간 것 같았다.“그냥 향료 이름 몇 개 겹친 게 아니에요.”유리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방향이 같아요.”법무팀장이 물었다.“그 방향이 내부 문서에 명시돼 있습니까?”세아가 바로 대답했다.“네.”유리가 그녀를 봤다.세아는 노트북을 열었다.“최종 콘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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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향을 훔친 사람에게

조향실 문이 잠긴 뒤부터 시간은 이상하게 느리게 흘렀다.벽시계의 초침은 분명 움직이고 있었고 환기 장치는 평소와 똑같은 소리를 냈다. 작업대 위에는 원료병들이 제자리에 놓여 있었고, 조금 전까지 유리가 맡던 〈BORDERLINE〉 샘플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한 번 전화가 걸려왔다는 이유만으로 익숙했던 공간 전체가 낯설게 느껴졌다.유리는 출입문을 한 번, 휴대전화를 한 번 번갈아 바라봤다.통화는 끝났다.모르는 번호.발신자 정보 없음.그런데 그 사람은 알고 있었다.자신이 만든 향을.〈BORDERLINE〉을.그리고 ‘선을 넘는 향’이라는 표현까지.그건 우연히 향료 목록을 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최소한 내부 자료를 읽었다.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선배.”세아가 아주 조심스럽게 불렀다.“응.”“전화 녹음된 거 맞죠?”유리는 화면을 확인했다.통화 녹음 파일이 정상적으로 저장돼 있었다.“응.”“다행이다.”세아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전혀 다행이라는 표정은 아니었다. 평소라면 무슨 일이 생겨도 먼저 농담부터 던지던 세아가 이렇게까지 굳어 있는 걸 보니 유리도 오히려 정신이 조금 들었다.유리는 휴대전화를 작업대 위에 내려놓았다.“세아야.”“네.”“너 먼저 나가도 돼.”세아의 눈이 커졌다.“지금요?”“재헌 씨…….”유리는 입을 다물었다가 바로 고쳤다.“이사님 오실 거고, 보안팀도 다시 올 수도 있어.”세아가 유리를 빤히 봤다.“그래서 저보고 가라고요?”“늦었잖아.”“선배.”“응.”“저 그런 후배 아니거든요.”유리가 잠시 말이 없었다.세아는 팔짱을 꼈다.“데이트할 때는 비켜드리지만 이런 때는 안 비켜드려요.”유리는 결국 작은 웃음을 흘렸다.“누가 비키래.”“방금 가라면서요.”“늦었으니까.”“선배도 늦었거든요.”세아는 의자를 끌어와 유리 옆에 앉았다.“그리고.”“또 뭐.”세아의 표정이 다시 진지해졌다.“저도 화나요.”유리가 그녀를 봤다.“선배 파일 훔쳐간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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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우리가 덫을 놓겠습니다

“저 사람.”유리가 노트 위에 적힌 문장을 내려다봤다.FAKE FORMULA.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이번에는 우리가 유혹해요.”조향실 안이 조용해졌다.세아는 아직 상황을 완전히 따라가지 못한 얼굴이었고, 재헌은 유리를 바라본 채 아무 말이 없었다.유리는 펜 끝으로 노트를 두드렸다.“지금까지 저 사람은 우리가 움직이는 걸 계속 보고 있었어요. 제가 어떤 파일을 열었는지, 어떤 기록을 확인했는지, 심지어 방금 우리가 3주 전 로그를 찾은 것도 알고 있었고요.”세아가 마른침을 삼켰다.“그러니까 일부러 틀린 정보를 흘리자는 거예요?”“응.”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다만 아무 정보나 던지면 안 돼.”재헌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상대가 믿을 만해야 합니다.”유리가 바로 그를 봤다.“맞아요.”재헌은 이미 같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는 얼굴이었다.“너무 티 나는 가짜면 안 물 겁니다. 지금까지 개발 과정을 꽤 오래 봐왔다면 향 구조도 알고 있을 테고.”“그러니까.”유리는 노트를 앞으로 끌어당겼다.“진짜처럼 보여야 해요.”세아가 물었다.“어떻게요?”유리는 잠깐 생각했다.그런 다음 아주 천천히 적었다.BORDERLINE MASTER 1.1세아의 눈이 커졌다.“1.1?”“응.”“최종본 나온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요.”“그래서 더 믿을 거야.”유리의 눈빛이 가라앉았다.“유출 의심이 생겼으니까 우리가 최종 포뮬러를 수정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지.”재헌이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다.“기존 1.0이 유출됐다는 걸 파악했으니 출시 전 배합을 바꿨다고.”“네.”유리는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그 수정본이 진짜라고 믿게 만들면.”펜 끝이 다시 움직였다.“저 사람이 그 파일을 열어볼지 확인할 수 있어요.”세아가 물었다.“열어보기만 하면 잡을 수 있어요?”재헌이 대답했다.“접속 경로를 제한하면 가능합니다.”세아가 그를 봤다.재헌의 표정은 이미 완전히 업무 모드로 돌아가 있었다.“가짜 파일을 일반 프로젝트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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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의 시선을 돌리고 있는가

유리는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흐릿하게 찍힌 금속 트레이.모서리의 작은 각인.AL-04.아르데르 연구실 장비 표기 방식과 닮아 있었다.너무 닮아서.오히려 의심스러웠다.재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아르데르를 의심하게 만들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는 겁니까.”“네.”유리는 화면을 확대했다가 다시 축소했다.“박민재도 그랬어요.”“경쟁사 출신.”“그리고 사원증 접근 기록.”“VPN 계정.”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전부 너무 잘 맞아요.”재헌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유리는 손끝으로 화면 가장자리를 천천히 두드렸다.“보통 실제로 숨으려는 사람은 자기 흔적을 이렇게 많이 남기지 않아요. 물론 실수할 수도 있고요. 근데 지금은 너무 반복돼요.”“일부러 우리가 아르데르를 보게 만들고 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재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리는 그 표정을 보며 느꼈다.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지금까지 상대는 한 번도 단순히 도망치지만은 않았다.항상.무언가를 보여줬다.유리의 계정.박민재.아르데르.가짜 포뮬러.그리고 지금.아르데르 연구실처럼 보이는 장비.상대는 자기가 보이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있었다.유리는 조용히 말했다.“우리가 지금까지 본 게 전부 누가 보여준 거라면.”재헌의 눈빛이 더 깊어졌다.“처음부터 조사 방향이 설계됐을 수도 있겠군요.”“네.”잠깐.유리의 속이 서늘해졌다.처음부터.그 말이 무서웠다.처음.언제부터?BORDERLINE이 만들어진 뒤?차선우가 광고 모델로 들어온 뒤?아니면.그보다 더 전?유리는 천천히 노트북 화면을 닫았다.“회사 가야겠어요.”재헌이 바로 말했다.“아직 이릅니다.”“그래도 가야 해요.”“지금 여섯 시가 조금 넘었습니다.”“그래서요.”유리는 소파에서 일어났다.“사람들 오기 전에 보고 싶은 게 있어요.”재헌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뭘.”“초기 자료.”“어느 정도까지.”유리는 잠깐 생각했다.“BORDERLINE 이름 붙이기 전까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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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잘 숨는다

최민서의 목에는 검은색 사원증 줄이 걸려 있었다.끝부분에는 아주 작은 은색 장식이 달려 있었다.유리는 그걸 보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18시 47분.조향실에서 나온 사람.CCTV에는 얼굴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짙은색 재킷과 긴 바지, 목에 걸린 사원증, 그리고 카메라에 스치듯 잡힌 검은 줄 끝의 작은 은색 장식만 확인할 수 있었다.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회사 직원들이 개인 사원증 줄을 쓰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으니까.하지만 지금.바로 눈앞에.똑같아 보이는 것이 있었다.“조향사님?”민서가 다시 불렀다.유리는 그제야 시선을 들었다.“네.”“왜 그렇게 보세요?”평소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였다.정돈된 머리.단정한 옷.가볍게 올라간 입꼬리.민서는 늘 그랬다.회의가 길어지면 커피를 먼저 주문했고, 마케팅과 조향팀의 의견이 부딪히면 중간에서 문장을 정리했다. 유리가 향에 관한 설명을 너무 감각적으로 하면 소비자 언어로 바꾸는 것도 민서의 일이었다.〈BORDERLINE〉이라는 이름이 처음 회의실 화이트보드에 적혔을 때도.민서는 그 자리에 있었다.차선우를 광고 모델로 선정하던 날도.유리와 재헌이 세 번째 보틀 디자인을 동시에 고르던 날도.그리고.자신이 ‘거리 자체가 향의 일부’라고 말했을 때도.항상.가까이에 있었다.너무 가까워서.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유리는 일부러 평소처럼 웃었다.“사원증 줄 예쁘네요.”민서의 눈이 아주 잠깐 아래로 내려갔다.“이거요?”손가락으로 검은 줄을 만졌다.은색 장식이 조명 아래에서 작게 빛났다.“네.”“별거 아닌데.”민서가 웃었다.“파리 출장 갔을 때 샀어요.”유리의 심장이 한번 크게 뛰었다.파리.재헌의 시선도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향실 한쪽에 서 있었다.민서는 그제야 재헌을 발견한 사람처럼 가볍게 인사했다.“이사님도 계셨네요.”“네.”“회의 중이셨어요?”“비슷합니다.”짧은 대답.민서는 세아까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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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시작된 일

박민재가 남긴 첨부파일은 곧바로 열리지 않았다.몇 분이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보안팀은 생각보다 훨씬 신중했다. 파일을 별도 격리 환경으로 옮긴 뒤 악성 코드와 외부 통신 시도 여부를 확인하고, 원본 해시값을 보존한 다음 복사본에서만 내용을 열겠다고 했다. 그동안 유리는 회의실 모니터에 떠 있는 박민재의 제보문 첫 줄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저는 한유리 조향사의 사원증을 복제하지 않았습니다.그다음.하지만 누가 복제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마지막.이 글이 확인될 때 제가 연락되지 않는다면, 파리 본사에서 시작된 일을 먼저 확인해 주십시오.짧은 문장이었다.그런데 그 세 줄 때문에 지금까지 쌓아 올린 사건의 모양이 전부 달라지고 있었다.“선배.”옆에 앉아 있던 세아가 낮게 불렀다.“응.”“박민재 주임이 진짜 범인이 아니면요?”유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모니터를 바라보던 시선만 조금 움직였다.“모르지.”“근데 저걸 남겼잖아요.”“남겼다는 사실이 무죄를 증명하지는 않아.”세아가 입술을 다물었다.유리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반대도 마찬가지고. 박민재 이름으로 접속 기록이 나왔다고 범인이라고 확정할 수도 없어.”재헌이 맞은편에서 고개를 들었다.유리의 시선이 그와 마주쳤다.이상했다.며칠 전까지였다면 자신도 박민재를 거의 범인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사원증이 책상에 놓여 있던 시간에 조향실에 들어왔고, 아르데르 경력도 있었으며, 가짜 포뮬러에 접근한 VPN 인증까지 박민재 이름이었다.너무 많은 게 그 사람을 가리켰다.그래서 이제는 오히려 의심했다.누군가 자신들이 박민재를 의심하기를 원했던 건 아닐까.최민서도 마찬가지였다.검은 사원증 줄.은색 장식.브랜드전략팀에만 넣어둔 문장의 유출.자신과 재헌의 피부 테스트를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듯한 말.민서를 의심할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하지만 그 사원증 줄은 민서만 가진 게 아니었다.박민재도.아드리안도.같은 글로벌 워크숍에 참석했다.누군가가 계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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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첫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재헌 씨.”유리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다시 불렀다.“우리 처음부터 우연히 만난 거 맞아요?”재헌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 짧은 침묵이 유리에게는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모니터에는 여전히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떠 있었다. KJ-04 — KWON JAEHEON. 추천 조향사 — HAN YURI. Highest compatibility based on sensory interpretation profile. 날짜는 두 사람이 제대로 만나기 전이었다. 재헌이 메종 르비에 한국 법인의 총괄이사로 부임하기 전, 유리가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기기는커녕 얼굴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였다.그런데 누군가는 이미 두 사람을 한 줄에 놓아두었다.“제가 아는 범위에서는.”마침내 재헌이 입을 열었다.“우연이었습니다.”유리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아는 범위에서는?”“제가 한국 법인으로 오는 과정에 한유리라는 조향사를 지정해서 만나라거나, 특정 프로젝트에 붙으라는 지시는 없었습니다.”“정말?”“네.”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유리는 재헌의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이 사람에게 자신을 속일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마음이 바로 편해지지는 않았다.“그럼 누가 우리를 만나게 만든 거예요?”“그것부터 확인해야 합니다.”재헌은 화면 쪽으로 몸을 돌렸다.“이 자료가 실제로 실행된 계획인지, 검토 단계에서 끝난 문서인지.”세아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매칭 리스트가 있다고 실제로 둘을 붙였다는 뜻은 아니니까.”유리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그래.사실만.조금 전 자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사람을 먼저 범인으로 만들지 않는다.기록이 있다고 이야기를 완성하지 않는다.그런데 자기 일이 되자.특히.재헌과 자신의 시작에 관한 일이 되자.생각보다 감정이 먼저 움직였다.유리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미안해요.”재헌이 바로 물었다.“뭐가.”“재헌 씨부터 의심한 것 같아서.”“그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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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되기를 기다린 사람

“그래서 나를 기다린 거야.”유리의 말이 떨어진 뒤에도 조향실 안에는 한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모니터에는 4개월 전 작성된 매칭 리스트가 그대로 떠 있었다. KJ-04 — KWON JAEHEON. HAN YURI — Highest compatibility based on sensory interpretation profile.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문장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우연이었는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기록이었다. 하지만 이제 유리는 다른 방식으로 그 문장을 보고 있었다.누군가 두 사람을 사랑에 빠뜨리기 위해 연결한 게 아니다.그보다 훨씬 단순하고, 그래서 더 불쾌한 이유.필요했기 때문이다.권재헌이라는 특이한 체향 반응을 가진 사람과, 그것을 하나의 향으로 해석해낼 수 있는 조향사 한유리.둘을.“2년 전에는 실패한 거예요.”재헌이 유리를 바라봤다.“무엇을.”“향으로 만드는 거.”유리는 작업대에 놓인 〈BORDERLINE〉 시향지를 집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첫 향은 거의 사라지고, 아이리스와 시더우드 사이로 피부 가까이 붙는 머스크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2년 전에 재헌 씨 체온도 측정했고, 맥박도 봤고, 감정에 따라 체향이 달라진다는 것도 알아냈어요. 사람과의 거리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까지.”“그런데 제품은 나오지 않았다.”“네.”유리는 시향지를 내려놓았다.“수치만으로는 향을 못 만들었으니까.”체온이 1.8도 오른다.맥박이 빨라진다.체향이 강해진다.그건 현상에 대한 기록이다.하지만 조향은.그 현상이 어떤 감각인지 알아야 했다.차가운가.따뜻한가.불편한가.설레는가.가까워지고 싶은가.도망치고 싶은가.그리고 그 감정을 어떤 원료로, 어떤 순서로, 어느 정도의 잔향으로 남길 것인가.그건 숫자가 대신할 수 없었다.유리는 천천히 말했다.“재헌 씨 향을 처음 맡았을 때 저도 바로 못 만들었어요.”재헌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물렀다.“그래서 저를 일주일이나 향 모델로 썼군요.”“그 얘기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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