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오전 아홉 시 십 분.권재헌은 자신이 잘못된 장소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다.문 옆에는 분명히 ‘수석 조향사 한유리’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일정표에도 오전 아홉 시부터 20주년 프로젝트 콘셉트 미팅이라고 적혀 있었고, 비서가 알려 준 장소 역시 이곳이었다.그러니 방을 잘못 찾은 건 아니었다.문제는 방 안이었다.재헌이 생각했던 회의실과는 거리가 멀었다.벽 한쪽을 가득 채운 선반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갈색 유리병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고, 각각의 병에는 손으로 적은 라벨이 붙어 있었다. 베르가못, 네롤리, 아이리스, 샌들우드, 앰버, 통카빈. 창가 쪽에는 작은 화분 몇 개와 말린 꽃이 놓여 있었으며 중앙의 기다란 작업대에는 비커와 스포이트, 시향지와 메모지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그 한가운데에 한유리가 앉아 있었다.어제와 달리 머리를 느슨하게 하나로 묶고 흰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모습이었다. 코끝 가까이 가져간 시향지에 집중한 나머지 문이 열린 것도 모르는 듯했다.재헌은 문 앞에서 잠시 기다렸다.유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시향지를 한 번 맡고, 메모를 남기고, 다시 다른 병을 열었다. 몇 방울을 떨어뜨리고 유리막대로 섞은 뒤 또다시 향을 확인했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제 회의실에서 자신의 넥타이를 잡아당기던 여자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그때는 지나치게 거리낌이 없었고, 지금은 주변에 누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재헌이 결국 입을 열었다.“한유리 조향사님.”반응이 없었다.“한유리 조향사님.”“……조금만요.”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그런데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재헌의 눈썹이 올라갔다.“회의 시간이 지났습니다.”“알아요.”“알고 있는데 계속 이러고 있는 겁니까?”“네.”유리가 짧게 대답하더니 새로운 시향지를 꺼냈다.재헌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오전 아홉 시 십이 분.이 회사에서 자신에게 회의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을 먼저 제공한 직원은 한유리가 처음이었다.“얼마나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1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