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오전, 호텔 기자회견장은 빈자리 없이 찼다.회사에서 준비한 원고에는 ‘혼선’, ‘오해’, ‘개인적인 사정’ 같은 단어가 가득했다. 거짓말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읽어 보니 내가 거짓말한 사람인지, 그냥 오해를 산 사람인지조차 흐릿했다.나는 원고를 반으로 접어 단상 아래에 내려놓았다.“저는 임신하지 않았습니다.”첫 문장이 떨어지자 셔터 소리가 폭발했다.“맞선을 피하려고 가족들에게 거짓말했고, 강도윤 변호사의 이름을 허락 없이 이용했습니다.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겁이 나서 거짓말을 이어 갔습니다.”기자들이 손을 들었지만 준비한 말부터 끝냈다.“강 변호사는 처음부터 사실을 알았고 저를 돕기 위해 동참했습니다. 그 선택에도 책임은 있습니다. 하지만 시작한 사람은 저입니다. 가족과 회사, 이 일로 시간을 낭비한 직원들, 기사를 접한 분들께 사과드립니다.”“결혼은 취소됐습니까?”“네.”“강 변호사와도 헤어진 겁니까?”곧바로 다른 질문이 날아왔다.“강 변호사가 결혼을 원한다던 발언도 거짓이었습니까?”나는 단상 아래를 잠깐 봤다. 도윤의 마음까지 내 거짓말 목록에 넣고 싶지는 않았다.“그분의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목이 잠겼지만 말을 이었다.“제가 그 마음에 기대고 이용한 부분까지 사과드립니다. 그 이후 관계는 사적인 일이라 답하지 않겠습니다.”“임신 테스트기까지 준비한 이유는 뭡니까?”“차우진 전무와 혼담을 피하려고 태성그룹을 기만한 것 아닙니까?”“브랜드 책임자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졌다.“없다고 판단해 보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마지막으로 허리를 깊이 숙였다. 카메라 소리는 여전했지만 처음 폭탄을 던진 날부터 가슴에 얹혀 있던 돌 하나가 내려갔다.단상 뒤로 내려오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오빠가 물병을 건넸다.“잘했어.”“할머니는?”“안 보셨대. 그런데 비서실 모니터 앞 커피가 세 번 리필됐더라.”희미하게 웃다가 회견장 가장 뒤에서 익숙한 뒷모습을
Last Updated : 2026-09-1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