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맞선을 피하려 던진 한마디가 인생을 뒤집었다. “저, 임신했어요. 아빠는… 강도윤이고요.” 오랜 남사친의 이름을 팔아 위기를 넘기려던 윤세아. 그런데 거짓말을 알게 된 도윤은 화내기는커녕 가족들 앞에서 태연히 무릎을 꿇는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가짜 임신으로 시작된 가짜 약혼. 그런데 세아가 거짓말을 수습하려 할수록, 15년 동안 마음을 숨겨온 도윤의 직진은 점점 진심이 되어간다. 임신은 거짓말인데, 이 남사친은 왜 이렇게 진심인 걸까?
查看更多“신랑이 사라졌어.”오빠의 말에 신부 대기실이 얼어붙었다.엄마는 경찰부터 부르자고 했고, 혜진 이모는 아들이 도망갈 리 없다며 오빠 멱살부터 잡았다.“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너라며!”“제가 왜 용의자예요?”나는 도윤에게 다시 전화했다.[전원이 꺼져 있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맥박이 빨라졌다. 그래도 그가 결혼식에서 도망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십오 년을 기다린 남자였다. 사라졌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유가 왜 결혼식 열 분 전에 생겼느냐였다.그때 ‘다섯 시부터’ 수빈에게 전화가 왔다.- 대표님, 정원 입구에서 웨딩 케이크 배송 차량이 접촉 사고가 났어요. 기사님이 머리를 부딪쳐서…….“사람은 괜찮아?”- 케이크가 늦어서 강 변호사님이 확인하러 나오셨다가 사고를 보자마자 119 불러 주셨어요. 기사님은 의식 있고요. 그런데 변호사님 휴대전화가 차 밑으로 떨어져서 완전히 깨졌대요.모두가 창가로 몰려갔다. 정원 입구에 검은 턱시도 차림의 도윤이 걸어오고 있었다. 한 손에는 사고 차량에서 건져 낸 케이크 상자, 흰 셔츠 소매에는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그가 대기실 문을 열자 나는 부케로 가슴을 한 번 때렸다.“사람부터 도운 건 잘했어. 그래도 말은 남겨야지!”“민혁이 형한테 전달해 달라고 했는데.”모두의 시선이 오빠에게 향했다. 오빠는 한쪽 귀의 영상팀 이어폰을 빼며 굳었다.“나한테 말했어?”“케이크 차 사고 났고, 기사님 확인하고 바로 오겠다고.”“나는 ‘케이크 잘 나왔고 기사님 확인하고 온다’로 들었는데…….”“원흉 찾았네.”도윤은 숨을 고르며 상자를 열었다. 별 모양 설탕 장식이 올라간 흰 케이크는 한쪽이 조금 기울었지만 무너지지 않았다.“예비 케이크도 있다며. 이건 왜 들고 왔어?”“네가 직접 만든 첫 웨딩 케이크잖아. 살릴 수 있으면 살려야지.”그 말에 더는 화를 낼 수 없었다. 도윤은 케이크보다 내 얼굴부터 살폈다.“많이 놀랐어?”“신랑 실종 신고서 쓸 뻔했어.”“변호인 선임부터 할게.
“이번에는 또 뭘 피하려는 거니?”할머니의 질문에 나는 병원에서 받아 온 검사 결과지를 꺼냈다.“아무것도 안 피해요. 저 정말로 임신했어요.”엄마는 서류를 받아 빛에 비춰 봤다.“이거 진짜니?”“병원에서 받았어요.”오빠는 휴대전화로 병원 직인을 검색했다.“직인은 같은데.”“왜 위조 감정까지 해!”도윤이 밀폐 봉투에 넣은 테스트기 네 개를 식탁 위에 나란히 놓았다.“오늘 세아가 직접 검사한 겁니다.”혜진 이모가 두 줄을 확인하고도 쉽게 기뻐하지 못했다.“지난번 것도 두 줄이었잖아.”“그건 지수 거였어요.”“이번엔 지수가 소변까지 빌려준 건 아니지?”“이모!”억울했지만 할 말이 없었다. 신뢰를 한 번 잃으면 진실 하나에 증거가 네 개씩 필요했다.엄마가 시험하듯 물었다.“태명은?”“아직 없어요.”“지난번에도 없다고 했잖아.”“진짜 임신이라고 자동으로 태명이 내려오는 건 아니에요!”오빠가 턱을 만졌다.“이번 반응이 더 억울하긴 하네.”“그게 과학적 기준이야?”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병원 가자.”“지금 밤 아홉 시예요.”“응급실은 열려 있지.”“임신 확인하러 응급실 가면 병원에서 우리 가족 출입 금지해요.”결국 도윤이 담당 의사에게 전화했다. 의사는 내 동의를 확인한 뒤 검사 결과가 양성이라고 설명했다.그래도 할머니는 직접 듣겠다며 다음 날 온 가족을 병원에 끌고 갔다. 진료실 앞에 할머니, 엄마, 오빠, 혜진 이모, 비서까지 줄지어 앉자 다른 환자들이 우리를 구경했다.“가족분이 많으시네요.”의사가 말했다.“거짓 임신 전과가 있어서요.”내 대답에 의사는 이해하지 못한 채 웃었다.혈액 검사 결과까지 확인한 뒤에야 가족들의 표정이 바뀌었다.“임신 초기 수치가 맞습니다.”엄마는 세 번이나 다시 물었고, 오빠는 결과지 이름과 주민번호를 대조했다. 할머니가 병원 원장에게 전화하려 하자 내가 휴대전화를 빼앗았다.“이 정도면 믿어 주세요.”“네 전적이 화려해서 그렇지.”“한 번이에요!”엄마가 나를 끌
두 줄짜리 테스트기를 들고 나오자 지수가 벌떡 일어났다.“진짜야?”“불량일 수도 있잖아.”“내가 방금 약국에서 산 거야.”“증발선일 수도 있고.”“저렇게 진한 증발선이면 제조사가 상 줘야 해.”나는 테스트기를 조명 아래로 들어 올렸다. 첫 거짓말 때 빌렸던 것과 똑같은 두 줄. 그런데 그때는 들킬까 손이 떨렸고, 지금은 믿어도 되는지 몰라 떨렸다.“도윤이한테 전화해.”“안 돼.”“왜?”“또 안 믿으면 어떡해?”지수가 어이없다는 듯 봤다.“그 인간은 네가 외계인 아이를 가졌다고 해도 우주법부터 찾을걸.”“가족들이 안 믿을 거야.”“맞선도 없는데 뭘 피하려고?”“습관성 거짓 임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말하면서도 황당했다. 신뢰를 잃은 사람은 진실 앞에서도 증거부터 떠올린다.지수는 테스트기 세 개를 더 사 왔다. 나는 물을 마시고 기다렸다가 하나씩 확인했다.네 개 모두 두 줄이었다.사진을 찍었다가 지웠다. 지난번처럼 증거부터 만들기보다 도윤과 먼저 기뻐하고 싶었다.“나 엄마 되는 건가?”입 밖에 내자 갑자기 눈물이 났다. 지수가 나를 안고 등을 두드렸다.“응. 진짜.”“아직 병원 전이잖아.”“그럼 지금 가.”“도윤이 없이?”“아까는 말 안 한다며.”내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화장실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세아야?”도윤이었다.“재판 끝났어. 케이크 골랐어?”나는 테스트기들을 휴지로 덮었다. 지수가 입 모양으로 물었다.말해?고개를 세차게 저었다.문을 열자 도윤이 케이크 상자를 들고 서 있었다. 내 창백한 얼굴을 보자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어디 아파?”“아니.”“토했다며.”“버터를 너무 먹어서.”그의 시선이 내 뒤 세면대로 갔다. 몸으로 가렸지만 휴지 아래에서 테스트기 손잡이 하나가 삐져나와 있었다.“저건 뭐야?”“아무것도 아니야.”“지난번에도 그 말하고 지수 테스트기를 들고 있었지.”도윤이 다가오자 나는 네 개를 등 뒤로 숨겼다.“이번에도 지수 거야?”“아니.”“그럼?”더
“윤세아, 나랑 진짜로 결혼해 줄래?”나는 무릎을 꿇은 도윤을 내려다봤다.“싫어.”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왜?”“너 혼자 프러포즈하는 거.”“무슨 뜻이야?”나는 의자에서 내려와 맞은편에 함께 무릎을 꿇었다. 탄 달걀 냄새가 가득한 주방 바닥이었다. 나는 도윤 셔츠를 걸치고 있었고, 그는 아까 겨우 주워 입은 셔츠 차림이었다. 프러포즈치고는 낭만보다 탄 달걀 냄새가 더 진했다.“처음에는 네가 혼자 책임진다고 했잖아. 이번에는 같이 하자.”도윤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나도 너랑 결혼하고 싶어.”“확실해?”“가족도 회사도 거짓말도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거 맞아.”어젯밤 그가 한 질문을 그대로 돌려주자 눈가가 붉어졌다.“녹음해 둘걸.”“평생 반복 재생해 줄 테니까 외워.”그제야 굳었던 입꼬리가 올라갔다.“사람 놀라게 하는 재능은 여전하네.”“거짓말 재능도 있었고.”“그건 없었어. 전 국민에게 들켰잖아.”도윤은 내 대답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방금 싫다고 한 부분은 철회?”“너 혼자 하는 프러포즈만.”“결혼 의사는 확정?”“네.”“번복 불가?”“강도윤, 입 다물어.”그제야 아주 길게 숨을 내쉬며 나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고 주방 바닥에 함께 주저앉았다.“내 프러포즈 선물은?”“너면 돼.”“그 말 후회하지 마. 유지비 많이 들어.”“십오 년치 선납했어.”그가 내 손가락의 반지에 입을 맞췄다.그날 저녁 우리는 양가 가족을 다시 불렀다. 같은 식탁에서 첫 약혼을 취소한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았다.할머니는 소식을 듣고도 한동안 무표정했다.“임신 때문은 아니지?”“아니에요.”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테스트기 같은 건 없고?”“없다니까요!”오빠가 휴대전화를 들었다.“프러포즈 증거 영상은?”“없어.”“거짓 임신 전과자의 단독 증언만으로 결혼을 승인해도 됩니까?”엄마가 오빠의 등을 세게 때렸다.“네 동생 좋은 날에 꼭 그렇게 말해야겠니?”“신뢰 회복 절차를 제안한 것뿐인데.”도윤이 탄 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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