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정전 뒷방의 등불이 새벽빛에 묽어져 가고, 문살 너머 앞뜰에서는 행렬이 자리를 잡는 발소리가 낮게 이어졌다.도홍이 세자의 등 뒤에서 곤룡포를 끌어 올렸다. 무거운 옷이 어깨에 걸리자 세자가 허리를 폈다.상의원에서 밤새 뜯어 고친 자리가 이제는 몸에 맞았다. 등판의 주름까지 펴 주자 세자가 팔을 들어 보았다. 소매 끝이 손등을 덮었다.“길지 않으냐.”“전하 소매는 원래 그렇습니다.”“아직 전하가 아니다.”“반 각만 지나면 전하십니다.”도홍은 익선관을 씌우고 양옆으로 뻗은 뿔을 바로잡았다. 두 걸음 물러나 옷매무새를 살피는데 눈가가 젖었다.세자가 고개를 돌리자 미처 숨기지 못했다.“울지 마라.”“안 웁니다.”세자는 코웃음을 쳤다.“……아이고, 곤룡포가 너무 커서 그렇습니다.”세자는 대꾸 없이 휘정전 뒷문을 나섰다. 앞뜰로 향하는 동안 큰 종이 울려, 돌바닥을 딛는 발밑까지 진동이 전해졌다.뜰 앞줄에는 종친이, 그 뒤로는 대신들이 엎드려 있었다. 문관과 무관의 행렬이 양쪽으로 갈라져 뜰 끝까지 이어졌다.세자는 그 사이로 난 길을 걸었다. 정면에 높이 세운 단 위로 어좌와 병풍이 드러났다.도홍이 긴 옷자락을 받쳐 들었다. 세자는 아홉 계단을 올라 어좌 앞에 섰다.예조판서 민해가 단 아래서 교서를 폈다. 선왕의 공덕과 뒤를 이을 세자의 덕을 기리는 목소리가 뜰 끝까지 뻗었다.창 사신은 아직 서관을 넘지 않았다. 황제가 왕위를 인정하는 글, 고명도 오지 않았다.휘가 세워진 뒤 처음 있는 일이었으나 민해는 그 대목을 언급하지 않았다.교서 낭독이 끝나자 세자는 어좌에 앉았다. 얇은 방석 아래로 단단한 나무가 받쳤다.아버지가 스물일곱 해 동안 앉았던 자리였다.그는 등을 세우고 두 손을 무릎에 얹었다. 나무의 찬 기운이 방석을 지나 허벅지까지 올라왔다.천세. 천세. 천천세.앞줄에서 시작된 환호를 뒤의 사람들이 받아 외쳤다. 담 너머에서도 궁녀와 내관들의 목소리가 합쳐졌다.천세를 외치는 소리가 잦아들자 큰 종이 다시 울렸다.강진의
Last Updated : 2026-09-1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