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선왕의 남총을 처분하는 법: บทที่ 1 - บทที่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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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유서

“또 쓰십니까.”영수전 곁방 문을 연 늙은 내관 봉수가 여울 앞의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여울은 붓을 든 채 대답했다.“세 번째 고칩니다.”“어제 석 장이나 쓰셨잖습니까.”“쓰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처분이 먼저 오면 끝까지 못 쓰지 않습니까.”봉수가 낮게 웃으며 죽과 물그릇을 얹은 소반을 들고 들어왔다. 여울이 종이를 옆으로 밀자 봉수는 소반을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짧은 상복 소매 아래로 늙은 손목이 한 뼘이나 드러나 있었다.“소매가 왜 그렇습니까.”“내시부에서 주는 대로 받아 왔습니다. 늙은 것들은 짧고 어린것들은 길어서, 곡하다 서로 소매를 밟게 생겼습니다.”“바꿔 달라 하시지요.”“에구, 국상에 옷 투정한다고 눈이나 찍힙니다.”봉수는 죽 그릇 오른쪽에 숟가락을, 왼쪽에 물그릇을 놓고는 소반 옆의 종이에 고개를 기울였다. 하여울 석 자만 적혀 있었다. 마지막 획에 먹이 번져 ‘울’ 자가 조금 뭉개져 있었다.“이름밖에 안 쓰셨잖습니까.”“다음이 안 나옵니다.”여울은 뭉개진 제 이름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붓을 내려놓았다. 물목마을 앞 여울목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고을 서리였던 아버지가 밤마다 낙수 소리를 들으며 지었다고 했다. 얕게, 사람 해치지 말고, 소리나 내며 살라고.숟가락을 집어 죽을 젓던 여울이 소반 건너에 선 봉수에게 물었다.“어른은 드셨습니까.”“먹었습니다.”“거짓말.”“……줄이 빈전까지 늘어서서 못 먹었습니다. 저는 됐으니 드십시오.”여울은 아직 입에 대지 않은 숟가락을 그릇 곁에 놓고 죽을 봉수 쪽으로 밀었다. 봉수가 허리를 굽혀 도로 밀어 주는 바람에 죽이 가장자리까지 출렁였다.“입맛 없습니다.”“입맛으로 드시는 겁니까. 살려고 드시는 겁니다.”“이제 와서 말입니까.”봉수의 손이 그릇을 붙든 채 멎었다.“드십시오. 그래야 저도 갑니다.”여울이 죽을 한 술 떠 입에 넣자 봉수는 그제야 그릇에서 손을 뗐다. 앉으라는 말에도 소반 곁에 선 채였다. 여울이 이 곁방에 들어온 날부터 봉수는 그릇이 빌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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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기침

축시에 눈이 떠졌다.여울은 누운 채 안채 쪽 벽에 귀를 두었다. 마른기침도, 뒤이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도 없었다. 손바닥에 닿은 벽만 차가웠다.여울은 일어나 화로의 숯불을 살리고 작은 솥을 얹었다. 물이 끓자 그릇에 따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가 안채로 가는 문 앞에서 멈췄다. 선왕이 승하한 뒤로 닫혀 있는 문이었다.뜨거운 그릇을 화로 곁에 내려놓았다.새벽 곡은 빈전에서 시작돼 궁 전체로 번졌다. 궁녀들의 높은 곡과 내관들의 낮은 소리가 따로 흐르다 영수전 처마 아래에서 뒤엉켰다. 여울은 문틀에 기대 듣다가 식은 물을 마셨다.날이 밝자 회랑에 발소리가 늘었다. 상복 끄는 소리와 뛰지 말라는 꾸지람 사이로 궁녀 둘이 곁방 앞을 지났다.“아직 저 안에 있대.”“어디 가겠어. 갈 데가 없는데.”“처분 나면 내시부 뒷방으로 옮기나?”“죽는다잖아. 옮기기는 어딜 옮겨.”“쉿.”걸음이 급히 멀어졌다. 여울은 문틀에서 몸을 떼고 이부자리 쪽으로 돌아왔다. 밤새 끌어당겨 놓은 이불을 펴서 개는데, 문밖에서 누군가 또 목소리를 낮추었다.봉수는 해가 높이 오른 뒤에 왔다.“오늘은 안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내시부에 모였습니다. 빈전에 밤샘할 사람이 모자란다고 늙은 것들까지 세운답니다.”봉수가 소반을 내려놓았다. 짧은 소매는 어제 그대로였다. 화로 곁에서 물이 반쯤 남은 그릇을 발견하자 아무 말 없이 들고 나갔다. 여울이 소반을 당기는 동안 봉수는 그릇을 비우고 씻어 와 화로 옆에 엎어 두었다.“어른도 밤을 새웁니까.”“내일부터입니다. 아이고, 이 다리로 서 있으라니.”“저는 밤을 잘 새웁니다.”봉수가 무릎을 주무르던 손을 멈추었다.“여울님이 빈전에 서 계시면, 서 있을 사람이 더 없어집니다.”여울은 죽을 한 술 떴다. 뜨겁지 않은데도 한참을 삼키지 못했다.“……그렇겠습니다.”봉수는 그릇이 반쯤 빌 때까지 기다렸다가 소매 끝을 여몄다.“미시에 상선 어른이 오십니다.”숟가락이 죽 속에 멎었다.“여기로 말입니까?”“예. 장부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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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색적

상선 배원이 뒤따라온 내관에게서 옻칠한 함을 받아 문턱 앞에 내려놓았다.여울은 문 안쪽에 엎드려 있었다. 배원은 소매에서 열쇠를 꺼내 함을 열었다. 궁 안 내관들을 다스리는 상선도 이 방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함에서 꺼낸 장부는 손바닥 둘을 편 것만큼 작고 얇았다.“내시부 색적의 법을 읽겠다.”배원이 목을 가다듬는 동안 뒤의 내관 둘은 눈을 내리깔았다.“색적에 오른 자는 본래의 적을 잃는다. 혼인하지 못하고 궁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죽어도 사초에 오르지 않는다. 왕이 승하하면 새 왕의 처분을 기다리며, 그때까지 빈전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거처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상복도 입지 못한다.”마지막 말에 봉수의 짧은 상복 소매가 움직였다. 여울이 고개를 더 낮추자 배원이 장부를 펼쳤다.“고개를 들어 확인해라.”배원이 펼친 장부를 여울 쪽으로 기울였다. 한 장에 이름 여섯이 줄을 맞추고 있었다. 위의 먹빛은 오래되어 갈색으로 바랬다. 이름 옆에는 장부에 오른 해가, 그 옆에는 처분을 적은 글자가 남았다.사(死). 출(出). 사(死). 사(寺). 출(出).맨 아래에 하여울과 휘력 백칠십구년이 적혀 있었다. 그 옆자리만 종이 빛 그대로였다.“처분이 내리면 저기에 적는다. 죽이거나, 내치거나, 절로 보내거나.”배원이 장부를 거두어 함에 넣었다.“그때까지 이 방을 나가지 마라.”“예.”“오늘 안으로 내시부 청사 뒷방에 들인다. 국상 중에 색적자가 침전 곁방을 차지하는 것은 법도에 맞지 않는다.”여울이 다시 엎드리려는데 봉수가 문 옆에서 나섰다.“선왕의 명이 있었습니다.”배원의 손이 함 뚜껑 위에 멎었다.“무슨 명.”“처분이 내릴 때까지 곁방에 두라 하셨습니다.”“선왕께서는 승하하셨네.”“명은 살아 있습니다.”뒤에 선 내관이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배원은 봉수의 얼굴을 오래 살폈다.“자네가 들었나.”“예.”“언제.”“승하하시기 이레 전, 이 방에서 들었습니다.”“함께 들은 이는.”“없습니다.”배원은 더 캐묻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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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단이

문이 열리자 흰 치마를 입은 어린 궁녀가 봉수 뒤를 따라 들어왔다.궁녀는 봉수 어깨에 겨우 닿는 키로 그 뒤에 숨어 있었다. 봉수가 옆으로 비키자 맞잡은 손을 배에 붙이고 고개를 더 숙였다.“내시부에서 보냈습니다. 처분이 내릴 때까지 곁방 시중이랍니다.”“시중 들 일이 있습니까.”“없습니다.”“그런데 왜 보냈답니까.”“규정이라니 저도 모르지요.”봉수는 죽 그릇을 내려놓고 궁녀에게 문 안쪽을 가리켜 주었다. 바꿔 온 상복 소매가 손목을 덮었다. 여울이 그 소매를 한번 당겨 내려 주자 봉수는 헛기침을 하고 나갔다.아이는 여울이 죽을 비울 때까지 문 안쪽에 서 있었다. 고개도 들지 않고 두 손만 배 앞에서 맞잡았다. 여울이 숟가락을 놓자 얼른 절을 했다.“일어나라.”몸을 일으키다 여울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엎드렸다.“이름이 뭐냐.”“단이입니다.”“몇 살이냐.”“열일곱입니다.”“절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예.”단이는 대답하고 또 절했다. 여울이 문틀에 기대앉자 그제야 일어났으나,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 손가락 끝이 희게 질려 있었다.“단이야.”“예.”“내가 무섭냐.”손가락 끝이 더 희어졌다.“여기 오기 전에 무슨 말을 들었느냐.”“……아무 말도 못 들었습니다.”“손 아프겠다. 놓아라.”단이는 제 손을 내려다보고 황급히 풀었다. 갈 곳을 잃은 손이 옷자락을 더듬다가 다시 맞잡혔다.“어디서 왔느냐.”“세답방입니다.”“빨래를 했겠구나.”“예.”“여기는 빨래도 없는데 뭘 하지.”단이가 고개를 조금 들었다. 큰 눈 밑이 울다 만 듯 부어 있었다.“……저도 모르겠습니다.”여울은 빈 죽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단이가 얼른 손을 뻗자 그릇을 내주었다가, 갈라진 손가락을 보고 도로 받았다.“그건 두어라. 봉수 어른이 가져가신다.”단이는 내밀었던 손을 거두고 또 고개를 숙였다. 여울은 문틀에서 등을 떼어 안채 쪽 벽을 가리켰다.“저 벽에 손 한번 대 봐라.”“예? 저 벽 말씀이십니까?”“그래.”단이는 벽 앞에서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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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상궁

마루에 발이 닿고, 조금 늦게 치맛단이 바닥을 쓸었다.그 두 박자 걸음이 문 앞에서 멈추자 단이가 벽에서 손을 떼었다. 여울은 아이를 제 뒤로 물리고 문 안쪽에 엎드렸다.문을 연 사람은 봉수가 아니었다. 회색 당의에 남색 치마를 입고 머리칼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상궁이 문턱 밖에서 방 안을 살폈다.“대비전 최 상궁이다.”“예.”“마마의 말씀을 전한다. 상복을 입지 마라.”여울은 엎드린 채 제 옷소매를 내려다보았다.“……입지 않고 있습니다.”“네가 입었는지를 물으신 게 아니다. 입지 말라 하셨다.”“예.”치맛단이 문턱을 넘어왔다. 최령은 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서 이부자리 곁에 섰다. 꺼진 화로와 그 옆에 엎어진 물그릇을 살피다가 안채 쪽 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울 뒤에 선 단이가 옷자락을 움켜쥐자 최령이 아이를 불렀다.“너는 누구냐.”단이가 바닥에 엎드렸다.“내시부에서 보낸 단이라 합니다.”“나이는.”“열일곱입니다.”“고향은.”“동도 청천입니다.”“부모는.”“없습니다.”최령의 대답이 한동안 없었다. 단이는 조심스럽게 허리를 세워 앉고, 맞잡은 손으로 무릎 위 치마를 눌렀다.“손을 내밀어라.”단이가 두 손을 폈다. 물에 불었다 마르기를 거듭한 손바닥은 붉었고, 손가락 마디마다 잔금이 가 있었다. 최령의 눈이 손에서 단이의 얼굴로 올라갔다.“세답방에 있었지.”“……예.”“손이 그렇다.”최령은 손에 닿지는 않고 몸을 돌렸다. 문턱에 이르러서는 여울을 돌아보았다.“마마께서 하나 더 말씀하셨다.”여울이 이마를 바닥에 댔다.“네가 살아 있는 걸 잊지 않으셨다고.”문이 닫혔다. 발소리와 치맛단 스치는 소리가 회랑 끝으로 멀어졌다.여울이 몸을 일으켰을 때도 단이는 손바닥을 편 채였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제 손이 어땠습니까.”“나도 모르겠다.”“왜 보자고 하셨겠습니까.”여울은 아이의 손을 치마 위로 내려 주었다. 최령이 서 있던 자리에서는 이부자리 뒤쪽까지 훤히 보였다. 여울은 벌어진 옷깃을 여미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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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여막

밤 곡을 마친 세자 강진이 빈전 뜰의 여막으로 돌아왔다. 삼베를 걷고 들어가 자리에 앉자, 밖에서 기다리던 사내가 무릎을 꿇었다. 세자에게 글을 가르치던 한겸이었다.“사간원 상소입니다. 즉위 뒤 첫 조회에 올릴 글을 미리 받아 왔습니다.”세자는 무릎 위에 문서를 펼쳤다. 선왕의 남총을 처분하라는 글 아래 정언의 이름이 있었다.“정언이 혼자 쓴 것은 아닙니다. 뒤에 좌상이 있습니다.”“그렇겠지.”“어찌하실지.”세자는 문서를 접어 한겸에게 돌려주었다.“조회에서 듣겠다.”한겸이 물러난 뒤에도 삼베는 한동안 들려 있었다. 내관 도홍이 물그릇을 받쳐 들고 들어와 세자 곁에 내려놓았다.“한 모금 드십시오. 밤새 목을 쓰셔야 합니다.”“됐다.”“닷새째 죽 한 그릇씩입니다.”“국상이다.”“아이고, 국상이라도 좌상 대감은 세 그릇 드십니다.”세자가 고개를 들자 도홍은 그릇을 조금 더 가까이 밀었다. 세자는 물을 마셨다. 마른 목에 닿는 물이 따가웠다.뜰에서는 종친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신발 끄는 소리와 낮은 말소리가 잦아들 무렵 도홍이 입을 열었다.“영수전 곁방은—”“말하지 마라.”도홍은 그릇을 거두려던 손을 멈췄다.“그 방 얘기는 내가 먼저 꺼낼 때까지 아무도 꺼내지 않는다. 너도.”도홍이 머리를 숙이고 나갔다. 삼베가 내려앉으며 뜰이 가려졌다.열여덟, 영수전으로 이어지는 회랑에서 세자는 먼저 돌아섰다. 걸음은 등 뒤까지 다가와 그대로 지나갔다. 제 앞에서는 늘 멈추던 여울이 아버지의 침전으로 갔다.그 뒤로 세자는 영수전에 가지 않았다. 누구를 보내 그 안의 일을 묻지도 않았다. 가까운 길을 두고 담을 돌아갔고, 누가 여울을 입에 올리면 말을 끊었다.잠들면 피하던 회랑에 서곤 했다. 간밤에도 여울이 등 뒤를 지나갔다. 세자는 돌아서서 그 소매를 움켜쥐었다. 돌아오는 얼굴을 기다리는 동안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여울이 저를 마주하기 전에 잠이 깼다. 움켜쥔 이불을 내던지고도 한참이나 이를 풀지 못했다.날이 밝으면 한겸이 펼쳐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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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준비

곡소리가 그치면 못 박는 소리가 이어졌다. 여럿이 무거운 짐을 옮기며 구령을 맞췄고, 회랑을 뛰어가는 사람 뒤로 꾸지람이 따라붙었다. 곁방 앞을 지나는 걸음도 빨라졌다.단이는 물을 길어 올 때마다 들은 소식을 옮겼다. 휘정전 앞에는 즉위식에 쓸 단을 쌓는다고 했다. 상의원에서는 밤새 지은 곤룡포의 어깨가 맞지 않아 다시 뜯었다고도 했다.“바느질하던 궁녀들이 울었다 합니다.”여울이 물그릇을 받아 내려놓았다.“저하께서 어깨를 좀 좁혀 주실 수도 없고.”단이가 입을 가리고 웃다가, 밖에서 발소리가 나자 얼른 손을 내렸다. 여울은 열린 문을 조금 당겨 닫아 주었다.아이는 벽에 손을 대고 섰다. 시중을 든 지 사흘째인데도 여울이 내주는 일은 그것뿐이었다.“즉위하시면 저하가 아니라 전하가 되시는 것이지요.”“그렇다.”“그러면 처분도…….”벽을 짚은 단이의 어깨가 올라갔다. 여울은 문틀에 기대었던 등을 세웠다.“물을 게 있으면 물어라.”“무섭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여울이 고개를 끄덕이자 단이가 돌아섰다.“그런데 어찌 그리 가만히 계십니까.”“가만히 있는 것도 힘이 든다.”단이는 벽에서 손을 내렸다. 여울이 제 곁을 가리켰지만 아이는 선 채로 치맛자락만 만지작거렸다.—봉수는 저녁 죽을 가져와 내려놓더니 여울과 마주 앉았다. 다리를 펴다가 끙 소리를 내기에 여울이 소반을 옆으로 밀어 자리를 넓혔다.“빈전 밤샘이 고되십니까.”“옆에 선 애가 자꾸 졸아서, 에구. 깨우고 돌아서면 또 좁니다.”봉수는 무릎을 쓸다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단이는 물동이를 돌려주러 나가고 없었다.“즉위식까지 사흘 남았습니다. 그날 이 문은 밖에서 잠급니다.”죽을 뜨던 여울의 손이 그릇 위에 머물렀다.“제가 나갈까 봐 잠그는 겁니까, 누가 들어올까 봐 잠그는 겁니까.”“둘 답니다.”여울은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봉수도 더 말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밖에서는 긴 널을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허리야, 하고 신음을 냈다.식사를 마치자 봉수가 소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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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선정당

선정당 문을 활짝 열어 낮빛을 들였다. 세자는 비어 있는 상석 아래, 동쪽 자리에 앉아 대신들의 보고를 받았다.좌상 이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 희끗한 수염 아래 입매는 곧았다.“창의 사신이 서관에 닿았다 합니다. 관문을 넘는 날은 아직 정하지 않았으나, 넘고 나면 열흘 안에 입경할 터이니 맞을 채비를 해야 합니다. 선왕 때와 같이 신이 맡겠습니다.”“대비마마께서도 좌상이 맡는 게 온당하다 하셨습니다.”우상 윤척이 거들었다. 세자의 외숙인 그는 누이의 뜻을 전한 뒤 이헌에게 자리를 돌려주었다. 한겸은 세자 뒤에서 접대 절차를 적었다.예조판서 민해가 예물 목록을 펼쳤다. 쉰을 넘긴 사내의 목소리가 선정당에 울렸다. 인삼 스무 근, 종이 삼백 권, 말총 열 필, 해란산 향료 세 상자.“향료는 선왕 때 몇 상자를 보냈나.”민해가 읽던 대목에 손가락을 댔다.“다섯 상자였습니다.”“다섯으로 맞춰라. 사신이 셈을 할 테니.”민해가 곁의 붓을 당겨 목록을 고치는 동안 세자는 이헌을 향했다.“선왕 때 온 사신은 모두 좌상이 맞았나.”“예. 다섯 차례 모두 신이 맞았습니다.”“창의 사신은 휘의 왕보다 좌상 얼굴을 더 잘 알겠군.”이헌은 입을 다물고 숨을 들이쉰 뒤 답했다.“신은 왕명을 받들었을 뿐입니다.”“이번에도 왕명을 받들라. 즉위 뒤 명을 내리겠다.”윤척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저하, 관문을 넘었다는 전갈이 오면 열흘도 남지 않습니다. 미리 정해 두지 않으시면—”“준비를 멈추라 하지 않았다.”윤척은 소매를 당겨 무릎 위에 놓았다. 민해가 고친 목록을 건네려 하자 이헌이 손을 들어 막았다.“저하. 즉위 전에 정리하실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세자는 이헌에게 말을 이으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색적자 처분입니다. 사간원 상소도 있고, 침전 곁방에 그대로 두는 것이 법도에 맞지 않는다는 말도 나옵니다. 미리 처분하시면 새 임금의 첫 조회가 깨끗할 것입니다.”한겸의 붓이 종이에서 떨어졌다.“즉위 전에는 왕이 없다.”“저하께서 뜻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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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접은 글

여울은 접어 두었던 유서를 무릎 앞에 펼쳤다. 석 장의 글을 다시 읽고, 이름만 적은 한 장을 맨 뒤에 놓았다. 뒤로 갈수록 기울어진 글씨도 그대로 두었다.넉 장을 포개 접었다. 손바닥에 들어올 만큼 한 번 더 접었을 때 봉수가 죽을 가져왔다.“다 썼습니다.”여울이 손을 내밀었지만 봉수는 소반을 내려놓고 허리를 폈다.“맡아 주십시오.”“안 읽습니다.”“읽으시라는 게 아닙니다. 맡아 달라는 겁니다.”“맡으면 읽게 됩니다.”봉수의 손은 빈 채로 늘어져 있었다. 여울은 종이를 무릎에 놓고 소반을 당겼다. 죽을 몇 술 뜨는 동안에도 봉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제가 죽으면 이거 누가 읽습니까.”“……그때 가서 보지요.”“어른이 읽으신다는 말씀입니까.”여울이 숟가락을 내려놓자 봉수가 아직 죽이 남은 그릇을 가리켰다.“식기 전에 마저 드십시오. 물도.”여울은 남은 죽을 마저 먹었다. 물까지 마시고 그릇을 소반에 돌려놓았을 때도 봉수는 기다리고 있었다.“여기 두겠습니다. 마음 바뀌시면 꺼내 가십시오.”여울은 유서를 옷깃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안감에 꿰매 둔 종이와 달리 바로 꺼낼 수 있는 자리였다. 옷깃을 여미자 겹친 종이 끝이 가슴을 눌렀다.봉수는 소반을 들었다. 문턱을 넘기 전에 여울의 옷깃으로 눈길이 내려갔다가, 그대로 나갔다.단이가 벽에서 손을 떼고 다가왔다.“무슨 글을 쓰셨습니까.”“아버지 얘기. 고향 얘기도 조금.”“고향은 어디십니까.”“물목마을이다. 북도 낙수 상류에 있다.”단이는 문 앞에 앉으며 치마를 무릎 밑으로 여몄다.“저는 동도 청천입니다.”“그건 안다. 전에 말하지 않았느냐.”“북도도 멀겠습니다.”여울이 고개를 끄덕이자 단이는 발끝을 치마 속으로 넣었다. 아이의 버선 바닥이 닳아 있었다.“마루가 차냐.”“조금입니다.”여울이 개어 둔 이불을 당겨 아이 곁에 밀어 주었다. 단이는 손사래를 치다가 눈치를 살피고는 이불 위에 올라앉았다.“문 앞이 편하냐.”“여기서 길이 보입니다.”문틈으로 회랑의 기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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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전야

도홍은 길목에 멈췄다. 세자는 영수전으로 이어지는 회랑에 들어섰다. 등불 셋 가운데 하나가 꺼져 중간쯤부터 바닥이 어두웠다.이 회랑을 밟는 것이 여덟 해 만이었다.안채 문은 닫혀 있었다. 세자는 그 앞을 지나 곁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문턱 옆에는 이불을 덮고 누운 사람이 있었다. 기둥 그늘에 얼굴이 가려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았다.세자는 곁방 문에서 세 걸음 떨어져 멈췄다. 틈으로 새는 불빛도 없었다. 내일이면 저 문을 열라 명할 수 있었다. 안에 있는 자를 끌어내 어느 뜰에 꿇릴지도 제 뜻대로 정할 수 있었다.손끝이 상복 소매 안으로 말려들었다. 세자는 문고리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여울은 안채 쪽 벽에 손을 대고 앉아 있었다. 축시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문밖에서는 단이가 뒤척일 때마다 이불이 마루에 쓸렸다.회랑에서 다른 발소리가 났다.빨라지려다 느려지고, 잠시 고르다가 다시 빨라졌다. 여울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봉수의 발 끄는 소리도, 빈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도 없었다.걸음은 곁방 앞에서 그쳤다.여울은 벽에서 손을 떼었다. 문에 가까이 가려다 무릎을 세운 채 멈췄다. 단이가 잠결에 코를 훌쩍였다.문고리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세자는 팔을 내린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멀리 빈전 쪽에서 누군가 기침을 했다.문 옆의 이불이 움직이더니 도로 잠잠해졌다. 세자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회랑으로 몸을 틀었다. 올 때 지나온 기둥을 따라 걸어 선정당 옆길로 나왔다.도홍이 기다리던 자리에서 허리를 숙였다.“물을 가져오너라.”도홍은 세자의 반걸음 뒤로 붙어 빈전 뜰을 건넜다. 여막 앞에 이르러 삼베를 걷어 드린 뒤 물을 가지러 갔다.—발소리가 떠난 뒤에도 여울은 일으켰던 몸을 그대로 두고 있었다.누군지 확인하지 못했다. 여울은 방바닥을 짚고 천천히 자리에 누웠다.벽에서 뗀 손이 시렸다. 두 손을 겨드랑이 밑에 끼우고 문 쪽으로 돌아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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