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한재민은 피곤에 찌든 얼굴로 거실 소파에 널브러지듯 몸을 던졌다.최근 새로운 사업을 확장하면서 중요한 거래처 미팅에 치여 살다 보니, 퇴근 시간은 늘 이 모양이었다.올해 서른, 미혼.일과 악착같이 연애하듯 살아온 덕분에 지금의 회사를 이만큼 키워냈지만, 그 대가는 퀭한 눈밑과 지긋지긋한 피로뿐이었다.주위에서 콧대 높은 미모의 여성들이 다가와도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결국 수십평은 족히 넘는 아 펜트하우스 안에는 그와, 집안을 관리하는 이여사님, 그리고 또 다른 도우미 하여사님. 단 셋만이 적막한 공간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사장님, 식사 준비할까요?”이여사님이 푸근한 인상으로 다가와 물었다. 50대 중후반의 그녀는 늘 재민에게 인자하면서도 엄격하게 예의를 갖추었다.“아니요 거래처 사람들과 먹고 왔습니다.”재민은 반쯤 감긴 눈으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손을 내저었다.“알겠습니다. 그럼 뜨거운 물 받아두었으니 씻으시지요, 사장님.”이여사님이 그의 구겨진 재킷을 조심스럽게 주섬주섬 챙기며 말했다.샤아아ㅡ욕실 안으로 들어선 재민의 귀에 뜨거운 물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욕조 속. 가슴까지 차오르는 따뜻한 물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은 재민의 입에서 낮고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하.....앗, 하......”탁, 탁, 탁ㅡ.물살을 가르는 거친 소리와 함께 그의 손이 아래를 향했다.“흐아아.....세아야.”신음과 함께 튀어나온 이름.윤세아. 그녀는 그의 첫사랑이었다.168cm의,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하늘하늘한 가늘고 여린 몸. 실크처럼 부드러운 까만 긴 생머리. 그리고 얼굴의 반을 차지할 것처럼 땡그렇던 큰 눈.바라보기만 해도 세상의 온갖 시름을 다 떨쳐낼 수 있을 만큼, 그녀는 그에게 전부였다.하지만 그런 그녀는 결국 재민을 떠나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가난한 집안에서 난폭한 아버지와, 자식에게 무관심한 어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란 세아. 그럼에도 그녀는 구김살 하나 없이
Last Updated : 2026-09-1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