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약속이 잡혔다. 이번 주말 식사 자리만큼은 큰 소리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재민이 문자를 읽었을까. 읽었다면 순순히 그 초대에 응할까. 현민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고요한 정적 속에서 휴대폰 알림음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짙은 남빛으로 물든 하늘.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정원을 환하게 비추었고, 창백한 달빛이 현민의 얼굴 위로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늘 환하게 웃던 얼굴이 그 순간만큼은 기묘하게 슬퍼 보였다.다음 날 아침, 재민의 펜트하우스.재민은 어젯밤 보드카를 단숨에 들이켠 탓인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띠리리ㅡ좀처럼 깨어날 기미가 없던 그를 깨운 건 강 비서의 전화였다. 무시하려 했지만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려대는 통에 재민은 어쩔 수 없이 침대 위를 더듬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응, 강 비서......"재민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잠에 취한 묵직한 목소리로 받았다.ㅡ대표님, 오늘 일정 보고드리겠습니다. 오전 11시에 MD은행과의 미팅이 있습니다. 그리고......"알겠어. 9시까지 엄 기사 대기하라고 전해줘."전화를 끊은 재민은 눈을 비비며 몸을 겨우 일으켰다. 헤드보드에 기대앉아 휴대폰에 수신된 연락들을 확인하던 순간, 어젯밤 읽다 만 메시지가 여전히 화면에 남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술기운에 잠들어 잠시 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재민은 몇 초간 허공을 응시하다가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그는 현민의 문자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기어코 일을 크게 만드는구나, 너란 녀석은......'불쾌한 기색을 드러낸 재민은 휴대폰을 침대에 휙 던져 버리고는 곧장 욕실로 향했다.그 시각, 주방에서는 지연과 이 여사님이 아침 식사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지연 씨, 식료품 저장실에서 감자 좀 가져와서 껍질 깎아줄래?""네!""아, 그리고 이따가 근처 프리미엄 식료품점에 가서 과일 좀 사 와야겠어. 뭘 사 올지는 메모지에 적어 줄게""네, 알겠습니다."감자 껍질을 깎던 지연이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Última atualização : 2026-10-16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