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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잠기지 않은 문

Author: 지뇨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1 18:48:11
재민은 평소보다 빠르게 반신욕을 마치고 욕조에서 일어섰다.

젖은 머리를 말리며 둘러본 욕실 안은 빈틈 없이 깨끗했다.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린 재민은 몸을 닦은 수건을 바구니에 툭 던져 두고 욕실을 나섰다.

가운만 대충 걸친 채 1층으로 내려온 그는 물을 한 잔 들이켜며 지연의 방문을 응시했다.

닫힌 문틈 사이로 가느다란 빛줄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재민은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무언가를 꼼지락거렸다. 빈 잔을 싱크대에 내려놓은 그는 긴 다리로 느긋하게 복도를 가로질러 지연의 방 앞으로 향했다.

손잡이를 내리고 문을 열었다. 예상과 달리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자, 지연이 액정이 깨진 구형 휴대폰에 줄 이어폰을 꽂은 채 노래를 듣고 있었다.

재민이 들어온 줄도 모른 채 침대에 엎드린 지연은, 짧은 바지 아래로 드러난 다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신나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처음 보는 발랄한 모습에 잠시 낯선 감정을 느낀 재민은 이내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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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장님의 은밀한 도우미   #35. 낯선 온기의 잔상

    회사에 도착한 뒤에도 재민의 머릿속에는 아침에 있었던 일이 맴돌았다.자신의 목에 넥타이를 매주기 위해 까치발까지 들었던 지연. 작은 손으로 능숙하게 매듭을 매만지던 그 모습이 좀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세아 이후로 누군가의 손길을 느껴본 게 얼마만인지.낯선 감각 때문이었을까. 지연의 손길이 목덜미에 닿을 때마다 묘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머리칼을 쓰다듬던 순간에도 그랬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시선이 머물렀고, 설명하기 어려운 충동이 고개를 들었다.결국 재민은 더 이상 그 감정을 마주하지 못하고 애꿎게 지연의 목덜미로 시선을 돌렸었다.'분명 동정심 때문이었을 거야. 송지연이라는 여자가 불쌍해서.'애써 생각을 떨쳐내려 했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다. 재민은 괜스레 넥타이만 만지작거렸다.어느덧 오후 3시.재민은 오전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연달아 이어진 업무와 회의 준비로 잠시 숨을 돌릴 틈조차 없었다.그때, 사무실 내선 전화가 울렸다."대표님, 잠시 후 있을 임원 회의에서 사용하실 투자 유치 관련 발표 자료가 필요합니다."강 비서의 말에 재민은 가방을 열어 안을 살폈다. 하지만 있어야 할 USB가 보이지 않았다.몇 번이나 서류 가방 안쪽을 뒤적이던 그는 이내 미간을 좁혔다."......집에 두고 왔군.""큰일이네요. 회의 시작까지 30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퀵서비스라도 불러서 가져오게 할까요?""중요한 정보들이 들어 있어 외부인에게 무작정 맡기긴 그렇고...... 도우미 편으로 가져오라고 할게."재민은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이 여사에게 연락을 걸었다."접니다. 제 방 테이블 위에 USB가 하나 있을 겁니다. 그거 좀 회사로 가져와 주세요."ㅡ 네, 사장님!"급한 건이니 되도록 빠르게 부탁합니다."평소의 철두철미하고 빈틈없는 재민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실수였다.하지만 지난밤, 냉철한 재민마저 감정적으로 크게 흔들릴 만큼 심란한 일이 있었기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

  • 사장님의 은밀한 도우미   #34. 불편한 진실

    지연의 마음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평소와는 달랐다. 이상하게도 싫지가 않았다. 굳이 그를 밀어내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재민의 나른하게 풀린 눈매가 묘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처음 보는 그의 다정한 손길에 지연은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재민의 길고 곧은 손가락이 지연의 뒤통수를 지그시 감싸며 멈춰 섰다.점점 가까워지는 그와의 거리에 지연은 주체할 수 없는 떨림을 느꼈다.'진정해야 돼......'하지만 눈치 없는 심장이 쾅쾅 소리를 내며 뛰어대는 바람에 고요한 적막이 깨지고 말았다.깊게 가라앉아 있던 재민의 눈동자에는 어느새 부드럽고 짙은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지연은 저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재민의 시선이 지연의 얼굴을 천천히 훑어 내리다 이내 한곳에 멈췄다.그의 입가에 희미하고 짓궂은 미소가 번졌다. 재민은 지연의 목을 빽빽하게 덮고 있던 목폴라 깃을 손끝으로 살며시 끌어 내렸다."내 흔적들로 가득하네."지연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고개를 돌렸다."......마음에 들어."재민은 그녀의 붉어진 목덜미에 입술을 살포시 맞춘 뒤, 정장 재킷을 집어 들고 드레스룸을 빠져나갔다.지연은 목덜미에 남은 그의 뜨거운 감촉을 되새기며 한동안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그 시각, 현민은 세차게 쏟아지는 샤워기 물줄기 아래에서 더럽혀진 제 몸을 씻어내고 있었다.몇 번이고 몸을 문질러도 불쾌한 감각은 좀처럼 씻겨 나가지 않았다.어젯밤만큼은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다.하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기에, 유혹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매번 이런 식이었다.부어라 마시며 밤을 지새우고 난 다음 날 아침, 낯선 여자와 마주할 때면 견딜 수 없는 쓸쓸함과 후회가 밀려들었다.온몸 구석구석에서 지독한 악취가 풍기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그럴 때면 그는 욕실에 들어가 몇 시간이고 피부가 아릴 때까지 몸을 닦아내곤 했다.사실 어머니도 현민을 걱정하고 있었다.

  • 사장님의 은밀한 도우미   #33. 흔적

    지연의 방.준비를 마친 지연은 거울 앞에 서서 난감한 표정으로 제 목덜미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빨갛게 물든 자국들이 여기저기 흉터처럼 남아 있었다.지연은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목덜미에서 쇄골선까지, 가느다란 깃털이 살갗을 간질이듯 스쳐 갔던 그의 뜨거운 입술.부끄러움과 수치심이 한꺼번에 밀려들자 지연은 달아오른 두 볼을 양손으로 꾹 감싸 쥐었다. 머릿속을 헤집는 기억을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거칠게 내저었다.'모기에 물렸다고 할까...... 아니면 아토피가 올라왔다고 둘러댈까......'이 여사님이 이 흔적을 본다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게 뻔했다.지연은 옷장을 뒤적거리더니 유니폼 안에 껴입을 목폴라를 꺼내 들었다. 아직 아침바람이 쌀쌀하다지만 목폴라를 입기에는 확실히 이른 시기였다. 그래도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화장대 의자에 주저앉은 지연은 이내 고개를 숙인 채 깊은 고민에 잠겼다.일은 고됐지만 고액의 일자리였고, 함께 일하는 이 여사님도 친엄마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꾹 참고 버티려 했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에 결국 사장님의 장난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앞으로 얼마나 더 그에게 농락당해야할까.진지하게 그만둘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다. 하지만 별다른 기술도, 내세울 만한 학벌도 없는 지연에게 세상은 너무나 냉정했다.입주 도우미는 지연이 그나마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곳에서 받는 월급이면 딸린 식구들을 뒷바라지하기에 충분했고, 저축까지 할 수 있었다.지연은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낡은 상자 하나를 꺼내 조심스럽게 열었다.그 안에는 온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연은 그중 편지 한 통을 집어 들었다. 집을 떠나는 지연의 옷자락을 붙잡고 엉엉 울며 동생들이 건네준 편지였다.[언니, 항상 고마워. 공부 열심히 해서 꼭 호강시켜줄게. 우연이랑 아빠도 내가 잘 챙길게.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전화해, 내가 혼내줄 테니까! 언니 사랑해.]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려 지연은 고개를 쳐

  • 사장님의 은밀한 도우미   #32. 공허한 밤

    술과 담배, 뒤엉킨 웃음소리로 가득한 곳. 노골적인 시선과 은밀한 접촉이 오가는 곳이었다.독한 술을 주는 대로 받아 마신 탓에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몸이 축 늘어지고 눈꺼풀마저 무거워졌다.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주변의 소음이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옆에 앉은 여자는 어느새 현민의 허리를 감싸 안고 상체를 밀착시켰다. 손길이 점점 대담해졌다.그 손을 떼어내려 해봤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게 없었던 탓일까. 위장이 뒤틀리며 속이 울렁거렸다. 현민은 연신 식은땀을 흘리며 메스꺼움을 참았다.괴로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린 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룸을 뛰쳐나왔다.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복도를 비틀거리며 지나 겨우 화장실에 도착했다. 변기를 부여잡고 속에 든 것을 모조리 게워낸 그는 한동안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얼마나 지났을까.겨우 정신을 차린 현민은 화장실 문 앞에 서 있던 여자에게 부축을 받았다. 그 뒤로 호텔에 도착하기까지의 기억은 군데군데 끊겨 있었다.현민이 눈을 뜬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새하얀 리넨 이불이 깔린 넓은 침대 위,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누워 있었다.간신히 눈을 떴지만 머리를 쪼개는 듯한 지독한 숙취가 그를 덮쳤다."으......"극심한 두통과 함께 속이 쓰려왔다."물......"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에 현민은 힘들게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다.침대 옆자리에는 낯선 여자가 맨몸에 이불만 덮은 채 잠들어 있었다.현민은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려는 듯 가까이 다가갔다.그 순간, 여자가 눈을 번쩍 떴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누구였지......?'기억이 날 듯 말 듯 희미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잘 잤어요?"여자는 씨익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건넸다.눈가에는 번진 마스카라 자국이 남아 있었고, 입술의 립스틱도 곳곳에 지워져 있었다. 지난밤 두 사람 사이에 무

  • 사장님의 은밀한 도우미   #31. 가족이라는 굴레

    "현민 씨를 아세요......?"탁.재민은 젓가락을 수저받침 위에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내가 할 소린데.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애초에 네가 그 사람을 만날 일이 없을 텐데.""그냥...... 우연히 알게 됐어요.""무슨 사이야?"지연은 잠시 멈칫했다. 낮에 현민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스쳤다."그게......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그런데 연락처까지 교환하나?""그걸 어떻게......"재민은 짧게 헛기침을 하더니 슬쩍 화제를 돌렸다."한현민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집안 배경이나 가족관계라든가.""아니요. 아무것도 몰라요. 그저 친절하고 다정한 분이라는 것 말고는......""그래? 그렇단 말이지."재민은 여전히 석연찮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네. 그런데...... 두 분 아는 사이이신가요?""알 거 없어."재민은 더는 대꾸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갔다. 지연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그의 뒷모습을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그날 밤 현민은 미처 마르지 않은 눈물을 손등으로 쓱 닦아내고는 다시 룸 안으로 들어섰다.어느새 테이블 위 식기들은 말끔히 치워지고 정갈한 찻잔과 디저트가 놓여 있었다. 조금 전 재민이 깨뜨렸던 유리 파편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뒤였다.한바탕 소동이 지나갔음에도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울을 보며 매끄럽게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그 모습을 씁쓸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현민이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엄마,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어?"어머니는 들은 체도 않고 찻잔을 들어 향을 음미할 뿐이었다."오랜만에 다 같이 모인 자리였잖아! 형도 정말 어렵게 고민해서 나온 건데...... 꼭 그렇게 상처를 줘야 했냐고!""향이 참 좋다. 현민아, 너도 와서 한 잔 마셔보렴.""엄마!"울분에 찬 현민의 고함이 넓은 룸 안에 울려 퍼졌다."한현민! 너 아버지 계시는 자리에서 어디서 언성을 높이니?""엄마가

  • 사장님의 은밀한 도우미   #30. 감춰 둔 얼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옭아매려던 사람들, 제멋대로 세아를 입에 올리던 아버지, 그리고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혼자 끓어오르는 자신까지.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었다.그렇다고 눈앞의 지연에게 화풀이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재민도 그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일상을 이어가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었다.애써 꿰매 놓았던 상처들이 끝내 곪아 터져버렸다. 아물었다고 믿었던 자리에서 다시 검붉은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가슴 깊숙이 눌러 담아 두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들끓었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가슴속을 파고들었지만, 오랫동안 감정을 억눌러 온 탓인지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분노와 좌절이 뒤엉킨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랐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싶은 충동마저 고개를 들었다.재민의 알 수 없는 말을 들은 지연이 까만 눈동자만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가녀리고 연약해 보이는 눈빛.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저 눈빛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짓궂은 심술이 고개를 들었다. 괜히 건드리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이상하게 지연 앞에서는 그 다짐이 오래가지 못했다. 특유의 비누 향이 은은하게 풍겨와 재민의 코끝을 간질였다.비즈니스를 하며 만난 부자들과 성공한 경영인들에게서 숱하게 맡았던 지독한 고급 향수들과는 전혀 다른 향이었다. 꾸며 낸 것도, 누군가에게 과시하기 위한 것도 아닌 소박하고 익숙한 냄새.재민은 문득 그 향에 이끌리듯 지연의 목덜미 가까이 고개를 숙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복잡하게 엉켜 있던 머릿속이 조금씩 가라앉는 듯했다. 재민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지연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목덜미에 닿는 뜨거운 숨결이 피부를 간질일 때마다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지연은 조심스레 눈동자만 굴려 재민을 살폈다. 그는 얼굴을 묻은 채 두 눈을 꼭 감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행동에 지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발견한 듯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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