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남편이 나를 팔았고, 그 남자가 나를 샀다: Chapter 1 - Chapter 6

6 Chapters

1화

남편이 나를 팔았다.처음에는 내가 계약서를 잘못 읽은 줄 알았다. 돈을 빌리는 쪽은 백현우였고, 그 돈으로 살아나는 것도 백현우의 회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약의 조건에는 내 이름이 똑똑히 적혀 있었다.한지아.“이게…… 뭐야?”낮게 갈라진 내 목소리가 넓은 회의실에 흩어졌다.조금 전까지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는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검은 정장의 뒷모습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계약서 마지막 장에 남겨진 서명만 희미하게 기억났다.그 남자가 나가자마자 현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하품까지 했다.“다 끝났으니까 집에 가자. 피곤해 죽겠네.”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계약서 두 번째 장을 다시 읽고 세 번째 장까지 넘겼지만, 몇 번을 읽어도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백현우. 여기 왜 내 이름이 있어?”현우의 손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 짧은 흔들림을 놓치지 않고 계약서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계약 기간 동안 한지아는 상대방이 지정하는 일정에 동행한다.’‘합리적 범위 내에서 상대방의 개인적인 요청에 응한다.’‘상대방이 요구할 경우 독립된 장소에서 단독으로 만날 수 있으며, 배우자는 이를 방해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읽을수록 기괴했다.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왜 채무자의 아내를 만나야 하지? 그것도 남편 없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당신 회사에 돈을 대주는 계약이잖아. 그런데 왜 내가 저 사람을 만나야 해?”현우는 대답 대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 불꽃이 튀고 첫 모금의 연기가 천천히 퍼진 뒤에야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그 사람이 널 좀 마음에 들어 해.”“뭐?”“몇 번 만나주면 된대. 밥 먹자면 밥 좀 먹고, 어디 같이 가자면 가주고. 그 정도야.”그 정도라는 말과 계약서의 내용은 전혀 달랐다. 남편은 동석할 수 없고 단둘이 만나야 하는 데다, 마지막에는 더 이상한 조항까지 있었다.‘계약 상대방의 요구가 있을 경우 한지아는 지정된 장소에 체류한다.’체류.그 두 글자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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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잠시 후 현우가 계약서에서 발을 치웠다.나는 구겨진 종이를 주워 들었다. 손목은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그대로 돌아서려는데 현우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참, 하나 더 있어.”걸음이 멈췄다.“네 아버지가 넣어준 지분, 이번 계약에 담보로 묶었어.”천천히 돌아봤다.“……뭐라고요?”“투자 못 받으면 같이 넘어간다고.”처음 듣는 이야기였다.“누구 마음대로 그런 걸…….”현우가 라이터를 켰다.“네가 안 가면 계약 깨지고, 회사 넘어가면 너희 집도 같이 끝나.”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럼 아버지는요? 수술은…….”“그것도 알아서 해야겠지.”아버지는 다음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현우는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남자 몇 번 만나주면 회사도 살고 네 아버지 수술도 시킬 수 있어.”그가 나를 힐끗 바라봤다.“선택 잘해.”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손안에서 계약서만 구겨졌다.***밤 열한 시가 넘어서야 현관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소파 끝에 앉아 있던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백현우였다.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현우의 뒤로 젊은 여자가 따라 들어왔다.민서라.스물두 살. 현우의 회사에서 몇 번 마주쳤던 인턴이었다. 복도에서 눈이 마주칠 때마다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던 얼굴이었다.그런 서라가 오늘은 헐렁한 원피스 위에 현우의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한 손에는 큰 캐리어까지 끌고 있었다.하룻밤 묵으러 온 사람의 짐이 아니었다.“여보, 이게…… 무슨 일이에요?”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라의 캐리어를 받아 현관 안쪽으로 끌어당겼다.“서라야, 조심해. 바닥 미끄러워.”낯설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지난겨울 내가 욕실에서 미끄러져 발목을 다쳤을 때도 현우는 병원에 혼자 다녀오라고 했었다.서라가 고개를 숙였다.“사모님…….”회사에서 듣던 호칭인데 내 집에서 듣자 이상하게 낯설었다.서라는 미안한 사람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그런데 현우의 재킷은 벗지 않았다. 오히려 벌어진 옷깃을 손으로 여며 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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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어요?”겨우 나온 목소리가 떨렸다.서라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사모님, 제가 설명드릴게요.”“넌 앉아 있어.”현우가 바로 막았다.서라는 다시 얌전히 앉았다.“……응.”현우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목소리 낮춰.”그 한마디에 내 입이 다물렸다.“이미 생긴 애야. 지금 와서 어쩌라는 건데.”“그래도 여기는…… 우리 집이잖아요.”“한지아.”내 이름 석 자가 낮게 떨어졌다.현우가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의 손이 내 턱을 움켜쥐었다.“내가 설명했으면 알아들어야지.”손가락에 힘이 들어왔다.“알겠어?”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네.”그제야 현우가 손을 놓았다.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라에게 돌아가 흘러내린 재킷을 직접 여며주었다.방금 전 내 턱을 움켜쥐었던 바로 그 손이었다.“사모님.”서라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한 손은 여전히 아랫배 위에 놓여 있었다.“앞으로는 제가 이 집에서 지낼 거예요.”서라는 미안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그러니까 집은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은 밖에 나가서…… 그분한테 잘해주시면 되잖아요.”숨이 턱 막혔다.***이층 손님방에는 어느새 서라의 캐리어가 펼쳐져 있었다.화장대에는 낯선 화장품과 달짝지근한 향수가 놓였고, 침대 위에는 얇은 잠옷까지 준비돼 있었다.“오빠, 나 또 속이 안 좋은 것 같아.”침대에 걸터앉은 서라가 현우의 소매를 잡았다.현우는 곧바로 나를 돌아봤다.“한지아, 따뜻한 물 좀 가져와. 우리 서라 찬 거 마시면 안 돼.”우리 서라.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제가요?”현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몇 번 말하게 하지 마.”그 한마디에 입이 다물렸다.물을 받아 올라가자 서라는 현우의 팔에 붙은 채 컵을 받아 들었다.“고마워요, 사모님. 오빠가 저한테 좀 유난이라서.”서라가 수줍은 듯 눈을 내리깔았다.나는 떨리는 손을 치맛자락에 숨겼다.“여보, 서라 씨 임신한 거…… 언제 말씀하시려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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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새벽 두 시가 가까워졌을 때였다.달칵, 침실 문이 열렸다.나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현우였다. 조금 전까지 이층 끝방에서 서라를 품에 안고 있던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안 잤네.”현우는 셔츠 소매를 무심하게 걷어 올리며 침대로 다가왔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달짝지근한 향이 훅 풍겼다.서라의 향수였다.내 집, 내 침실까지 따라 들어온 그 저급하도록 달콤한 냄새에 나는 이불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서라 씨는…….”“재웠어.”재웠어.그 짧은 단어가 이상할 만큼 생생하고 기괴하게 귓전에 박혔다.현우는 묵직한 손목시계를 풀어 협탁 위에 툭 던지고 셔츠 단추를 두어 개 더 풀었다.평소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마치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온 남편이 제 아내의 침실에서 잠자리를 준비하는 것처럼.“여보.”“왜.”“오늘은…… 다른 방에서 주무시면 안 돼요?”현우의 손이 멈췄다. 느릿하게 고개가 돌아왔다.“뭐라고?”낮게 가라앉은 음성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본능적인 공포에 대답이 바로 뒤집혔다.“……아니에요.”현우가 피식 비웃었다.“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매트리스가 푹 꺼지며 그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가장자리로 몸을 피하려 하자 현우의 억센 손이 내 허리를 낚아챘다.“어딜 가.”몸이 그대로 끌려가 등이 현우의 단단한 가슴에 부딪혔다.“여보…….”“가만있어.”허리를 옭아맨 팔에 힘이 들어갔다. 현우가 내 목덜미 깊숙이 얼굴을 묻자 익숙하고 뜨거운 숨결이 피부를 훑었다.예전에는 아무런 의구심 없이 받아들였던 손길이었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내 허리를 감은 그의 셔츠에서 서라의 냄새가 났다.조금 전 그 팔 안에 누가 있었는지, 그 손이 누구를 만졌는지 너무도 선명하게 떠올랐다.몸이 돌처럼 굳었다.“왜 이렇게 뻣뻣해.”현우의 손이 얇은 잠옷 자락을 밀어 올리며 허리를 쓸었다. 소름이 돋았다.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순간 침실 안이 죽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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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한지아. 다시 똑바로 봐.”턱이 억지로 돌아갔다.“내가 누구 남편이야.”눈물이 왈칵 차올랐다.“말해.”“……제 남편이요.”그제야 턱을 짓누르던 힘이 조금 풀렸다.“그럼 아내답게 굴어.”코끝에는 여전히 서라의 향수가 남아 있었다.나는 떨리는 숨을 삼켰다.“……씻고 오세요.”현우의 눈썹이 꿈틀했다.“뭐?”“서라 씨 냄새가 나요.”말을 뱉는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현우는 한참 나를 내려다보다 손목을 놓았다.“별것도 아닌 걸로 유난은.”그가 침대에서 내려섰다. 욕실 문이 쾅 닫히고 거친 물소리가 들렸다.나는 이불을 움켜쥔 채 꼼짝하지 못했다.그런데 조금 전 내 입에서 나온 한마디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싫어요.결혼하고 처음이었다.남편에게 싫다고 말한 건.그때 협탁 위 휴대전화가 울렸다.처음 보는 번호였다.[내일 오후 7시. 차를 보내겠습니다.]그 아래 이름이 적혀 있었다.진이건.계약서에 서명했던 남자.나를 조건으로 수십억을 내놓겠다고 한 사람.내일이면 정말 그 남자를 만나야 했다.***다음 날 저녁 여섯 시 오십 분.나는 드레스룸 거울 앞에 서 있었다.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은 끝에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짙은 남색 원피스를 골랐다. 작은 진주 귀걸이를 하고 화장도 옅게 했다.거울 속 여자는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가는 사람보다 어디론가 불려 나가는 여자 같았다.어젯밤 문자는 그 한 통이 전부였다.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번호를 몇 번이나 바라보기만 했을 뿐 답장은 보내지 못했다.계약서의 문구가 자꾸 떠올랐다.상대방이 지정한 일정에 동행한다.필요할 경우 단둘이 만날 수 있다.지정한 장소에 머문다.오늘 저녁 그 남자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었다.호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손목에는 어젯밤 현우에게 붙잡힌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소매를 끌어내려 가렸다.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거실에서 서라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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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차가 멈춰 선 곳은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고급 호텔이었다.유리문 너머로 샹들리에 불빛이 쏟아지고, 검은 대리석 바닥 위로 사람들이 조용히 오갔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계약서에 적혀 있던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상대방이 요청할 경우, 지정한 장소에 머문다.’“도착했습니다, 손님.”기사가 문을 열자 차가운 밤바람이 밀려들어 남색 원피스 자락을 흔들었다.나는 가방끈을 움켜쥔 채 호텔 로비로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던 직원은 곧장 나를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프라이빗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층수를 알리는 숫자가 올라갈수록 심장도 점점 빠르게 뛰었다.띵.문이 열렸다.긴 복도 끝, 단 하나의 커다란 문 앞에서 직원이 멈춰 섰다.“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벽면을 가득 채운 통유리창이 눈에 들어왔다.도시의 야경이 발아래로 펼쳐진 넓은 공간.그 한가운데 한 남자가 창밖을 향해 서 있었다.검은 셔츠에 같은 색 정장 바지. 재킷은 소파 등받이에 무심하게 걸쳐져 있었다.남자가 천천히 돌아섰다.나는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진이건.회의실에서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다.그는 컸다. 현우 역시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이건은 그보다 확연히 커 보였다. 넓고 반듯한 어깨 아래로 검은 셔츠가 군더더기 없이 떨어졌다.짙은 눈썹 아래 자리한 눈매는 길고 깊었다. 쌍꺼풀 없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 곧게 뻗은 콧날과 선명한 입술.잘생겼다는 감상보다 선뜻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남자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그런데 이상했다.차갑기만 하던 그의 눈빛이 나를 발견한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이건의 시선이 내 얼굴에 머물렀다. 목선을 따라 내려간 시선은 남색 원피스를 천천히 훑은 뒤 다시 내 눈으로 돌아왔다.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집요했다.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원피스 자락을 움켜쥐었다.“한지아 씨.”낮고 묵직한 목소리였다.회의실에서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안녕하세요.”겨우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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