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임신한 상간녀를 들인 것도 모자라, 출세를 위해 아내 윤세아를 팔아치운 남편 백현우. 철저히 짓밟힌 채 버려진 그녀의 앞에 진이건이 나타난다. 오래전부터 세아만을 갈망해 온 남자. 남편이 제 손으로 팔아넘긴 아내를 마침내 손에 넣은 이건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 “날 팔아넘긴 그 인간, 내 손으로 부숴버리게 해줘.” “좋아. 대신 그 대가로, 당신은 영원히 내 곁에 있어.” 나를 판 남편을 향한 칼날과, 나를 산 남자의 치명적인 구원. 지옥의 끝에서 세아의 잔혹하고 아름다운 복수가 시작된다.
View More남편이 나를 팔았다.
처음에는 내가 계약서를 잘못 읽은 줄 알았다. 돈을 빌리는 쪽은 백현우였고, 그 돈으로 살아나는 것도 백현우의 회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약의 조건에는 내 이름이 똑똑히 적혀 있었다.
한지아.
“이게…… 뭐야?”
낮게 갈라진 내 목소리가 넓은 회의실에 흩어졌다.
조금 전까지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는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검은 정장의 뒷모습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계약서 마지막 장에 남겨진 서명만 희미하게 기억났다.
그 남자가 나가자마자 현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하품까지 했다.
“다 끝났으니까 집에 가자. 피곤해 죽겠네.”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계약서 두 번째 장을 다시 읽고 세 번째 장까지 넘겼지만, 몇 번을 읽어도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백현우. 여기 왜 내 이름이 있어?”
현우의 손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 짧은 흔들림을 놓치지 않고 계약서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계약 기간 동안 한지아는 상대방이 지정하는 일정에 동행한다.’
‘합리적 범위 내에서 상대방의 개인적인 요청에 응한다.’
‘상대방이 요구할 경우 독립된 장소에서 단독으로 만날 수 있으며, 배우자는 이를 방해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읽을수록 기괴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왜 채무자의 아내를 만나야 하지? 그것도 남편 없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당신 회사에 돈을 대주는 계약이잖아. 그런데 왜 내가 저 사람을 만나야 해?”
현우는 대답 대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 불꽃이 튀고 첫 모금의 연기가 천천히 퍼진 뒤에야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널 좀 마음에 들어 해.”
“뭐?”
“몇 번 만나주면 된대. 밥 먹자면 밥 좀 먹고, 어디 같이 가자면 가주고. 그 정도야.”
그 정도라는 말과 계약서의 내용은 전혀 달랐다. 남편은 동석할 수 없고 단둘이 만나야 하는 데다, 마지막에는 더 이상한 조항까지 있었다.
‘계약 상대방의 요구가 있을 경우 한지아는 지정된 장소에 체류한다.’
체류.
그 두 글자에서 시선이 멎었다.
“지정된 장소라는 게 어디야?”
현우가 담배를 문 채 나를 힐끗 바라봤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호텔이어도?”
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 사이로 연기만 길게 뿜어냈고, 그 침묵이 오히려 대답처럼 들렸다.
“백현우.”
계약서를 움켜쥔 채 다가가자 현우는 담배를 재떨이에 거칠게 비벼 껐다. 그러고는 의자를 밀치고 일어나 내 앞을 막아섰다.
“씨발, 사람 진짜 피곤하게 하네. 회사 넘어가게 생겼다고! 이번 투자 못 받으면 다음 달 직원들 월급도 못 줘. 그런데 네가 남자 몇 번 만나주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야?”
훅 끼쳐오는 담배 냄새에 속이 울렁거렸다.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알아들었잖아. 몇 번 만나주는 게 뭐 대수라고.”
현우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목선을 훑더니 가슴께에 머물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남편이 아내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 물건의 상태를 확인하고 값을 매기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쪽에서 먼저 너를 조건으로 걸었어.”
손가락 사이에서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나를?”
“한지아를 보내주면 돈 넣겠다고 했다고.”
나는 현우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겨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당신이 뭐라고 했는데?”
“받았지.”
너무 쉽게 나온 대답이었다. 미안함도, 망설임도 없었다.
“나한테 묻지도 않고?”
“물어보면 네가 한다고 했겠냐?”
“그래서 안 물어봤어?”
“결과적으로 회사 살잖아.”
현우는 오히려 내가 철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 혀를 차더니 계약서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생각을 좀 해. 네가 며칠 비위 좀 맞춰주면 수십억이 들어와. 내가 너보고 죽으래? 장기라도 떼어 달래?”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
“몸뚱이 멀쩡하게 돌아오는 일인데 뭘 그렇게 벌벌 떨어?”
손이 먼저 움직였다.
짝!
현우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손바닥이 얼얼하게 달아올랐고, 잠시 정적이 내려앉은 회의실에는 거칠어진 현우의 숨소리만 남았다.
그가 혀끝으로 입 안을 훑으며 천천히 나를 돌아봤다.
“너 지금 나 쳤냐?”
등골이 서늘해져 한 걸음 물러나는 순간 현우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손가락이 뼈를 파고들 만큼 거칠게 조여왔다.
“놔!”
“이 씨발년이 진짜 주제를 모르네.”
그가 손목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몸이 휘청이며 그의 가슴에 부딪혔다. 밀어내려 했지만 현우는 오히려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네 몸에 금칠이라도 했어? 남자 하나 만나주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지랄이야.”
“이거 놓으라고!”
“어차피 나랑 살면서 할 거 다 해본 몸이잖아.”
수치심보다 먼저 구역질이 치밀었다. 있는 힘껏 손을 빼내며 현우의 가슴을 밀쳤다.
“미쳤어. 당신 정말 미쳤어.”
“그래, 나 미쳤다. 회사 망하게 생겼으니까.”
현우는 흐트러진 셔츠를 바로잡으며 바닥에 떨어진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구두를 옮겼다.
하필 그 아래 깔린 건 내 이름이었다.
한지아.
내가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현우는 발을 치우지 않았다.
오히려 구두 끝으로 내 이름을 한 번 더 짓눌렀다.
차가 멈춰 선 곳은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고급 호텔이었다.유리문 너머로 샹들리에 불빛이 쏟아지고, 검은 대리석 바닥 위로 사람들이 조용히 오갔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계약서에 적혀 있던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상대방이 요청할 경우, 지정한 장소에 머문다.’“도착했습니다, 손님.”기사가 문을 열자 차가운 밤바람이 밀려들어 남색 원피스 자락을 흔들었다.나는 가방끈을 움켜쥔 채 호텔 로비로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던 직원은 곧장 나를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프라이빗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층수를 알리는 숫자가 올라갈수록 심장도 점점 빠르게 뛰었다.띵.문이 열렸다.긴 복도 끝, 단 하나의 커다란 문 앞에서 직원이 멈춰 섰다.“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벽면을 가득 채운 통유리창이 눈에 들어왔다.도시의 야경이 발아래로 펼쳐진 넓은 공간.그 한가운데 한 남자가 창밖을 향해 서 있었다.검은 셔츠에 같은 색 정장 바지. 재킷은 소파 등받이에 무심하게 걸쳐져 있었다.남자가 천천히 돌아섰다.나는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진이건.회의실에서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다.그는 컸다. 현우 역시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이건은 그보다 확연히 커 보였다. 넓고 반듯한 어깨 아래로 검은 셔츠가 군더더기 없이 떨어졌다.짙은 눈썹 아래 자리한 눈매는 길고 깊었다. 쌍꺼풀 없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 곧게 뻗은 콧날과 선명한 입술.잘생겼다는 감상보다 선뜻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남자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그런데 이상했다.차갑기만 하던 그의 눈빛이 나를 발견한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이건의 시선이 내 얼굴에 머물렀다. 목선을 따라 내려간 시선은 남색 원피스를 천천히 훑은 뒤 다시 내 눈으로 돌아왔다.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집요했다.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원피스 자락을 움켜쥐었다.“한지아 씨.”낮고 묵직한 목소리였다.회의실에서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안녕하세요.”겨우 인사했다.
“한지아. 다시 똑바로 봐.”턱이 억지로 돌아갔다.“내가 누구 남편이야.”눈물이 왈칵 차올랐다.“말해.”“……제 남편이요.”그제야 턱을 짓누르던 힘이 조금 풀렸다.“그럼 아내답게 굴어.”코끝에는 여전히 서라의 향수가 남아 있었다.나는 떨리는 숨을 삼켰다.“……씻고 오세요.”현우의 눈썹이 꿈틀했다.“뭐?”“서라 씨 냄새가 나요.”말을 뱉는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현우는 한참 나를 내려다보다 손목을 놓았다.“별것도 아닌 걸로 유난은.”그가 침대에서 내려섰다. 욕실 문이 쾅 닫히고 거친 물소리가 들렸다.나는 이불을 움켜쥔 채 꼼짝하지 못했다.그런데 조금 전 내 입에서 나온 한마디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싫어요.결혼하고 처음이었다.남편에게 싫다고 말한 건.그때 협탁 위 휴대전화가 울렸다.처음 보는 번호였다.[내일 오후 7시. 차를 보내겠습니다.]그 아래 이름이 적혀 있었다.진이건.계약서에 서명했던 남자.나를 조건으로 수십억을 내놓겠다고 한 사람.내일이면 정말 그 남자를 만나야 했다.***다음 날 저녁 여섯 시 오십 분.나는 드레스룸 거울 앞에 서 있었다.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은 끝에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짙은 남색 원피스를 골랐다. 작은 진주 귀걸이를 하고 화장도 옅게 했다.거울 속 여자는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가는 사람보다 어디론가 불려 나가는 여자 같았다.어젯밤 문자는 그 한 통이 전부였다.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번호를 몇 번이나 바라보기만 했을 뿐 답장은 보내지 못했다.계약서의 문구가 자꾸 떠올랐다.상대방이 지정한 일정에 동행한다.필요할 경우 단둘이 만날 수 있다.지정한 장소에 머문다.오늘 저녁 그 남자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었다.호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손목에는 어젯밤 현우에게 붙잡힌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소매를 끌어내려 가렸다.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거실에서 서라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새벽 두 시가 가까워졌을 때였다.달칵, 침실 문이 열렸다.나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현우였다. 조금 전까지 이층 끝방에서 서라를 품에 안고 있던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안 잤네.”현우는 셔츠 소매를 무심하게 걷어 올리며 침대로 다가왔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달짝지근한 향이 훅 풍겼다.서라의 향수였다.내 집, 내 침실까지 따라 들어온 그 저급하도록 달콤한 냄새에 나는 이불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서라 씨는…….”“재웠어.”재웠어.그 짧은 단어가 이상할 만큼 생생하고 기괴하게 귓전에 박혔다.현우는 묵직한 손목시계를 풀어 협탁 위에 툭 던지고 셔츠 단추를 두어 개 더 풀었다.평소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마치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온 남편이 제 아내의 침실에서 잠자리를 준비하는 것처럼.“여보.”“왜.”“오늘은…… 다른 방에서 주무시면 안 돼요?”현우의 손이 멈췄다. 느릿하게 고개가 돌아왔다.“뭐라고?”낮게 가라앉은 음성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본능적인 공포에 대답이 바로 뒤집혔다.“……아니에요.”현우가 피식 비웃었다.“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매트리스가 푹 꺼지며 그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가장자리로 몸을 피하려 하자 현우의 억센 손이 내 허리를 낚아챘다.“어딜 가.”몸이 그대로 끌려가 등이 현우의 단단한 가슴에 부딪혔다.“여보…….”“가만있어.”허리를 옭아맨 팔에 힘이 들어갔다. 현우가 내 목덜미 깊숙이 얼굴을 묻자 익숙하고 뜨거운 숨결이 피부를 훑었다.예전에는 아무런 의구심 없이 받아들였던 손길이었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내 허리를 감은 그의 셔츠에서 서라의 냄새가 났다.조금 전 그 팔 안에 누가 있었는지, 그 손이 누구를 만졌는지 너무도 선명하게 떠올랐다.몸이 돌처럼 굳었다.“왜 이렇게 뻣뻣해.”현우의 손이 얇은 잠옷 자락을 밀어 올리며 허리를 쓸었다. 소름이 돋았다.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순간 침실 안이 죽은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어요?”겨우 나온 목소리가 떨렸다.서라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사모님, 제가 설명드릴게요.”“넌 앉아 있어.”현우가 바로 막았다.서라는 다시 얌전히 앉았다.“……응.”현우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목소리 낮춰.”그 한마디에 내 입이 다물렸다.“이미 생긴 애야. 지금 와서 어쩌라는 건데.”“그래도 여기는…… 우리 집이잖아요.”“한지아.”내 이름 석 자가 낮게 떨어졌다.현우가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의 손이 내 턱을 움켜쥐었다.“내가 설명했으면 알아들어야지.”손가락에 힘이 들어왔다.“알겠어?”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네.”그제야 현우가 손을 놓았다.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라에게 돌아가 흘러내린 재킷을 직접 여며주었다.방금 전 내 턱을 움켜쥐었던 바로 그 손이었다.“사모님.”서라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한 손은 여전히 아랫배 위에 놓여 있었다.“앞으로는 제가 이 집에서 지낼 거예요.”서라는 미안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그러니까 집은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은 밖에 나가서…… 그분한테 잘해주시면 되잖아요.”숨이 턱 막혔다.***이층 손님방에는 어느새 서라의 캐리어가 펼쳐져 있었다.화장대에는 낯선 화장품과 달짝지근한 향수가 놓였고, 침대 위에는 얇은 잠옷까지 준비돼 있었다.“오빠, 나 또 속이 안 좋은 것 같아.”침대에 걸터앉은 서라가 현우의 소매를 잡았다.현우는 곧바로 나를 돌아봤다.“한지아, 따뜻한 물 좀 가져와. 우리 서라 찬 거 마시면 안 돼.”우리 서라.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제가요?”현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몇 번 말하게 하지 마.”그 한마디에 입이 다물렸다.물을 받아 올라가자 서라는 현우의 팔에 붙은 채 컵을 받아 들었다.“고마워요, 사모님. 오빠가 저한테 좀 유난이라서.”서라가 수줍은 듯 눈을 내리깔았다.나는 떨리는 손을 치맛자락에 숨겼다.“여보, 서라 씨 임신한 거…… 언제 말씀하시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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