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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그대의 마음이 변했다면: Chapter 1 - Chapter 10

11 Chapters

제1화

"그럼 강시월은 어쩔 텐가?" "그래도 자네와 삼 년이나 함께했네. 자네를 그토록 사랑하는데, 정말 이대로 내칠 셈인가?" 세자인 배서준은 못마땅한 기색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어깨에 두른 비단 자락을 벗어 내게 둘러 주었다. 하지만 소연후는 차갑게 말했다. "진짜 주인이 돌아왔으니 대역은 멀리 꺼져야지!" "안쓰럽다면 자네가 데려가게." 무심한 말이 떨어지자 주위가 술렁였다. 배서준이 나를 좋아해 소연후와 의형제를 맺었다는 건 여기 모인 모두가 아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배서준이 나를 한 번만 더 바라봐도 소연후는 그에게 나에게서 떨어져라고 사납게 경고하곤 했다. 하지만 삼공주 송화정이 돌아온 뒤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그저 대역일 뿐이었으니까. 도령들이 입을 다문 사이, 배서준이 돌아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소월 아씨, 나와 함께 가겠소?" 배서준의 눈에는 애틋함이 가득했지만, 곁에 있던 소연후는 끝내 비웃음을 터뜨렸다. "내기라도 해 볼까?""강시월은 죽도록 나를 사랑해서 자네를 따라가지 않을 거라는 데 걸겠네."소연후의 눈빛에는 장난기가 가득한 것이 예전의 깊은 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나는 가슴속 쓰라림을 삼키며 그가 둘러 준 비단 자락을 벗어 돌려주었다.내 뜻을 알아챈 배서준은 미간을 좁힌 채 물러나며 한마디 덧붙였다. "실례했소."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소연후가 웃었다. "네가 날 떠나지 못할 줄 알았다.""하지만 강시월, 이제 네게 질렸으니 썩 꺼지거라."말을 마친 소연후는 막 경성에 돌아온 정인만 생각하며 마차에 오르려 했다.나는 빠르게 소연후의 소매를 붙잡고 올려다보며 물었다."며칠 전만 해도 영원히 곁에 있어 달라고 소원을 비셨잖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 저더러 꺼지라 하시니, 이걸 후야께서 비신 아흔일곱 번째 소원으로 쳐도 되겠습니까?"내 말에 소연후가 차갑게 돌아섰다."너한테 질렸는데, 내가 어찌 백 가지 은혜 갚기 놀음에 장단을 맞춰 주겠느냐?" 소연후는 내 손에 붙잡힌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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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나는 소연후가 건넨 찐빵을 받아먹었다. 그 일로 나는 그에게 인과의 빚을 졌다. 족장은 장생자는 백 살이 되어야 성인이 되며, 그전에는 바깥세상과 인연을 맺으면 일족으로 돌아갈 길을 잃는다고 늘 일렀다. 그 순간 나와 일족을 잇던 인연이 끊어져, 소연후의 소원 백 가지를 모두 들어줘야만 일족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소원 백 가지를 빌어 주실 수 있습니까?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그날 소연후는 쓸쓸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첫 소원을 빌었다. "내 여인이 되어라." 나는 그 뜻을 알지 못했지만, 인과를 매듭짓기 위해 지위도 명분도 없이 소연후의 곁에 머물며 그가 풋내를 벗고 진정한 사내가 되도록 이끌었다. 진정한 사내가 된 뒤, 소연후는 밤마다 나와 정을 나누고 나를 지극히 아꼈다. 그 뒤 삼 년 동안 소연후가 빈 소원은 하나같이 내가 자신을 향해 웃어 주는 것이었다.사람들은 모두 소연후가 나를 지극히 사랑한다고 했다.후야가 된 소연후는 온 성에 등불을 밝히고, 우리가 영원히 헤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나는 그 소원을 받아들였지만, 소연후의 바람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인간 세상의 사랑은 몰라도, 나는 소연후가 나를 사랑한 적 없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실제로 며칠도 지나지 않아 소연후는 후부에서 내 흔적을 모조리 지우고 나를 내쫓으려 했다. 나는 소연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 "원하신다면 방금 하신 말씀을 아흔일곱 번째 소원으로 삼겠습니다.""남은 세 가지 소원까지 들어드리고 나면, 그때는 당신 앞에서 영영 사라지겠습니다."내가 고집을 꺾지 않자 소연후의 눈에 짜증이 스쳤다."그럼 이걸 아흔일곱 번째 소원으로 빌겠다. 이제 내 소매를 놓겠느냐?""화정이가 기다리고 있다."두 마디를 하는 소연후 눈빛은 확연히 달랐다. 곁에 있던 벗들은 안쓰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상심해 눈물을 흘리리라 여긴 모양이었다.그동안 내가 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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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도움이 필요하면 이 비단 자락을 들고 내 저택으로 오시게. 필요한 건 내가 모두 마련해 두었네."말을 마친 배서준은 돌아서 떠났다.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웅크린 채 두툼한 비단 자락에는 끝내 손도 대지 않았다.몹시 추웠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하여 이 은혜를 받을 수도, 더는 누구에게도 빚지고 싶지 않았다.배서준이 떠난 뒤에도 나는 날이 저물 때까지 후부의 대문 앞을 지켰다.집집마다 불이 꺼져 갔지만, 소연후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소연후를 따라갔던 시종이 은표를 챙기러 급히 돌아와 나를 비웃듯 말했다."주제 파악이나 하시지요.""우리 후야께서는 앞으로 며칠간 삼공주와 객잔에 머무실 테니, 돌아오실 리 없지요.""삼공주를 위해 온 성에 불꽃놀이를 하고 천등을 띄우라며 돈을 가져오라 하셨습니다.""게다가 유등까지 띄우실 거랍니다.""어느 쪽이 더 중한지 이제 아시겠지요?"시종은 턱을 치켜들고 돌아섰다.고개를 들자 과연 하늘에는 불꽃이 잇달아 터지고, 그 사이로 수많은 천등이 천천히 떠올랐다.몸을 일으키는 순간 어지럼이 일었고, 눈앞에 환하게 웃는 소연후의 얼굴이 떠올랐다."시월아, 너를 위해 온 경성에 불꽃놀이를 벌였으니 어서 가서 보자꾸나."나는 소연후를 따라 한 발 내디뎠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리 위에는 소연후가 한 여인을 품에 안은 채 유등을 물에 띄우고 있었다.소연후의 눈빛은 다정하고 애틋해, 세상에 오직 송화정밖에 없는 듯했다.내 시선이 따가웠는지 소연후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곧장 눈빛에서 온기를 거두었다.그러다 곁의 여인에게 무언가 속삭인 뒤 내게 다가와 내 손목을 꽉 움켜쥐고 쏘아붙였다."내가 멀리 꺼지라고 하지 않았느냐? 헌데 왜 여기에 나타난 거지?"손목에 통증이 번졌고, 소연후는 나를 멀리 밀쳐냈다. 송화정이 나를 보기라도 할까 봐 소연후가 다시 경고하려던 순간, 여인이 먼저 그의 팔에 팔짱을 끼며 눈시울을 붉혔다."후야, 꼭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어요. 경성에 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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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후야께서 강시월이 웃어 주기만을 바라며 여러 번 소원을 비셨다면서요? 강시월을 참 아끼시나 보네요."송화정은 장난스레 말을 건넸지만, 눈물은 다시 뺨을 타고 흘렀다.소연후는 얼른 손을 거두고 난처하면서도 다정하게 송화정을 달랬다."강시월이 웃을 때 그대와 더 닮아 보였기에 그런 소원을 빈 것이오.""화정이, 그대는 알지 않소? 내 마음엔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뿐이오."그 말에 송화정의 뺨이 붉어졌다.나는 그 자리에 선 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소연후가 줄곧 나를 통해 다른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건 진작 알았지만, 삼 년간 이어진 편애가 다른 이에게 향하자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나는 망설임 없이 호수에 뛰어들어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견디며 유등을 건져 올렸다.이제 두 가지 소원만 남았다.물에서 나온 나는 송화정의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를 받아 은 열 냥을 꺼내 세었다."후야, 아흔여덟 번째 소원도 들어드렸습니다."말을 마친 나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의원에 들러 약을 지어 마신 후 객잔으로 돌아와 꼬박 하루를 몽롱하게 누워 있었다.몸이 나으면 소연후를 찾아가 남은 두 소원을 마저 들어드릴 생각이었지만, 후부 사람들이 먼저 찾아왔다."후야께서 아흔아홉 번째 소원으로 기루에서 춤을 추라고 하십니다."이날, 송화정의 고집으로 두 사람은 기루에 가 한바탕 놀았는데, 하필 송화정이 강호의 거물에게 밉보이고 말았다. 황실의 권세로도 강호의 거물을 함부로 누를 수 없던 터라, 그의 노여움을 풀려면 송화정은 기루에서 가장 이름난 기녀의 옷차림으로 춤을 춰야 했다.송화정의 귀환을 숨겨야 했던 소연후는 그녀가 모욕당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그러니까 나더러 대신 춤을 추라는 말이냐?"여인이 억지로 요염한 춤을 춰야 하다니, 이보다 더한 치욕이 또 있을까.가슴속이 서러움으로 가득했다.시종도 이 부탁이 부당하다는 걸 아는지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그럼에도 나는 승낙했다.이 소원을 들어주면 마지막 하나만 남고, 그것까지 마치면 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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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내가 한참 동안 꼼짝도 않자, 무심한 눈빛을 마주한 소연후의 가슴이 조여 왔다.곧 그의 미간에 망설임이 스쳤지만, 팔짱을 낀 송화정의 손이 가늘게 떨리자 다시 마음을 굳혔다."강시월, 네게 불공평한 일인 줄 안다.""하지만 화정이는 이미 고생을 많이 했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화정이도 헤아려 주겠지.""너는 공주와 닮았으니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거다.""일단 벌을 받아라. 성문을 나서면 사람을 보내 널 구해 주마."내가 거절할까 봐 걱정됐는지, 곁에 있던 송화정은 서둘러 내 손을 붙잡고 눈시울을 붉힌 채 무릎을 꿇었다."강시월, 부디 내 청을 들어다오.""나는 공주인데도 내 뜻과 상관없이 화친길에 올라야 했다.""하여 남은 삶만은 내 뜻대로 살고 싶다.""난 소연후에게 나 아닌 다른 여인이 생기는 건 싫다. 그래도 네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걸 아니 차마 외면할 수 없더구나.""이번 일이 끝나면 너와 함께 소연후에게 시집가겠다."송화정은 거듭 양보하는 듯했지만, 눈빛에는 싸늘한 살의와 계산이 서려 있었다.나는 손목이 욱신거려 손을 뿌리쳤다.소연후가 책망하듯 바라보자 나는 작게 웃었다."그 소원, 들어드리겠습니다."말을 마친 나는 객잔을 나섰다.객잔을 나서자 궁으로 갈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뒤돌아보니 소연후는 송화정을 감싼 채 담담히 나를 불렀다."삼공주."그제야 송화정의 의기양양한 눈빛에 담긴 뜻을 깨달았다. 소연후는 송화정을 위해서라면 한 번도 내게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그래도 괜찮았다. 마지막 소원만 이루면 소연후와의 인연도 끝나고, 나 역시 곧 집으로 돌아갈 테니.눈이 마주친 순간 소연후의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렸지만, 나는 곧 시선을 거두고 마차에 올랐다.말발굽 소리와 함께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웃 나라 사신들이 삼공주를 꾸짖는 말을 묵묵히 들었다.황제는 분노에 차서 손에 든 두루마리를 내게 내던졌다.이마에 통증이 번지자 황제가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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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소연후는 앞으로 나서 말했다."구해 주셔서 고맙소."말을 마친 소연후는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시월아, 돌아가자.""최고의 의원을 불러 두었으니 흉터는 남지 않을 것이다."나는 눈물을 닦고 저도 모르게 입가를 끌어올렸다.소연후는 내가 마침내 자신과 함께할 수 있어 기뻐한다고 여겼다.하지만 내가 웃은 건 이제야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내가 좀처럼 다가가지 않자 소연후는 미간을 찌푸렸다."시월아, 이리 오거라. 사흘 뒤면 혼례를 치르니 상처를 서둘러 치료해야 한다.""저를 첩으로 들일 생각이십니까?"내 말에 소연후는 잠시 얼떨떨해했다.그는 무심코 반박하려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그런 소연후를 바라보는 내 눈빛은 점점 차가워졌다."처음부터 저는 당신과 혼인하겠다고 한 적 없습니다.""마지막 세 가지 소원을 들어드리면 아흔일곱 번째 소원대로 당신에게서 멀리 떠나겠다고 했습니다."내 단호한 태도에 소연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시월아, 넌 분명 날 좋아하지 않느냐.""네가 한발씩 물러서며 마음고생한 줄 안다. 허나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소연후는 가슴이 답답해 애원하듯 말했다."시월아, 나도 네가 좋다. 그만 고집부리면 안 되겠느냐?"나는 소연후의 말을 더는 듣지 않고, 갈라진 목소리로 곁에 선 노인을 바라보았다."족장 할아버지, 집에 가고 싶습니다."족장은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나를 데리고 떠났다.소연후는 반사적으로 뒤쫓으려 했지만 누군가 앞을 가로막았다."시월 아씨는 뜻이 없다는데, 어찌 이리 몰아붙이시는가?"부채를 살짝 흔드는 배서준의 눈에 비웃음이 스쳤다."저들은 남역(南域)에서 가장 신비로운 백택(白澤) 일족일세.""백택 일족은 백 살이 되기 전까지 인과를 맺어선 안 되지.""자네가 건넨 찐빵 하나 때문에 시월 아씨는 자네의 소원을 들어주느라 줄곧 양보만 해야 했네.""자네는 시월 아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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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그 소식을 흘린 건 소연후였다. 송화정이 한발 물러나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도 누구 하나 잃지 않으리라 여겼다.하지만 소연후는 모르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변치 않을 사랑이라 믿었던 강시월의 마음은 그저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었고, 강시월은 애초에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그럴 리 없다고 소연후는 본능적으로 부정했다.가슴이 옥죄어 눈시울이 붉어졌다.강시월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던 소연후는 배서준의 손을 뿌리치고 뒤쫓으려 했으나 멀리서 달려온 시종이 앞을 막아섰다."후야, 삼공주께서 고열에 시달리시는데 약을 드시려 하지 않습니다.""어서 돌아가 살펴 주십시오!"강시월이 곁에 있었다면, 소연후는 오랜 세월 마음에 품어 온 송화정을 망설임 없이 보살피러 갔을 테지만 지금은 달랐다. 송화정을 향한 오랜 집착이 걷히자, 마음에는 강시월만 남았다. 그제야 소연후는 자신이 더는 송화정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앞을 막아선 시종을 걷어찼다."아프면 의원을 찾아라."말을 마친 소연후는 서둘러 말에 올라 강시월이 떠난 길을 뒤쫓았다.상처가 깊은 강시월은 멀리 가지 못했을 터였다.두 번째 객잔에서 백택 일족의 표식이 새겨진 마차를 발견한 소연후는 곧장 안으로 들어가 객방을 뒤졌다.마침내 강시월의 방을 찾았을 때, 여러 자루의 검이 이미 그의 목을 겨누었다....비록 상처를 싸맸지만 나는 여전히 피를 흘렸다.창백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린 내 모습에 소연후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소연후는 목에 피가 흐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걸음씩 다가와 갈라진 목소리로 사과했다."미안하다..."삼 년을 함께 지내면서 나는 소연후가 누구에게 고개 숙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었다.소연후는 내가 상심해 화를 내거나 자신에게 꺼지라고 할 줄 알았을 것이다.하지만 내 눈에는 오직 의아함 뿐이었다.멍한 내 눈을 바라보던 소연후는 눈시울을 붉히며 따져 물었다."내가 송화정 때문에 너를 그렇게 대했는데도 화나거나 원망스럽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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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소연후가 떠난 뒤, 족장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잠든 나를 내려다보았다.백택 일족은 백 살이 되기 전에는 정을 품지 않는다. 소연후가 무엇을 바라는지 족장은 잘 알고 있었지만, 꽃을 피우지 않는 나무에 물을 아무리 줘도 소용없는 법이었다....이튿날 아침, 황제가 초청장을 보내왔다. 우리가 입궁하자 금은보화가 잔뜩 들어왔고, 삼공주 송화정을 엄히 처리하겠다는 전갈도 함께 전해졌다.족장 할아버지는 이를 삼공주 일에 대한 황제의 사죄라고 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백택 일족을 여러 나라가 두려워하는 만큼, 황제는 우리에게 호의를 보이려는 것이었다.연회가 시작되자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들어 사죄했다."짐이 어리석어 강시월을 불효한 딸로 착각했소. 참으로 미안하오.""삼공주는 이미 궁에 가두어 두었으니, 연회가 끝나는 대로 녕국(寧國) 사신에게 인도하겠소.""오늘 이 연회를 계기로 묵은 앙금을 풀고 화해하길 바라오."황제가 말을 마치자 신하들도 일제히 맞장구쳤다.나는 족장 할아버지 곁에 얌전히 앉아 연회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곁에 앉은 소연후는 태연히 포도알을 하나씩 떼어 옥쟁반에 담았다."시월아, 네가 포도를 제일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기대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소연후에게 나는 끝내 대꾸하지도, 포도에 손대지도 않았다.내가 차갑게 외면하자 소연후의 마음에 씁쓸함이 번졌다.술잔을 거듭 비운 그는 이내 취했다.나는 연회에 관심이 없어, 연회가 반쯤 지났을 때 소연후가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뜬 것도 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내시 하나가 허둥지둥 연회장으로 들어왔다."폐하, 큰일이옵니다. 후야께서 삼공주를 만나러 후궁으로 가셨습니다.""말리려 했으나, 삼공주를 부인으로 맞을 생각이라며 녕국에 보상할 테니 공주만은 무사히 지내게 해 달라 하셨사옵니다."거듭 농락당한 녕국 사신들은 더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오늘은 반드시 우리 녕국의 화비마마를 데려가겠습니다!"그들은 당장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듯 노기를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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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그대가 오랫동안 삼공주를 연모해 온 건 누구나 안다.""그대가 삼공주를 위해 꾸민 일도 알고 있다. 그 정성이 가상해 짐이 특별히 혼인을 허락하마.""짐의 딸을 그대에게 맡기니 마음이 놓이는구나."황제의 말에는 두 사람을 맺어 주려는 뜻과 타협이 함께 담겨 있었다.멀지 않은 곳에 있던 녕국 사신이 코웃음을 쳤다."참 처세에 능하구려."세 번이나 농락당한 녕국 사신들은 애초에 송화정을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 황제의 속셈을 알아챘지만, 이미 보상을 받은 터라 소연후가 이용당하든 개의치 않았다.소연후 역시 오늘 일이 모두 황제의 계략임을 알고 있었다.소연후는 사랑하는 이는 따로 있다며 반박하고, 황제에게 명을 거두어 달라 청하고 싶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를 되찾고 싶었지만, 황제가 짚은 일은 하나같이 자신이 저지른 일이었다.황제는 담담히 소연후를 바라보며 한마디만 했다."부마, 어명을 받으라."삼 년 전이었다면 기뻐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모든 것이 이제는 거대한 바위처럼 그를 짓눌러 피투성이로 만들었다.후회가 밀려들어 이를 악물자, 입안에 피 맛이 번졌다.성지를 받아 든 순간, 소연후의 눈빛에서 빛이 사라졌다.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으리라 믿었지만, 끝내 모든 가능성을 제 손으로 망쳤다.황제는 성지를 내리고 자리를 떴다.옷을 갖춰 입고 나온 송화정은 넋을 잃은 소연후를 못마땅한 눈길로 바라봤다."이제 나는 그대의 사람이 되었어요.""앞으로 우리 잘 지낼 수 있겠지요?"송화정은 소연후가 예전에는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았기에, 거절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그러나 소연후는 차갑게 송화정을 밀쳐 내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그때 나와 족장 할아버지도 궁을 나섰다.궁에 남은 소연후가 어찌 되든 내 알 바 아니었다.마차에 오르려는 순간, 갈라진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시월아."나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달빛이 온 세상을 비추고, 나도 집으로 돌아갈 참이었다....내가 끝내 돌아보지 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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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족장 할아버지가 소연후의 말을 끊었다."이 아이가 자네 소원을 들어주려는 건 맞네.""하지만 자네가 빈 두 소원은 입 밖에 낸 순간부터 거둘 수 없지.""두 소원이 서로 부딪쳐 반작용도 이미 시작됐고.""이 아이가 며칠째 고통받고 있으니, 아흔일곱 번째 소원대로 살길을 열어 주게."부탁하는 말투였지만 소연후는 그 뜻을 알아들었다.입 밖에 낸 소원은 거둘 수 없었다.더 매달리면 강시월을 해치게 될 터였다.깊은 후회에 주먹을 움켜쥔 소연후는 입술만 달싹일 뿐, 끝내 붙잡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족장이 다가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말했다."이번 일은 후야의 도움 덕분이네.""백택 일족은 떠나기 전에 후야께 진실 하나를 남기겠네.""칠 년 전, 황실 사찰, 진짜 은인과 가짜 은인.""후야와 삼공주는 애초에 인연이 없었네."모호한 말을 남긴 족장 할아버지는 나와 일족을 데리고 송국 땅을 떠났다.소연후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아무도 몰랐지만, 소연후가 송화정을 사랑한 건 칠 년 전 물 한 모금의 은혜를 입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당시 소연후는 황실 사찰에서 습격당해 며칠째 굶주린 채 죽어가고 있었다.죽기 직전 누군가 물을 먹였고, 몽롱한 의식 속에 그는 여인의 옷차림이 궁중 사람의 것임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그 뒤 소연후는 온 나라를 샅샅이 뒤져 은인을 찾았다.그러자 삼공주가 낯익은 옥패를 들고 찾아왔다.그날부터 소연후는 삼공주를 사모하며 해를 거듭해 사랑했다.그런데 은인을 잘못 알아봤다니, 믿기지 않은 소연후는 비틀거리며 명했다."조사하라."이후 며칠간 소연후는 객잔에 머물며 진실을 기다렸다.밤낮으로 술을 마시면서도 족장의 말이 거짓이기를 빌었다.사람을 잘못 알아본 탓에 진정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이 사실이기를 바랐다.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고 생각했지만, 진실을 마주하자 피를 한 입 토하고 말았다.칠 년 전 소연후를 구한 이는 삼공주의 이복동생인 칠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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