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나는 장생자지만, 찐빵 하나로 소연후에게 인과의 빚을 졌다. 그 빚을 갚고 집으로 돌아가려면 그의 소원 백 가지를 모두 들어줘야 했다. 소연후가 처음으로 빈 소원은 내가 그의 여인이 되는 것이었다. 빚을 갚기 위해 나는 이름도 지위도 없이 그의 곁에 머물며, 그가 진정한 사내가 되도록 이끌었다. 그 뒤 삼 년 동안 그가 빈 소원은 하나같이 내가 조금 더 웃는 것이었다. 후야가 된 소연후는 온 성에 등불을 밝히고, 반짝이는 눈으로 우리 둘이 영원히 헤어지지 않게 해 달라며 아흔여섯 번째 소원을 빌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후부에서 내 흔적을 모조리 지우고 나를 내쫓았다. 나는 망연히 눈 속에 서 있었다. 그때 소연후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벗들에게 태연히 말했다. "절대 화정이에게 내가 다른 여인에게 고백한 적 있다는 걸 알리지 말게. 자네들도 알다시피 나는 어릴 적부터 화정이를 마음에 품어 왔네." "내가 아직 어렸을 적 그 애가 화친길에 오르지만 않았어도, 그 애 대신 곁에 둘 여인을 찾을 일은 없었을 걸세." "이제 이웃 나라 황제도 세상을 떠났고, 내가 그 애가 죽음을 가장하고 돌아오도록 도왔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부인으로 맞아 여한을 남기지 않을 걸세."
View More다만 송화정은 소연후가 그저 강시월을 잃어 슬퍼한다고 여겨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소연후도 반박하지 않고 담담히 웃었다."우리 혼인, 잘된 일이오."송화정은 안심했지만, 그의 눈 깊은 곳에 감춘 살기를 보지 못했다.보름 뒤 소연후와 송화정은 혼례를 올렸다.두 번째 혼인을 치른 송화정은 앞으로 행복할 줄 알았다.그러나 첫날밤, 그토록 기다린 신랑은 그녀를 깊은 산에 내던져 맹수에게 쫓기게 했다.사흘 뒤, 온몸에 상처를 입고 만신창이가 된 송화정은 따져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하나뿐이었다."자업자득이오."호위의 말에 송화정은 소연후가 칠공주의 복수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소연후는 그해의 진실을 알아낸 것이었다.송화정은 두려움에 떨며 애원했다."잘못했으니 돌려보내 주세요. 우리의 혼인은 없던 일로 할게요.""오늘은 친정에 인사드리는 날이에요. 아바마마를 뵙고 싶어요."송화정이 눈물을 흘리자, 소연후는 예전처럼 다정하게 눈물을 닦아 주었다."신혼인데 공주가 어찌 떠나겠소?""어젯밤 폐하께 공주가 유람을 좋아한다고 아뢰었소. 부군 된 자로서 어찌 함께하지 않겠소?"온화하게 웃는 소연후는 송화정의 눈에 악귀나 다름없었다.송화정은 미친 듯 소연후를 죽이려 했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소연후는 송화정을 데리고 유람을 떠나 물가마다 물속에 밀어 넣고 밤새 유등을 건지게 했고, 가는 곳마다 무대에 세워 요염한 춤을 추게 했다.그런 날들이 이어지자 송화정은 완전히 무너졌다.삼 년 뒤, 더는 견디지 못한 송화정은 혀를 깨물고 자결했다.송화정이 죽은 뒤에도 소연후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소연후는 송화정의 시신을 칠공주가 맹수에게 목숨을 잃은 숲에 내던져 짐승들에게 뜯어먹히게 했다.그제야 복수가 끝났다....모든 일을 마친 소연후는 경성으로 돌아와 스스로 죄를 청했다.황제는 딸이 고초 끝에 죽었다는 사실에 격노해 소연후의 두 다리를 부러뜨리게 했다.황제가 경계할 만큼 후부의 세력은 컸지만, 소연후는 오히려 가산을 몰수해 달라고 청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족장 할아버지가 소연후의 말을 끊었다."이 아이가 자네 소원을 들어주려는 건 맞네.""하지만 자네가 빈 두 소원은 입 밖에 낸 순간부터 거둘 수 없지.""두 소원이 서로 부딪쳐 반작용도 이미 시작됐고.""이 아이가 며칠째 고통받고 있으니, 아흔일곱 번째 소원대로 살길을 열어 주게."부탁하는 말투였지만 소연후는 그 뜻을 알아들었다.입 밖에 낸 소원은 거둘 수 없었다.더 매달리면 강시월을 해치게 될 터였다.깊은 후회에 주먹을 움켜쥔 소연후는 입술만 달싹일 뿐, 끝내 붙잡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족장이 다가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말했다."이번 일은 후야의 도움 덕분이네.""백택 일족은 떠나기 전에 후야께 진실 하나를 남기겠네.""칠 년 전, 황실 사찰, 진짜 은인과 가짜 은인.""후야와 삼공주는 애초에 인연이 없었네."모호한 말을 남긴 족장 할아버지는 나와 일족을 데리고 송국 땅을 떠났다.소연후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아무도 몰랐지만, 소연후가 송화정을 사랑한 건 칠 년 전 물 한 모금의 은혜를 입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당시 소연후는 황실 사찰에서 습격당해 며칠째 굶주린 채 죽어가고 있었다.죽기 직전 누군가 물을 먹였고, 몽롱한 의식 속에 그는 여인의 옷차림이 궁중 사람의 것임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그 뒤 소연후는 온 나라를 샅샅이 뒤져 은인을 찾았다.그러자 삼공주가 낯익은 옥패를 들고 찾아왔다.그날부터 소연후는 삼공주를 사모하며 해를 거듭해 사랑했다.그런데 은인을 잘못 알아봤다니, 믿기지 않은 소연후는 비틀거리며 명했다."조사하라."이후 며칠간 소연후는 객잔에 머물며 진실을 기다렸다.밤낮으로 술을 마시면서도 족장의 말이 거짓이기를 빌었다.사람을 잘못 알아본 탓에 진정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이 사실이기를 바랐다.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고 생각했지만, 진실을 마주하자 피를 한 입 토하고 말았다.칠 년 전 소연후를 구한 이는 삼공주의 이복동생인 칠공주
"그대가 오랫동안 삼공주를 연모해 온 건 누구나 안다.""그대가 삼공주를 위해 꾸민 일도 알고 있다. 그 정성이 가상해 짐이 특별히 혼인을 허락하마.""짐의 딸을 그대에게 맡기니 마음이 놓이는구나."황제의 말에는 두 사람을 맺어 주려는 뜻과 타협이 함께 담겨 있었다.멀지 않은 곳에 있던 녕국 사신이 코웃음을 쳤다."참 처세에 능하구려."세 번이나 농락당한 녕국 사신들은 애초에 송화정을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 황제의 속셈을 알아챘지만, 이미 보상을 받은 터라 소연후가 이용당하든 개의치 않았다.소연후 역시 오늘 일이 모두 황제의 계략임을 알고 있었다.소연후는 사랑하는 이는 따로 있다며 반박하고, 황제에게 명을 거두어 달라 청하고 싶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를 되찾고 싶었지만, 황제가 짚은 일은 하나같이 자신이 저지른 일이었다.황제는 담담히 소연후를 바라보며 한마디만 했다."부마, 어명을 받으라."삼 년 전이었다면 기뻐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모든 것이 이제는 거대한 바위처럼 그를 짓눌러 피투성이로 만들었다.후회가 밀려들어 이를 악물자, 입안에 피 맛이 번졌다.성지를 받아 든 순간, 소연후의 눈빛에서 빛이 사라졌다.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으리라 믿었지만, 끝내 모든 가능성을 제 손으로 망쳤다.황제는 성지를 내리고 자리를 떴다.옷을 갖춰 입고 나온 송화정은 넋을 잃은 소연후를 못마땅한 눈길로 바라봤다."이제 나는 그대의 사람이 되었어요.""앞으로 우리 잘 지낼 수 있겠지요?"송화정은 소연후가 예전에는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았기에, 거절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그러나 소연후는 차갑게 송화정을 밀쳐 내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그때 나와 족장 할아버지도 궁을 나섰다.궁에 남은 소연후가 어찌 되든 내 알 바 아니었다.마차에 오르려는 순간, 갈라진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시월아."나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달빛이 온 세상을 비추고, 나도 집으로 돌아갈 참이었다....내가 끝내 돌아보지 않자
소연후가 떠난 뒤, 족장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잠든 나를 내려다보았다.백택 일족은 백 살이 되기 전에는 정을 품지 않는다. 소연후가 무엇을 바라는지 족장은 잘 알고 있었지만, 꽃을 피우지 않는 나무에 물을 아무리 줘도 소용없는 법이었다....이튿날 아침, 황제가 초청장을 보내왔다. 우리가 입궁하자 금은보화가 잔뜩 들어왔고, 삼공주 송화정을 엄히 처리하겠다는 전갈도 함께 전해졌다.족장 할아버지는 이를 삼공주 일에 대한 황제의 사죄라고 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백택 일족을 여러 나라가 두려워하는 만큼, 황제는 우리에게 호의를 보이려는 것이었다.연회가 시작되자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들어 사죄했다."짐이 어리석어 강시월을 불효한 딸로 착각했소. 참으로 미안하오.""삼공주는 이미 궁에 가두어 두었으니, 연회가 끝나는 대로 녕국(寧國) 사신에게 인도하겠소.""오늘 이 연회를 계기로 묵은 앙금을 풀고 화해하길 바라오."황제가 말을 마치자 신하들도 일제히 맞장구쳤다.나는 족장 할아버지 곁에 얌전히 앉아 연회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곁에 앉은 소연후는 태연히 포도알을 하나씩 떼어 옥쟁반에 담았다."시월아, 네가 포도를 제일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기대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소연후에게 나는 끝내 대꾸하지도, 포도에 손대지도 않았다.내가 차갑게 외면하자 소연후의 마음에 씁쓸함이 번졌다.술잔을 거듭 비운 그는 이내 취했다.나는 연회에 관심이 없어, 연회가 반쯤 지났을 때 소연후가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뜬 것도 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내시 하나가 허둥지둥 연회장으로 들어왔다."폐하, 큰일이옵니다. 후야께서 삼공주를 만나러 후궁으로 가셨습니다.""말리려 했으나, 삼공주를 부인으로 맞을 생각이라며 녕국에 보상할 테니 공주만은 무사히 지내게 해 달라 하셨사옵니다."거듭 농락당한 녕국 사신들은 더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오늘은 반드시 우리 녕국의 화비마마를 데려가겠습니다!"그들은 당장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듯 노기를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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