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김서희, 이번엔 네가 주인공해: Bab 11 - Bab 20

25 B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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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민지는 오전보다 훨씬 멀쩡해져 있었다.숙취도 거의 사라졌고 밀려 있던 보고서도 대충 정리됐다. 마지막 결재까지 넘긴 민지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기지개를 켰다.“아, 삭신이야.”모니터를 끄고 주변을 둘러보니 차도현이 아직 자리에 있었다.민지가 가방을 챙기며 불렀다.“차차.”“네.”“퇴근하는데 치맥 어때?”도현의 손이 멈췄다.“오늘요?”“응. 해장했으니까 다시 채워야지.”“그게 무슨 논리입니까?”“내 논리.”도현이 웃으며 컴퓨터를 끄려던 순간 민지의 휴대폰이 울렸다.엄마.“왜 또.”민지는 전화를 받았다.“어, 엄마.”너 퇴근했어?“하려고.”그럼 집으로 와.“왜?”정훈이도 오기로 했어.민지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뭐?”도현이 그녀를 바라봤다.내가 너희 둘 오늘 결판을 보련다.“뭔 결판?”결혼 이야기지, 뭐겠어!민지가 이마를 짚었다.아침에 그렇게 전화를 끊었는데 결국 일을 만들었다.김령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방정훈이 다른 여자를 임신시킨 것도.둘이 어제 끝난 것도.너도 참 어지간하다. 정훈이가 10년을 네 옆에 있었잖아. 너 그 성질 받아주는 정훈이가 너 좋다는데 왜 결혼을 안 해?“엄마, 그게 아니라—”일단 와. 정훈이도 온댔어.“엄마.”끊는다. 운전 조심하고.“아니, 잠깐—”툭.통화가 끊겼다.민지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도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일 있으세요?”민지의 입에서 낮은 욕이 흘러나왔다.“씨부랄탱.”“…….”“차차.”“네.”“치맥 내일 먹자.”민지는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나 가야겠다.”“괜찮으시겠습니까?”“안 괜찮아.”민지는 성큼성큼 사무실을 빠져나갔다.“내가 오늘 누구 하나 대가리를 깨든 내가 깨지든 둘 중 하나야.”도현은 멀어지는 민지의 뒷모습을 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주차장으로 내려간 민지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시동을 걸었다.엄마한테 먼저 말했어야 했다.어제는 정신이 없었고 오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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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집 근처에 도착한 민지는 골목에 서 있는 방정훈을 발견했다.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렸다.“타.”정훈이 조수석에 올라타자 민지는 시동부터 껐다.“잠깐.”“왜.”“정훈아.”민지가 정훈을 똑바로 봤다.“내가 이야기해.”“민지야.”“넌 입 다물어.”“내가 잘못한 건데 왜 네가—”“우리 엄마 어떤지 알잖아.”정훈이 입을 다물었다.민지는 안전벨트를 풀었다.“그냥 내가 말하는 대로 있어.”“……알았어.”“가자.”두 사람이 집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나온 건 김령이었다.“왔어?”김령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정훈이도 왔네. 어서 와.”“네, 어머니.”“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얼굴이 좀 상했네.”정훈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민지는 그 모습을 보고 먼저 신발을 벗었다.“엄마, 밥은?”“다 해놨지. 얼른 들어와.”거실에는 최룡도 앉아 있었다.“왔냐.”“응, 아빠.”“안녕하셨어요, 아버님.”최룡은 정훈을 한번 보고 고개만 끄덕였다.식탁에는 김령이 차린 음식이 가득했다.민지는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다.정훈도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그 사실을 모르는 김령만 반찬을 계속 정훈 쪽으로 밀어줬다.“정훈아, 이것도 먹어.”“네.”“너 이거 좋아하잖아.”“네. 감사합니다.”민지는 밥을 씹다가 정훈을 힐끗 봤다.죄지은 인간답게 아주 체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김령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그래서 말인데.”민지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올 게 왔다.“너희 올해 안에 결혼해.”정훈이 입을 열었다.“어머니, 사실은—”민지의 발이 식탁 아래에서 정훈의 발목을 툭 찼다.입 다물라고 했지.정훈이 민지를 봤다.민지는 눈으로 경고한 뒤 김령을 향해 말했다.“안 해.”김령의 얼굴이 굳었다.“또 그 소리야?”“응.”“최민지.”“나 얘랑 헤어졌어.”김령이 눈을 크게 떴다.최룡의 시선도 민지에게 향했다.“뭐?”“헤어졌다고.”“왜?”민지는 잠시 정훈을 봤다.정훈이 다시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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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민지는 주차된 자기 차 앞에서 멈췄고, 정훈도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섰다.10년을 만났다.이 집에도 수도 없이 같이 왔다.명절 전날이면 김령이 전을 너무 많이 부친다며 투덜거렸고, 최룡과 술을 마신 날에는 민지가 운전해서 둘이 집으로 돌아갔다.그런데 오늘이 마지막이었다.민지가 차 문을 열려다가 손을 멈췄다.“야, 정훈.”“응.”“하나만 물어보자.”정훈이 민지를 바라봤다.민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너 내가 로희 포기하고 애 지우고 나한테 오라고 하면 올 거냐?”정훈의 얼굴이 굳었다.민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내가 결혼하겠다고.”“…….”“네가 그렇게 원했던 결혼 하자고 하고.”정훈의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민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네가 원하면 애까지 낳아준다고 하면.”잠시 멈췄다.“다시 올 거냐?”정훈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민지도 재촉하지 않았다.대답이 무엇이든 들어보고 싶었다.한참 뒤 정훈이 입을 열었다.“왜 그런 걸 물어.”“궁금해서.”“민지야.”“온다고 하면 잡을 것도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말고.”정훈의 눈썹이 구겨졌다.“그럼 왜 물어.”“10년이잖아.”민지가 어깨를 으쓱했다.“내가 아직 너 좋아하기도 하고.”정훈이 숨을 멈춘 듯 굳었다.“놀라냐?”“…….”“좋아하니까 결혼 얘기도 하려고 했지.”민지는 피식 웃었다.“사람 마음이 무슨 전등도 아니고 어제 바람피운 거 알았다고 오늘 딱 꺼지냐.”“미안해.”“그 말 말고 대답이나 해.”정훈이 시선을 내렸다.한참을 망설이다가 낮게 말했다.“못 가.”민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왜?”“로희한테도 잘못했고…… 아이한테는 더 그러면 안 되잖아.”“로희 사랑해?”정훈은 또 침묵했다.그 침묵만으로도 민지는 어느 정도 답을 알 것 같았다.“모르겠어.”정훈이 솔직하게 말했다.“너랑 10년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로희한테 느끼는 감정이 정확히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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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집에서 멀어진 뒤 민지는 신호에 걸려 차를 세웠다.가만히 앞을 바라보다가 문득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아홉 시가 조금 넘었다.민지는 잠깐 고민하다 차도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연결음이 두 번쯤 울렸다.네, 과장님.“야, 차차.”네.“아까 치맥 아직 유효하냐?”잠깐 정적이 흘렀다.지금요?“싫으면 말고.”어디세요?민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위치 보내줄게.”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민지 집 근처 치킨집에 마주 앉아 있었다.민지는 생맥주잔을 들자마자 절반 가까이 들이켰다.도현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어제 그렇게 드시고 또 드십니까?”“내 간이 알아서 하겠지.”“간도 과장님 겁니까?”“응. 내 새끼야.”도현이 피식 웃었다.민지는 치킨 한 조각을 뜯다가 문득 말했다.“나 엄마한테 거짓말했다.”“뭐라고요?”“그냥 좋은 놈 보내주는 거라고.”도현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다.민지는 맥주잔만 내려다봤다.“개새끼긴 한데.”“…….”“10년 동안 기다리게 한 건 내 탓이니까.”“바람피운 게 과장님 탓은 아니잖아요.”“그건 걔 탓이지.”민지는 바로 선을 그었다.“내가 결혼 싫다고 한 거랑 그 새끼가 다른 여자랑 잔 건 별개야. 근데 걔가 지친 건 이해한다고.”도현은 더 말하지 않았다.민지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그리고 우리 엄마는 다신 울리면 안 돼.”“왜요?”민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술기운 때문인지 오늘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이야기가 나왔다.“나 우리 집에서 개망나니였거든.”도현이 눈썹을 올렸다.“과장님이요?”“놀랍냐?”“별로요.”“이 새끼가.”도현이 웃었다.민지도 따라 웃다가 잔을 내려놓았다.“친엄마랑 아빠 이혼하고 나서.”목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어릴 때는 그냥 엄마고 그냥 아빠잖아.”누구의 아내고 남편인지도 몰랐다.그냥 엄마.그냥 아빠.그 둘이 자기 세상의 전부였다.“근데 갑자기 둘이 갈라지니까 전부가 사라지는 것 같더라.”민지는 치킨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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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잔이 몇 번 더 부딪쳤다.민지는 아까보다 한결 편해진 얼굴로 닭다리를 뜯었고, 도현은 맞은편에서 천천히 맥주를 마셨다.한동안 말없이 먹던 민지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차차.”“네.”“근데 너 좋아하는 여자.”도현의 손이 멈췄다.“네.”“너 눈에만 이쁜 거냐?”“……네?”민지가 닭다리를 든 채 진지하게 물었다.“아니면 남들이 봐도 다 이쁜 거냐?”도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그게 왜 궁금하세요?”“그냥.”“갑자기요?”“아까 점심에 네 눈에는 많이 예쁘다며.”기억하고 있었다.도현은 맥주잔을 내려놓았다.“제 눈에는 예쁩니다.”“그러니까 그건 들었고.”민지가 답답하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객관적으로.”“객관적으로 사람 외모를 어떻게 평가합니까.”“아, 왜 못 해. 딱 보면 나오잖아.”“과장님 기준으로요?”“응.”도현이 민지를 가만히 바라봤다.화장기 거의 없는 얼굴.술을 마셔 볼은 조금 붉어져 있었고, 아침에 대충 정리한 곱슬 단발은 퇴근할 때가 되면서 다시 여기저기 뻗쳐 있었다.예쁘냐고 묻는다면 남들이 어떤 대답을 할지는 알았다.적어도 윤태경은 오늘 대놓고 안 예쁘다고 했다.하지만 도현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남들 눈에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민지의 눈이 반짝였다.“역시.”“뭐가 역시입니까?”“아까부터 느낌이 왔어.”“무슨 느낌이요.”민지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확신에 차 말했다.“네가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다는 느낌.”도현이 웃었다.“그럴 수도 있겠네요.”“얼마나 좋아하는데?”“많이요.”“얼마나 오래?”도현은 잠깐 계산했다.신입 때부터였다.자기 잘못도 아닌 일로 다른 부서 과장에게 깨지고 있을 때, 고작 주임이던 여자가 자기 앞을 막아섰다.이제 차도현 내 새끼니까 건들지 마요.그날부터니까.“꽤 오래됐습니다.”“몇 년?”“그것까지 말씀드려야 합니까?”“당연하지. 지금 술 먹는데 이런 얘기나 하지 뭘 해.”민지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고백은?”“안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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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집을 나온 민지는 가게 옆 흡연구역부터 찾았다.“차차, 잠깐.”“담배 피우시게요?”“응.”민지는 가방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도현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먼저 가지 않고 옆에 서 있었다.칙.불을 붙인 민지가 길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연기가 흩어졌다.“근데 나는 안 믿는다.”도현이 쳐다봤다.“뭘요?”“사랑.”뜬금없는 말이었다.민지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벽에 등을 기댔다.“정훈이도 처음에는 안 그랬어.”“…….”“나 좋다고 쫓아다녔고, 결혼하자고 몇 년을 졸랐어.”10년을 함께 살았다.그동안 방정훈이 자신에게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아프면 약을 사다 줬고, 야근하면 기다렸고, 밥을 거르면 잔소리했다.그래서 더 웃겼다.“근데 결국 바람났잖아.”민지가 코웃음을 쳤다.“그것도 이뻤다는데.”도현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누가요?”“이로희.”민지는 담배를 한 번 더 빨았다.“작고 귀여운 여자래.”자기와는 정반대였다.민지는 자기 몸을 한번 내려다봤다.“씨부랄탱.”도현이 피식 웃었다.“왜 욕을 하세요.”“기분 나쁘잖아.”“뭐가요.”“내가 못생겨서 바람난 것 같잖아.”“그건 아니죠.”대답이 너무 빨랐다.민지가 고개를 돌렸다.“뭘 그렇게 단호하게 말해.”“바람피운 사람이 잘못한 거니까요.”민지는 잠깐 도현을 바라보다 다시 앞을 봤다.“그건 맞지.”담배 끝이 붉게 타들어갔다.한동안 말이 없던 민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차차, 있지.”“네.”“나는 한 번도 정훈이한테 사랑한다고 안 했다.”도현이 조금 놀란 얼굴로 그녀를 봤다.“10년 동안요?”“응.”“왜요?”민지는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사랑은 변하잖아.”“좋아하는 건 안 변합니까?”“나는 그렇게 생각했어.”민지는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좋아한다고 했거든. 항상.”사랑한다는 말 대신.좋아해.많이 좋아해.그게 민지가 정훈에게 했던 말이었다.“좋아하는데 싫어지기 어렵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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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에게 담뱃갑을 빼앗긴 민지는 몇 걸음 뒤에서 계속 투덜거렸다.“야, 차차.”“네.”“내 담배.”“내일 드리겠습니다.”“그걸 왜 네가 보관해?”“하나 더 피우실 거잖아요.”“내 폐야.”“알고 있습니다.”“내 돈 주고 샀어.”“그것도 압니다.”“근데 왜 네가 가져가?”도현이 대답도 하지 않고 걸었다.민지는 그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혀를 찼다.“저 새끼 저거 은근 고집 세네.”치킨집에서 제법 마셨지만 아직 집에 들어가기는 싫었다.술기운도 적당히 올랐고 밤공기도 시원했다. 무엇보다 집에 가면 방정훈의 짐이 그대로 남아 있을 터였다.내일 다 버리기로 했으니 오늘 굳이 보고 싶지 않았다.그러다 길 건너편에 늘어선 주황색 천막 하나가 민지 눈에 들어왔다.걸음이 뚝 멈췄다.도현이 몇 걸음 더 가다가 뒤늦게 돌아봤다.“왜 안 오세요?”민지가 손가락으로 길 건너를 가리켰다.“차차.”“네.”“저기 포장마차.”도현이 고개를 돌렸다.“꼼장어 어때?”“……또 드시게요?”“왜.”“치킨 먹었잖아요.”“치킨이랑 꼼장어가 같냐?”“술도 드셨고요.”“소주랑 맥주도 다르지.”도현이 잠시 민지를 바라봤다.“과장님 내일 출근하셔야 합니다.”“너도 하잖아.”“그러니까요.”“같이 지각하면 외롭진 않겠다.”도현이 웃음을 터뜨렸다.“과장님이 그러니까 윤 주임님이 성격 안 좋다고 하는 겁니다.”민지의 눈이 가늘어졌다.“그 새끼 내일 죽었어.”“그러지 마세요.”“근데 꼼장어는?”“드시고 싶으세요?”“응.”도현은 결국 길 건너 포장마차를 한번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한 병만입니다.”민지의 얼굴이 바로 밝아졌다.“두 병.”“한 병.”“한 병 반.”“그걸 어떻게 시킵니까.”“그럼 두 병.”“한 병.”“쪼잔한 새끼.”그러면서도 민지는 벌써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포장마차 안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두 사람은 구석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민지가 메뉴판도 제대로 보지 않고 주문했다.“사장님! 꼼장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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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 병만 마시겠다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민지가 사장에게 손을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사장님! 여기 한 병 더요!”도현이 바로 고개를 들었다.“과장님.”“왜.”“한 병만 드신다면서요.”“내가 언제?”“제가 한 병만이라고 했잖아요.”“네가 말했지. 내가 말했냐?”도현은 할 말을 잃었다.민지는 만족스럽게 두 번째 소주병을 받아들었다.치킨집에서 이미 맥주를 마셨고 포장마차까지 와서 또 소주를 들이붓고 있었다.어제도 술을 그렇게 마셨다.도현이 병을 빼앗았다.“이제 그만 드세요.”“야.”“많이 드셨습니다.”“내놔.”“싫습니다.”민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도현을 노려봤다.그러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어디 가세요?”“화장실.”“괜찮으시겠어요?”“내가 오줌도 혼자 못 싸냐?”“그 뜻이 아니라…….”“가만있어. 금방 와.”민지는 손을 휘휘 저으며 돌아섰다.두 걸음까지는 멀쩡했다.세 번째 걸음에서 몸이 살짝 옆으로 기울었다.도현이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과장님.”민지는 근처 테이블을 짚고 다시 중심을 잡았다.“괜찮아.”“안 괜찮아 보이는데요.”“멀쩡해.”“휘청거리셨잖아요.”“바닥이 움직였어.”“과장님이 움직인 겁니다.”민지가 손가락으로 도현을 가리켰다.“차차.”“네.”“잔소리하면 인기 없다.”“알겠습니다.”“그러니까 앉아.”도현은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민지는 포장마차 뒤편에 있는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휘청.이번에는 천막 기둥을 한번 잡았다.그래도 어떻게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도현은 그 모습을 끝까지 보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저렇게 못 마시면서.”사장이 웃었다.“여자친구 많이 취했네.”도현이 잠시 멈칫했다.“여자친구 아닙니다.”“아니야?”“네.”“그럼 좋아하는 여자?”도현이 사장을 바라봤다.사장은 꼼장어를 뒤집으며 웃었다.“딱 보이는데 뭘.”도현도 작게 웃었다.“그렇게 티 납니까?”“여자는 모르는 것 같던데.”“그 사람만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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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열쇠를 들고 뛰어왔다.“여기, 여기 있어.”도현이 열쇠를 받아들려는 순간이었다.철컥.잠겨 있던 여자 화장실 문이 안쪽에서 열렸다.도현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문틈 사이로 익숙한 곱슬머리가 먼저 보였다.민지였다.벽을 한 손으로 짚은 채 멀쩡히 서 있었다.정확히는 멀쩡해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다.도현이 굳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과장님.”민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차차.”“괜찮으세요?”“어.”“왜 전화를 안 받으셨어요?”민지가 손에 든 휴대폰을 내려다봤다.부재중 전화가 잔뜩 떠 있었다.“무음.”“진동 소리 들렸습니다.”“그럼 진동.”“제가 몇 번을 불렀는데요.”“들었어.”도현의 눈썹이 꿈틀했다.“들으셨다고요?”“응.”“근데 왜 대답을 안 하십니까?”민지가 입꼬리를 올렸다.그리고 술기운이 잔뜩 오른 얼굴로 말했다.“차차 까분다.”“……뭐라고요?”“요즘 나한테 너무 까불어.”사장이 두 사람을 번갈아보다가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도현은 어이가 없었다.“사람 걱정하게 만들어놓고 지금 그 말이 나옵니까?”“왜 걱정해.”“십오 분 넘게 안 나오셨잖아요.”“십오 분?”민지가 눈을 크게 떴다.“내가?”“네.”“거짓말.”“제가 그걸 왜 거짓말합니까.”민지는 잠깐 생각했다.화장실에 들어온 것까지는 기억났다.볼일을 보고 손도 씻었다.그리고 거울을 봤다.그다음에…….“아.”“왜요.”“앉아 있었네.”도현의 얼굴이 굳었다.“어디에요?”“변기.”“주무셨어요?”“아니.”“그럼요?”“눈만 감았어.”“그걸 자는 거라고 합니다.”민지가 손을 휘저었다.“안 잤다니까.”그러다 중심을 잃고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도현이 바로 팔을 잡았다.“보세요.”“놔.”“안 놓습니다.”“차차.”“네.”“너 요즘 진짜 많이 컸다.”민지는 도현의 팔에 기대 선 채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팍을 툭 찔렀다.“신입 때는 내가 뭐라고 하면 네네 하더니.”“그게 몇 년 전인데요.”“내가 너 키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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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차도현이 택시를 잡아줬는지, 자기가 비밀번호를 제대로 눌렀는지도 몰랐다.정신을 차렸을 때 민지는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옷도 그대로였다.“아…… 씨부랄탱.”머리가 빙빙 돌았다.물을 마셔야 하는데 일어날 힘이 없었다.민지는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이불을 끌어당겼다.그러다 침대 옆에 펼쳐진 노트북이 눈에 들어왔다.아침에 닫지 않았던 건지 화면에는 익숙한 제목이 떠 있었다.《불온한 정착 -서담-》완결.민지는 반쯤 감긴 눈으로 화면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김서희.”혀가 조금 꼬였다.“씨부랄탱…….”자기가 만들어놓은 여자.사랑 하나 때문에 그렇게 굴리고 또 굴렸다.오늘 방정훈과 완전히 끝내고 나니 이상하게 그 여자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내가 졸올라 미안하다…….”민지는 베개에 얼굴을 처박았다.“다음에는…… 차강수 만나지 마.”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다른 놈 만나…… 좋은 놈으로…….”눈꺼풀이 무거워졌다.술기운과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민지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그리고 잠이 들었다.얼마나 지났을까.누군가 자꾸 자기를 불렀다.“김서희 씨.”민지는 미간을 찌푸렸다.누구야.“김서희 씨.”또 불렀다.민지가 얼굴을 더 깊숙이 기댔다.따뜻했다.베개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단단하긴 했지만 자는 데 지장은 없었다.“김서희 씨.”결국 민지가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씨부랄탱…….”주변이 조용해졌다.민지는 눈도 뜨지 않은 채 웅얼거렸다.“나 최민지야…….”그리고.“커억.”목이 한번 꺾였다.차 안에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운전기사는 룸미러를 봤다가 황급히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뒷좌석에 앉은 차강수의 표정도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외부 미팅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보조비서 김서희가 동행했고, 차에 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차가 방향을 틀 때마다 조금씩 기울더니 어느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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