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이 나를 죽이는 방법을 검색했다: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균열의 서막

매캐하고 비릿한 병원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대학병원 정형외과 1인실 VIP 병동의 침대 위에 도진이 산송장처럼 누워 있었다.오른쪽 쇄골에는 금속 핀 3개를 넣는 수술을 받았다. 봉합 부위는 드레싱으로 덮여 있었고, 팔은 보조기에 받쳐져 있었다. 갈비뼈 3대가 부러져 호흡을 깊게 할 때마다 옆구리가 아팠다.수술 마취제가 덜 풀려 입가에 침을 흘리며 힘겹게 눈을 떴을 때, 그의 흐릿한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창가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신서린의 실루엣이었다."이제 정신이 좀 들어?"서린은 다친 곳보다 자신이 당한 일을 먼저 물을 얼굴이었다. 걱정보다는 짜증이 앞선 목소리였다."서린아… 내 몸이… 으극, 숨을… 숨을 제대로 못 쉬겠어…."도진이 바짝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쇳소리 섞인 신음을 쥐어짜 냈다. 갈비뼈를 다친 탓에 말을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가슴팍 전체가 칼로 후벼 파이는 듯한 격통이 온몸을 휘감았다."아픈 건 알아. 그런데 나부터 대답해. 어제 오피스텔 욕실 바닥, 당신이 건드렸어?"서린이 하이힐 소리를 또각거리며 성큼성큼 다가와, 쇠로 된 침대 난간을 쾅 소리 나게 내리쳤다."뭐… 뭐라고…?""내가 묻잖아! 그 바닥에 대체 뭘 칠해둔 거야? 향수도 당신이 골라서 내 목에 뿌렸어. 이번에도 내가 먼저 씻었으면 그 꼴이 났겠지. 날 없애려고 한 거야? 사고로 보이게, 아무도 모르게?"서린의 눈동자 속에서 광기 어린 불신과 적개심이 이글거렸다."무슨… 무슨 미친 소릴 지껄이는 거야! 내가 널 왜 죽여! 내가… 끄아아악!"도진이 억울함과 분노에 치밀어 상체를 억지로 일으키려다, 수술한 어깨에 통증이 번지자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이마와 목덜미로 비 오듯 쏟아지는 식은땀을 흘리며 도진이 헐떡였다."그 바닥… 채경이 죽이려고 내가 서재 금고에 숨겨뒀던 불소 실리콘 스프레이랑 똑같았어! 발을 딛자마자 미끄러졌어! 평소 욕실 바닥이랑 달랐다고!""그런데 왜 그 약품이 우리 둘만의 비밀 오피스텔 욕실에 칠해져 있냐고!"서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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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소름 돋는 병문안

침대에서 물러서던 서린이 그대로 굳었다. 나는 그녀와 도진을 차례로 바라봤다.신서린의 핏기 없는 입술이 덜덜 떨렸다. 그녀는 소파 위에 놓아두었던 명품 가방을 허겁지겁 낚아채며 도진의 침대에서 서둘러 세 걸음 물러섰다.도진은 보조기에 팔을 얹고 굳어버린 채 눈동자만 껌뻑였다."채, 채경아… 네가 여길 어떻게….""여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흑, 여보!"나는 들고 있던 프리지아 꽃바구니를 협탁 위에 떨어뜨리듯 내려놓고, 침대 곁으로 무너져 내리듯 달려갔다. 도진의 멀쩡한 왼손을 두 손으로 와락 부여잡았다.내 눈동자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도진의 메마른 손등을 뜨겁게 적셨다. 손끝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지는 도진의 미세한 경련.도진은 내 손을 빼지도 못한 채 굳어 있었다."회사 총무팀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어. 당신이 지방 공장 출장 간다더니 강남 쪽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고… 쇄골에 갈비뼈까지 산산조각이 났다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응? 여보, 말 좀 해봐!"세상에서 가장 순진하고 애통해 마지않는 아내의 오열.도진은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며 곁눈질로 출구 쪽에 선 서린을 필사적으로 살폈다.서린은 서둘러 마스크를 귀에 걸며 헛기침을 터뜨렸다."저… 남편분이 저희 갤러리 VIP 고객이세요. 업무 미팅 때문에 오셨다가 로비에서 미끄러지셔서 제가 구급차를 불렀어요. 사모님 오셨으니 마음이 놓이네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쥐새끼처럼 비겁하게 현장을 빠져나가려는 서린의 뒤통수를 향해, 나는 눈물로 젖은 얼굴을 돌리며 허리를 깊이 숙였다."감사합니다, 큐레이터님. 정말 감사합니다. 큐레이터님이 아니었으면 제 남편이 길바닥에서 변을 당할 뻔했네요. 이 은혜는… 제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갚을게요."'당신이 흘릴 피와 눈물로 반드시 갚아줄게, 신서린.'서린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내 말끝이 마음에 걸린 듯 잠깐 멈췄다가, 마스크를 고쳐 쓰고 병실을 빠져나갔다.달칵.육중한 병실 문이 닫히고 단둘만이 남겨진 공간에 무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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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지하의 그림자

도진이 퇴원한 날, 자정이 훌쩍 넘은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지하 2층 B구역 14번 콘크리트 기둥 옆. 내가 매일 출퇴근할 때 타는 은색 중형 세단이 형광등의 파리한 조명을 받아 서늘한 금속성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주변에는 오가는 사람 한 명 없이 환풍기 돌아가는 무거운 기계음만이 윙윙 울렸다.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둔탁하고 불규칙한 마찰음이 주차장 바닥을 긁으며 천천히 다가왔다.띡, 띡. 찌익.오른팔을 보조기에 받친 박도진이었다.오른쪽 쇄골의 수술 부위를 감싸느라 자세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한 걸음 뗄 때마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지만, 그는 차 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신서린의 빗발치는 독촉에 떠밀려 내려온 도진은, 아픈 몸보다 계획이 어긋날 일이 더 두려웠다.도진은 내 차 운전석 앞바퀴 휠 옆에 멈춰 섰다.주변을 몇 번이나 돌아본 뒤, 갈비뼈 부위를 움켜쥐며 차 밑바닥으로 몸을 욱여넣었다."으극… 컥! 커헉…."몸을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번져 도진의 턱이 떨렸다. 그래도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다음 날 내가 차를 타리라는 생각이 그를 차 밑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그는 주머니에서 공업용 다이아몬드 송곳과 날카로운 미세 펜치를 꺼내 들었다.어두운 차체 아래에서 도진의 손이 한동안 움직였다. 어깨가 닿을 때마다 그가 이를 악무는 소리가 났다.도진은 브레이크 호스에 손을 댔다. 공구 끝이 움직일 때마다 짧은 마찰음이 났다.아침이면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운전석에 앉으리라고 믿는 얼굴이었다. 그는 몇 번이고 엘리베이터 쪽을 살피다가 다시 차 밑으로 고개를 밀어 넣었다. 지금 멈출 수 있는데도 손을 거두지 않았다.도진은 이 흔적도 사고로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차에서 떨어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찍, 찌익.시커먼 브레이크 오일 한 방울이 도진의 손등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똑똑 떨어져 번졌다.도진은 입꼬리를 기괴하게 찢어 올리며 기름 묻은 손을 제 바지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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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덫의 맞교환

새벽 2시 40분.사설 포렌식 팀의 특수 저소음 유압 리프트가 내 차량을 신속하고 정밀하게 들어 올렸다.라텍스 장갑을 낀 정비사가 도진이 손댄 브레이크 호스를 분리했다. 훼손 부위가 드러나자 태환은 확인 시각을 적었다. 영상 속 손이 움직이던 자리와 같은 부분이었다."훼손 부위는 감정을 받아야 합니다. 영상과 부품을 따로 보관하겠습니다."류태환 변호사는 증거물 번호를 붙인 봉투를 확인하며 말했다. 훼손된 호스는 그 안에 별도로 보관됐다."지금 신고할 수 있습니다. 구속 여부를 제가 약속드릴 수는 없지만, 수사를 요청하기에는 충분해요. 더 기다릴 이유는 없습니다.""변호사님, 아직이요. 저 사람들은 제가 사고 날 거라고 믿고 출발할 겁니다. 자기들 차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는 생각도 못 할 거예요."태환은 대답 대신 봉투 입구를 내려다봤다. 나는 그가 적은 시각을 따라 읽었다. 도와달라던 말이 어느새 다른 뜻이 되어 있었다. 지금 내가 무엇을 부탁하고 있는지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조금 전 지하 주차장에서 한 말을 거두지는 않았다.정비팀은 즉시 내 차량에 공장에서 갓 출고된 순정 정품 브레이크 호스를 장착하고, 새 브레이크 오일을 주입해 완벽한 제동 압력을 복원했다. 정비가 끝난 뒤에도 나는 한동안 차량 쪽을 바라봤다. 호스가 바뀌었다고 손끝에 남은 긴장까지 가시지는 않았다.정비가 끝났는데도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새벽이 깊어질수록 주차장은 더 조용해졌다. 태환이 떠난 뒤에도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신고 버튼을 누르면 오늘 밤은 여기서 끝날 수 있었다. 화면을 껐다 켜는 사이, 신서린의 빨간 포르쉐가 세워진 청담동 레지던스 주소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그 차에 손을 대는 순간, 더는 피해자로만 남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얼마 뒤 나는 그 레지던스 주차장에 서 있었다. 차량에서 손을 뗐을 때, 도진이 내 차에 남겼던 것과 같은 종류의 훼손이 서린의 차에도 남아 있었다. 구체적인 흔적을 오래 보지 못하고 먼저 시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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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통제 불능의 질주

경춘고속도로 하행선, 가파른 곡선 내리막 구간.경고등이 켜지기 직전까지, 차 안에는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신서린의 새빨간 포르쉐 911 카레라는 제한속도를 넘긴 채 내리막 곡선 구간으로 들어가고 있었다."도진 씨, 볼륨 좀 더 높여봐. 채경이 그 답답하고 미련한 년 장례식 끝나자마자, 우리 남프랑스로 바로 뜨는 거야."명품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쓸어 올린 신서린이 상기된 뺨을 붉히며 가속 페달을 거침없이 밟아댔다. 묵직한 배기음이 고막을 기분 좋게 때렸다.조수석에 비스듬히 몸을 묻은 도진은 보조기 가장자리에 닿는 피부를 긁적이며 비열한 눈웃음을 흘렸다."남프랑스 니스의 지중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해변 빌라로 이미 다 알아봐 뒀어. 채경이 앞으로 든 25억 상해보험금에 친정 유산까지 합치면 40억이 넘잖아. 우리 둘이 평생 돈 걱정 없이 호화롭게 살기엔 넘치고도 남지."아내가 죽은 뒤의 집과 여행지를 말하는 동안, 두 사람 누구도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채경의 장례식은 이미 끝난 일처럼 취급됐다.하지만 그 달콤한 신기루는, 앞쪽 곡선 구간에서 서서히 속도를 줄이려던 순간 산산조각 났다.서린이 앞서가는 거대한 덤프트럭과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브레이크 페달 위에 구두 앞코를 얹었다.푹.발끝에 단단하게 걸려야 할 브레이크 유압의 반발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페달이 마치 썩은 스펀지를 밟듯 아무런 저항 없이 허공으로 푹 꺼져 차체 바닥에 닿았다."어… 어라? 이게 왜 이러지?"서린의 미간이 날카롭게 찌푸려졌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브레이크 페달을 연거푸 세 번 연타하듯 짓밟았다.푹, 푹, 푹.차는 서린이 기대한 만큼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서린은 발을 떼었다가 다시 눌렀다. 아까부터 이상하던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계기판의 경고보다 앞차가 가까워지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웃고 있던 얼굴에서 순식간에 표정이 사라졌다. 도진도 그제야 좌석에서 몸을 세웠다.삐비비비빅!포르쉐의 화려한 풀 디지털 계기판 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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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에어백 속의 다툼

찌그러진 포르쉐의 실내는 매캐한 화약 연기와 타버린 합성고무 냄새로 숨이 턱턱 막혀왔다. 터져 나온 듀얼 에어백 사이로 희뿌연 분진이 눈보라처럼 흩날리며 좁은 공간을 자욱하게 메웠다."커헉… 으, 으아악! 내 어깨! 내 갈비뼈!"조수석에 반쯤 처박힌 도진이 피를 토하듯 끔찍한 절규를 내질렀다.충돌 충격에 수술한 어깨가 꺾이며 통증이 번졌다. 보조기 끈이 비틀려 도진은 오른팔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찢어진 입술에서 흐른 피가 턱을 타고 떨어졌다. 숨을 크게 쉴 때마다 다친 옆구리가 당겼다.운전석의 신서린 역시 처참한 몰골로 신음하고 있었다.터진 에어백에 얼굴을 세게 얻어맞은 서린은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마가 찢어져 흐른 피가 번진 화장과 뒤섞였다.멍하니 피 묻은 손을 내려다보던 서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충혈된 눈이 도진의 얼굴에 멈췄다."박도진…."쇳가루를 긁는 듯 쉰 목소리로 도진의 이름을 부른 서린이, 피 묻은 손톱을 세워 도진의 멱살을 거칠게 쥐어뜯었다."이 개자식아… 당신이지? 당신이 내 차 브레이크 오일 호스 자른 거지!""뭐… 컥, 무슨 미친 소리야…!""어젯밤에 당신이 채경이 차 브레이크 오일선 송곳으로 뚫어놓는다고 큰소리쳤잖아! 그런데 왜 내 차가 고속도로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터져서 이 지경이 됐는데! 날… 날 죽여서 입막음하고, 채경이 25억 보험금이랑 갤러리까지 다 혼자 쳐먹으려고 내 차에 수작 부린 거지!"도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서린이 다시 멱살을 당겼다. 자기 차의 고장과 도진이 떠벌리던 계획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 도진이 반박하려 입을 열자, 그녀는 옷깃을 더 세게 비틀었다.서린은 이성을 잃고 도진의 보조기를 붙잡아 거칠게 흔들었다."끄아아악! 미친년아, 손 치워! 뼈가 부러졌다고!"도진이 비명을 지르며 멀쩡한 왼손으로 서린의 손목을 거칠게 밀어냈다."내가 죽으려고 네 차를 망가뜨리고 조수석에 탔겠어! 네가… 네가 25억 독식하려고 날 태우고 일부러 벽을 들이받은 거지, 이 독사 같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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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유령의 집

밤이 깊어질수록 도진은 집 안에서조차 쉴 곳을 찾지 못했다.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귀가한 도진은 오른팔의 보조기를 고쳐 받쳤다. 쇄골과 갈비뼈 통증 때문에 앉을 자리부터 골랐지만, 막상 침실에 들어가서는 눕지 못했다.눈을 감는 순간,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칼날이 제 목덜미를 겨누는 듯한 착각에 시달렸다. 눈은 충혈돼 있었고, 입술은 바짝 말라 하얗게 껍질이 벗겨져 있었다."어떻게… 대체 어떻게 그 모든 게 다 똑같을 수가 있어?"거실 대리석 바닥에 웅크려 앉은 도진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혼잣말을 짓씹었다.처음에는 향수였다. 자신이 주문한 약품의 설명에서 봤던 증상으로 서린이 쓰러졌던 일.그다음은 욕실이었다. 집 안방 욕실에 쓰려던 미끄럼제와 같은 것이 두 사람의 오피스텔에도 뿌려진 듯했다. 미끄러지던 발의 감각과 꺾인 어깨의 통증이 다시 떠올랐다.그리고 브레이크. 채경의 세단 밑바닥에 기어들어가 손댔던 부분을 떠올릴 때마다, 서린의 포르쉐 안에서 들었던 비명과 충돌음이 귓가를 때렸다.단 한 번이라면 기막힌 우연의 장난이라 치부할 수 있었다. 두 번이라도 불운의 연속이라 스스로를 속일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세 번이었다.검색창에 적어둔 말들이 하나씩 현실에서 되돌아왔다. 도진은 그제야 우연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누군가… 누군가 내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어. 내 모든 계획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가지고 놀고 있다고!"도진의 등줄기를 타고 얼음장 같은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극단적인 피해망상과 엄습하는 공포가 그의 자신감과 이성을 완전히 산산조각 냈다.그는 부러진 몸을 비틀거리며 괴성을 지르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스마트폰에 다운로드받은 불법 도청 장치 및 몰래카메라 탐지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화면을 이리저리 들이대며 서재로 미친 듯이 달려 들어갔다."어디에 숨겨둔 거야… 어디서 날 감시하고 있는 건데, 나와!"도진은 서재 책꽂이에 꽂힌 전공 서적과 의학 서류를 한 팔로 쓸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다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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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단두대의 검색창

도진은 내 차가운 손가락이 제 목덜미에 닿는 순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그는 목을 뻣뻣하게 천천히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공포와 불신으로 하얗게 질린 그의 눈에, 평소처럼 미소 짓고 있는 아내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서재가 왜 이렇게 난장판이야? 중요한 회사 서류 찾느라 밤새 고생했나 보네. 쇄골 수술한 환자가 이렇게 무리하면 뼈가 영영 안 붙는데."나는 바닥에 떨어진 두툼한 전공 서적 한 권을 조용히 주워 책상 위에 단정하게 올려놓으며, 세상에 둘도 없는 헌신적인 아내의 목소리로 나직하게 속삭였다."들어가서 한숨 푹 자, 여보. 내가 당신 좋아하는 따뜻한 소고기버섯죽 끓여둘 테니까."도진은 산송장처럼 비틀거리며 서재를 빠져나가 안방으로 도망쳤다. 그가 안방 문을 닫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서재 책상 위의 구형 씽크패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이번에는 도진이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게 할 생각이었다.***아침 8시.밤새 공포에 시달리던 도진은 안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잠들기 전 약을 먹는 걸 봤지만, 지금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거친 숨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나는 단정한 네이비 정장 수트에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출근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뒤, 서재로 들어섰다.도진의 서브 노트북 전원을 켰다. 그가 매일 밤 살인 계획을 짜며 애용하던 구글 크롬 브라우저.나는 검색창의 하얀 입력창에 마우스 커서를 올리고 한 글자씩 키보드를 두드렸다.탁, 탁, 탁.[남편이 살인자일 때 대처법 및 형사 고발 절차]푸른색 엔터 키를 누르자, 살인예비죄의 구속 요건과 배우자 형사 고소 절차, 그리고 디지털 포렌식 증거 효력에 관한 법률 정보들이 모니터 화면 가득 시퍼렇게 떠올랐다.화면 밝기를 100% 최대로 올려두었다.그리고 그 노트북 키보드 정중앙에, 류태환 형사 전문 변호사의 명함 한 장과 도진이 몰래 가입해 두었던 25억 상해보험 증권 사본을 정갈하게 올려놓았다.명함과 보험 서류를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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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환각의 늪

통화가 끊긴 뒤에도 서재를 메운 시퍼런 모니터의 형광빛이 도진의 충혈된 망막을 송곳처럼 깊숙이 찔렀다.[남편이 살인자일 때 대처법 및 형사 고발 절차]도진은 모니터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명함 위에 놓인 보험 증권만 시야에 남았다. 자신이 숨겨둔 서류가 책상 한가운데 펼쳐져 있다는 게, 화면에 적힌 어떤 문장보다 분명했다.그 키보드 아래 가지런히 놓여 있는 류태환 특수형사 전문 변호사의 금박 명함, 그리고 자신이 채경 몰래 그녀의 동의 없이 인감을 도용해 들어두었던 25억 상해보험 증권 사본."아… 아아악! 끄아아악!"도진은 양손으로 헝클어진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차가운 서재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부러진 갈비뼈를 뚫고 튀어나올 듯 거칠게 요동쳤다. 잠을 거의 못 잔 탓인지 시야가 흔들렸다.어두컴컴한 서재 책꽂이 틈새마다 누군가 숨어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찢겨 나간 벽지 무늬까지 채경의 입꼬리처럼 보였다.'여보, 뼈만 부러져서 정말 다행이야.''머리를 바닥에 부딪쳤으면… 영영 못 볼 뻔했잖아.'채경이 병실에서 했던 말이 자꾸 귓가에 되살아났다. 실제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도진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도진은 제 목을 부여잡고 헛구역질을 내뱉었다.새벽녘 목덜미에 닿았던 채경의 차가운 손가락 감촉이 아직 남아 있었다. 얼음물에 젖은 독사가 목줄기를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 같아 온몸의 털끝이 곤두섰다."날 죽이려는 거야… 그년이 처음부터 다 알고 날 서서히 도륙하고 있어!"도진은 몸을 떨며 서재를 빠져나왔다.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렌터카에 올라탄 그는 광기에 쫓기는 짐승처럼 강남 외곽의 버려진 폐물류창고 공터로 미친 듯이 차를 몰았다.그곳에는 교통사고로 얼굴 전체에 압박 붕대를 칭칭 감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신서린이 초조하게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서린이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올라타자마자, 도진이 그녀의 멱살을 부여잡고 눈물콧물을 쏟으며 울부짖었다."자수하자, 서린아! 제발 경찰에 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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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호숫가의 덫

금요일 늦은 오후, 가평으로 향하는 하늘은 잿빛 먹구름으로 무겁고 음산하게 내리앉아 있었다. 북한강 줄기를 따라 굽이치는 외딴 호숫가 2차선 국도.내 은색 세단 조수석에 웅크려 앉은 박도진은 주행 내내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손톱 밑의 살점을 피가 배어 나오도록 짓씹고 있었다. 그의 무릎 위에는 낡은 검은색 보스턴백이 놓여 있었고, 덜 닫힌 지퍼 틈새로 도진이 준비해온 테이프의 번들거리는 은빛 단면이 슬쩍 엿보였다."여보, 안색이 너무 창백하네. 가평 별장 도착하면 벽난로에 따뜻하게 참나무 장작 지펴줄 테니까 푹 쉬어."나는 잠깐 옆으로 고개를 돌려 도진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도진의 다친 어깨가 경련하듯 크게 움찔했다."어… 응. 고마워, 채경아. 당신도 요즘 회사 일로 고생 많았는데… 오늘 밤엔 아무 걱정 말고 푹 자."그 말을 듣는 동안 나는 핸들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도진은 안심시키듯 말하고도 내 눈을 보지 않았다. 나는 앞유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이 여행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오후 5시 30분, 붉은 벽돌과 짙은 목조로 지어진 가평 호숫가 2층 별장에 바퀴가 멈춰 섰다.깊은 잣나무 숲을 지나야 나오는 집이라 도로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익숙한 별장인데도 도진과 함께 들어오니 구조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아버지가 남긴 집을 남편의 살인 계획 안에서 다시 보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짐을 풀자마자 도진은 거실 한구석에 우뚝 솟은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벽난로 앞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그는 부러진 쇄골의 격통을 참아가며 벽난로 굴뚝 내부의 배기 댐퍼 개폐 레버를 손으로 만져보고, 외부로 연결된 환기 연도의 나사 홈을 몰래 확인했다.그의 스마트워치 화면에는 별장 인근 폐모텔에 잠복한 신서린의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깜빡이고 있었다.[서린: 별장 뒷마당 배기통 위치 확인 완료. 와인에 약 먹이고 신호 보내. 내가 밖에서 연도 완전히 밀봉해 버릴게.]치밀하고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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