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결혼 3주년 전날, 채경은 남편의 노트북에서 자신을 사고사로 위장해 죽이려는 검색 기록과 25억 보험 계획을 발견한다. 울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남편과 내연녀가 준비한 다섯 개의 살인 트랩을 그대로 되돌려주기로 한다. 그들이 판 함정에, 그들 스스로 빠지도록.
Lihat lebih banyak공기는 지나치게 서늘했다. 거실 벽걸이 시계는 밤 9시를 가리켰다. 초침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욕실 쪽에서는 규칙적인 물소리가 새어 나왔다. 물줄기가 타일에 부딪쳐 부서지는 소리였다. 결혼 3주년 기념일을 불과 3시간 앞둔 밤이었다.
식탁 위에는 도진이 퇴근길에 사 온 붉은 작약 꽃다발과 고급 와인이 놓여 있었다.
꽃잎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싱그러워 보였다. 꽃다발에는 도진이 늘 쓰는 향이 옅게 배어 있었다. 3년을 함께 살며 익숙해진 남편 박도진의 체향이었다. 기념일을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남자.
나는 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주방 아일랜드 식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어두운 서재 안쪽 책상 모서리에서 파르르 푸른빛이 번졌다.
도진이 평소 잠가두던 개인용 서브 노트북이었다. 회사 업무용 맥북 외에 그가 제약회사 영업 데이터 정리용이라며 별도로 들고 다니던 구형 씽크패드였다. 대기 모드가 풀리며 화면보호기 대신 열려 있던 창 하나가 어둠 속에 형광빛 사각의 윤곽을 드러냈다.
나는 본능적으로 서재 문턱을 넘었다. 발소리를 죽인 채 다가갔다. 욕실에서는 여전히 거친 샤워기 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있었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구글 크롬 브라우저가 띄워져 있었다. 회색 배경 위에 어둡게 내려앉은 검은색 테마. 시크릿 창인 줄 알았지만, 상단 메뉴에는 방문 기록이 열려 있었다.
IT 테크기업에서 수석 빅데이터 분석가로 일하는 나는 검색 기록을 매일 다뤘다. 그래서 더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검색어의 자극적인 내용보다 반복되는 시간과 순서였다. 같은 사람이 며칠 동안 비슷한 질문을 되풀이한 흔적이었다.
노트북 터치패드에 손끝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지문 끝을 타고 서늘하게 파고들었다.
방문 기록은 날짜별로 펼쳐져 있었다. 최근 열어본 페이지 제목과 검색어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행 하나를 읽고도 손끝을 떼지 못했다. 잘못 본 줄 알고 같은 줄을 다시 읽었다.
[천식 환자에게 치명적인 무색무취 오일 성분]
[욕실 타일 미끄럼 유발 고점도 오일 분무법]
[차량 브레이크 오일 미세 천공 조작]
[욕조 감전 시 단순 실족 심정지 판정 확률]
숨이 멎었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얼음장 같은 냉기가 치밀어 올랐다.
모두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경미한 천식을 앓았고, 환절기면 발작이 일어나곤 했다. 우리 집 욕실 바닥은 물기가 조금만 닿아도 미끄러지기 쉬운 천연 대리석 소재였고, 내가 매일 출퇴근할 때 모는 차량은 브레이크 점검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중형 세단이었다. 그리고 주말마다 피로를 풀기 위해 내가 반신욕을 즐기는 침실 욕조까지.
검색어를 하나씩 읽을수록 우연이라고 넘길 구석이 줄어들었다.
남편에게만 말해둔 불편들이었다. 환절기마다 숨이 차는 일, 욕실에서 발을 헛디딘 일. 내 말을 기억해주던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속이 울렁거렸다. 화면을 닫고 싶었지만, 남은 줄을 확인하지 않고는 그에게 등을 돌릴 수 없었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업무상 조사가 아니었다. 검색어 옆에 찍힌 타임스탬프는 지난 10일간 매일 밤, 내가 잠든 새벽 2시와 3시 사이에 집중되어 있었다.
남편은 나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칼이나 흉기로 찌르는 조잡한 살인이 아니었다. 실족사나 돌연사, 혹은 단순 교통사고로 둘러댈 수 있다고 믿으며 '사고사'를 설계하고 있었다.
심장 박동이 고막을 찢을 듯 요동쳤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하지만 나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나는 화면에 찍힌 시각부터 다시 읽었다. 울기 시작하면 욕실의 물소리가 멎는 순간을 놓칠 것 같았다.
남편의 동기는 무엇인가. 단순한 권태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답은 스크롤을 내린 검색창 맨 마지막 줄에 있었다.
[배우자 사망보험금 25억 일시금 수령 절차]
달칵.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복도 끝에서 울렸다. 젖은 발자국 소리가 서재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몇 주 뒤, 선고 공판이 열렸다.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은 조용했다.재판장이 판결문을 펴고 피고인들을 바라봤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작게 났다.법정 안의 모든 숨소리와 웅성거림이 일순간 완벽하게 멎았다."주문. 피고인 박도진을 징역 15년에 처한다. 피고인 신서린을 징역 8년에 처한다."재판장의 목소리가 법정에 또렷하게 울렸다."피고인들은 박도진의 배우자인 피해자의 생명을 거액의 사망보험금을 편취하기 위한 도구로 삼아, 여러 살해 방법을 의논하고 실제 범행에 나아갔다. 수집된 디지털 포렌식 증거의 신빙성이 확고하며 범행의 잔혹성과 반성의 기미가 전무한 점을 고려할 때 중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선고가 떨어지는 순간, 박도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피고인석 차가운 바닥으로 털썩 무너져 내렸다."15년이라니… 판사님, 제발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채경아, 날 용서해 줘! 제발 날 꺼내줘, 채경아!"도진이 방청석의 나를 향해 몸을 일으키려 하자 교도관이 제지했다. 그는 내 이름을 몇 번 더 불렀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신서린은 입술을 깨문 채 도진에게서 몸을 돌렸다.두 사람이 호송 통로로 사라진 뒤 법정은 다시 조용해졌다.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일어났다. 류태환 변호사가 다가와 정중하게 악수를 청해왔다. 그의 얼굴에는 긴 절차를 마친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윤채경 씨, 형사 사건은 일단 여기까지입니다. 이혼과 재산 문제는 별도 절차대로 정리됐고, 보험 계약도 효력이 없는 것으로 처리됐습니다.""감사합니다. 제가 제출한 자료들도 끝까지 확인해 주세요."태환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행동 중 일부 역시 별건으로 확인 절차가 남아 있었다. 처음부터 그가 경고했던 부분이었다.도진과 서린에게 형이 선고됐다는 사실이 내가 한 모든 선택까지 정당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점을 더는 '되돌려준 것뿐'이라는 말로 덮지 않기로 했다. 조사에서 묻는 순서대로 답했고, 제출하라고 한 원본도 그대로 냈다.법원
몇 달 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법정.증거 조사가 이어지는 날, 교도관의 호송을 받으며 박도진과 신서린이 피고인석으로 들어섰다.푸른색 미결수 수의를 입은 박도진은 오른쪽 어깨에 하얀 붕대를 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 옆의 신서린 역시 안면의 흉측한 화상 흉터를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초점 잃은 눈동자는 형벌 같은 공포와 불안감으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도진은 방청석을 훑다가 나를 발견하고 바로 시선을 피했다. 서린은 끝까지 도진 쪽을 보지 않았다.방청석에는 취재진과 방청객들이 앉아 있었다."피고인 박도진의 변호인, 의견을 말씀하십시오."재판장의 말에 도진 측 변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피고인은 피해자와의 오랜 부부 갈등 속에서 극심한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겪었을 뿐, 살인의 고의나 확정적인 실행 착수가 없었습니다. 포르쉐 차량 사고와 가평 별장 화재 사건 역시 우발적인 과실에 불과하므로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관대한 판결을 내려주시기를…."내 진술 순서가 오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 든 자료의 가장자리가 눌려 있었다. 도진 쪽을 보지 않고 재판부를 향했다."저는 남편의 검색 기록을 우연히 본 뒤부터, 실제로 제 차가 훼손될 때까지 자료를 남겼습니다. 제가 한 행동 역시 숨기지 않고 조사에 제출했습니다."내 진술이 끝난 뒤 검사가 제출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태환이 보관 내역을 정리해 넘긴 자료였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화면을 봤다.치익.법정 중앙의 스크린에 자료 목록이 차례로 표시됐다.재판부는 화면과 서면 자료를 번갈아 확인했다."피고인이 사용하던 노트북의 방문 기록과 당시 화면을 촬영한 자료입니다."검사는 자료의 확보 경위와 이후 보관 내역을 설명했다. 태환이 정리했던 날짜가 화면에 나타났다."첫 촬영 자료에는 발견 전 10일 동안의 방문 시각과 검색어가 남아 있습니다. 약품 배송 자료와 주차장 영상도 함께 살펴봐 주십시오."화면이 넘어가며, 도진이 거래처를 통해 수령한 고농축
2층 욕실 안으로 구급대와 경찰이 비춘 빛이 들어왔다. 희고 강한 조명이 젖은 욕실 바닥과 널린 물건들을 한꺼번에 드러냈다.구급대원 한 명은 욕실 입구에서 전원 차단 여부부터 확인했고, 다른 대원들은 도진과 서린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말했다.차갑게 젖은 욕조 바닥에서, 겨우 희미한 의식을 되찾은 박도진이 핏물 섞인 거품을 게워내며 욕조 턱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짚고 바닥으로 기어 나왔다.온몸의 근육과 신경이 찢겨 나가는 극심한 마비통에 젖은 타일 바닥을 손톱이 뒤집히도록 긁으며 컥컥 피 섞인 기침을 토해냈다."쿨럭! 컥, 살려… 제발 살려줘… 나 좀 살려줘…."그의 흐려진 시야 속, 활짝 열린 욕실 문간에 단정한 구두 코가 들어왔다. 검은색 가죽 옥스퍼드화와 짙은 네이비색 정장. 윤채경이었다.그녀의 뒤로 구급대원과 경찰이 욕실 입구를 채웠다. 류태환은 신고를 받고 뒤늦게 도착해 계단 쪽에 서 있었다."채경아…!"도진이 피투성이가 된 손을 허공으로 뻗으며, 구토하듯 비열한 거짓말을 쏟아냈다."저, 저 미친 서린이가 날 죽이려고 배전반에서 전선을 몰래 연결했어! 난 피해자야! 채경아, 제발 날 구해줘… 나 병원 응급실 좀 보내줘, 제발!"도진은 끝까지 서린 쪽을 가리켰다.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먼저 구급대원이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하도록 옆으로 물러섰다.현장 안전 조치가 끝난 뒤 형사가 두 사람을 분리했다. 이미 확보된 브레이크 훼손 영상과 별장 안의 상황을 토대로 체포 사유를 고지했다."박도진 씨, 신서린 씨. 살인미수 등 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고, 변명할 기회가 있습니다."도진은 형사의 말보다 채경을 먼저 봤다. 태환은 경찰의 요청을 받기 전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뭐… 뭐라고? 체포라니… 내가 왜 살인미수야!"도진의 턱이 마비된 채 덜덜 떨렸다.형사 두 명이 다가와 도진을 붙잡았다. 한 명은 다친 오른팔을 확인하고, 다른 한 명은 그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 것을 막았다.찰칵. 수갑이 도진의 손목에
안전 차단기가 떨어진 뒤에도 욕조 안은 혼란스러웠다.도진은 벽을 더듬어 몸을 일으키려 했고, 서린은 그의 어깨를 붙잡고 먼저 나가려 했다. 젖은 옷이 욕조 바닥에 들러붙어 두 사람 모두 제대로 서지 못했다."전기 끊긴 거 맞아? 도진 씨, 확인해! 또 들어오면 어떡해!""네가 놔야 내가 나가서 보지!"짧았던 섬광 하나가 공포를 몇 배로 키워놓았다. 도진 자신이 지하실에서 연결한 전선이었다. 어디에 닿으면 위험한지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도진이었다.그는 서린의 손을 뿌리치고 욕조 턱을 잡았다. 다친 어깨 때문에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자 욕설을 삼켰다. 서린은 그가 먼저 나가려 한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옷깃을 잡아당겼다.두 사람은 이제 채경보다 서로를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당신이 연결한 거잖아. 어디에 손대면 되는지도 당신이 알 거 아냐!""그래서 움직이지 말라고! 네가 자꾸 잡아당기니까 못 나가잖아!"도진은 자기가 만든 위험을 설명해야 하는 처지가 되자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서린은 그가 일부러 시간을 끈다고 의심했다. 누구도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복도에서 그 대화를 듣고 있자 처음 계획했던 장면과 실제 장면이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둘이 서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전기 불꽃이 튄 순간부터는 통제한다는 말 자체가 거짓말처럼 들렸다.***욕실 밖 복도에서 나는 태블릿의 전원 상태를 확인했다. 비상 회로가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전체 차단을 유지했다.손끝이 젖어 화면이 잘 눌리지 않았다. 나는 장갑을 벗지 않은 채 차단 상태를 두 번 확인했다.욕실 안에서는 도진과 서린이 욕조 턱을 붙잡고 서로 밀치고 있었다. 도진이 연결해둔 전선은 그대로였지만, 차단기가 떨어진 뒤 다시 불꽃은 튀지 않았다.나는 휴대폰의 긴급 신고 화면을 열었다. 미리 저장해둔 별장 주소와 함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숨을 고르고 나서야 첫마디가 나왔다."사람 두 명이 다쳤어요. 전기 설비가 위험합니다. 경찰과 구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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