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이 나를 죽이는 방법을 검색했다: Chapter 21 - Chapter 30

30 Chapters

제21화. 역류하는 잔

도진은 내가 잔을 드는 동안 내 입술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채경아, 왜 안 마셔? 결혼 3주년 기념으로 내가 아끼던 칠레산 최고급 빈티지 와인을 특별히 오픈한 거잖아."도진이 굳은 표정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집요하게 채근했다. 그의 손가락 끝은 식탁보 아래에서 초조하게 경련하고 있었다.나는 입꼬리를 살포시 말아 올리며 잔 너머로 도진을 바라봤다.나는 잔을 입술에 댔다가 고개를 숙였다. 삼키지 않고 냅킨에 뱉었지만, 입안에 남은 맛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도진이 내 손을 볼까 봐 젖은 부분을 무릎 아래로 접어 넣었다."향이 정말 깊고 그윽하네. 당신도 어서 마셔, 여보. 오늘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잖아.""어… 그래, 나도 마셔야지."도진이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며 제 와인잔을 단숨에 절반이나 들이켰다. 도진은 자기 잔에 약이 들어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내가 먼저 손댄 잔이었다. 그가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무릎 위에서 냅킨이 더 차갑게 젖어드는 것 같았다.저녁 식사가 막바지에 달했을 무렵, 나는 일부러 비틀거리며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여보… 나 갑자기 머리가 너무 핑 돌고 어지럽네. 서울에서 올 때부터 몸이 좀 무거웠는데, 이제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봐. 안방에 들어가서 먼저 한숨 자야겠어.""그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나 보네. 어서 들어가서 푹 자. 식탁은 내가 천천히 치우고 들어갈 테니까."도진은 안도한 듯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붙잡아 확인하지도 않았다.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쓰러지듯 엎드려 눈을 감았다. 가슴이 빠르게 뛰는 게 들킬까 봐 숨을 길게 내쉬며, 약에 취해 잠든 사람처럼 호흡을 맞췄다.10분 뒤, 도진이 까치발로 안방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왔다.그는 내 코 밑에 손가락을 대어 규칙적인 호흡을 확인하고, 내 어깨를 흔들어 깨우려 시도했다. 내가 미동도 없이 누워 있자, 도진은 어깨를 한 번 더 흔든 뒤 손을 뗐다. 그제야 입꼬리가 올라갔다."드디어… 드디어 모든 게 끝났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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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질식의 밀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한 치의 소음도 없이 안방 문을 열고 거실로 걸어 나왔다.거실 가죽 소파 위에는 약에 취한 도진과 서린이 축 늘어져 있었다.나는 라텍스 장갑을 정돈한 뒤 소파 아래 깔린 얇은 러그 끝을 잡았다. 한 사람씩 러그 위로 옮겨 안방 문턱까지 끌었다. 둘의 몸이 부딪치지 않게 하려다 내 어깨와 허리에도 힘이 들어갔다.두 사람을 침대 옆 카펫에 눕혀놓고 나서야 손을 폈다. 도진의 손이 바닥 위에 뒤집혀 놓였다. 아침 식탁에서 잼을 바르던 그 손을 오래 보고 있으면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아 시선을 피했다.그리고 거실 한구석에 우뚝 솟은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벽난로 앞으로 다가갔다. 도진이 나를 죽이려고 준비해둔 장작에 불을 붙였다. 손에서 라이터를 놓고도 나는 벽난로 앞을 떠나지 않았다.화르륵!새빨간 불길이 순식간에 마른 나뭇결을 집어삼키며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기 시작했다.탁, 타닥. 장작이 타들어 가는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짙고 매캐한 회색 목탄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막힌 배기구로 빠져나가지 못한 연기가 실내로 번졌다. 벽난로 앞에 서 있던 나는 목이 따가워 고개를 돌렸다. 나는 스마트폰 제어 앱을 터치해, 류태환 변호사의 기술팀이 사전에 매립해 둔 환기 설비를 가동했다.위이이잉.천장 쪽에서 모터 소리가 났다. 열린 안방 쪽으로도 연기가 스며들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안쪽의 인기척을 기다렸다.방독면을 쓰고 안방 문을 닫았다. 얼굴을 가렸다고 마음까지 놓이지는 않았다. 내 숨도 가빠져 있었고, 손으로 만진 문손잡이는 땀 때문에 미끄러웠다.철컥, 찰칵.문 바깥쪽의 보조 잠금장치가 맞물렸다. 안방 문은 안쪽에서 바로 열리지 않았다.방 안에 연기가 점점 짙게 고였다. 나는 감지기 경고음이 바뀔 때마다 손가락을 환기 버튼 위에 올려두었다.감지기의 경고가 이어졌다. 화면 속 숫자를 보고도 사람의 몸이 얼마나 버틸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문 안쪽의 소리가 끊길 때마다 손잡이를 내려다봤다.***약에 취해 늘어져 있던 도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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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지옥의 자백

안방 유리 너머로 도진과 서린의 움직임이 흐릿하게 보였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매캐하고 끈적한 목탄 연기 속에서, 도진과 서린은 바닥을 피투성이가 된 열 손가락으로 긁어대며 문틈 밑바닥으로 코와 입을 바짝 들이대고 헐떡였다.도진은 말하다가도 숨을 고르지 못했다. 서린이 문을 두드릴 때마다 기침과 고함이 뒤섞였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두 사람의 얼굴은 연기 때문에 흐릿했다.둘 다 이제 누가 먼저 말했는지, 누구 책임인지 따질 여유가 없어 보였다.나는 전문가용 방독면을 단단히 고쳐 쓰고, 벽면에 매립된 별장 내선 인터폰 마이크 스위치를 켰다. 치익.스피커 노이즈가 울리자, 문고리를 부여잡고 있던 도진이 컥컥 피 섞인 기침을 토해내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채경아…! 제발… 문 열어줘… 숨이… 숨이 막혀서 폐가 다 찢어질 것 같아…!"도진이 피 묻은 이마를 문 유리에 사정없이 찧으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나는 인터폰 수화기에 입을 가까이 댔다."문 열어달라고? 그럼 진실을 말해.""무… 무슨 진실…! 내가 뭘 말하면 되는데!""당신들이 나한테 하려던 일. 약품을 사고, 내 차에 손대고, 오늘 밤 굴뚝을 막은 이유. 검색창에 썼던 말부터 전부 말해. 왜 나를 죽이려 했는지, 내가 직접 들어야겠어."내 목소리가 안방 스피커로 흘러나갔다.도진이 흠칫하며 찰나의 망설임을 보이는 그 순간, 옆에 널브러져 있던 서린이 먼저 발작하듯 인터폰 마이크를 향해 바닥을 기어왔다."내가 다 말할게! 내가 전부 자백할 테니까 제발 문 좀 열어줘! 컥, 쿨럭!"서린이 제 목덜미를 피가 나도록 쥐어뜯으며 찢어지는 비명을 토해냈다."박도진이… 당신 보험금 25억 타내자고 먼저 말했어! 약품도 직접 구했고, 당신 집 욕실에서 사고 나게 하려던 것도 도진이야! 주차장에서 당신 차 브레이크를 망가뜨린 것도! 오늘 굴뚝 막자고 한 것도 박도진이라고! 제발, 문 좀 열어줘!"서린이 먼저 책임을 떠넘기자 도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이 미친년이…! 채경아, 아니야! 갤러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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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최후의 전류

그날 밤, 두 사람이 빠져나온 뒤에도 별장 안에는 연기 냄새가 남아 있었다.거실 바닥에서 간신히 호흡을 되찾은 신서린은 탈진한 채 소파 구석에 웅크려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붕대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충혈된 눈동자는 이미 이성을 잃은 채 파멸의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도진은 다친 팔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어두운 지하실 계단으로 소리 없이 내려갔다.자신의 목소리가 채경의 녹음 장치에 남았다. 도진은 그 사실에만 매달렸다. 이미 밖으로 전송된 자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애써 밀어냈다. 채경만 없으면 전부 끝난다는 결론을 버리면,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도진은 끝내 한 가지 결론으로 돌아왔다.'채경이를 지금 여기서 죽여야 해. 확실한 시체로 만들어 깊은 호수에 던져버리면, 증거 불충분으로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어.'도진은 그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붙잡지 못했다.어두컴컴하고 곰팡내 나는 지하실 배전반 앞. 도진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메인 차단기 철제 커버를 거칠게 뜯어냈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서 공업용 굵은 구리 전선과 절연 펜치를 꺼내 들었다.그가 서브 노트북 검색창에서 수십 번이나 찾아봤던 살인 방법. 아직 그것만은 남아 있었다.[욕조 감전 시 단순 실족 심정지 판정 확률]도진은 배전반의 220V 표시를 노려보며 전선에 손을 댔다. 땀에 젖은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욕실 쪽으로 이어놓은 전선을 다시 확인했다. 시간이 걸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왼손으로 일을 할 때마다 다친 오른쪽 어깨가 벽에 쓸렸다.그는 욕조에 사람이 들어가면 스위치를 올릴 생각이었다.얼마나 걸릴지, 어떤 흔적이 남을지 도진은 알지 못했다. 검색할 때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문장만 골라 읽었다. 지금도 떠올리는 것은 사고사라는 단어 하나였다.도진은 피 묻은 입술을 짓씹고 위층을 올려다봤다. 지금 멈추면 모든 게 끝난다는 생각이 오히려 그를 계속 움직이게 했다."채경아… 이번엔 네가 아무리 똑똑해도 절대 못 빠져나가."도진은 2층으로 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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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칠흑의 반전

별장 2층 복도에는 물 빠지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마스터 욕실 문 앞에 선 도진은 벽면 스위치에 손을 올렸다.도진은 수술한 오른쪽 어깨의 욱신거리는 뼈마디 통증을 어금니를 꽉 깨물며 참아냈다. 스위치 레버 위에 올려둔 그의 검지손가락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미끄러질 듯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에 힘을 줬다가 풀기를 반복했다.1층 소파에 널브러져 헐떡이던 신서린 역시 난간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2층 나무 계단을 기어 올라왔다. 서린은 난간을 붙잡고 숨을 골랐다. 얼굴의 붕대 틈으로 드러난 눈이 도진의 손과 욕실 문을 번갈아 봤다."도진 씨… 그년 들어갔어? 욕조 물속에 몸 담근 거 확실해? 단 1초도 지체하면 안 돼.""조용히 해. 물소리 나잖아. 들어가는 것만 확인하면 돼. 스위치는 내가 올릴 테니까 넌 가만히 있어."도진은 목소리를 낮추려 했지만 숨이 자꾸 끊겼다. 채경이 욕조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사고로 덮을 수 있을 것 같았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실에서 살려달라고 빌던 남자였다. 그런데 문 하나를 사이에 두자 다시 여보라고 부르고 있었다. 서린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25억이라는 숫자보다 지금 이 밤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두 사람을 더 급하게 몰아붙였다.하지만 1분이 흐르고, 2분이 지나도 욕실 문 안쪽에서는 물장구치는 소리나 사람의 인기척이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오직 기괴한 침묵만이 감돌았다."채경아? 여보, 왜 안 들어가고 있어? 물 온도가 너무 뜨거워서 그래?"도진이 조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문손잡이를 거칠게 돌려 열어젖혔다.철컥. 욕실 문이 활짝 열렸다.그러나 문 안은 도진이 기대한 모습과 달랐다.비앙코 대리석 월풀 욕조에는 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열린 배수 밸브 쪽으로 마지막 물줄기가 흘러들었다. 조금 전 피어오르던 김만 거울에 남아 있었다.그리고 욕실 타일 한가운데에는 외출용 정장을 입은 윤채경이 스마트폰을 쥔 채 서 있었다. 나는 도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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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욕조 속의 악마들

서린은 내 말을 듣자마자 몸을 돌렸다."도진 씨… 당신이었어?! 당신이 날 죽이려고…!"서린의 비명이 어둠을 찢었다.그녀는 어둠 속에서 제 앞을 가로막은 남자를 향해, 피 묻은 손톱을 갈퀴처럼 세워 사납게 달려들었다."이 살인마 개자식아! 날 감전시켜 죽이고 혼자 25억 쳐먹으려고 날 욕실로 떠민 거지!""크악! 손 치워! 서린아, 나까지 죽일 셈이야?"도진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다친 팔로 상대를 거칠게 후려갈겼다.하지만 완벽한 어둠 속에서 극도의 패닉에 빠진 서린에게는 그 어떤 해명도 들리지 않았다.수술한 쇄골 부위를 맞은 도진은 숨을 들이켰다. 목소리로 서린이라는 걸 알아차렸지만 손을 뗄 수 없었다. 놓는 순간 다시 얻어맞을 것 같아 그녀의 팔을 밀어붙였다."서린아, 나라고! 정신 차려!""당신 말 이제 하나도 못 믿어!""내가 아니라고! 손부터 놓으라니까!"두 사람은 좁은 욕실 바닥에서 서로의 팔과 옷깃을 붙잡고 뒤엉켰다. 서린은 도진의 뺨을 손톱으로 후벼 파며 보조기 아래 상처를 짓이겼고, 도진은 서린의 목덜미를 사납게 조르며 그녀의 상체를 대형 월풀 욕조 안쪽으로 힘껏 밀어붙였다."죽어! 너만 죽으면 이 지옥도 다 끝이야!""네가 먼저 뒈져, 이 괴물 새끼야!"먼저 상대를 밀어내야 자신이 설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된 채 서로의 머리채를 쥐어뜯고 살점을 물어뜯으며 비틀거리다, 마침내 깊은 월풀 욕조 턱을 넘고 안쪽 바닥으로 요란하게 굴러떨어졌다.우당탕탕! 쿵! 콰직!***그들이 엉켜 욕조 바닥에 처박힌 바로 그 순간, 나는 욕실 바깥 복도 벽면에 설치된 스마트 디지털 수전 제어 패널을 터치했다.위이이잉.욕조 수전에서 차가운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진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가 서린의 팔에 막혔다. 물줄기가 두 사람의 옷과 얼굴을 적셨다.촤아아아악! 물줄기는 멎지 않았다. 배수구 쪽으로 흘러드는 물 위에서 두 사람의 팔다리가 뒤엉켰다.욕조 바닥에 고인 물이 움직일 때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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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푸른 섬광의 형벌

안전 차단기가 떨어진 뒤에도 욕조 안은 혼란스러웠다.도진은 벽을 더듬어 몸을 일으키려 했고, 서린은 그의 어깨를 붙잡고 먼저 나가려 했다. 젖은 옷이 욕조 바닥에 들러붙어 두 사람 모두 제대로 서지 못했다."전기 끊긴 거 맞아? 도진 씨, 확인해! 또 들어오면 어떡해!""네가 놔야 내가 나가서 보지!"짧았던 섬광 하나가 공포를 몇 배로 키워놓았다. 도진 자신이 지하실에서 연결한 전선이었다. 어디에 닿으면 위험한지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도진이었다.그는 서린의 손을 뿌리치고 욕조 턱을 잡았다. 다친 어깨 때문에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자 욕설을 삼켰다. 서린은 그가 먼저 나가려 한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옷깃을 잡아당겼다.두 사람은 이제 채경보다 서로를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당신이 연결한 거잖아. 어디에 손대면 되는지도 당신이 알 거 아냐!""그래서 움직이지 말라고! 네가 자꾸 잡아당기니까 못 나가잖아!"도진은 자기가 만든 위험을 설명해야 하는 처지가 되자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서린은 그가 일부러 시간을 끈다고 의심했다. 누구도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복도에서 그 대화를 듣고 있자 처음 계획했던 장면과 실제 장면이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둘이 서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전기 불꽃이 튄 순간부터는 통제한다는 말 자체가 거짓말처럼 들렸다.***욕실 밖 복도에서 나는 태블릿의 전원 상태를 확인했다. 비상 회로가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전체 차단을 유지했다.손끝이 젖어 화면이 잘 눌리지 않았다. 나는 장갑을 벗지 않은 채 차단 상태를 두 번 확인했다.욕실 안에서는 도진과 서린이 욕조 턱을 붙잡고 서로 밀치고 있었다. 도진이 연결해둔 전선은 그대로였지만, 차단기가 떨어진 뒤 다시 불꽃은 튀지 않았다.나는 휴대폰의 긴급 신고 화면을 열었다. 미리 저장해둔 별장 주소와 함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숨을 고르고 나서야 첫마디가 나왔다."사람 두 명이 다쳤어요. 전기 설비가 위험합니다. 경찰과 구급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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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열린 문, 차가운 쇠사슬

2층 욕실 안으로 구급대와 경찰이 비춘 빛이 들어왔다. 희고 강한 조명이 젖은 욕실 바닥과 널린 물건들을 한꺼번에 드러냈다.구급대원 한 명은 욕실 입구에서 전원 차단 여부부터 확인했고, 다른 대원들은 도진과 서린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말했다.차갑게 젖은 욕조 바닥에서, 겨우 희미한 의식을 되찾은 박도진이 핏물 섞인 거품을 게워내며 욕조 턱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짚고 바닥으로 기어 나왔다.온몸의 근육과 신경이 찢겨 나가는 극심한 마비통에 젖은 타일 바닥을 손톱이 뒤집히도록 긁으며 컥컥 피 섞인 기침을 토해냈다."쿨럭! 컥, 살려… 제발 살려줘… 나 좀 살려줘…."그의 흐려진 시야 속, 활짝 열린 욕실 문간에 단정한 구두 코가 들어왔다. 검은색 가죽 옥스퍼드화와 짙은 네이비색 정장. 윤채경이었다.그녀의 뒤로 구급대원과 경찰이 욕실 입구를 채웠다. 류태환은 신고를 받고 뒤늦게 도착해 계단 쪽에 서 있었다."채경아…!"도진이 피투성이가 된 손을 허공으로 뻗으며, 구토하듯 비열한 거짓말을 쏟아냈다."저, 저 미친 서린이가 날 죽이려고 배전반에서 전선을 몰래 연결했어! 난 피해자야! 채경아, 제발 날 구해줘… 나 병원 응급실 좀 보내줘, 제발!"도진은 끝까지 서린 쪽을 가리켰다.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먼저 구급대원이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하도록 옆으로 물러섰다.현장 안전 조치가 끝난 뒤 형사가 두 사람을 분리했다. 이미 확보된 브레이크 훼손 영상과 별장 안의 상황을 토대로 체포 사유를 고지했다."박도진 씨, 신서린 씨. 살인미수 등 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고, 변명할 기회가 있습니다."도진은 형사의 말보다 채경을 먼저 봤다. 태환은 경찰의 요청을 받기 전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뭐… 뭐라고? 체포라니… 내가 왜 살인미수야!"도진의 턱이 마비된 채 덜덜 떨렸다.형사 두 명이 다가와 도진을 붙잡았다. 한 명은 다친 오른팔을 확인하고, 다른 한 명은 그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 것을 막았다.찰칵. 수갑이 도진의 손목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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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법정

몇 달 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법정.증거 조사가 이어지는 날, 교도관의 호송을 받으며 박도진과 신서린이 피고인석으로 들어섰다.푸른색 미결수 수의를 입은 박도진은 오른쪽 어깨에 하얀 붕대를 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 옆의 신서린 역시 안면의 흉측한 화상 흉터를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초점 잃은 눈동자는 형벌 같은 공포와 불안감으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도진은 방청석을 훑다가 나를 발견하고 바로 시선을 피했다. 서린은 끝까지 도진 쪽을 보지 않았다.방청석에는 취재진과 방청객들이 앉아 있었다."피고인 박도진의 변호인, 의견을 말씀하십시오."재판장의 말에 도진 측 변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피고인은 피해자와의 오랜 부부 갈등 속에서 극심한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겪었을 뿐, 살인의 고의나 확정적인 실행 착수가 없었습니다. 포르쉐 차량 사고와 가평 별장 화재 사건 역시 우발적인 과실에 불과하므로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관대한 판결을 내려주시기를…."내 진술 순서가 오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 든 자료의 가장자리가 눌려 있었다. 도진 쪽을 보지 않고 재판부를 향했다."저는 남편의 검색 기록을 우연히 본 뒤부터, 실제로 제 차가 훼손될 때까지 자료를 남겼습니다. 제가 한 행동 역시 숨기지 않고 조사에 제출했습니다."내 진술이 끝난 뒤 검사가 제출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태환이 보관 내역을 정리해 넘긴 자료였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화면을 봤다.치익.법정 중앙의 스크린에 자료 목록이 차례로 표시됐다.재판부는 화면과 서면 자료를 번갈아 확인했다."피고인이 사용하던 노트북의 방문 기록과 당시 화면을 촬영한 자료입니다."검사는 자료의 확보 경위와 이후 보관 내역을 설명했다. 태환이 정리했던 날짜가 화면에 나타났다."첫 촬영 자료에는 발견 전 10일 동안의 방문 시각과 검색어가 남아 있습니다. 약품 배송 자료와 주차장 영상도 함께 살펴봐 주십시오."화면이 넘어가며, 도진이 거래처를 통해 수령한 고농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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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빈 검색창(完)

몇 주 뒤, 선고 공판이 열렸다.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은 조용했다.재판장이 판결문을 펴고 피고인들을 바라봤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작게 났다.법정 안의 모든 숨소리와 웅성거림이 일순간 완벽하게 멎았다."주문. 피고인 박도진을 징역 15년에 처한다. 피고인 신서린을 징역 8년에 처한다."재판장의 목소리가 법정에 또렷하게 울렸다."피고인들은 박도진의 배우자인 피해자의 생명을 거액의 사망보험금을 편취하기 위한 도구로 삼아, 여러 살해 방법을 의논하고 실제 범행에 나아갔다. 수집된 디지털 포렌식 증거의 신빙성이 확고하며 범행의 잔혹성과 반성의 기미가 전무한 점을 고려할 때 중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선고가 떨어지는 순간, 박도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피고인석 차가운 바닥으로 털썩 무너져 내렸다."15년이라니… 판사님, 제발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채경아, 날 용서해 줘! 제발 날 꺼내줘, 채경아!"도진이 방청석의 나를 향해 몸을 일으키려 하자 교도관이 제지했다. 그는 내 이름을 몇 번 더 불렀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신서린은 입술을 깨문 채 도진에게서 몸을 돌렸다.두 사람이 호송 통로로 사라진 뒤 법정은 다시 조용해졌다.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일어났다. 류태환 변호사가 다가와 정중하게 악수를 청해왔다. 그의 얼굴에는 긴 절차를 마친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윤채경 씨, 형사 사건은 일단 여기까지입니다. 이혼과 재산 문제는 별도 절차대로 정리됐고, 보험 계약도 효력이 없는 것으로 처리됐습니다.""감사합니다. 제가 제출한 자료들도 끝까지 확인해 주세요."태환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행동 중 일부 역시 별건으로 확인 절차가 남아 있었다. 처음부터 그가 경고했던 부분이었다.도진과 서린에게 형이 선고됐다는 사실이 내가 한 모든 선택까지 정당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점을 더는 '되돌려준 것뿐'이라는 말로 덮지 않기로 했다. 조사에서 묻는 순서대로 답했고, 제출하라고 한 원본도 그대로 냈다.법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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