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20

26 فصول

11화. 대표님의 점심 메뉴

“저를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해줘요.”태준은 내 손바닥을 가만히 감싸더니, 부탁을 처음 들은 사람처럼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보고 싶어요, 채린 씨.”“지금 보고 있잖아요.”“그래도요. 집에 가면 또 보고 싶을 테니까 미리 말해 두려고요.”나는 결국 찻잔 뒤로 얼굴을 숨겼다. 그가 손을 놓아주자 따뜻한 감촉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괜히 수첩을 한 번 더 펼쳤다. 우리만 아는 규칙 세 개와 그가 덧붙인 작은 부탁. 글씨는 반듯했지만 그 옆에 내가 그려 둔 하트는 한쪽이 삐뚤었다.“대표님, 이러다 저 진짜 매일 보고 싶다고 해요.”“매일 듣고 싶어요. 대신 회사에서는 참았다가요.”“우리 둘 다 참는 건 자신 있죠?”“자신은 없지만 노력할게요. 채린 씨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지켜 주고 싶어요.”찻집 유리창에 비친 우리는 마주 앉은 평범한 남녀 같았다. 그런데 컵을 들 때마다 서로의 손을 한 번씩 바라보는 모습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그 말에 나는 더는 장난치지 못했다. 그는 찻집을 나설 때도 내가 먼저 일어서기를 기다렸고, 밖에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골목 모퉁이를 지나기도 전에 휴대전화가 울렸다.‘벌써 보고 싶어요.’웃음을 삼키며 답장을 썼다.‘이건 반칙이에요. 아직 1분도 안 지났는데.’‘그래서 1분 더 참았다가 보낼 걸 그랬어요.’다음 날, 전략기획팀에는 TF 점심 식사 공지가 올라왔다. 프로젝트 시작을 겸해 근처 식당에서 함께 먹자는 내용이었고, 참석자 명단 마지막에 강태준 대표의 이름이 있었다. 나는 화면을 두 번 읽었다. 퇴근 후에만 웃어 주기로 한 사람이 점심 식탁에도 앉는다니. 설레는 만큼 조심해야 했다.“선임님, 대표님도 오신대요. 어색하시죠?”수아가 묻기에 나는 웃으며 자료를 덮었다.“아직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괜히 말실수할까 봐요.”“그냥 평소대로 하시면 돼요. 대표님 생각보다 편하게 식사하세요.”식당에는 긴 테이블 두 개가 준비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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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오답에 대한 상

‘틀리려고 한 거, 알았어요. 그래서 더 보고 싶네요.’문자를 읽자마자 나는 침대 위에서 발끝을 허공에 찼다. 좋아하는 남자에게 속마음을 들킨 게 이렇게 달콤할 일인가. 대답을 쓰다가 세 번 지웠고, 결국 가장 얄미운 말을 골랐다.‘대표님, 눈치 빠른 남자는 인기 없어요.’‘그럼 채린 씨한테만 인기 있으면 안 될까요?’세상에. 나는 베개를 끌어안고 한참을 웃었다. 그러다 다음 주말을 달력에 표시했는데, 동그라미가 너무 커서 일요일 날짜까지 함께 들어갔다. 만나기도 전에 헤어질 시간이 아쉬워지는 건 처음이었다.토요일 오후, 나는 옷을 세 번 갈아입었다. 예쁘게 보이고 싶어 고른 원피스가 너무 신경 쓴 것 같아 청바지로 바꿨다가, 결국 처음 옷으로 돌아왔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만지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책방 골목 도착했어요. 서두르지 말아요.’‘대표님은 어느 쪽 입구예요?’‘뒤쪽이요. 채린 씨는 앞문으로 들어오세요.’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회사에서 한참 떨어진 작은 독립서점이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길이 두 개라 서로 다른 입구로 들어갈 수 있었고, 조용히 책을 구경하기에도 좋았다. 태준에게 그곳을 고집한 건 나였다. 이 시간을 누군가의 수군거림으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책방 문을 밀자 종소리가 작게 울렸다.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나는 책장 사이로 걸어가는데, 가장 안쪽 진열대 앞에 그가 서 있었다. 편한 니트 차림에 재킷을 팔에 걸친 모습이 낯설 만큼 좋았다. 그는 내 발소리에 돌아보더니 읽던 책을 덮었다.“채린 씨.”“대표님, 오늘은 좀 다르네요.”“어떤 점이요?”“회사에서는 그렇게 잘생겼는지 몰랐거든요.”“아, 오늘도 칭찬을 받으려고 여기까지 왔네요.”웃다가 뒤늦게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다른 손님들은 책을 고르고 있었고, 태준은 내 옆으로 성큼 다가오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섰다. 그 배려가 고마워 나는 책장 끝으로 돌아 그의 곁에 섰다.“오늘은 대표님 말고 태준 씨라고 불러도 돼요?”“그럼 전 오늘부터 더 오래 책을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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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속삭이지 않는 비밀

“제가 자꾸 욕심내잖아요.”태준이 내 컵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나는 그가 마신 딸기 라테를 바라보다가, 괜히 빨대를 제 쪽으로 돌렸다.“한 입 마신 게 무슨 욕심이에요?”“다음엔 채린 씨랑 여기 말고 다른 데도 가고 싶거든요.”“어디요?”“서점도 좋고, 저녁 먹는 곳도 좋고. 이름 모를 골목이어도 채린 씨가 같이 걸어주면요.”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사소한 내일을 자꾸 약속하고 싶게 만드는 남자였다. 나는 책방에서 산 소설을 펼쳤다가 한 줄도 읽지 못하고 덮었다.“그러면 태준 씨, 오늘은 여기까지만 욕심내요.”“아쉽지만 알겠어요. 대신 집에 도착하면 연락해 줄래요?”“또 5분만 통화하자고요?”“오늘은 딱 3분만 해도 좋아요. 잘 들어갔는지만 알면 되니까.”카페를 나서며 태준은 내 책이 담긴 종이봉투를 들겠다고 했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책 한 권쯤은 혼자 들 수 있다며 버티자 그가 장난스럽게 손을 내밀었다.“그럼 봉투 말고 손은요?”“아까부터 욕심은 여기까지만 내시라니까요.”“알았어요. 오늘은 채린 씨가 먼저 잡아줄 때까지 기다릴게요.”그 다정한 고집에 결국 내가 그의 손가락을 잠깐 붙잡았다. 그러고는 얼른 놓았는데, 태준은 그 찰나까지 선물받은 사람처럼 웃었다.헤어지고 나서도 그의 얼굴이 자꾸 따라왔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가 낯설 만큼 환하게 웃고 있었으니,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눈치채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일요일 낮에는 대학 친구 지연을 만났다. 오래전부터 잡아둔 점심 약속이었고, 평소처럼 만나자마자 서로의 근황을 쏟아냈다. 지연은 내가 새 회사에 잘 적응하는지 물었고, 나는 업무와 동료들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았다. 그러다 휴대전화 화면이 켜지자 무심코 손부터 뻗었다.‘점심 맛있게 먹어요. 어제 고른 책은 다 읽지 말고 조금 남겨둬요. 다음에 저랑 얘기해야 하니까.’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대답을 쓰지도 못하고 화면만 내려다보는데 지연이 포크를 내려놓았다.“너 요즘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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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호칭의 온도

“태준 씨.”이름을 한 번 더 부르자 전화 너머에서 그가 웃었다. 나도 모르게 이불을 끌어안았는데, 그 사람은 한동안 대답도 하지 않고 내가 다시 부르기를 기다렸다.“왜 아무 말도 안 해요?”“좋아서요. 오늘은 이 이름으로 잠들고 싶어요.”“그럼 꿈에도 나올 거예요?”“나오면 붙잡을게요. 깨어나서도 보고 싶을 테니까.”나는 베개에 뺨을 묻었다. 이름 두 글자에 이렇게 설레다니. 내일 회사에서 그를 마주치면 분명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할 텐데, 지금은 ‘대표님’이라는 호칭이 입에 잘 붙지 않을 것 같았다.“이제 자요, 태준 씨.”“잘 자요, 채린 씨. 내일은 많이 보고 싶어도 참을게요.”“제가 못 참으면요?”“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게 말해 줘요. 전부 들어 줄게요.”그 약속을 떠올리며 잠들었는데, 아침에는 옷장을 열어 놓고도 한참을 서 있었다. 어제 그가 예쁘다고 했던 색을 고를까 고민하다가, 결국 늘 입던 블라우스를 꺼냈다.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출근하는 건 아니라고 중얼대면서도 머리카락은 한 번 더 빗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이름을 다른 사람들 입에서 들었다. 고객경험 개편안의 일부를 바꿔 달라는 대표 의견이 내려왔다는 것이다.“고객이 다시 연락하는 비율을 줄이려면, 문의 유형을 더 세분화하라고 하셨어요.”팀장이 자료를 내밀었다. 표에는 내가 제안했던 상담 연결 절차가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분류 항목이 늘면 보고서는 보기 좋아질지 몰라도, 상담원은 고객에게 같은 내용을 몇 번씩 확인해야 했다.“현장에서는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대표님 의견이니까 무조건 따르라는 뜻은 아니에요. 근거 있으면 회의에서 얘기해요.”나는 오전 내내 지난달 상담 기록을 살폈다. 같은 문의를 세 차례 설명한 고객의 사례를 찾아 표시했고, 절차를 늘렸을 때 추가로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다. 숫자를 적을수록 긴장은 가라앉았다. 내가 준비한 일이라면 태준 앞에서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었다.회의실에 들어서자 그가 자료를 펼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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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입술보다 먼저 온 손

“태준 씨.”그 이름을 부르자 전화기 너머에서 그가 잠깐 숨을 멈췄다. 회사에선 수십 번 들었을 두 글자인데,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만큼은 처음 듣는 말처럼 소중히 받아 주었다.“네, 채린 씨.”“이름만 불렀는데 왜 그렇게 좋아해요?”“오늘 하루 종일 대표님으로 살았거든요. 이제야 저를 부르는 것 같아서요.”나는 이불 위에 뒤집어 놓았던 수첩을 펼쳤다. 그 안에는 우리끼리 정한 약속이 적혀 있었고, 마지막 줄에는 볼펜으로 그린 작은 하트가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관계인데도 누군가의 일과 끝에 나를 기다리는 자리가 있다는 게 자꾸만 좋아졌다.“이번 주말 아침에는 시간 있어요?”“있어요. 채린 씨가 만나 주신다면요.”“아침 일찍 나와야 하는데.”“전날부터 기다릴까요?”“그러다 잠 못 자면 책임 안 져요.”“그럼 만나서 손잡아 주면 안 될까요? 졸음이 다 달아날 것 같은데.”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웃었다. 이미 한 번 손을 잡아 본 사람인데도, 또 잡자는 말에 가슴이 뛰었다.토요일 아침, 나는 알람보다 먼저 눈을 떴다. 새로 산 옷 대신 편한 셔츠를 골랐고, 운동화 끈을 묶으면서도 입가를 다물지 못했다. 태준이 보내 준 장소는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강변 산책로였다. 주말 아침이라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나는 혹시 아는 얼굴이 있을까 싶어 모자를 가방에 챙겼다.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태준이 벤치 옆에 서 있었다. 손에는 따뜻한 음료 두 잔이 들려 있었고, 나를 발견하자 한 잔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시럽은 반만 넣었어요.”“또 외웠어요?”“아직 기억할 자리가 많이 남았는데요. 오늘은 뭘 더 알려 줄래요?”“아침에 잠이 많다는 거요.”“일찍 나와 놓고요?”“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조금 부지런해져요.”말을 꺼내고 나서야 부끄러워 컵으로 얼굴을 가렸다. 태준은 눈을 맞추려고 몸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 내가 다시 고개를 들 때까지 곁에서 기다렸다. 종이컵 가장자리에 입을 대니 적당히 달고 따뜻했다. 그는 자신의 컵이 식는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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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눈을 맞추지 않는 회의

“채린 씨가 놓으라고 하기 전까지는요.”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손을 놓는 방법부터 잊어버렸다. 저만치 횡단보도 신호가 다시 바뀌고 사람들이 우리 곁을 지나갔으나, 태준의 손바닥에 포개진 내 손가락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그럼 오늘은 못 놓겠네요.”“좋아요. 천천히 걸어요.”그는 나를 끌어당기지도, 걸음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저 손가락 사이에 내 손을 편안히 끼워 주었고, 그 다정함에 나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호텔에서 시작된 하룻밤이 이렇게 따뜻한 토요일 아침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산책로 끝에서 헤어질 때에도 손을 떼는 데 한참이 걸렸다. 결국 내가 먼저 놓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손바닥을 펴 보았다. 그 안에 아직 그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만 같아서.그날 밤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잘 도착했어요? 저는 아직도 손이 허전해요.’내가 ‘그럼 다음엔 조금 더 오래 잡아요’라고 보내자 그가 꽃이 핀 이모티콘을 보냈다. 태준이 그런 것도 보낸다는 사실이 귀여워 휴대전화를 품에 안고 잠들었다.월요일 아침에는 최종 보고 리허설이 잡혀 있었다. 고객경험 개편 TF가 임원 보고를 앞두고 발표 순서와 수치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수정한 표를 다시 대조했고, 수아는 발표 자료를 회의실 화면에 띄워 주었다.“선임님, 오늘은 정말 완벽할 것 같아요. 지난번보다 훨씬 보기 좋아졌어요.”“완벽하다고 하면 더 떨리는데. 혹시 빠진 숫자 없나 한 번만 같이 봐 줄래요?”수아가 흔쾌히 옆 의자를 끌어왔다. 우리는 항목을 하나씩 맞춰 보았고, 열두 번째 화면에서 단위가 다른 수치 하나를 찾아 바로잡았다. 손을 잡고 웃었던 주말이 아무리 좋아도, 이 자리에 서는 건 내가 오래 준비해 온 일이었다.발표 첫 장에는 내가 직접 정리한 고객 의견이 실려 있었다. 어느 날 상담 끝에 들었던 ‘이제야 사람하고 얘기하는 것 같네요’라는 감사 인사를 떠올리자, 떨리던 손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태준을 만나기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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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대표의 열 번 고백

“그럼 지금부터 10번 해요. 저 보고 싶었죠?”내가 손가락 열 개를 펼치자 태준은 한참 그 손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모른 척했던 사람이 이제는 내 앞에서 이런 부탁까지 받아 주고 있었다. 나는 괜히 엄지손가락부터 접을 준비를 했다.“딱 열 번이에요. 같은 말 두 번 하면 안 돼요.”“좋아요. 그런데 다 들으면 상은 있습니까?”“그건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렸죠.”“어려운 심사네요.”그는 내가 내민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손바닥이 닿자 토요일 아침 횡단보도에서 놓기 싫었던 마음이 되살아났고, 나는 그가 첫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입가를 다물지 못했다.“첫 번째. 보고 싶었어요, 채린 씨.”“그건 너무 쉽잖아요.”“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라 먼저 꺼냈어요.”엄지 하나를 접었다. 태준은 다음 말을 생각하는 척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그의 표정이 꼭 시험을 치르는 학생 같아서 웃음이 났다.“두 번째는요?”“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끝나기를 바랐어요. 끝나면 채린 씨에게 전화할 수 있으니까.”“대표님이 그런 마음으로 회의하시면 곤란하죠.”“일은 다 했습니다. 마음이 조금 바빴을 뿐이에요.”둘째 손가락을 접으니 그가 내 손을 조금 들어 올렸다. 우리는 회사에서 떨어진 작은 정원의 오솔길을 나란히 걷고 있었다. 가로등 사이로 나뭇잎 그림자가 움직였고, 저녁 공기가 손목 사이를 스쳤다.“세 번째. 점심에 좋아하는 반찬이 나왔는데, 채린 씨가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무슨 반찬인데요?”“딸기요.”“딸기가 무슨 반찬이에요!”“식후 과일이었어요. 채린 씨 웃는 것 좀 보려고 그랬습니다.”웃다가 세 번째 손가락까지 접었다. 그는 내가 딸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직도 장난처럼 꺼내 놓았다. 호텔 라운지에서 처음 맛본 디저트가 생각나서 가슴 한쪽이 따뜻해졌다.“네 번째는, 복도에서 채린 씨 발소리가 들린 것 같아 돌아봤는데 다른 사람이었어요.”“그럼 조금 서운했어요?”“네. 제법요.”“그건 합격.”다섯 번째를 기다리며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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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열한 번째 말

“내일은 열한 번 해줘요.”그 말을 하면서도 나는 그에게 더 무엇을 바라게 될지 몰랐다. 손을 잡는 일 하나에도 아직 얼굴이 붉어지는 사이였으니, 내일의 열한 번째는 얼마나 오래 마음에 남을까.내가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자 태준은 웃으며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손을 놓지 않은 채 걷기 시작했는데, 조금 전 들었던 열 번째 고백이 자꾸 떠올라 발걸음이 느려졌다.“내일은 어떤 말을 할 건데요?”“벌써 궁금해요?”“열 번이나 듣고도 모자랐으니까요.”“그럼 열한 번째는 조금 다르게 해도 될까요?”나는 일부러 생각하는 척했다. 입술 끝에 맴도는 웃음을 감추기는 어려웠다.“반드시 예뻐야 해요.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해달라고 할 거예요.”“그럴 수 있도록 오래 준비할게요.”그는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됐다는 걸 알면서도 내 손을 마지막까지 잡아 주었다. 골목 끝에서 손가락이 떨어졌을 때에는 손바닥을 한 번 더 펼쳐 보였다. 마치 내일도 여기로 돌아오라는 약속 같아서 나는 그 손을 살짝 쳤다.다음 날 나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고객경험 개편안의 최종 검토 자료를 확인하고, 수아가 요청한 수정 내역을 정리했다. 태준과는 오전 회의에서 잠깐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어제 내가 그의 품에 기대었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서류를 넘기는 모습을 잠깐 보면서, 어젯밤 나를 끌어안던 팔이 생각나 얼른 숫자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담당자에게 필요한 질문을 했고 나는 화면에 표시된 수치를 보며 답했다.그런데 점심 무렵부터는 자꾸 내 이마가 신경 쓰였다. 열한 번째가 다르다니. 설마 꽃을 사 오려나, 아니면 편지를 쓰려나. 아무 근거도 없는 상상을 하다가 수아에게 들켰다.“선임님, 오늘 좋은 일 있으세요?”“왜?”“아까부터 보고서 읽으면서 웃으세요.”나는 재빨리 입술을 다물었다.“수정할 데가 줄어서. 이번 주 안에 끝날 것 같거든.”“그거야말로 좋은 일이네요.”수아가 웃으며 돌아가자 나는 보고서 첫 장을 다시 펼쳤다.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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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허락받은 키스

‘열두 번째는 허락받고 싶어요.’문자를 읽는 순간, 이마에 남아 있던 입맞춤이 입술까지 내려온 것만 같았다. 열한 번째는 말없이 내 이마에 닿았는데, 열두 번째는 어디에 하고 싶은 걸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싶어 나는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올렸다.‘뭘 허락해 드리면 되는데요?’답장을 보내자 화면에 곧바로 글자가 나타났다.‘직접 만나서 물을래요. 문자로는 채린 씨 얼굴을 못 보니까요.’‘제 얼굴 보면 또 예쁘다고 할 거면서.’‘네. 그건 못 참을 것 같아요.’세상에. 이런 남자를 어떻게 이겨. 나는 베개를 끌어안고 뒤척이다가 다시 화면을 켰다. 오늘은 꼭 마지막 문자를 내가 보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태준이 먼저 보내온 잘 자라는 인사를 세 번이나 읽고서야 잠이 들었다. 눈을 감으면 그의 손끝이 이마에 닿던 순간부터 떠올라서, 차라리 얼른 내일이 오길 바라며 이불 속에서 발을 꼼지락거렸다.다음 날 회사에서는 그와 단둘이 마주칠 일이 없었다. 나는 보고서에 집중했고 태준도 예정된 회의를 소화했다. 점심때 수아가 주말 계획을 묻기에 책을 읽을 거라고 답했으나, 책장 사이에 끼워 둔 책갈피보다 만나기로 한 시간이 자꾸 떠올랐다. 업무 메신저에도 사적인 연락은 오가지 않았다. 서로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게 좋아서, 오히려 퇴근 후에 할 말이 쌓여 갔다. 복도에서 그와 마주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딱 한 번쯤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으면 싶었다. 정말 마음이 제멋대로였다.우리가 만난 곳은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정원 카페였다. 담장 안쪽으로 작은 나무들이 이어졌고, 손님이 적은 안뜰 끝에는 두 사람이 마주 앉을 만한 테이블이 있었다. 나는 먼저 도착해 따뜻한 차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아직 뭘 허락할지도 모르는데, 입술에 바른 립밤이 신경 쓰여 물컵에 비친 얼굴까지 살폈다.“채린 씨.”고개를 들자 태준이 서 있었다. 웃으며 다가오던 그는 내 앞에 앉기 전에 한 박자 멈췄다.“오늘은 안아도 될까요?”“인사부터 그렇게 하시면 제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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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연인이라는 이름

“그런데 태준 씨, 우리 이제 무슨 사이예요?”내가 물어놓고도 놀라서 손을 빼려는데, 태준이 놓치지 않고 손가락을 맞물렸다. 방금까지 키스하던 사람 앞에서 이런 질문 하나가 이렇게 떨릴 일인가. 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척 찻잔을 바라봤지만, 실은 그의 입술만 자꾸 눈에 들어왔다.“채린 씨는 어떤 사이였으면 좋겠어요?”“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면 감점이에요.”“큰일 났네요. 오늘은 만점 받고 싶은데.”“그럼 기회 한 번 더 드릴게요. 아주 특별히.”그가 웃다가 내 손등을 엄지로 문질렀다. 그렇게 작은 움직임에도 가슴이 바빠져서, 나는 쓸데없이 테이블 위의 꽃잎을 세었다.“채린 씨가 원한다면, 연인이 되고 싶어요.”연인. 그 두 글자가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굴러다녔다. 호텔에서 처음 만난 날은 내일을 약속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이제는 이 사람이 내게 연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마음을 알면서도 이름을 붙이지 못해 망설였던 날들이 그제야 한곳에 모였다. 테이블 맞은편의 남자는 내가 처음 손을 내밀었을 때부터 줄곧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게 있으면 말하라고, 싫은 건 싫다고 해도 된다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 마음을 조금씩 더 내보여도 될 것 같았다. 오늘도 그는 내가 먼저 한 걸음 다가오기를 기다렸다.“제가 싫다고 하면요?”“슬프겠죠. 그래도 채린 씨가 편한 쪽을 택했으면 좋겠어요.”“진짜요? 안 붙잡고?”“붙잡고 싶은 마음은 있겠지만, 대답을 바꾸라고 조르고 싶지는 않아요.”그를 놀려 주려던 말이 혀끝에서 멈췄다. 나는 그가 내 선택을 기다려 주는 순간마다 조금씩 더 좋아졌고, 오늘도 그랬다. 결국 손을 더 꼭 쥐었다. 내가 손가락에 힘을 줄 때마다 그의 웃음이 조금씩 커졌다. 사랑이 시작되는 날의 표정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저런 얼굴일 거라고, 그를 보며 생각했다.“그럼 오늘부터 1일이에요.”“정말요?”“네. 저 지금 태준 씨 여자친구 하겠다고 말한 거예요. 두 번 안 해요.”“한 번만 더 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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