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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을 말하다: Chapter 11 - Chapter 20

20 Chapters

당신이 자꾸 신경 쓰입니다

도아윤은 그날 아침, 자신의 손목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자였다. 그것도 어제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재수 없는 남자라고 생각했던 사람. 레이 컨덜튼. “……왜.” 아윤은 욕실 거울 앞에 서서 미간을 찌푸렸다. “왜 자꾸 생각나는데.” 세면대 옆에는 하얀 손수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삼 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물건이지만 어젯밤 이후로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손수건 모서리에 새겨진 R.C.라는 글자가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고, 그 글자를 볼 때마다 레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검은 머리카락. 짙은 눈동자. 사람을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웃던 입술. 그리고 이상하게 다정했던 목소리. ‘오래됐다고 안 아픈 건 아니죠.’ 그 말을 떠올리자 아윤은 손수건을 집어 서랍 안에 넣었다. 달칵. “그만.” 아무도 없는 욕실에 대고 선언했다. “도아윤, 정신 차려.” 레이가 잘생긴 건 사실이었다. 계약 협상을 할 때도 그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잘생긴 남자가 많았고, 그중에는 성격까지 좋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굳이 자신과 만날 때마다 말싸움을 벌이는 남자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아윤은 스스로의 결론에 만족하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거울을 다시 봤다. “……그래도 웃을 때는 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입을 다물었다. “아, 진짜!” 그녀는 머리를 대충 묶고 욕실을 나왔다. 오늘은 바빴다. 새 컬렉션 디자인 수정도 끝내야 했고, HR과 논의한 입점 계약의 세부 조건도 검토해야 했다. 무엇보다 손목을 확인하러 병원에 가야 했다. 레이가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절대로. 자신의 손은 소중한 업무 자산이었으니까. 그런 이유였다. ⸻ “다행히 골절은 없습니다. 가벼운 염좌로 보이네요.” 의사의 설명을 들은 아윤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럼 작업해도 괜찮을까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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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자꾸 신경 쓰입니다

“그런데 말하지 못한 사랑이라.” 아윤이 웃었다. “사랑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잖아요.” 그녀는 첫 번째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누군가는 고백하기 전의 마음을 담아 선물하고, 누군가는 오래 함께한 사람에게 말없이 전하고 싶을 수도 있겠죠.” “말보다 물건이 더 솔직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아윤은 잠시 생각했다. “그럴 때도 있다고 생각해요.” 레이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목걸이의 구조를 살폈다. “그런데 여기.” 그가 중앙의 보석을 가리켰다. “두 곡선이 끝까지 연결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까?” “아직 닿지 않은 마음이니까요.” “그렇군요.” 레이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럼 이건 완성되지 않은 사랑입니까?” 아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녀는 목걸이를 다시 받침 위에 올려놓았다.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랑이 아닌 건 아니니까요.” 레이의 눈이 아윤에게 향했다. “그렇게 생각합니까?” “네.” “고백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모를 텐데.” “그러니까 이걸 선물하는 거죠.” 아윤이 웃었다. “말하지 못한 마음을 대신 전해 달라고.” 레이는 한동안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이야기네요.” 아윤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다만.” 그 말에 아윤의 미소가 멈췄다. ‘역시.’ 레이는 태블릿을 들었다. “현재 디자인만 보면 그 의도가 충분히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 “컨셉 설명을 읽기 전에는 평범한 커플 목걸이와 구별하기 어렵군요.” 아윤은 순간적으로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문제 때문에 수정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맞아요.” 레이의 눈썹이 올라갔다. “인정하는군요.” “틀린 말은 아니니까요.” 아윤은 새로운 스케치를 꺼냈다. “그래서 이렇게 수정하고 있어요.” 레이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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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자꾸 신경 쓰입니다

레이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웃었다. “생각보다.” “…….” “잘 넘어지네요.” 아윤이 고개를 들었다. “……네?” “어제도 그렇고.” “…….” “오늘도 그렇고.” 아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사님.” “네.” “지금 저 놀리세요?” 레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조금.” 아윤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재수 없어!’ 방금 잠깐이라도 두근거렸던 자신이 너무 억울했다. ⸻ 레이가 돌아간 뒤에도 아윤은 한동안 작업대 앞을 떠나지 못했다. 완성된 수정 스케치가 눈앞에 있었다. 레이가 그린 선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꽤 훌륭했다. 그녀가 설명한 곡선의 흐름을 정확하게 이해했고, 수정 방향도 제대로 반영했다. 문제는. 그걸 그리던 사람이었다. 아윤은 스케치북을 덮었다. “……하아.”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 그의 가슴에 닿았던 손이었다. 기억이 너무 선명했다. 단단했던 감촉. 허리를 받치던 손. 가까이서 바라본 눈. 그리고 잠깐 입술에 머물렀던 시선. “미쳤어.” 아윤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진짜 왜 이래.” 그때 문이 열렸다. “대표님?” 엘리스였다. 아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네!” 엘리스가 멈칫했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안 놀랐는데요.” “얼굴이 빨개요.” “더워서요.” 엘리스가 주변을 둘러봤다. 에어컨이 켜져 있었다. “……지금 실내 온도 스물한 도인데요.” “제가 더위를 많이 타요.” “대표님은 추위를 많이 타시잖아요.” “…….” 아윤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엘리스.” “네.” “오늘 회의 자료는요?” 엘리스가 피식 웃었다. “말 돌리시는군요.” “업무 얘기예요.” “알겠습니다.” 엘리스는 자료를 내밀었다. 그러다가 문득 스케치북을 보았다. “어? 이거 수정하셨네요?” “응.” “손목 괜찮으세요?” “레이 이사님이 그려주셨어요.” 엘리스의 손이 멈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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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는 말의 의미

[보고 싶어서.] 도아윤은 휴대전화 화면에 떠 있는 다섯 글자를 벌써 열두 번째 읽고 있었다. 처음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잘못 본 줄 알았다.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상대방이 잘못 보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에는 혹시 자신이 모르는 영국식 농담인가 싶었고, 네 번째부터는 슬슬 화가 났다. 아니, 정확히는 화가 나는 척하고 싶었다. “이 남자는 대체 뭐야.” 아윤은 소파에 앉아 다리를 끌어안았다. 목욕을 마친 뒤라 머리카락은 아직 조금 젖어 있었고, 무릎에는 가벼운 담요가 덮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반쯤 마신 캐모마일 차와 오늘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 그리고 수정 중인 주얼리 스케치북이 놓여 있었다. 평소였다면 이미 노트북을 열고 내일 일정을 정리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문제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내일 점심시간 괜찮습니까?] [무슨 일인데요?] [식사.] [왜요?] [보고 싶어서.] 다시 읽어도 이상했다. 업무적인 이유도 없고, 계약 조건을 추가로 검토하자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보고 싶어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아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너무 직접적이잖아.” 그것이 문제였다. 레이 컨덜튼은 지금까지 아윤이 만난 남자들과 달랐다. 관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 수 없게 굴다가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너무도 간단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걱정했다는 말도 그랬다. 보고 싶다는 말도. 무엇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레이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낮에 작업대 앞에서 벌어졌던 일이 떠올랐다. 뒤로 넘어지려는 자신을 붙잡아 주던 팔, 허리를 받치던 단단한 손바닥, 가까워진 얼굴과 입술에 잠시 머물렀던 시선까지. 그때 레이는 분명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단순히 상대방을 확인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아니야.’ 아윤은 고개를 저었다. ‘혼자 착각하지 마.’ 삼 년 전의 일이 있은 뒤,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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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는 말의 의미

그런데 안전벨트를 당기는 순간 손목이 욱신거렸다. “아.”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레이는 바로 알아차렸다. “아직 아픕니까?” “조금요.” 레이가 몸을 숙였다. “제가 하죠.” “아니, 혼자 할 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멈췄다. 아윤을 바라봤다. “해도 됩니까?” 아윤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제야 레이가 상체를 숙였다. 순간 아윤의 숨이 멈췄다. 가까웠다. 예상보다 훨씬. 그의 어깨가 아윤의 시야를 가렸고, 코트 안쪽으로 부드러운 향이 스쳤다. 레이는 안전벨트를 당겨 그녀의 어깨와 허리 앞으로 넘겼다. 손끝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는 움직임이 오히려 아윤을 더 의식하게 만들었다. 딸깍. 벨트가 채워졌다. 하지만 레이는 바로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아윤의 목걸이가 안전벨트 아래에 걸려 있었다. “잠깐.” 그가 펜던트를 조심스럽게 빼냈다. 손가락이 쇄골 아래의 체인에 아주 잠깐 닿았다. 아윤의 어깨가 움찔했다. 레이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쳤다. “불편합니까?” 아윤은 입술을 달싹였다. 불편한 건 아니었다. 다만.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있었다. “……아니요.” 레이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 그러더니 아주 작게 웃었다. “그럼 다행이고.”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윤은 차 문이 닫힐 때까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 사람.’ 정말 위험했다. ⸻ 레이가 데려간 곳은 템스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프랑스식 레스토랑이었다. 유명한 호텔이나 화려한 고급 식당일 거라고 예상했던 아윤은 조금 놀랐다. 레스토랑은 생각보다 아담했고, 테이블마다 놓인 생화와 부드러운 조명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강물이 천천히 흘렀다. “여기 자주 오세요?” 아윤이 물었다. “가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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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는 말의 의미

아윤은 레이를 바라봤다.레이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왜요?”“아무것도 아니에요.”그녀가 웃었다.“그냥 조금 신기해서.”“뭐가요?”“그날 비가 안 왔으면 우리 못 만났을 수도 있잖아요.”레이는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그렇겠죠.”“그럼 이렇게 다시 만나는 일도 없었을 테고.”“…….”레이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그래서.”그가 천천히 말했다.“나는 그날 비가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아윤의 심장이 내려앉았다.“…….”“아윤 씨를 만났으니까.”그 말이 끝나는 순간.톡.빗방울 하나가 아윤의 뺨에 떨어졌다.그녀가 고개를 들었다.이어서 두 번째.세 번째.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어?”아윤이 손을 뻗었다.“진짜 오네.”레이가 주변을 둘러봤다.가까운 곳에 건물의 차양이 보였다.“이쪽으로.”그가 아윤의 손을 잡았다.“……!”아윤은 반사적으로 그를 바라봤다.레이도 곧바로 멈췄다.“괜찮습니까?”아윤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큰 손이 자신의 손가락을 감싸고 있었다.따뜻했다.삼 년 전.비 오는 거리에서 자신을 일으켜 세워 주던 손처럼.아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네.”그제야 레이가 그녀와 함께 걸었다.두 사람은 건물 차양 아래로 들어갔다.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레이는 휴대전화로 운전기사에게 연락한 뒤 아윤을 돌아봤다.“조금만 기다리죠.”“네.”아윤은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그 순간 레이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잠깐.”“네?”그가 손을 들었다.아윤은 움직이지 않았다.레이의 손끝이 그녀의 관자놀이 가까이 다가왔다.젖은 머리카락 한 가닥이 뺨에 붙어 있었다.그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떼어 귀 뒤로 넘겨주었다.손끝이 피부를 스쳤다.아윤의 숨이 멈췄다.“…….”레이도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눈이 마주쳤다.차양 아래는 생각보다 좁았다.한 걸음만 움직이면 서로의 어깨가 닿을 거리였다.레이의 시선이 아윤의 눈에 머물렀다.그리고 아주 천천히.입술로 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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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질수록 위험한 사람

비가 그친 런던의 새벽은 유난히 고요했다. 레이 컨덜튼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서재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식어버린 커피와 몇 장의 서류가 놓여 있었고, 노트북 화면에는 조금 전 비서가 보내온 보고서가 열려 있었다.마린 애슈포드.스물아홉.모델로 활동했던 여자.그리고 레이가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보고서에 따르면 마린은 사흘 전 영국에 입국했다. 정확한 체류 장소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런던에서 과거 함께 일했던 관계자들과 접촉한 정황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최근 HR 그룹의 신규 편집관 사업과 DW 주얼리에 관한 공개 자료를 여러 차례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레이는 마지막 문장에 시선을 고정했다.DW.도아윤의 회사였다.그 이름을 보는 순간 전날 밤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던 마린의 웃음소리가 다시 떠올랐다.‘도아윤. 예쁘더라.’그녀는 이미 아윤을 알고 있었다. 단순히 이름을 들은 정도가 아니었다. 웃는 얼굴이 예쁘다고 이야기할 만큼 구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레이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에드워드.”[네, 이사님.]“어젯밤 통화 기록은 보존했습니까?”[네. 법무팀에 전달할 자료와 함께 정리하고 있습니다.]“마린이 아윤의 신상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도 확인해 주세요. 회사 내부 자료에 부적절한 접근이 있었는지부터요.”[알겠습니다. 경찰에 제출할 수 있는 자료도 준비하겠습니다.]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과거에는 마린이 저지른 일들을 가족 사이의 문제처럼 덮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의 불안정한 행동을 가볍게 여기거나, 레이가 조금만 부드럽게 대해주면 해결될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그 결과 누군가 크게 다쳤다.그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그리고 DW 쪽 계약과 무관한 개인정보 접근은 즉시 차단하세요.”[네.]“경호 인력을 보내는 문제는 조금 더 생각하겠습니다. 당사자에게 설명도 없이 누군가를 붙이는 건 원하지 않아요.”통화를 마친 레이는 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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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질수록 위험한 사람

오전 회의는 예상보다 길어졌다.체인의 연결 구조를 바꾸면 무게는 줄일 수 있었지만 펜던트가 돌아가는 문제가 생겼다. 아윤은 세공 담당자와 함께 몇 가지 해결 방법을 검토했다.“이 부분을 조금 더 안쪽으로 넣으면 어떨까요?”샬럿이 새로운 스케치를 보여주었다.아윤은 종이를 받아 들었다.“괜찮네요. 대신 피부에 닿는 면은 둥글게 처리해야 해요.”“네.”“착용할 때 불편하면 아무리 예뻐도 의미가 없으니까.”디자인의 마지막 선까지 확인한 뒤에야 회의가 끝났다.아윤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는 거의 정오였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반사적으로 화면을 확인했다.레이 컨덜튼.아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표정을 굳혔다.‘아니야.’그냥 거래처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아윤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바쁩니까?]평소와 같은 낮은 목소리였다.“조금 전에 회의 끝났어요.”[손목은요?]“많이 좋아졌어요.”[다행이네요.]잠시 침묵이 흘렀다.아윤은 책상 위의 펜을 굴렸다.“그런데 무슨 일이에요?”[오늘 저녁 시간 괜찮습니까?]펜이 멈췄다.“오늘요?”[네.]“왜요?”전화기 너머에서 아주 짧은 숨소리가 들렸다.[할 이야기가 있습니다.]아윤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어제와는 다른 말투였다.평소처럼 장난스럽지도 않았다.“무슨 이야기인데요?”[직접 만나서 말하고 싶습니다.]아윤은 잠시 생각했다.“일곱 시 이후면 괜찮아요.”[그럼 일곱 시 반에 보죠.]“어디서요?”[제가 찾아가겠습니다.]“회사로요?”[네.]아윤은 창밖을 바라봤다.“레이 씨.”[네.]“무슨 일 있어요?”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그리고 잠시 후.[있습니다.]아윤의 손이 멈췄다.[하지만 지금은 일부터 하세요.]“…….”[저녁에 이야기하죠.]통화가 끝났다.아윤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불길한 기분이었다.레이가 평소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그는 무언가를 숨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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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질수록 위험한 사람

두 사람이 들어간 곳은 DW 본사에서 멀지 않은 작은 호텔의 라운지였다. 레이는 직원에게 안쪽 자리를 부탁했고,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 앉았다.아윤은 커피를 주문했지만 마시지 않았다.레이의 얼굴만 바라봤다.“이제 이야기해요.”레이는 잠시 손가락을 맞잡았다.“마린이라는 여자가 있습니다.”아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사람이에요?”“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입니다.”“전 여자친구예요?”“아닙니다.”대답은 즉각적이었다.“사귄 적 없습니다.”아윤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레이는 말을 이었다.“마린은 몇 년 전부터 나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감 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행동이 심해졌어요.”“어떻게요?”“내 일정을 알아내 찾아오고, 연락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연락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사진을 찍기도 했고요.”아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스토킹이네요.”“네.”레이는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그러나 아윤은 피하지 않았다.오히려 진지하게 물었다.“신고는 했어요?”레이는 잠시 침묵했다.“과거에 여러 차례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습니다.”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당시 내 주변 사람이 심하게 다친 사건도 있었고요.”아윤의 얼굴이 굳었다.“마린이 한 일이에요?”“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증거는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정황은 있었어요.”“…….”“그 뒤로 접근을 차단했는데, 최근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아윤은 커피잔을 내려다봤다.“그래서요?”레이가 그녀를 바라봤다.“어젯밤 내게 연락했습니다.”“…….”“당신 이름을 알고 있더군요.”순간 아윤의 손이 멈췄다.“제 이름을요?”“네.”“어떻게?”“확인 중입니다.”아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이 뒤섞였다.누군가 자신을 알고 있다.그것도 레이에게 집착하던 사람이.그 사실은 분명 두려웠다.하지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의외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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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질수록 위험한 사람

호텔 라운지를 나왔을 때는 밤 아홉 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공기가 차가웠다.아윤은 코트 깃을 여몄다.레이가 옆에서 걸음을 맞췄다.“집까지 데려다주겠습니다.”“오늘은 거절 안 할게요.”“다행이네요.”아윤이 웃었다.“그렇게 좋아요?”“네.”또 너무 솔직한 대답이었다.아윤은 고개를 저었다.“정말 적응 안 돼.”“곧 익숙해질 겁니다.”“누구 마음대로요?”레이가 그녀를 바라봤다.“아윤 씨 마음대로.”“…….”그 말에 아윤은 괜히 웃음이 났다.두 사람은 호텔 앞의 작은 정원을 지나 차가 기다리는 쪽으로 걸었다. 정원 가장자리에는 키가 낮은 관목이 심어져 있었고, 비에 젖은 잎사귀들이 조명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그때 아윤이 멈췄다.“레이 씨.”“네.”그녀는 잠시 망설였다.그리고 조용히 말했다.“저 사실.”레이가 기다렸다.“어제 조금 후회했어요.”그의 눈썹이 움직였다.“뭘요?”아윤은 손끝을 만지작거렸다.“비 왔을 때.”레이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물렀다.“차양 아래에서요?”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네.”레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윤은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이미 말을 시작했으니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할 수도 없었다.“그때 키스해도 되냐고 물었잖아요.”“기억합니다.”“제가 아직은 안 된다고 했고요.”“네.”아윤은 고개를 들었다.“근데.”잠시 입술을 깨물었다.“조금 후회했어요.”레이의 표정이 달라졌다.그가 한 걸음 가까이 왔다.“도아윤.”처음이었다.존칭 없이 이름을 불렀다.아윤의 숨이 멈췄다.“……네.”“그 말.”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어떤 뜻인지 알고 합니까?”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레이가 그녀를 바라봤다.“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참을성이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아윤은 잠시 그를 올려다봤다.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그런 것 같아요.”레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런데도?”아윤은 한 걸음 다가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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