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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싱글대디의 사냥: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순간 분위기가 고요해졌다.강채원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여전히 눈앞의 박이준을 인내심 있게 달래고 있었다. 목소리도 부드럽기 그지없었다.강채원의 약속을 들은 박이준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풀렸지만 여전히 손을 놓으려 하지 않고 그녀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정말이죠? 거짓말하면 안 돼요, 누나.”“거짓말 안 해.”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선 그때 박도현의 칠흑 같은 눈동자와 마주쳤다.아직 가슴 라인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그녀는 박도현의 어둡고 깊은 눈빛을 보자마자 이유도 없이 가슴이 철렁했다.그가 인내심을 잃은 줄 알고 다급하게 해명했다.“이준이 아버님, 전 다른 뜻이 있었던 게 아니에요.”당황해서 서둘러 해명하는 그녀의 모습에 박도현은 정신을 차리고는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재빨리 억눌렀다.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까보다 조금 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알아요. 그러니 당황하지 말아요.”박도현의 말투가 차분했고 별다른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일부러 시선을 돌려 더는 그녀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박도현이 화를 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강채원은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그럼 저는 이제 가 봐도 될까요?”강채원의 달램에 박이준은 기분이 풀렸고 오늘 밤 그녀가 이곳에서 자지 않는다는 사실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옷자락을 꽉 잡고 좀처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박도현이 아쉬워하는 아이와 얼굴이 살짝 붉어진 강채원을 번갈아 봤다.“박이준, 얼른 손 놔. 누나가 말했잖아, 나중에 오겠다고. 그러니까 말 들어.”박도현의 말에 박이준이 어쩔 수 없이 손을 놓았다. 그래도 여전히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강채원을 바라봤다.“누나, 나랑 약속한 거 잊으면 안 돼요.”아이가 작은 손을 내밀면서 새끼손가락을 걸려고 했다.“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해요.”박이준이 고개를 들었다. 앳된 얼굴에 진지함이 가득했다.그 모습이 귀여웠던 강채원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아이의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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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타요.”박도현이 조수석 문을 열어 주자 강채원이 허리를 숙여 차에 올라탔다.넓은 차 안에 두 사람뿐이었다. 밀폐된 공간이라 그런지 강채원의 몸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달콤한 향이 유난히 또렷하게 느껴졌다.박도현이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핸들에 손을 얹은 뒤 시동을 걸려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강채원이 그가 몇 번이나 차 키를 돌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엔진에서 힘없는 둔탁한 소리만 날 뿐 시동이 걸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결국 불안한 마음에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왜 그래요? 차가 고장 났어요?”박도현이 차 키에서 손을 떼고 난처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차량의 배선 연결 부위를 살펴보았다.“아무래도 배선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별장 전담 정비 기사들이 오늘 밤 전부 휴무거든요. 당장 고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그가 차분한 눈빛으로 강채원을 쳐다봤다. 목소리에 어쩔 수 없다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시간 한번 확인해 봐요. 지금 당장 차를 부른다고 해도 차가 도착할 때쯤이면 학교 기숙사 통금 시간이 한참 지나서 들어가지 못할 거예요.”강채원은 휴대폰 화면에 표시된 시간을 확인하고는 어쩔 줄 몰라 했다.별장 단지가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늦은 밤이라 택시를 잡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이제는 정말 달리 방법이 없었다.게다가 방금 시간을 꽤 허비한 탓에 지금 차를 불러봐야 잡기 더 어려울 것이다.“그럼... 전 어디로 가야 하죠?”강채원이 저도 모르게 물었다. 이게 바로 박도현이 기다리던 말이었다.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몸을 바로 세우고 강채원을 보면서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강채원 씨만 괜찮다면 오늘 밤은 별장에서 묵고 가도록 해요.”강채원의 얼굴에 어색한 기색이 번졌다.조금 전까지 별장에서 자고 가지 않겠다며 거절했던 그녀인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다시 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강채원으로서는 민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볼이 화끈거릴 정도로 달아올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하지만... 아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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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별장의 인테리어가 박도현의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렸다. 쿨톤의 화이트와 블랙, 그레이를 중심으로 꾸며진 공간이 그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박도현이 오렌지 주스 한 잔을 들고 와서 강채원의 손에 잔을 쥐여주었다.“거기 서서 뭐 해요? 앉아요.”아직 시간이 그리 늦은 건 아니었지만 별장 전체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널찍한 공간에 강채원과 박도현 두 사람만 남은 듯했다.이미 주스까지 받은 마당에 더는 사양하기도 어려웠다. 강채원은 어쩔 수 없이 박도현의 말대로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이준이 아버님.”“괜찮아요.”강채원이 잔뜩 긴장한 것을 알아챈 박도현이 설명을 덧붙였다.“지금 방을 정리하고 있어요. 이따가 가정부가 내려오면 그때 방에 가서 쉬면 되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방을 정리하는 중이었구나.’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지금처럼 박도현과 단둘이 있는 건 여전히 조금 두려웠다.강채원이 소파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일부러 몸을 조금 더 옆으로 옮겨 박도현과 거리를 두고는 시선을 컵에 고정한 채 감히 옆을 돌아보지 못했다.박도현은 옆쪽의 일인용 소파에 앉아 있었다. 팔꿈치를 팔걸이에 느긋하게 올리고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거실에 따뜻한 노란빛의 조명 하나만 켜져 있었다. 은은한 불빛이 강채원의 희고 갸름한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길고 짙은 속눈썹이 아래로 드리워져 그녀를 한층 더 얌전하고 차분하게 보이게 했다.그녀가 오렌지 주스를 홀짝였다. 하얀 목선이 유난히 깔끔했고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이 더없이 순해 보였다.고요한 거실에 두 사람의 옅은 숨소리만 맴돌았다.박도현이 몇 초 동안 말없이 강채원을 바라보다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침묵을 깼다.“나랑 단둘이 있는 게 많이 무서운가 봐요?”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다. 슬쩍 떠보는 것 같으면서도 그저 무심코 궁금해서 물어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강채원은 하마터면 주스에 사레가 들릴 뻔했다. 황급히 잔을 내려놓고 당황한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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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박도현의 질문에 강채원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네.”서둘러 짧게 대답하고는 손에 든 오렌지 주스를 다시 한 모금 홀짝였다.박도현이 조금 떨어진 일인용 소파에 앉아 말없이 강채원을 바라봤다. 더는 먼저 말을 걸지 않고 그저 시선만 고정했다.넓은 별장이 어찌나 쥐 죽은 듯이 조용한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정부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더니 두 사람에게로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강 선생님이 묵으실 방 정리가 끝났습니다. 이제 올라가셔서 쉬셔도 됩니다.”그 말을 들은 강채원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수고 많으셨어요.”박도현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소파 위에 놓인 겉옷을 집어 들며 덤덤하게 말했다.“내가 방까지 안내해줄게요.”강채원은 거절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계단을 올라갔다. 분위기는 여전히 고요했고 복도에는 두 사람의 희미한 숨소리만 울렸다.방 앞에 도착한 뒤 박도현이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이 방이에요. 오늘 밤 편히 쉬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요. 내가 바로 옆방에 있으니까.”‘바로 옆방에 있다고?’강채원이 고개를 들어 박도현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강채원의 시선이 그에게 향하자 그 역시 담담하게 시선을 돌렸다.“왜 그래요?”그녀가 황급히 시선을 거두었다. 얼굴이 서서히 붉어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에요. 감사합니다.”더는 그와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강채원은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침구가 폭신하고 부드러웠으며 공기 중에 은은한 세탁 세제 향이 감돌았다. 누가 봐도 세심하게 정리한 방이었다.하지만 강채원은 방 안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옆방이 바로 박도현의 침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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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다음 날 아침, 강채원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눈을 뜨고 비몽사몽한 상태로 침대 머리맡을 더듬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시간을 확인한 순간 저도 모르게 낮게 비명을 질렀다.“어떡해! 이러다 지각하겠어!”그때 원목 문 너머로 가정부의 공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강 선생님, 아침 식사가 다 준비되었어요. 차도 앞에서 대기 중이니 씻고 식사하신 뒤에 나가시면 기사님이 학교까지 모셔다드릴 겁니다.”“어젯밤에 대표님이 미리 준비해두셨으니 너무 서두르지 않으셔도 돼요.”“아, 네.”강채원은 대충 대답하고는 서둘러 욕실로 뛰어갔다.다행히 방에 일회용 세면도구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재빨리 씻고 준비를 마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식탁에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는데 하나같이 정갈하고 먹음직스러웠다. 평소의 강채원이라면 선뜻 사 먹지 못했을 만큼 고급스러운 아침 식사였다.“드세요, 강 선생님.”가정부가 옆에 서서 권했다.강채원은 아침을 허겁지겁 먹은 뒤 곧바로 별장을 나섰다.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정말 지각할 수도 있었다.현관 앞에 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강채원을 본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리더니 뒷좌석 문을 열어 주었다.이런 극진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강채원은 낯설었던 나머지 어색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조금 쑥스러워하면서 허리를 숙여 차에 올라타고는 얌전히 구석에 앉았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강채원은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며 살아왔다. 등교할 때도, 서둘러 길을 나설 때도, 붐비는 대중교통을 탈 때도 늘 혼자였다.누군가 미리 아침 식사를 준비해주고 시간을 계산해 차까지 대기시켜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강채원은 지금껏 처음으로 이런 보살핌을 받아봤다.그런데 처음으로 이런 대접을 받게 한 사람이 다름 아닌,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고용주라니.차가 별장 단지를 빠져나와 학교를 향해 달렸다.학교 분위기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날 강채원을 둘러싸고 떠돌던 온갖 소문이 하룻밤 사이 깨끗하게 사라진 듯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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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임지환은 좀처럼 떨쳐 낼 수 없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언제 어디서든 강채원의 주변에 불쑥 나타나 끈질기게 따라붙었다.강채원이 대놓고 싫은 기색을 드러내는데도 임지환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척했다. 그녀의 옆자리에 앉더니 들고 있던 생수병을 제멋대로 그녀의 앞에 놓았다.“어제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마. 다 헛소문이었잖아.”그 말에 강채원이 차갑게 웃었다가 마침내 고개를 돌려 임지환을 똑바로 응시했다.“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제는 왜 나서서 해명 한마디도 안 해줬는데?”임지환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어지면서 미소도 함께 사라졌다.어제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임지환 역시 사실이라고 믿었다. 학생들이 강채원을 피하기 바쁜 상황에서 그가 어찌 평소처럼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었겠는가?괜히 엮였다가 그에게까지 불똥이 튈까 봐 몸을 사렸던 것이었다.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징계를 받았고 더는 함부로 입을 놀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자 이제 와서 좋은 사람인 척 나섰다.임지환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자 강채원이 다시 한번 차갑게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책을 내려다보았다. 눈빛에 짙은 혐오감이 어려 있었다.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찾아내려 애를 썼다.“그때는 나도 정확한 상황을 몰랐어. 섣불리 나섰다가 오히려 일을 더 키울까 봐 그랬던 거야.”“하지만 걱정하지 마. 난 처음부터 널 믿었어. 다른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그래?”강채원이 무덤덤하게 대꾸하며 생수병을 다시 임지환 쪽으로 밀었다.“물은 됐어. 고마워.”임지환은 강채원의 싸늘한 표정을 힐끗 살폈다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뻔뻔하게 말을 걸었다.“오늘 저녁에 학과 모임 있는 거 들었어? 너도 올 거지? 다들 참석할 거야.”강채원은 잠시 멈칫했다.‘학과 모임이 있다고? 처음 듣는 소리인데?’“안 가. 시간 없어. 과외하러 가야 해.”임지환이 입술을 깨물었다.“내가 마련한 모임이야. 다른 사람들 체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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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원하는 대답을 듣자 임지환의 눈빛에 순간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 너무나 짧은 순간이라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하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시름 놓았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진심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한 말은 꼭 지켜. 오늘 모임에만 나와 주면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을게.”강채원이 그를 몇 초 동안 빤히 쳐다봤다. 표정에서 별다른 속내를 읽어 낼 수 없자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았다.이 지긋지긋한 사람의 집요한 구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만 있다면 저녁 모임 한 번쯤 참석하는 건 그리 손해 보는 일도 아니었다.“오늘 네가 한 말 꼭 기억해.”강채원은 더는 임지환과 말을 섞지 않고 다시 고개를 숙여 교재를 들여다보았다.임지환이 기분 좋게 웃으며 강채원이 돌려준 생수병을 가져갔다. 더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옆자리에 앉아 이따금 곁눈질로 강채원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오늘 수업이 그리 많지 않았다. 수업이 끝난 뒤 강채원은 곧장 기숙사로 돌아갔다.기숙사 안이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평소보다 분위기가 훨씬 무거웠고 숨이 막힐 만큼 답답한 침묵이 감돌았다.조혜성이 밤새 돌아오지 않았는지 침대가 전날과 다름없이 어질러져 있었다.강채원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몇몇 룸메이트들은 서로 눈치를 주고받을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저녁까지 이어졌다.저녁 모임 시간이 가까워지자 기숙사에 있던 여학생들은 하나둘 화장을 하고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강채원만 책상 앞에 앉아 자기 할 일을 했다.시간이 거의 됐을 무렵 강채원은 캔버스 가방을 메고 기숙사를 나섰다.수업이 끝났을 때 강채원은 이미 박도현에게 오늘 저녁에 일이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그러자 박도현이 따져 묻지도 않고 그저 알겠다는 짧은 답장만 보내왔다.기숙사 건물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임지환과 마주쳤다.한참 전부터 이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강채원이 모습을 드러내자 곧바로 다가가 환하게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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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강채원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의자를 옆으로 조금 옮겨 임지환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녀가 한층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했다.“굳이 여기 앉을 필요 없어. 다른 자리도 많이 비어 있잖아. 아무 데나 편한 곳에 앉으면 돼.”임지환이 그녀의 뜻을 알아듣지 못한 척하더니 손에 든 유리잔을 가볍게 흔들었다.“애들이 일부러 자리를 마련해준 건데 내가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잖아. 게다가 전에 우리끼리 했던 약속에 대해 너랑 할 얘기도 좀 있고.”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강채원은 더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이후 임지환이 보인 행동을 통해 강채원은 제대로 그의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몇몇 남학생들이 오직 강채원에게만 집중적으로 술을 권했다. 누가 봐도 그녀를 취하게 만들 작정인 게 뻔했다.강채원은 이런 자리가 처음이었다.원래 겁이 많은 성격인 데다 집요하게 매달리는 임지환에게조차 애써 차분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그녀였다.“난 술을 잘 못 해서 안 마실게.”그녀가 눈앞에 놓인 술잔을 손으로 밀어냈다.“도수 낮은 과일주라서 한 모금 정도는 괜찮잖아. 이 정도 체면도 안 세워줄 거야?”누군가 술잔을 다시 그녀에게 건넸다.임지환이 옆에서 웃으며 분위기를 띄우는 척했지만 사실은 강채원이 술잔을 들도록 은근히 압박하고 있었다.“강채원, 그래도 동기들 체면은 세워줘야지.”한 잔, 또 한 잔 끊임없이 이어졌다.강채원이 거절할 틈도 없이 술잔이 비기 무섭게 누군가 다시 가득 채웠고 이내 또 술을 마시라는 재촉이 이어졌다.한편 룸 밖, 박도현과 지시언이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옆에 업무상 접대해야 할 거래처 대표가 있었다.젊은 사람들의 떠들썩한 환호성이 흘러나오는 룸 앞을 지나던 그때 거래처 대표가 무심코 안쪽을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감탄했다.“우리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봐요. 젊었을 때는 우리도 저렇게 놀곤 했었는데.”박도현이 가볍게 웃었다가 고개를 들어 룸의 유리창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그 순간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강채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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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박도현이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임지환에게 시선을 옮겼다.“왜 이 사람한테만 술을 먹였어? 대체 속셈이 뭐야?”임지환은 이렇게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준비했던 말들이 목구멍에 턱 막혀 버렸다.한참 동안 말을 더듬던 임지환이 결국 억지로 태연한 척하며 입을 열었다.“오해하셨어요. 제가 억지로 먹인 게 아니라 채원이가... 마시고 싶다고 했어요.”아까부터 옆에서 맞장구를 치던 남학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도현을 노려보았다.“이봐. 당신 누구야?”“동기들끼리 모여서 밖에서 소란을 피운 것도 아니고 여기 방 안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쳐들어와서 따지는 이유가 뭔데?”남학생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목을 빳빳이 세우더니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박도현은 그 남학생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한층 더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이곳이 내 관리하에 있다는 사실이야.”그 한마디에 조금 전까지 시끄럽게 떠들던 남학생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입을 달싹거렸으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시 다물었다.임지환 역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애써 침착한 척하며 어떻게든 변명하려 했다.“이 클럽이 그쪽 거라고 해도 우리는 정당하게 돈을 내고 이용하고 있는데 무슨 명분으로 우리를 내쫓겠다는 거죠?”그들과 말씨름할 인내심이 없었던 박도현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예의를 아는 사람들에게나 허용되는 거지, 여럿이서 여자애 하나를 괴롭히는 너희들은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어.”그 말에 강채원이 테이블을 짚고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머리가 어지러워 몸이 두어 번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그 모습을 본 박도현이 재빨리 다가가 바닥으로 넘어지려는 강채원을 단단히 붙잡았다.“정말 평범한 동기들이었다면 이 사람을 취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겠지.”임지환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그가 강채원에게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있다는 걸 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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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소파에 누운 강채원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입술을 살짝 벌린 채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어이가 없었던 박도현이 몸을 숙여 일부러 강채원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그러게 누가 술을 이렇게 많이 마시래요?”말로는 타박하면서도 손길은 유난히 조심스러웠다.박도현이 강채원의 귀 옆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살며시 귀 뒤로 넘겨주었다.눈앞에 가까이 놓인 깨끗하고 흰 얼굴을 바라보던 그가 침을 삼켰다. 두 눈에 어느새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조명 아래 강채원의 희고 매끄러운 볼에 붉은 기가 감돌았다. 입술을 살짝 벌리고 눈을 꼭 감은 채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이 모습이 며칠 전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과 똑같았다.꿈속의 강채원은 지금처럼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고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그의 눈앞에 누워 있었다.박도현이 입술을 적셨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몸을 일으켜 그녀의 유혹적인 얼굴에서 멀어지는 것이었다.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본능이 그의 몸을 붙잡아 둔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시선이 강채원의 얼굴에 단단히 고정되기라도 한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꿈속에서 보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훨씬 더 생생하고 매혹적이었다.박도현은 이렇게 훔쳐보면 안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소파에 누워 있던 강채원이 자신을 향한 뜨거운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미간을 더욱 세게 찌푸리더니 낮게 신음했다.그 순간 박도현이 몸을 일으켜 그녀와 거리를 벌렸다. 그 뒤로는 함부로 쳐다보지 못했다.다행히 강채원은 신음한 뒤 다시 조용해졌다.그런데 박도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소파에 누워 있던 강채원이 몸을 살짝 뒤척였다.술기운이 점점 더 올라오면서 온몸이 후끈거렸다.“더워...”강채원이 무의식적으로 옷을 잡아당기며 중얼거렸다.“너무 더워... 벗을래... 벗어야겠어...”얼굴이 아까보다 더 붉게 달아올랐고 손으로 옷자락을 마구 움켜쥔 채 온 힘을 다해 옷을 벗으려 했다.헐렁하고 신축성 좋은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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