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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싱글대디의 사냥: Chapter 21 - Chapter 30

30 Chapters

제21화

강채원의 손바닥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차가운 손목을 붙잡은 강채원은 놓기는커녕 손을 더욱 깊숙이 뻗었다.“안 돼요. 너무 더워요.”강채원은 웅얼거리면서도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다른 손마저 포기하지 않고 옷깃 안으로 파고들었다.박도현은 온몸을 굳혔다. 손목에 닿은 뜨거운 손의 감촉이 너무도 선명해서 간신히 억눌러 놓았던 욕망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이번에는 직접 살이 닿은 탓인지 아까보다 훨씬 강렬했다.박도현은 애써 인내심을 쥐어짜며 다른 손으로 강채원의 손목을 살며시 붙잡았다. 그러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달랬다.“말 좀 들어요. 얇은 담요를 덮어 주고 찬물도 가져와서 얼굴에 대 줄게요. 그러면 금방 시원해질 거예요.”강채원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초점이 흐린 눈으로 박도현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갑자기 서러움에 입술을 삐죽였다.“임지환은 나쁜 놈이에요. 저를 속였어요.”“박도현 씨, 이제 저 안 챙겨 주실 거예요? 여기 버리고 가실 거예요? 저 혼자 두지 마세요.”말을 마치기도 전에 눈물이 터졌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박도현의 손목 위로 뚝 떨어졌다.순간 박도현의 마음이 약해졌다.“그럴 리가요. 그러니까 일단 손부터 놓을래요? 여기 혼자 두고 가지 않을게요.”박도현이 어떻게 강채원을 이곳에 버려두고 갈 수 있겠는가.하지만 강채원은 고개를 저으며 박도현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지금 강채원에게는 덥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박도현의 서늘한 몸에 닿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바짝 달라붙어 열기를 식히려 했다.“더워요. 박도현 씨, 여기 좀 만져 봐요. 너무 더워요.”박도현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강채원은 박도현의 남은 손마저 붙잡더니, 비틀거리며 제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더워요.”박도현이 손을 빼낼 틈도 없었다. 강채원은 옷깃 안으로 그의 손을 끌어넣어 그대로 제 가슴에 갖다 댔다.“채원 씨, 지금...”손바닥에 전해지는 생생한 감촉은 꿈에서 보았던 장면보다 몇백 배나 강렬했다.박도현은 그 자리에 꼿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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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저한테 화내셨어요.”가뜩이나 서러웠던 강채원은 더욱 속이 상했는지 칭얼거리며 다시 눈물을 쏟았다.박도현은 목울대가 굴러가며 심장이 한 박자 멎는 듯했다.그는 억지로 강채원에게서 시선을 떼고 말했다.“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요. 여직원을 불러서 좀 더 시원한 옷으로 갈아입혀 달라고 할게요. 그러면 한결 나아질 거예요. 알겠죠?”강채원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박도현이 곧 자리를 뜨려 한다는 사실만 알았다.또 버림받는 생각에 강채원이 다급히 매달렸다.“박도현 씨, 가지 마세요.”박도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가 어떻게 이곳에 더 머물 수 있겠는가.양심 없는 남자였다면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강채원이 먼저 달라붙는 모습을 보고 진작에 기회를 틈탔을 것이다.하지만 박도현은 줄곧 자신을 억제하고 있었다. 강채원이 저러는 것은 술에 취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정신이 돌아오면 자신과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박도현은 이미 강채원에게 마음을 정했다. 그녀가 쉽게 도망치게 둘 생각도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취한 사람을 이용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었다.박도현은 가슴속에서 들끓는 감정을 억누르고는 상황을 차근차근 되짚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제야 비로소 이성이 돌아왔다.그는 몸을 돌리고 인내심 있게 강채원을 달랬다.“안 가요. 문밖에 있을게요. 금방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남아 있는 이성마저 무너질까 두려워 강채원을 더는 쳐다보지 못했다.말을 마친 박도현은 서둘러 휴게실을 나와 조용히 문을 닫았다.복도에는 서늘한 밤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제야 마음속의 뜨거운 열기와 충동이 조금씩 가라앉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잠옷 한 벌을 든 클럽 여직원이 찾아왔다.“박 대표님.”여직원은 문 앞에 선 박도현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보고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들어가서 안에 있는 분 옷 좀 갈아입혀 주세요. 찬물로 얼굴도 닦아 주시고요.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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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휴게실 문을 열고 나오자 조용한 복도로 서늘한 바람이 스쳐 갔다. 강채원은 추운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여전히 박도현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었다.박도현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시끄러운 룸을 피해 옆문으로 나갔다.기사는 이미 차를 옆문 앞에 대 놓았다. 기사는 두 사람을 보자 곧장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기사는 고개를 숙이고 곁눈질하지 않은 채 옆으로 비켜섰다.박도현은 강채원을 조심스럽게 뒷좌석에 눕혔다.마른 체구라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도 않았다. 좌석에 눕자마자 강채원은 조금이라도 안심하려는 듯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집으로 가죠.”박도현도 허리를 굽혀 뒷좌석에 올라탔다.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모퉁이 어둠 속에 여러 사람이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임지환은 시퍼렇게 굳어진 얼굴로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았다. 그는 양옆에 늘어뜨린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고, 손등에는 핏줄까지 불거졌다.곁에 있던 룸메이트들은 그의 험악한 얼굴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방금 본 광경을 못 본 척할 뿐이었다.그들도 우연히 옆문에서 택시를 잡아 학교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하필 그때 박도현이 강채원을 안고 나오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임지환은 차의 후미등이 밤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노려보았다. 그의 얼굴에서는 섬뜩할 만큼 싸늘한 기운이 흘렀다.애초에 오늘 밤 임지환은 강채원을 취하게 만들려고 판을 짰다. 강채원이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틈을 타 둘 사이를 좁히고, 가능하면 아예 잠자리까지 가지려 했다.겁이 많은 강채원의 성격상 두 사람이 함께 누워 있는 모습만으로도 더는 자신을 거절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오늘 밤이 지나고 두 사람은 누구나 인정하는 연인 사이가 될 터였다.그런데 박도현이 갑자기 나타나 강채원을 손쉽게 데려가 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옆에 있던 룸메이트가 조심스레 임지환의 팔을 건드리며 낮게 타일렀다.“그만해, 지환아. 그냥 아무것도 못 본 걸로 하자.”그들은 조금 전 박도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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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강채원은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에 시달리며 한참 후에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고, 두통을 참으며 어제 있었던 일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임지환의 말에 속아 학교를 나와 동기들 술자리에 갔던 것까지는 기억났다. 그 뒤 여러 사람이 다가와 계속 술을 권했고, 결국 만취했다.기억은 거기서 끊겼다. 아무리 애써도 그다음은 생각나지 않았다.몸은 말할 것도 없이 괴로웠다. 난생처음 겪는 숙취였다. 그것도 제 의지로 마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억지로 술을 받아 마시다 취한 것이었다. 강채원은 화도 나고 서럽기도 했다.임지환은 친구라면서, 절대 난처하게 하지 않겠다면서 강채원을 속여 술자리에 데려갔다.그러고는 다른 사람들과 작당해 술을 퍼먹였다. 처음부터 그녀를 곤경에 빠뜨리려 했던 게 분명했다.강채원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얼굴을 굳혔다.정신을 완전히 잃었으니 취한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어떻게 클럽을 나왔는지도, 눈을 떠 보니 왜 박도현의 집에 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그저 귓가에 낮게 울리며 자신을 다독이던 목소리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그 사람의 손은 차가웠지만 행동은 무척 다정했다.강채원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조각난 장면들이 하나로 이어지지 않았다.가정부가 따뜻한 물을 건네며 조용히 설명했다.“강 선생님, 어젯밤에는 대표님이 선생님을 데리고 오셨어요. 술에 많이 취해서 깊이 주무셨거든요. 대표님은 아침 일찍 회사로 가셨는데, 나가시기 전에 선생님이 깨시면 먼저 물을 드리고 속에 부담 없는 아침을 준비해 드리라고 하셨어요.”박도현이라는 말에 강채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강채원은 물잔을 받아 들고 질문할 겨를도 없이 단숨에 물부터 마셨다.맑고 시원한 물이 목을 축이자, 강채원은 그제야 조금 정신이 돌아왔고 목소리도 나왔다.“저... 어제 이준이 아버님이 저를 데려오셨다고요?”강채원은 황급히 제 옷부터 더듬었다.몸에 걸친 것은 차가운 촉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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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그럼 아침부터 가져다드릴게요. 속에 부담 없는 음식들로 준비했으니 씻고 나오시면 바로 드실 수 있어요.”“네, 감사합니다.”강채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가정부가 나가자 방 안이 완전히 조용해졌다.강채원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몸에 걸친 부드러운 잠옷을 손끝으로 만져 보았다.창피하고 당황스러워 마음이 어수선했다.술에 취한 뒤의 기억은 하나도 없었다. 어젯밤 쓸데없는 말을 하거나 소란을 피우지는 않았는지, 박도현에게 매달려 진상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정말로 선을 넘는 행동을 했다면 저녁에 박도현이 돌아왔을 때 어떻게 얼굴을 보겠는가.‘오늘 수업이 있을까? 수업을 빠지면 장학금에도 영향이 갈 텐데.’강채원은 급히 잡생각을 밀어내고 침대 옆 협탁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화면을 켜 시간표를 확인했다.‘다행이다. 오늘은 수업이 없어.’강채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서둘러 학교에 돌아가 동기들을 마주할 필요는 없었지만, 마음속의 민망함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정말이지 박도현을 다시 볼 낯이 없었다.강채원은 이불을 걷고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혹시라도 소리가 날까 봐 두려웠다.강채원은 욕실에 들어가 찬물을 틀고 얼굴에 끼얹었다. 차가운 물이 달아오른 얼굴을 조금 진정시켜 주었지만, 거울에 비친 붉어진 귓불을 보자 다시 고개가 숙여졌다.그날 박이준은 방과 후 취미 수업에 가느라 별장에 없었다.식사를 마친 강채원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박도현에게 어떻게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할지 계속 고민했다.어젯밤 임지환이 꾸민 함정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도, 술에 취한 자신을 보살펴 준 것도 모두 박도현이었다.하지만 옷을 갈아입은 일이 떠오르기만 하면 감사하다는 말이 목에 걸린 듯 나오지 않았다.방으로 돌아온 강채원은 침대에 누웠다. 머리가 베개에 닿자 다시 잠이 쏟아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잠들었다.한참 후 문밖에서 들려온 노크 소리와 박이준의 목소리 때문에 그녀는 잠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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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텅 빈 복도로 나온 강채원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난간 위에 손을 얹고 계단을 하나 내려갈 때마다 심장이 더 세차게 뛰었다.아래층에서는 여전히 박이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식탁 의자에 앉아 짧은 다리를 흔들면서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모양이었다.박이준 맞은편에 앉은 박도현은 이미 편안한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담담한 얼굴로 박이준의 수다를 들으며 간간이 대꾸했다.여기까지는 꽤 화목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얼굴이 새빨개진 강채원이 계단 앞에 나타나자 박이준의 수다가 뚝 끊겼다.박이준은 곧장 의자에서 뛰어내려 강채원에게 달려와, 고개를 들고 반짝이는 두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누나, 푹 쉬었어요?”박이준은 강채원의 붉어진 얼굴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누나, 어디 아파요?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졌어요?”그 말이 끝나자마자 강채원은 박도현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느꼈다.박도현은 고개를 들어 강채원을 보더니 천천히 일어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물었다.“왜요? 어디 불편해요?”그제야 강채원은 사라졌던 목소리를 간신히 되찾은 것처럼 겨우 입을 열었다.“저, 저는 괜찮아요.”목소리가 먹먹하고 거칠게 갈라졌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미간을 찌푸렸다.특히 박이준은 강채원이 정말로 아프다고 더욱 확신했다.“누나,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픈 거예요? 아빠한테 병원 데려다 달라고 할까요?”강채원이 무슨 말을 하려던 참에 박도현이 먼저 다가왔다.그는 몇 걸음 만에 강채원 앞에 다가와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그녀의 이마에 가져갔다. 열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강채원은 온몸을 굳혔다가 본능적으로 반걸음 물러나 그의 손을 피했다. 괜히 살이 닿는 것이 불편했다.너무도 분명한 회피였다. 박도현의 손은 허공에 그대로 멈췄고, 눈빛은 조금 어두워졌다.“정말 괜찮아요?”박도현은 뭔가를 살피듯 물으며 붉어진 강채원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숙취가 있으면 몸이 쉽게 약해져요. 억지로 참지 말아요.”박이준도 강채원의 옷자락을 꼭 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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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박이준은 입술을 삐죽이고는 고개를 들어 박도현을 원망스럽게 쳐다봤다.“그런데 오늘 아침에 아주머니한테 들었는데 아빠가 누나를 안고 왔다면서요? 누나, 무슨 일이 있었어요? 어디 다쳤어요?”아이의 천진난만한 질문이 두 사람 사이에 폭탄처럼 떨어졌다.강채원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고, 머리를 푹 숙인 채 박도현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늘 담담하던 박도현마저 표정이 어색해졌다.그는 헛기침하고 박이준의 부드러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무슨 소리야? 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아빠에게 혼이 난 박이준은 당연히 억울했다.박이준은 콧방귀를 뀌고는 다시 머리를 돌려 강채원을 바라보았다.호기심을 참지 못한 아이는 볼을 부풀리고 강채원의 소매를 꼭 잡은 채 놓지 않았다.“정말이에요. 아주머니가 그랬어요. 누나가 어제 술에 취해서 계속 떼썼다고도 했어요.”악의 없는 몇 마디가 강채원이 애써 감추던 창피한 사정을 낱낱이 드러내 버렸다.강채원은 귓불까지 화끈거렸다.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고 고개는 점점 더 숙여져 마치 얼굴을 옷깃 속으로 숨길 것만 같았다.강채원은 곁눈질로 박도현을 살짝 흘겨보았다. 박이준에게 미리 입단속을 시켜 놓지 않았느냐고 원망하는 듯한 눈빛이었다.그 시선을 받은 박도현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간질거렸다. 그는 헛기침을 한 뒤 허리를 굽혀 박이준의 손을 잡고 한결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됐어. 어린애가 왜 그런 것까지 다 캐묻는 거야? 누나가 왔으면 된 거잖아. 그만하고 밥 먹자.”그러고는 박이준을 돌보는 가정부 쪽으로 고개를 돌려 목소리를 낮췄다.“이준이가 한창 뭐든 궁금해할 나이인 건 알지만, 그렇다고 무슨 일이든 다 말해 주지는 마세요. 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해서 괜히 엉뚱한 생각을 하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으니까요.”가정부는 난처한 듯 웃었다.그저 박이준 앞에서 어젯밤 일을 무심코 한 번 언급했을 뿐인데, 아이가 이렇게 또렷하게 기억할 줄은 몰랐다. 더구나 강채원과 박도현 앞에서 직접 물어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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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식사가 끝나자 가정부는 박이준을 데리고 낮잠을 재우러 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넓은 거실에는 강채원과 박도현 단둘만 남았다.강채원은 숨 쉬는 것조차 불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멀찍이 앉아 있는 박도현을 바라보았다.박도현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미간을 찌푸린 모습으로 보아 업무를 처리하는 것 같았다.강채원은 다시 시선을 거두고 숨소리마저 죽였다.학교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강채원은 마음이 단순한 편이라 저도 모르게 자꾸만 박도현을 쳐다봤다. 박도현은 처음부터 눈치챘지만 일부러 모른 척하며 강채원이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겁도 참 많네.’박도현의 눈에 잠깐 웃음기가 스쳤다. 그는 강채원의 행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람처럼 계속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강채원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며 망설이는 시선으로 자꾸만 현관 쪽을 바라봤다.별장은 너무도 조용했다. 박도현이 가끔 휴대전화 화면을 넘기는 소리와 자신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둘만 있는 분위기가 묘하게 어색했다. 어젯밤 술에 취해 자제력을 잃었던 일, 박도현에게 안겨 돌아온 일, 누군가 잠옷으로 갈아입혀 준 일까지 한꺼번에 강채원의 머릿속을 휘저었다.강채원은 안절부절못했다. 푹신한 소파조차 바늘방석처럼 느껴졌다.정말 더는 여기에 있을 수 없었다.한참을 망설인 끝에 강채원은 마침내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이준이 아버님.”박도현은 곧바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강채원을 올려다보았다.그는 담담한 눈빛으로 강채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왜요?”그 눈길을 받자 겨우 가라앉혔던 민망함이 다시 밀려왔다.“이준이 아버님. 저, 저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서요. 오늘 저녁에 학교에서 할 일이 있어요. 내일 다시 와도 될까요?”겁이 많은 강채원은 지금 당장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루 이틀만이라도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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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강채원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이준이 아버님, 무슨 말씀인지는 알아요. 하지만 정말 학교에 급한 일이 있어요. 지금 안 가면 늦을 것 같아서요. 일단 가 봐도 될까요? 다른 이야기는 제가 내일 돌아와서 다시 나눠요.”박도현은 강채원이 피하는 모습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그는 더 이상 진위를 캐묻지 않았고 일부러 난처하게 만들지도 않았다.“그래요.”박도현은 평온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돌아가고 싶으면 가세요.”그 말을 들은 강채원은 순식간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긴장했던 몸을 조금 풀었다.붉게 달아올랐던 얼굴도 조금은 가라앉았다.강채원은 얼른 고개를 들어 감사한 눈길을 보냈다.“이준이 아버님. 감사합니다.”박도현은 일어서서 옷매무새를 가볍게 정리했다.“기사를 시켜 학교까지 데려다주라고 할게요.”강채원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택시를 타고 가면 돼요. 먼 길도 아닌데 기사님까지 번거롭게 해 드릴 필요 없어요.”강채원은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박도현에게 더 신세 지고 싶지도, 그와 단 1초라도 더 함께 있고 싶지도 않았다.하지만 박도현은 사양하는 말을 듣지 않고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사양하지 말고 기다려요.”평소보다 차갑게 들리는 목소리에 강채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히 더 거절하지 못했다.강채원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그 자리에 서서 얌전히 기다렸다.거실에는 바늘이 떨어져도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두 사람 모두 입을 열지 않았다.몇 분도 지나지 않아 밖에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박도현은 고개를 돌려 강채원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꼭 깨물고 있는 입술에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향했다.“가죠. 문 앞까지 바래다줄게요.”강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강채원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박도현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저택 대문에 이르자 밤바람이 불어왔다. 그제야 강채원은 온종일 팽팽했던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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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하루 종일 마음을 괴롭혔던 민망함과 부끄러움, 당황스러움이 교정에 발을 들이는 순간 모두 사라졌다.강채원은 교문에 들어선 후 다른 학생들과 함께 캠퍼스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곧장 기숙사로 돌아가지는 않고 방향을 틀어 도서관으로 향했다.막 도서관에 들어서려는 순간, 등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잠깐만, 강채원.”강채원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천천히 돌아섰다.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미 누군지 알아차렸다. 임지환이 아니면 누구겠는가.지난 술자리에서 자신을 작정하고 취하게 만든 일을 떠올리니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평소 남들에게 불쾌한 기색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강채원이었다. 임지환은 그녀가 대놓고 표정을 굳히게 만든 첫 번째 사람이었다.“무슨 일인데?”강채원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임지환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매우 노골적이었고,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임지환은 강채원을 붙잡기 위해 오늘 오후 내내 교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어제저녁 보았던 광경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임지환은 생각할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그렇게 오래 강채원에게 매달렸지만 가까워질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는 그녀가 다른 남자의 품에 쓰러져, 그 남자에게 손쉽게 안겨 가는 것을 눈으로 보았던 것이다.열등감과 분함이 임지환의 마음을 완전히 뒤틀어 놓았다.“이제야 돌아오는 거야? 그 남자 별장에서?”임지환은 두 걸음 앞으로 다가가 강채원을 바짝 압박하며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의외네, 강채원. 평소에는 차갑게 굴면서 누구도 가까이 못 오게 하더니, 뒤로는 돈 많은 남자한테 아주 잘 붙어 다니나 봐?”강채원은 순간 멍해졌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몇 초가 지나서야 강채원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임지환, 그게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임지환은 코웃음을 치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강채원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사람들이 오가는 도서관 앞에서 두 사람의 실랑이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강채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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