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간다. 나가면 될 거 아니야, 이 개자식아.”설주는 203호 문턱을 넘어선 뒤에야 자신이 정말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복도는 여전했다. 문마다 번호판이 붙어 있고, 멀리서 청소 카트 바퀴가 타일 틈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등 뒤가 계속 따가웠다. 태건이 따라 나올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적어도 이름이라도 부르지 않을까.그 생각 자체가 역겨워서 설주는 구두 뒤축으로 바닥을 세게 찍었다. 방 안에서는 공구 부딪히는 소리만 나더니, 이내 203호 문이 닫혔다.그게 끝이었다.설주는 멈춰 서서 203호 문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았다. 나가라 해놓고는 정말로 자기가 떠난 자리를 확인하러 오지도 않는 놈이었다. 가서 따질까 싶었지만, 곧 몸을 돌렸다.“허, 지랄하고 있네.”붙잡지 말라고 한 건 자기였다. 가족이라는 선을 넘지 말자고 먼저 떠든 것도 자기고, 태건이 길을 막지 않은 걸 안도해야 하는 것도 자기였다. 그런데 그 새끼는 그대로 해 줬고, 설주는 입안에 씹어 뱉을 욕부터 찾았다.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일부러 발걸음을 늦췄다. 난간에 말라붙은 걸레 자국이 손에 묻었고, 1층에서는 정옥이 손님에게 체크아웃 시간을 설명하고 있었다. 태건의 작업화 소리가 계단을 밟으면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날에도, 새벽에 화장실 내려갈 때에도 익숙했던 그 발소리.그런데 끝내 들리지 않았다.설주는 프런트를 지나 세탁실로 들어갔다. 빨랫감 바구니를 발로 밀어 문을 가렸지만,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누가 지나가면 알 수 있게 틈을 남겨 뒀다. 그 짓을 하고 나서야 자기가 얼마나 구차한지 깨달았다.세탁기 두 대가 번갈아 돌아가며 바닥을 울렸다. 벽에 붙은 종이에는 세제 비율이 적혀 있었고, 바구니마다 객실 번호가 달려 있었다. 설주는 분류 끝난 수건을 다시 펼쳐 길이를 맞췄다. 접었다 펴고, 또 접었다. 손으로 일을 하면 머리가 조용해질 줄 알았다.수건 다섯 장을 정돈하고 여섯 번째를 집어 들었을 때, 그게
Last Updated : 2026-10-1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