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나보고 그 여자한테 무슨 말을 하라고?”태건이 휴대전화를 내민 채 기다렸다. 통화 너머에서 여자가 또 물었고, 설주는 한순간 대꾸할 뻔했다. 당신은 저 새끼랑 무슨 사이길래 점심마다 전화질이냐고. 그렇게 내뱉는 순간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얼마나 한심한지, 그년도 금방 알아들을 터였다.마당에 세탁기 호스가 뱀처럼 처져 있었고, 한낮 볕에 젖은 시멘트에서 비린내가 올라왔다. 건조대 수건들이 설주의 팔꿈치를 스쳤다. 그녀는 한 발 물러섰다. 태건의 전화기에 귀를 댈 생각은 없었는데, 여자가 웃을 때마다 더 듣고 싶어졌다.“여보세요? 태건 씨, 안 들려요?”설주는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대신 태건의 손목을 낚아채 전화기를 밀어냈다. 태건이 통화를 끊었다. 화면에 여자 이름이 잠깐 떴지만 설주는 이미 고개를 돌린 뒤였다.“누구냐고.”“아까는 받기 싫다며.”“내가 그년이랑 왜 통화를 해? 너한테 묻는 거야.”태건은 호스를 발로 밀어 치웠다. 설주는 그 느긋한 태도가 더 열받았다. 현관에서 손님 캐리어가 지나가고, 정옥이 열쇠 찾는 소리가 났다. 태건은 손을 씻으며 말했다.“일 아는 사람이야. 됐어?”“일하는 년이 밤에 만나자고까지 해?”“저녁 먹자는 게 뭐가 문제야.”설주는 그가 내민 수건을 세게 잡아채며 말했다.“네가 어디서 누구 좆을 빨든 상관없어. 그런데 집까지 전화 끌고 들어오지는 마.”“여기가 내 집이기도 하잖아.”태건이 수건을 되찾아 손을 닦았다. 설주가 진짜 못마땅한 건 여자 목소리가 들린 게 아니라, 그 소리를 듣고도 “그만해”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 앞에서 누나는 언제나 먼저 대답해야 했고, 밥 차리고, 약 찾아주고, 귀가 시간 묻는 건 가족이라는 이유로 허락됐지만, 그 이상은 아무도 묻지 않았다.돌아온 지 며칠밖에 안 됐는데, 밤새 켜 둔 거실 불, 데워 놓은 국, 정옥에게 한 거짓말이 벌써 한 무더기였다. 들키면 누가 제일 먼저 설주를 경멸할까. 자신은 이미 시작한 뒤였다.“누나, 내 연
Last Updated : 2026-10-1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