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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서연 언니, 언니가 속으로 절 무시하고 계신 거 알아요. 분명 욕도 하고 계시겠죠. 하지만 제가 아무리 나쁜 여자라도 뱃속의 아이는 아무 잘못도 없잖아요!”고다은은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며 눈물을 훔쳤다. 사람이라도 찔러 죽일 듯 뾰족한 턱 끝까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고는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말했다.“제 뱃속에는 호준 오빠 아이가 있어요. 언니는 아이를 못 낳으시잖아요. 오빠한테도 자기 아이를 가질 기회를 주시면 안 돼요?”그 가련한 모습에 맞은편에 있던 나조차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정말 내 도덕적 기준이 너무 높은 걸까?’순간 내가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젊은 부부를 어떻게든 갈라놓으려는 옛날 못된 지주라도 된 기분이었다.“다은이 너한테 말하잖아. 이쯤에서 받아들일 기회를 주는 건데, 얼른 그러겠다고 해!”고다은 앞이라 그런지 강호준의 태도는 눈에 띄게 누그러져 있었다. 강호준은 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다급하게 말했다.“뱃속의 아이는 아직 작고 심장 박동도 불안정해. 다은이 마음 졸이게 하면 안 된다니까!”강호준이 저렇게 초조해하니 오히려 내가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됐어도, 강호준의 말대로 나는 한 번도 임신한 적이 없었다.“서연 언니, 제발 받아들이겠다고 해 주세요!”고다은이 눈물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눈물은 아깝지도 않은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두 사람이 몰아붙이는 걸 보며 문득 깨달았다. 이 집에서 남인 건 나였다.“아주 성인군자들 나셨네. 남의 남편 아이까지 배서 찾아와 놓고, 내가 두 팔 벌려 받아들이기까지 해야 해? 그게 말이 돼? 강호준, 사람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나는 자기들이 옳은 말이라도 하는 양 구는 저 ‘한 가족’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성인군자는 무슨! 헛소리 그만하고 다은이 말대로 하겠다고 해!”강호준의 얼굴에서 다정함이 사라졌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호통쳤다.“오빠, 그냥 내가 나갈까 봐. 서연 언니는 아직 나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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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고다은은 말을 마치고 빨간 보석함을 내 손에 억지로 쥐여 줬다.그 모습을 보자 줄곧 강경한 태도를 보이던 강호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다.강호준은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이 귀걸이를 받지 않으면 무슨 큰 죄라도 짓는다는 듯이.나는 무표정하게 귀걸이를 받아 들었다.어릴 때부터 고급 장신구를 접해 온 터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정성껏 골랐다는 귀걸이는 길거리 액세서리 가게에서나 팔 법한 싸구려였다.원가도 1,000원이 채 안 될 것 같았다.“보석 가게에 가서 날 위해 정성껏 골랐다는 게 이거야?”나는 보석함에서 귀걸이를 꺼냈다. 강호준이 보는 앞에서 귀에 대 보기까지 했다.하지만 내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스친 건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네, 맞아요! 언니 드리려고 특별히 골랐어요. 저도 정말 마음에 드는데, 아까워서 하지도 못했어요.” “언니한테 얼마나 잘 어울리는데요. 얼른 끼고 오빠한테 보여 주세요!”내가 귀걸이를 귀에 대자 고다은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들뜬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내가 귀걸이만 끼면 강호준과 극적으로 화해하고, 앞으로 세 사람이 평화롭게 살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됐어. 이렇게 귀한 데다 네가 그렇게 아끼는 걸 내가 어떻게 뺏겠어.”나는 귀걸이를 다시 보석함에 넣고 고다은의 손에 쥐여 줬다.“다은아, 이 반지는 늘 끼고 다니는 걸 보니까 별로 비싼 것도 아닌가 보네. 그냥 이걸 받을게.”말을 마치며 고다은의 손가락에서 비둘기 알만 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쓱 빼냈다.“서, 서연 언니, 그 반지는 싸구려예요. 이렇게... 이렇게 싼 걸 어떻게 선물로 드려요. 며칠 뒤에 제가 다시 골라 드릴게요!”갑자기 반지를 빼앗기자 고다은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고다은은 황급히 내 손에서 반지를 낚아챘다.그 반지는 강호준이 고다은의 임신을 축하하려고 사람을 시켜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산지에서 특별히 구해 온 최상급 다이아몬드였다.무려 10만 달러나 주고 산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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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아악!”내 손바닥이 뺨에 닿자 고다은은 가냘픈 목소리조차 낼 수 없다는 듯 한껏 과장된 비명을 질렀다.눈앞의 여자를 보니 속이 메스꺼웠다. 어쩐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린다 싶더라니. 저렇게 한시도 연기를 멈추지 않는 재주는 내게 없었다.당사자인 고다은은 물론이고 강호준도 내가 고다은의 뺨을 때릴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고다은은 겁에 질린 얼굴로 강호준의 품에 와락 안겨서 펑펑 울었다.“미쳤어? 다은이 뱃속에 애가 있잖아!”강호준은 고다은을 품에 끌어안고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그 여자가 임신 중이면, 난 네 법적인 아내야! 상간녀 감싸겠다고 아내한테 몇 번씩이나 손을 대다니, 대체 누가 미쳤다는 거야?”나는 온몸으로 연기하는 것 같은 고다은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잊지 마. 난 강호준 네 아내이기 전에 심씨 집안 딸이야.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너 같은 데릴사위가 감히 날 짓밟아?”내 말을 듣고 얼어붙은 강호준과 그 품에 안긴 고다은을 보고 있자니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생각해 보니 둘 다 뺨에 손바닥 자국을 하나씩 달고 있으니 제법 잘 어울렸다.강호준은 세원그룹을 사실상 빈껍데기로 만들어 놓았지만, 내 말을 듣자 눈에 띄게 당황했다.우리 집안은 이 도시에서 오랫동안 기반을 다져 왔다. 아직 우리에게 어떤 수단이 남아 있을지 강호준이 어떻게 알겠는가?그런데도 고다은 앞이라 당당한 척은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지 억지로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속으로 갈등하는 게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서 보고 있자니 우습기 짝이 없었다.“서연 언니, 어제 오빠도 일부러 언니를 때리려던 건 아니에요. 순간 욱해서 그런 거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고다은은 뺨을 맞고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불쌍한 척 동정을 구하고 있었다.역시 젊어서 그런지 머리 하나는 잘 돌아갔다. 방금 뺨을 때린 나는 이제야 조금 화가 가라앉은 참이었다.이때 약한 모습을 보이며 불쌍한 척하면 의외로 먹힐 수도 있었다.보통 사람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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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심서연, 지금 뭐 하는 거야?”집 안으로 들이닥친 건장한 남자들을 보자 강호준은 크게 당황했다. 나를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벌써부터 왜 이래? 이건 시작에 불과한데.”나는 조금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볍게 정리하고 차갑게 웃었다.“5분 뒤면 후회하게 해 준다며? 어디 말해 봐. 내가 어떻게 후회하게 되는데?”“서연아, 호준이는 어릴 때부터 말은 좀 험하게 해도 마음은 착한 애야. 널 해치려던 건 아니니까 제발 진정해!”갑자기 들이닥친 경호원들 때문에 이정숙도 당황했다. 황급히 내게 다가오는 그녀의 눈에는 아들 걱정이 가득했다.“어머니, 제가 오늘 미리 경호원들을 준비해 두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카드 몇 개 정지시켰다는 이유로 어머니도, 아버님도, 강호준도 절 가만두지 않으셨겠죠?”나는 가식적인 시어머니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서연아, 우, 우리가 언제 그랬다고...”정곡을 찔린 이정숙은 기세가 꺾이면서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조금 전까지 강호준의 팔을 끌어안고 애교를 부리던 고다은은 경호원들을 보자마자 멀찌감치 거실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조금이라도 위협을 받을까 봐 두려운 모양이었다.나는 천천히 고다은에게 다가갔다. 경호원 두 명에게 붙잡힌 강호준을 가리키며 물었다.“고다은, 강호준은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오빠 아니야? 그 오빠가 저러고 있는데 넌 왜 여기 숨어 있어?”“저, 저는... 일부러 숨은 게 아니에요. 저도 오빠를 걱정해요. 하지만 뱃속에 오빠 아이가 있는데 함부로 움직일 순 없잖아요.”고다은은 말까지 더듬으며 나와 강호준을 번갈아 바라봤다. 몸도 덜덜 떨고 있었다.“할 말이 있으면 나한테 해. 다은이 괴롭히지 말고!”강호준은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내가 고개 숙이고 잘못했다고 했잖아. 나랑 다은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만족하겠어!”내 말에 강호준이 또다시 폭발했다. 어떻게 해야 내가 이 상황을 받아들일지 모르겠는지, 아예 가식마저 벗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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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내가 따져 묻자 강호준이 그 자리에 선 채 잠시 굳어 버렸다. 조금 전까지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말까지 더듬었다.고다은의 배 속 아이가 자기 아이인지 강호준도 완전히 확신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강호준은 몸부림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구석에 있던 고다은도 벌떡 일어났다. 내 팔을 거칠게 밀쳐 내더니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호준 오빠, 내 뱃속의 아이는 오빠 아이야. 심서연 헛소리 듣지 마! 잊었어? 그날 밤 호텔에서...”“고다은, 이 와중에도 순진한 척이야? 그런 내숭에 남자들은 속아 넘어가도 난 안 속아.”나는 싸늘하게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강호준 곁으로 천천히 다가가서 물었다.“우리가 그동안 왜 아이가 없었는지 알아?”“왜긴 왜야! 네가 임신을 못 하니까 그렇지! 아이도 못 낳는 여자를 데리고 살아서 뭐 하겠어!”강호준이 얼굴을 붉힌 채 욕설을 퍼부었다.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웃음이 났다. 나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자기 씨앗에 문제가 있는 줄은 모르고 땅만 탓하는 인간들이 있지. 그런 인간은 바람을 피운 여자한테 똑같이 배신당해도 싸.”“심서연, 똑바로 말해. 그게 무슨 뜻이야?”강호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슥!나는 주머니에서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강호준의 눈앞에 높이 치켜들고 차갑게 말했다.“몇 년 동안 임신이 안 되니까 나도 내 문제인가 싶었어. 그래서 병원도 여러 군데 다니면서 검사를 받았는데, 내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대.”“그래서 너랑 잠자리를 가진 뒤에 네 정액을 몰래 받아서 병원에 검사를 맡겼어.”“결과가 어땠을 것 같아?”내가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까지 할 줄은 몰랐는지 강호준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래, 다들 짐작하는 그대로야! 네 정액에는 정자가 하나도 없었어. 단 하나도!”나는 검사 결과지를 강호준의 얼굴에 거칠게 내던졌다. 그러고는 경멸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그동안 네 체면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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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오빠, 정신 차려! 심서연 저 못된 여자가 거짓말하는 거잖아. 오빠를 흔들어 놓으려고 그러는 건데 아직도 모르겠어?”그때 곁에 있던 고다은이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임신 중이라는 사실도 잊은 듯 미친 듯이 강호준에게 달려갔다. 강호준의 손을 덥석 잡아서 자기 배에 올려놓으며 말했다.“저런 검사 결과지쯤이야 나도 1분이면 조작할 수 있어. 저게 무슨 소용이야? 설령 다 사실이라고 해도, 세상에는 기적이라는 게 있잖아!”“말기 암 환자도 살아나는데, 오빠처럼 멀쩡한 남자가 왜 날 임신 못 시키겠어?”“침대에서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어떻게 애 하나 못 만드는 고자겠어? 날 믿어. 내 배를 만져 봐. 이 아이가 바로 오빠한테 찾아온 기적이야!”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강호준에게는 고다은의 말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리는 모양이었다.삶의 목표를 모두 잃은 듯했던 눈빛에 다시 희망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맞아, 맞아! 세상에 기적이 얼마나 많은데, 나한테 기적이 일어나지 말란 법 있어? 이건 내 기적이야!”강호준이 다시 바닥에서 일어났다. 기쁨에 찬 얼굴로 곁에 선 고다은을 바라봤다.“다은아,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당연하지. 오빠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남자인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어!”고다은이 백조처럼 하얀 목을 꼿꼿이 세웠다.“좋아! 그 말이면 됐어.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후회 안 해!”강호준이 나를 사납게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심서연, 너 정말 독한 여자구나. 하마터면 네 말에 속아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다은이를 오해할 뻔했잖아!”“제일 사랑하는 다은이? 이제 대놓고 말하겠다는 거야?”나는 다시 기세등등해진 강호준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그래, 이제 다 말할게. 내가 너 반드시 후회하게 만든다고 했지!”강호준의 얼굴에 다시 원망과 독기가 서렸다. 핸드폰을 쥔 채 나를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었다.“심서연, 아직도 모르지? 세원그룹은 내가 이미 빈껍데기로 만들어 놨어. 내 전화 한 통이면 네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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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강호준의 말에 전화 너머의 젊은 남자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잠깐 생각을 정리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 방금 거래처에서 잇달아 전화가 왔는데, 저희가 계약 사기를 쳤다면서 거래를 중단하겠답니다.]“뭐... 뭐라고?”조금 전까지 남더러 침착하라던 강호준이 이제는 말을 더듬었다. 아까 전화를 걸어온 비서보다 더 당황한 모습이었다.이 모든 일을 꾸민 장본인인 만큼 거래 중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강호준도 잘 알고 있었다.[거래 중단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변호사 명의로 통지서까지 보내서 수십억 원의 위약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저희 회사 계좌에 그만한 돈이 없다는 겁니다.]전화를 건 비서는 정말 훌륭한 직원이었다. 강호준이 시킨 대로 아주 철저하게 잘 행동하고 있었다.전화 너머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다.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반면 강호준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조금 전과는 딴사람이 돼 있었다.“왜... 왜? 대체 왜 그러는데? 계약까지 다 했잖아! 자기들 마음대로 거래를 끊으면 그쪽도 계약 위반 아니야?”강호준은 눈을 크게 뜬 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거래처들한테 들었는데, 다들 대표님이 세원그룹을 전적으로 대표할 권한이 있는 줄 알고 계약했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일제히 통보를 받았대요. 대표님은 세원그룹의 책임자도 아니고, 위임장조차 없다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그래서 다들 대표님이 심 대표님 남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거래 사기를 쳤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법적 대응을 위해 자료를 모아서 경찰에 신고할 준비를 하는 곳도 있고요.][거래처들은 저희 계약서를 돌려보냈지만, 저희는 아직 세원그룹과 물품 계약이 남아 있습니다.] [미지급 잔금만 해도 수십억 원이고요. 이대로 가면 거래처들뿐 아니라 세원그룹에도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합니다.][게다가 심 대표님이 세원그룹 경영에 복귀해 반대 세력을 정리하고 경영권을 다시 장악하려 한다는 소문도 다들 들었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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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누구... 누구야... 대체 누가 이렇게까지 한 거야... 해도 해도 정도가 있지. 이건 아예 살 수 있는 기회조차 안 주겠다는 거잖아...”사실상 모든 게 끝났다는 소식에 강호준은 손바닥으로 바닥을 몇 번이나 세게 내리쳤다.핏발 선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이 마치 곁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죄인 취급하는 듯했다.하지만 나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양재민이 하룻밤 사이에 해낸 일이었다.떠나면서 연락을 기다리라고 한 것도 분명 이 일 때문이었겠지.“심서연, 이거 다 네가 한 거지?”그제야 강호준은 곁에 서 있던 내 존재를 떠올린 듯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꼭 악마와도 같았다.“글쎄? 정말 내가 한 걸까?”내가 직접 한 일은 아니었지만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강호준을 차갑게 바라봤다.“여자가 독해도 유분수지! 심서연, 어떻게 이렇게 모질 수가 있어? 이런 짓을 하기 전에 우리가 몇 년이나 부부로 살았는지 생각도 안 해 봤어?”“하하하! 강호준, 내가 잘못 들었나? 지금 나한테 부부의 정을 운운하는 거야?”나는 차갑게 웃었다.“네 첫사랑이랑 호텔에 드나들 때는 우리 부부의 정을 생각했어?”“내... 내가 바람을 피운 것도 다 이 집안을 위해서였어! 너희 심씨 집안에 아이 하나 낳아 주려고 그랬다고!”강호준이 나를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듣고 있자니 상식이 통째로 무너지는 기분이었다.“우리 집안에 아이를 남겨 줘? 아이고, 고마워라. 난 필요 없으니까 그 호의는 다른 사람한테나 베풀어.”나는 고다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직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덜덜 떨고 있는 고다은의 아랫배에 가볍게 손을 댔다.“애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생아는 갖고 싶은 사람이나 가지라지.”“심서연, 손대지 마!”내가 고다은의 배를 만지자 강호준이 발끈하며 소리쳤다.“그래, 이 못된 여자야. 우리 손주한테서 떨어져!”이정숙과 강동식도 황급히 다가와 나를 고다은에게서 억지로 떼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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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강호준이 나를 바닥에 짓누르고 다른 두 사람까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보자, 양재민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곧장 내게 달려왔다.“우리 집안일이야! 당신이 끼어들 일이 아니라고!”기세 좋게 다가오는 양재민을 보고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이정숙은 경호원들의 다리를 놓고 양재민 쪽으로 기어갔다.쿵!하지만 양재민은 바닥에 엎드린 이정숙을 상대하지 않았다. 자기 다리를 붙잡으려는 손을 발로 걷어찼다.“이건 집안일이 아니라 불법 감금이에요!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해서 잡혀가게 할 수도 있다고요!”이정숙은 양재민이 자신에게 손을 댈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발길질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너무 놀라서 멍해졌다.“너... 너 누구야? 감히 우리 엄마를 때려? 죽고 싶어!”양재민과 나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지만, 결혼한 뒤로는 오해를 살까 봐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강호준도 당연히 양재민을 본 적이 없었다.어머니가 양재민을 막지 못하자, 강호준은 얼른 내 몸 위에서 일어나면서 그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다.“죽고 싶은 건 너 같은데? 감히 내 여자한테 손을 대?”퍽!야구 방망이보다도 굵은 양재민의 팔이 번쩍 들렸다. 곧이어 주먹이 강호준의 얼굴에 거칠게 꽂혔다.“으아아악!”강호준이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입가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똑똑히 들어. 오늘 너희를 때려죽이는 한이 있어도, 나 양재민은 그만한 돈 물어줄 능력이 있으니까!”양재민은 바닥에 주저앉은 나를 잡아 일으켰다. 곧바로 품에 끌어안으며 물었다.“서연아, 누가 너한테 감히 이런 짓을 했어?”갑자기 벌어진 일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아서 그저 손을 들어서 강동식을 가리켰다.“가서 저 사람 붙잡으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양재민은 뒤에 서 있던 우리 회사 경호원들을 바라봤다. 그 눈길에 마음이 놓였다.“예!”두 경호원도 진작부터 강씨 집안 사람들이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다만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져 줄 사람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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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저게 대학까지 나온 회사 임원 입에서 나올 소리야?’학교 문턱에도 못 가 본 시골 할머니보다도 입이 더 험했다.양재민은 원래 두 사람을 붙잡아 뒀다가 화가 좀 가라앉으면 풀어줄 생각이었다.하지만 강호준이 욕설을 퍼붓는 걸 듣고 있자니 양재민은 물론이고 나조차 참기 힘들었다.“때릴 거야?”나는 양재민의 품에 기댄 채 고개를 들고 그의 단단한 턱선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자식은 맞아서 정신 차리기 전엔 평생 그 입 못 고쳐.”양재민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강호준을 붙잡고 있는 경호원에게 소리쳤다.“한 대에 십만 원!”“예!”경호원은 곧바로 기운이 난 듯했다. 밀대만큼이나 굵은 손가락을 쫙 펴더니 이미 벌겋게 부어오른 강호준의 뺨을 거세게 후려쳤다.짝!나와 양재민이 때렸을 때보다도 훨씬 강한 한 대였다.퉤!강호준은 뺨을 맞고 잠시 멍해졌다가 곧바로 피가 섞인 가래를 뱉었다.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가래와 함께 부러진 어금니 조각까지 튀어나온 것이다.“계속... 때릴까요?”강호준의 이가 부러지자 경호원도 멈칫했다. 고개를 돌려 나와 양재민을 봤다.“이 X발 새끼야! 감히 날 때려? 너 죽고 싶어?”양재민이 대답하기도 전에 강호준이 다시 악을 쓰며 욕설을 퍼부었다.“때려요. 저 입에서 더는 욕이 안 나올 때까지.”양재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강호준을 더는 보고 싶지 않은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짝!거실에는 날카로운 뺨 때리는 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강동식과 이정숙은 그 모습을 보고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다음은 자기들 차례가 될까 봐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고다은은 우리가 자신에게 눈을 돌릴까 봐 두려운 듯 거실 구석에 몸을 숨겼다.그렇게 꼬박 6분 동안 뺨을 때렸다. 강호준의 눈에 초점이 흐려지고 나서야 묵묵히 손을 휘두르던 경호원이 멈췄다.“이쯤 하면 된 것 같습니다. 더 때렸다간 이 자식 평생 말도 못 하겠습니다.”경호원은 손을 내리며 어딘가 아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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