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 오늘만큼은."아버지의 목소리는 낮았다. 신부 대기실 거울 속에서 한서윤은 자기 얼굴을 낯선 사람처럼 바라봤다. 순백의 드레스, 진주를 엮은 베일, 목덜미를 따라 정돈된 머리카락. 삼 주 동안 피팅을 다섯 번이나 했는데도 이 드레스는 여전히 남의 옷 같았다."웃고 있어요.""눈은 안 웃잖니.""아빠. 나 괜찮아."거짓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절반은.그 남자와의 결혼이었다면."신부님, 입장하실게요."진행 요원의 목소리에 서윤은 숨을 골랐다.호텔 그랜드볼룸의 문이 열렸다.샹들리에 아래로 하얀 꽃길이 길게 뻗어 있었다. 정재계 인사 오백여 명의 시선이 일제히 쏟아졌고, 카메라 셔터 소리가 빗소리처럼 쏟아졌다. 서윤은 아버지의 팔에 손을 얹고 첫걸음을 뗐다.버진로드 끝에 강태준이 서 있었다.같은 얼굴, 같은 키, 같은 검은 턱시도. 반듯하게 넘긴 머리와 날카로운 턱선까지. 그런데 세 걸음쯤 걸었을 때, 서윤의 발이 아주 미세하게 느려졌다.다르다.무엇이 다른지 머리보다 눈이 먼저 알았다. 그녀는 매일 수백 년 된 그림 위에서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균열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붓질의 방향, 덧칠의 두께, 원작자의 습관. 진품과 위작을 가르는 건 언제나 그런 사소한 것들이었다.남자의 왼손목이 비어 있었다.상견례에서도, 약혼식에서도 그 은색 시계는 단 한 번도 그의 손목을 떠난 적이 없었다. 결혼식 날 아침에 그 시계를 풀어둘 남자가 아니었다.시계 하나쯤이야. 서윤은 스스로를 달랬다. 긴장한 탓에 별것 아닌 게 크게 보이는 거라고.그런데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왜.'하객석에서 누군가 헛기침을 했다. 오르간 연주는 멈추지 않았다. 서윤의 다리는 저절로 앞으로 나아갔다. 여기서 멈추면 모든 게 끝난다. 아버지의 회사도, 이천 명의 월급날도.버진로드 끝. 아버지가 그녀의 손을 남자에게 건넸다.남자의 손이 서윤의 손을 감쌌다.뜨거웠다.서윤은 그 온도를 알았다. 한강 바람 속에서, 편의점 커피 캔 너머에서 몇 번이나 잡았던
Última atualização : 2026-10-20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