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몰락 직전의 건설사 딸이 정략결혼식 버진로드 끝에서 신랑이 존재조차 지워진 쌍둥이 동생으로 바뀌었다는 걸 알아챈다. 사라진 약혼자를 찾기 위해 가짜 남편과 비밀 동맹을 맺지만, 진실을 파헤칠수록 누가 그녀를 지키고 누가 그녀를 이용했는지 모든 것이 뒤집힌다. "소리 내지 마. 모른 척해. 안 그러면 형이 죽어." 아버지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재벌가 후계자 강태준과 정략결혼을 택한 한서윤. 그런데 결혼식 날, 버진로드 끝에 선 신랑은 그녀의 약혼자가 아니었다.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 하지만 그는 태어나자마자 존재가 지워진 쌍둥이 동생, 강태하였다. 사라진 약혼자를 찾기 위해 가짜 남편과 맺은 비밀 동맹. 사람들 앞에서만 부부인 척하기로 했는데, 왜 그의 키스가 이렇게 익숙한 걸까.
Lihat lebih banyak"웃어. 오늘만큼은."
아버지의 목소리는 낮았다. 신부 대기실 거울 속에서 한서윤은 자기 얼굴을 낯선 사람처럼 바라봤다. 순백의 드레스, 진주를 엮은 베일, 목덜미를 따라 정돈된 머리카락. 삼 주 동안 피팅을 다섯 번이나 했는데도 이 드레스는 여전히 남의 옷 같았다.
"웃고 있어요."
"눈은 안 웃잖니."
"아빠. 나 괜찮아."
거짓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절반은.
그 남자와의 결혼이었다면.
"신부님, 입장하실게요."
진행 요원의 목소리에 서윤은 숨을 골랐다.
호텔 그랜드볼룸의 문이 열렸다.
샹들리에 아래로 하얀 꽃길이 길게 뻗어 있었다. 정재계 인사 오백여 명의 시선이 일제히 쏟아졌고, 카메라 셔터 소리가 빗소리처럼 쏟아졌다. 서윤은 아버지의 팔에 손을 얹고 첫걸음을 뗐다.
버진로드 끝에 강태준이 서 있었다.
같은 얼굴, 같은 키, 같은 검은 턱시도. 반듯하게 넘긴 머리와 날카로운 턱선까지. 그런데 세 걸음쯤 걸었을 때, 서윤의 발이 아주 미세하게 느려졌다.
다르다.
무엇이 다른지 머리보다 눈이 먼저 알았다. 그녀는 매일 수백 년 된 그림 위에서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균열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붓질의 방향, 덧칠의 두께, 원작자의 습관. 진품과 위작을 가르는 건 언제나 그런 사소한 것들이었다.
남자의 왼손목이 비어 있었다.
상견례에서도, 약혼식에서도 그 은색 시계는 단 한 번도 그의 손목을 떠난 적이 없었다. 결혼식 날 아침에 그 시계를 풀어둘 남자가 아니었다.
시계 하나쯤이야. 서윤은 스스로를 달랬다. 긴장한 탓에 별것 아닌 게 크게 보이는 거라고.
그런데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왜.'
하객석에서 누군가 헛기침을 했다. 오르간 연주는 멈추지 않았다. 서윤의 다리는 저절로 앞으로 나아갔다. 여기서 멈추면 모든 게 끝난다. 아버지의 회사도, 이천 명의 월급날도.
버진로드 끝. 아버지가 그녀의 손을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의 손이 서윤의 손을 감쌌다.
뜨거웠다.
서윤은 그 온도를 알았다. 한강 바람 속에서, 편의점 커피 캔 너머에서 몇 번이나 잡았던 손. 석 달 동안 밤마다 그녀를 찾아오던, 바로 그 손이었다.
그리고 냄새. 약혼식 날의 묵직한 향수 대신 비누와 희미한 담배 냄새가 났다. 한강을 걷던 밤의 냄새. 오늘의 그는 처음으로 밤의 얼굴을 하고 버진로드 끝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주례 앞에 섰다. 주례사가 시작됐지만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윤은 베일 너머로 남자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완벽한 강태준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눈이 달랐다. 강태준의 눈이 얼어붙은 호수라면, 이 남자의 눈은 그 얼음 밑에서 무언가가 들끓고 있었다.
"이제 신랑 신부, 서로를 마주 보시겠습니다."
남자가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하얀 장갑을 낀 손이 천천히 베일을 걷어 올렸다. 시야가 트이는 순간, 두 사람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오늘 왜 그래요. 그 한마디가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 순간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하객들 눈에는 신랑이 신부에게 애틋하게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진 기자들의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뜨거운 숨결이 귓바퀴에 닿았다.
"소리 내지 마."
낮고 갈라진 목소리. 강태준의 정돈된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그런데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
"모른 척해."
남자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목 안쪽, 맥박이 뛰는 자리를 꾹 눌렀다. 마치 그녀의 심장 소리를 세기라도 하는 것처럼.
"안 그러면 형이 죽어."
형.
그 한 글자가 서윤의 머릿속을 하얗게 지웠다.
강태준에게 형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태강그룹의 족보에도, 경제지 기사에도, 상견례 자리의 그 길고 지루한 집안 소개에도. 강태준은 외아들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신랑 강태준 군은 신부 한서윤 양을 아내로 맞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평생 사랑하고 아끼겠습니까?"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서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대답했다.
"네. 맹세합니다."
그 목소리에는 거짓이 하나도 섞여 있지 않은 것처럼 들렸다. 그게 더 무서웠다.
"신부 한서윤 양은 신랑 강태준 군을 남편으로 맞아……."
오백 명의 시선. 카메라. 하객석 맨 앞줄에서 우아하게 미소 짓고 있는 시어머니 윤미경. 그리고 그 옆, 낯선 눈빛으로 신랑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시동생 강도현.
손목 안쪽에서 남자의 엄지가 다시 한번 맥박을 눌렀다. 재촉하듯. 혹은 애원하듯.
"……맹세합니까?"
서윤은 숨을 들이켰다.
진짜 강태준은 어디에 있는가. 이 남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지난 석 달, 밤마다 그녀의 손을 잡던 사람은 대체 누구였는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단 하나만 분명했다. 여기서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누군가가 죽는다.
"……네."
박수 소리가 그랜드볼룸을 가득 메웠다.
남자가 천천히 몸을 숙였다. 서약의 키스였다. 서윤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입술은 내려오지 않았다. 대신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이마에 아주 짧게, 조심스럽게 닿았다.
석 달 전 한강에서, 그가 처음 그녀에게 입 맞추던 날과 똑같이.
서윤이 눈을 떴을 때, 남자는 이미 하객들을 향해 완벽한 강태준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쥔 채, 입술만 움직여 속삭였다.
"환영해, 형수님. 아니지."
남자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비틀렸다.
"이제 내 아내지."
서윤은 휴대폰을 쥔 채 침대에서 일어났다. 옆자리 시트는 이미 차가웠다.태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만 가다 끊겼다. 두 번, 세 번. 마지막에는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가 흘러나왔다.어젯밤 손을 잡았던 남자가, 아침에는 사라지고 없었다.하루는 지옥처럼 길었다.서윤은 한성건설 재무팀과 함께 거래 은행들을 돌았다. 대답은 모두 같았다. 태강이 손을 뗐다는 소문이 이미 업계에 돌고 있었다.같은 시각, 태강그룹 본사 32층 부회장 집무실.태하는 책상 위에 펼쳐진 결재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성건설 긴급 자금 지원 철회」. 결재란에 형의 인감이 붉게 찍혀 있었다. 그는 이 서류를 본 적도, 도장을 찍은 적도 없었다.옆구리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태하는 이를 악물고 형의 책상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잠금장치는 형의 생일이었다. 자기 생일이기도 한.검은 파일 하나가 나왔다. 표지에는 짧게 적혀 있었다.「한성건설 채권 매입 건 — 비공개」부도가 난 뒤 헐값이 된 한성의 채권을 사들이는 계획이었다. 날짜는 결혼식 석 달 전. 서윤과 약혼하던 바로 그달이었다.태하는 한참 동안 그 날짜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만년필을 들었다. 승인란 옆 빈칸에 두 글자를 썼다.보류.그 아래에 강태준의 서명을 했다. 끝을 왼쪽으로 조금 더 기울여서."그 건은 부회장님께서 직접 챙기시던 일입니다."문간에 비서실장이 서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었다.태하는 파일을 덮고 서랍에 돌려놓았다. 형의 목소리로, 형의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제가 보류하는 겁니다."비서실장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태하는 코트를 집어 들고 집무실을 나섰다. 자정까지 남은 시간은 여덟 시간. 형의 이름으로는 한성을 구할 수 없었다. 이제 자기 이름을 써야 할 때였다.오후 네 시, 마지막 은행을 나서는데 문자가 왔다.[새아가, 많이 힘들지? 저녁에 본가로 오렴. 내가 도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보낸 사람은 윤미경이었다. 서윤은 그 문자를 오래 내려다보았다. 도와주
사망신고서.서윤은 그 단어를 따라 말하지 못했다.태하는 바닥에 떨어진 붕대를 주워 그녀의 손에 다시 쥐여 주었다. 마저 감으라는 듯이."할아버지가 정했대. 쌍둥이는 후계 다툼을 부른다고. 형은 장남으로 출생신고를 하고, 나는 다음 날 죽은 걸로 하자고.""……그럼 당신은.""미국으로 보내졌어. 유모 한 명이랑. 그 유모가 일 년 만에 돈을 들고 사라진 다음부터는, 그냥 살아남았지."그는 남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했다. 서윤은 그의 등을 가로지르던 흉터들을 떠올렸다. 지도처럼 얽혀 있던 그 상처들이 하나씩 이름을 갖기 시작했다."이 문신은 열여덟 살에 새겼어. 서류에서 지워진 날을 몸에라도 남겨 두려고."서윤은 아무 말 없이 붕대를 마저 감았다. 매듭을 짓는 손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 그가 눈치채지 않기를 바랐다."오늘부터 내 방에서 자."구급상자를 정리하던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뭐?""다음엔 둘 다라고 했어. 그놈들은 이 집 위치도 알아. 네 방은 창문이 정원 쪽이고.""그래서 같은 방을 쓰자고?""같은 침대."서윤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태하는 피 묻은 셔츠를 집어 들며 덧붙였다."선은 안 넘어. 약속해."선은 정말로 넘지 않았다.넓은 침대 한가운데에 베개 하나가 놓였다. 태하는 등을 돌리고 누웠고, 서윤은 반대편 끝에 몸을 붙였다. 불이 꺼지자 빗소리와 서로의 숨소리만 남았다.잠이 오지 않았다. 베개 하나 너머에서 그의 체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안 자?"어둠 속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당신도 안 자잖아.""옆구리가 아파서.""거짓말."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가 웃는 게 느껴졌다."그래. 거짓말이야."서윤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석 달 동안 나를 만난 사람, 당신이야? 그 질문이 다시 목 끝까지 차올랐다. 지금이라면 그는 대답할지도 몰랐다. 어둠 속에서는 사람들이 조금 더 솔직해지니까.하지만 서윤은 묻지 않았다. 대답을 듣는 순간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바뀔 것 같았다. 그게 두려운 건지 기다
머리채를 움켜쥔 손이 서윤을 창밖으로 끌어내려는 순간이었다.운전석 문이 터져 나가듯 열렸다.무엇이 일어났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빗속에서 둔한 소리가 나고, 서윤의 머리를 잡았던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놓았다. 손목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눈 감아."태하의 목소리였다. 서윤은 눈을 감지 않았다.그래서 보았다. 이마에서 피를 흘리는 남자가 빗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가오는 주먹을 피하지도 않고 팔꿈치로 흘려내더니, 그대로 상대의 멱살을 잡아 승합차 문에 처박았다. 두 번째 남자는 무릎을 채여 그대로 주저앉았다. 싸움이 아니라 정리에 가까웠다. 수백 번은 해 본 사람처럼 짧고, 정확하고, 차가웠다.강태준은 절대 저렇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 생각이 스치는 순간, 세 번째 남자의 손에서 칼날이 번뜩였다."뒤에!"태하가 몸을 틀었다. 칼날이 그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신음 하나 없이 남자의 팔을 꺾어 칼을 떨어뜨렸다. 칼이 빗물 웅덩이에 떨어지는 소리가 난 것과 동시에, 멀리서 트럭의 헤드라이트가 다가왔다."철수해!"남자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승합차에 올랐다. 마지막 남자가 문을 닫기 직전 내뱉었다."다음엔 둘 다야."병원에는 가지 않았다."병원 가면 기록이 남아. 강태준이 칼에 맞았다는 기록."그래서 서윤은 별채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구급상자를 열었다. 손이 떨리지 않는 게 신기했다. 수백 년 된 그림에서 먼지 한 톨을 덜어내던 손이었다.핀셋으로 그의 팔뚝에 박힌 유리 조각을 하나씩 뽑아내는 동안, 태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무서웠어?""응.""그놈들이?""당신이."핀셋이 마지막 조각을 끌어냈다. 태하가 낮게 웃었다. 웃음인데 어딘가 아파 보였다."그런 게 내 진짜 모습이야. 형이랑은 다르지.""알아."서윤은 손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처음부터 달랐어."태하의 숨이 아주 짧게 멈췄다. 그가 무언가 물으려는 듯했지만, 서윤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셔츠 벗어. 옆구리
같은 날 오후, 태강그룹 본사 32층 대회의실.열두 명의 임원이 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결혼식 이후 첫 임원회의였다. 상석의 태하는 서류를 넘기며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형의 말투, 형이 앉는 자세, 형이 펜 끝으로 책상을 두 번 두드리는 버릇까지. 밤새 외운 것들이었다."베트남 물류센터 건은 이대로 진행하시죠."태하가 서류를 덮자, 전략기획본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부회장님, 그 건은 지난주에 직접 반려하셨잖습니까."회의실 공기가 얼어붙었다. 열두 쌍의 눈이 상석으로 향했다. 펜을 쥔 태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형이 무엇을 왜 반려했는지, 그는 알 길이 없었다.그때 뒤에 서 있던 비서실장이 다가와 서류 한 장을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첫 줄에 '반려 사유 보완 후 재상정'이라고 적혀 있었다."보완된 수정안을 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비서실장이 담담하게 말했다.태하는 서류를 내려다보았다가, 형이 했을 법한 얼굴로 본부장을 보았다."수정안도 안 읽고 회의에 들어오십니까."본부장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회의실이 비고 난 뒤, 비서실장이 결재 서류를 내밀며 낮게 말했다."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부회장님 서명은 끝이 왼쪽으로 조금 더 기웁니다."태하가 고개를 들었다. 비서실장은 이미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그날 밤 태하는 자정을 넘겨서야 들어왔다.불 꺼진 거실 소파에 서윤이 앉아 있었다. 태하가 걸음을 멈추자 그녀가 물었다."태준 씨 차가 발견된 곳, 한강 어디야?""왜.""가 볼 거야. 같이 찾기로 거래했잖아.""위험해.""그럼 혼자 갈게."태하는 한참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방금 내려놓은 차 키를 다시 집어 들었다."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새벽 한 시의 한강 공원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빗물 고인 아스팔트 위에 번졌다. 태하가 우산을 쓴 채 맨 안쪽 구석 자리를 가리켰다."저기. 운전석 문은 열려 있었고, 시동도 안 꺼져 있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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