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복잡한 재무 수치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대신 태준이 반드시 확인해야 할 쟁점만 간결하게 추려 놓았다. 금리 상승에 따른 추가 비용과 만기 집중에 따른 위험, 대체 금융기관과의 협상 가능성까지 한눈에 들어왔다.태준은 자료를 넘기지 못했다.그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불필요한 설명을 싫어했고, 숫자 뒤에 숨은 위험부터 확인하는 편이었다. 예진은 그런 습관을 알고 있었기에 보고서의 순서까지 그의 판단 방식에 맞춰 정리했다.삼 년 동안 그녀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익혔는지 새삼 실감했다.그런 여자가 떠나겠다고 했다.태준은 보고서를 덮었다.계약 종료일이 다가온다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것을 정리하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곁에서 쌓아 온 경력과 신뢰,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함까지도.그는 책상 위 내선전화 버튼을 눌렀다.“문 비서, 잠깐 들어와.”예진은 오래 기다리지 않고 회장실에 들어왔다. 책상 앞에 선 그녀는 태준을 바라보았지만, 그가 손짓한 소파 쪽으로는 움직이지 않았다.태준은 전날 서랍에 넣어 두었던 후임 채용 계획안을 꺼냈다.“계약 조건을 다시 검토했어. 연봉은 지금보다 올려 주고, 업무 범위도 조정할 수 있어. 원하는 조건이 있으면 말해.”예진의 시선이 서류에 머물렀다.“회장님, 보수나 근무 조건 때문에 결정한 일이 아닙니다.”“그럼 뭐가 문제인데?”태준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평소라면 협상 상대의 요구를 먼저 파악했을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었고, 그는 그런 협상에서 좀처럼 밀린 적이 없었다.그런데 예진 앞에서는 그 원칙이 통하지 않았다.그녀가 원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자신이 약혼을 취소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으면서도, 다른 조건을 제시하면 그녀가 마음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삼 년 동안 함께 일했어. 당신만큼 내 업무를 잘 아는 사람도 없고, 내가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권한을 맡겼는지도 알잖아. 지금보다 더 좋은 조건을 맞
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20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