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부군은 형수를 품고, 나는 화리를 청했다: Chapter 11 - Chapter 20

23 Chapters

11화

“형수님의 물건을 가져간 것이냐?”연주는 남편의 손에 들린 옥장식을 바라보았다.“아닙니다. 제 방에 누군가 숨겨 두었습니다.”윤겸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어제 형수님께 비녀를 빼앗겼다고 앙심을 품은 것이 아니냐? 네가 직접 가져가지 않았다면 어찌 네 침상 아래에서 나왔겠느냐?”연주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부군께서는 제가 훔쳤다는 증거보다 형수님께서 저를 의심하신다는 사실을 더 믿으시는군요.”“또 형수님을 탓할 셈이냐?”윤겸이 다가와 팔을 잡으려 하자 연주는 한 걸음 물러섰다. 소란은 그 사이에 끼어들어 자신은 연주를 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노부인은 이미 하인들에게 사당 문을 열라고 명하고 있었다.“조상님 앞에 앉혀 놓으면 진실을 말하겠지. 오늘 밤은 사당에서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게 하라.”옥분이 연주 앞에 무릎을 꿇었다.“노마님, 우리 마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어젯밤 제가 곁을 지켰고, 오늘 아침에도 방을 비우지 않았습니다.”노부인은 옥분을 내려다보며 시녀까지 주인을 닮아 입이 거칠다고 꾸짖었다. 하인이 옥분의 팔을 붙잡자 연주는 급히 시녀를 자신의 뒤로 물렸다.“옥분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저를 벌하실 생각이라면 저에게만 물으십시오.”소란이 그 말을 듣고 연주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더니 노부인에게 새 며느리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겠다고 하니 시녀까지 벌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연주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소란은 이미 자신이 무릎을 꿇게 될 자리를 정해 놓았고, 윤겸은 그 곁에서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있었다.***사당은 집안의 가장 북쪽에 있었다.돌계단에는 밤새 내린 이슬이 남아 있었고, 문을 열자 오래된 향냄새와 눅눅한 나무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연주는 조상의 위패 앞에 무릎을 꿇으라는 명을 받았다. 작은 등잔 하나만 남겨 둔 채 하인들이 물러나자, 무거운 문이 닫히고 바깥에서 빗장이 걸렸다.연주는 차가운 바닥에 앉아 한동안 문을 바라보았다. 신방에 갇혔던 첫날밤과 다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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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연주는 문틈으로 보이는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소란의 곁에는 다른 사람도 서 있었다. 긴 그림자 하나가 기둥 아래로 뻗어 있었고, 비에 젖은 돌바닥에는 남자의 검은 신발이 보였다.그 신발은 강윤겸의 것이었다.연주는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았다. 바깥에서 윤겸이 소란에게 돌아가자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목소리는 연주에게 향하지 않았다.“부군, 제가 이 안에 있습니다.”그림자가 멈췄다.연주는 문에 이마를 대지 않았다. 대신 빗장이 걸린 높이를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물건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제 말을 한 번이라도 들어 보실 생각이 있으십니까?”윤겸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소란이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는 기척이 들린 뒤에야, 그는 잘못을 인정하면 아침에 나오게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연주는 문고리에서 손을 뗐다.“그렇다면 내일 아침까지 이곳에 있겠습니다. 하지 않은 일을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바깥에서 윤겸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소란은 잠시 더 머물렀지만, 이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고집을 꺾지 않으면 오래 고생할 것이라고 말하고 돌아섰다.연주는 사당의 위패를 바라보았다. 전생에는 남편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했을 것이다. 그가 형수의 손을 잡고 돌아가더라도 자신에게 한마디 건넸다는 이유로 밤새 그 말을 곱씹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그녀는 위패 아래에 놓인 작은 등잔을 가까이 끌어왔다. 남은 기름이 많지 않았지만, 불빛이 닿는 동안 소매 속 천 조각을 다시 펼쳐 보았다. 붉은 실 한 올과 닳은 신발 뒤축, 주머니가 발견된 위치를 잊지 않으려 머릿속에 되풀이했다.새벽이 가까워질 무렵에는 무릎이 부어 다리를 펴기도 어려웠다. 연주는 기둥을 붙잡고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주저앉았고, 한참 동안 숨을 고른 뒤에야 벽에 기대어 앉을 수 있었다.그때 사당 문밖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마님.”옥분이었다.연주는 급히 몸을 돌렸다. 문 아래로 손바닥만 한 보자기가 밀려 들어왔고, 그 안에는 마른 떡 두 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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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시집간 여인은 시댁의 법도를 따라야 한다. 사소한 일로 혼맥을 흔들 생각은 버려라. 강씨 집안의 며느리로서 분수를 지키고, 다시는 친정으로 돌아오겠다는 말을 꺼내지 말라.연주는 편지를 끝까지 읽었다. 그 아래에는 혼수와 관련된 다툼을 집안 밖으로 알리지 말라는 당부까지 적혀 있었다.옥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대감마님께서 뭐라 하셨습니까?”연주는 편지를 접어 서안 위에 놓았다.“돌아오지 말라 하시는구나.”시녀의 얼굴이 굳었다. 연주는 편지를 불태우지 않고 혼수 문서가 든 궤짝에 넣었다. 친정이 자신을 거절했다는 사실 역시 남겨 두어야 했다.그녀는 궤짝을 잠그고 한동안 열쇠를 손에 쥐고 있었다. 시댁에서는 혼수를 빼앗고, 친정에서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혼례를 치른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자신에게 남은 길은 이미 막혀 있었다.그러나 문서만큼은 아직 손에 있었다. 연주는 옥분에게 붓과 종이를 가져오게 한 뒤 빼앗긴 비녀, 누명을 쓴 옥장식, 사당에서 본 하녀의 신발 모양, 친정에 편지를 보낸 날짜를 한 장에 정리했다.“마님, 이것을 모두 적어 두시면 혹시 들키지 않겠습니까?”“그러니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두어야지.”연주는 종이를 반듯하게 접어 혼수 궤짝의 안감 아래에 넣었다. 그곳은 전생에도 누구도 들추지 않았던 자리였다.그날 밤, 연주는 처음으로 옥분에게 강씨 집안의 문과 회랑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물었다. 신방에서 큰마님 처소까지 가는 길, 사당으로 통하는 뒷길, 하인들이 물을 길어 나르는 시간까지 하나씩 확인했다.옥분은 의아해하면서도 아는 만큼 대답했다. 연주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전생에 보지 못했던 집안의 구조를 머릿속에 그렸다.누명을 벗으려면 누가 자신의 방에 들어왔는지 알아야 했다. 그러려면 먼저 사람들이 언제, 어디로 움직이는지 살펴야 했다.***며칠째 비가 내리던 밤이었다.연주는 잠들지 못한 채 창호 곁에 앉아 있었다. 사당에서 밤새 벌을 받은 뒤부터 무릎을 굽힐 때마다 통증이 올라왔고, 찬 기운이 스미는 밤이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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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전생에 자신이 남편에게 손을 내밀면 윤겸은 형수에게 예를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매몰차게 뿌리쳤다. 그런데 지금 그는 형수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마치 오랫동안 기다린 정인을 만난 사람처럼 그녀를 품에 안고 있었다.별당 안에서 비단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연주는 담장 아래로 몸을 낮췄다. 창호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고, 윤겸이 소란의 어깨를 감싸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소란은 그의 목덜미에 팔을 두르고 무언가 속삭였으며, 잠시 뒤 두 그림자의 얼굴이 겹쳐졌다.연주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그 순간 자신이 왜 혼례 첫날밤부터 버림받았는지, 남편이 어째서 형수의 처소에서 밤을 보내고도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윤겸은 형수를 아끼는 것이 아니었다.그는 형수를 여인으로 품고 있었다.“연주는 어찌하고 오셨어요?”소란의 목소리가 창호 너머로 흘러나왔다. 윤겸은 그녀의 허리를 놓지 않은 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제 방에서 자고 있겠지요. 그 계집은 요즘 화리니 혼수니 하며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습니다.”소란이 낮게 웃었다.“동서가 아직 어린 탓이지요. 남편의 마음이 제게 있다는 사실을 알면 상처받을 텐데, 어찌 그리 눈치가 없는지 모르겠어요.”윤겸은 소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녀의 머리에 꽂힌 봉황 금비녀가 등잔불을 받아 반짝였다. 연주의 어머니가 혼례를 앞두고 남겨 준 바로 그 비녀였다.“그 비녀가 형수님께 훨씬 잘 어울립니다.”윤겸이 비녀를 뽑아 들자 소란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다시 비녀를 꽂아 주었으며, 소란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살피다가 그의 가슴에 기대었다.“동서가 이 비녀를 돌려 달라고 한다지요?”“그깟 장신구 하나에 욕심을 부리더군요. 제 형수님께 드린 것이 그리도 아까운 모양입니다.”“어머니의 유품이라니 아까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게는 이것이 더 잘 어울리잖아요.”소란이 장난스럽게 웃자 윤겸은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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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윤겸은 그녀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를 끌어당겨 품에 깊이 안았고,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놓지 않았다.연주는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가슴이 저릿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전생에 흘릴 수 있는 눈물은 모두 흘렸기 때문인지도 몰랐다.그때 소란이 윤겸의 귀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며 낮게 말했다.“그런데 도련님, 동서가 사당에서 벌을 받는 동안에도 끝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지요?”“고집이 지나칩니다. 조금 더 다스려야겠습니다.”“그러다 정말 화리를 청하러 관아에 가면요?”윤겸은 잠시 침묵하다가 소란의 손등을 쓸었다.“그 전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면 됩니다.”소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졌다.“역시 도련님께서 제 마음을 가장 잘 아시는군요.”그녀는 윤겸의 목덜미를 감싸고 다시 입을 맞췄다. 윤겸이 그녀를 안아 들자 창호에 비친 그림자가 흔들렸고, 소란의 웃음소리가 별당 안쪽으로 멀어졌다.연주는 담장 아래에 주저앉을 뻔했다.혼례를 치른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자신은 남편에게 첫날밤을 거절당했고, 어머니의 유품을 빼앗겼으며,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사당에서 밤을 지새웠다.그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윤겸은 형수를 품에 안고 있었다.더구나 그들은 연주의 혼수를 차지하고, 화리를 막기 위해 그녀를 가둘 궁리까지 하고 있었다.연주는 젖은 담장에 손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금 별당 문을 열고 들어가 두 사람의 추문을 밝히고 싶었지만, 그 순간 사당에서 보았던 노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이 집안에서는 사실을 말하는 사람이 벌을 받았다.증거 없이 밀회를 폭로한다면 윤겸과 소란은 또다시 연주를 질투에 눈이 먼 여자로 몰아갈 것이다. 노부인은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그녀를 가두고, 친정에서는 돌아오지 말라는 편지를 한 번 더 보낼 것이다.연주는 별당에서 시선을 거두었다.그녀가 돌아온 것은 그들에게 다시 짓밟히기 위해서가 아니었다.신방에 돌아오자 옥분이 급히 다가왔다. 연주의 치맛자락은 빗물에 젖어 있었고, 손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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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심연주가 자신의 혼수 궤짝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것은 동이 트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옥분이 아침상을 가지러 나간 사이, 낯선 하녀 넷이 신방에 들어와 옷장과 서안을 뒤지고 있었다. 가장 앞에 선 하녀가 궤짝의 비단 보자기를 헤집자 연주는 곧장 다가가 그 손목을 붙잡았다.“누가 내 혼수를 뒤지라 하였느냐?”하녀는 손목을 빼려다 실패하자 고개를 들었다. 어제 사당에서 연주를 감시하던 민소란의 하녀였다.“큰마님께서 분실된 물건이 없는지 살펴보라 하셨습니다. 작은마님께서는 잠시 물러나 계십시오.”“분실된 물건을 찾는다면서 어찌 내 서안부터 뒤지느냐?”연주가 서안 위의 종이를 집어 들자 하녀의 눈길이 따라왔다. 그 짧은 움직임만으로도 연주는 그들이 찾는 것이 장신구가 아님을 알아차렸다.지난밤, 그녀는 별당 뒤편에서 강윤겸과 민소란이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가 남긴 봉황 비녀는 형수의 머리에 꽂혀 있었고, 윤겸은 그 비녀를 돌려 달라는 아내의 부탁보다 형수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는 일에 더 마음을 썼다.연주는 그들이 별당에 드나든 시각과 회랑의 위치를 기록해 두었다. 전생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죽었으나, 이번에는 자신의 눈으로 본 일을 지울 수 없게 만들 생각이었다.그런데 민소란이 먼저 움직였다.“동서, 아침부터 이 무슨 소란이니?”문밖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연주가 돌아보자 소란이 하녀 둘을 거느리고 들어왔다. 그녀의 머리에는 여전히 봉황 비녀가 꽂혀 있었고, 홍옥 아래로 늘어진 금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볍게 흔들렸다.연주의 시선이 비녀에 머무르자 소란은 일부러 머리를 매만졌다.“도련님께서 내게 어울린다고 하시기에 오늘도 꽂아 보았어. 동서가 불편하다면 빼도록 하마.”말과 달리 비녀를 빼려는 기색은 없었다.“형수님께서 찾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연주가 묻자 소란은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어젯밤 동서가 이상한 글을 남겼다는 말을 들었어. 내가 잘못 들었기를 바랐는데, 도련님과 나에 관한 것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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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그 글은 제 것입니다. 가져가시려면 저와 함께 가십시오.”“그럴 생각이란다. 동서 혼자 벌을 받게 둘 수는 없지 않겠니?”소란은 다정하게 연주의 손등을 두드렸다. 손가락에 끼운 옥가락지가 상처 난 피부를 눌렀고, 연주가 손을 거두자 그녀는 남들이 보라는 듯 서운한 얼굴을 했다.강노부인의 처소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집안의 늙은 하인들뿐 아니라 부엌일을 하는 하녀들까지 대청 아래에 줄지어 서 있었다. 연주가 들어서자 노부인은 종이를 들어 보이며 호통쳤고, 오른편에 앉아 있던 윤겸은 아내를 향해 차가운 눈길을 던졌다.“네가 이 글을 썼느냐?”연주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제가 썼습니다.”“형수와 제 지아비를 음탕한 사이로 몰아가는 글을 쓰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단 말이냐?”“제가 보지 못한 일을 적었다면 부끄러워해야겠지요. 하지만 그날 밤 두 분께서 별당에 계셨던 것은 사실입니다.”노부인의 지팡이가 마루를 내리쳤다.“입을 다물어라!”연주는 대청 끝에 서 있는 소란을 바라보았다. 소란은 눈가를 붉히며 윤겸에게 기대 있었고, 윤겸은 그런 형수의 어깨를 감싸 주었다.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자리에서도 그에게는 그 행동을 감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형수님께서 편찮으셔서 문안을 드렸다.”윤겸의 말에 연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그렇다면 어찌 하인들이 잠든 시각에 뒤편 회랑으로 들어가셨습니까? 병문안을 하시면서 형수님의 허리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신 까닭은 또 무엇입니까?”대청에 모인 하인들 사이로 낮은 숨소리가 번졌다.소란이 비틀거리며 기둥을 붙잡았다. 윤겸은 곧장 그녀를 부축하더니 연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그의 손이 연주의 뺨을 때렸다.고개가 옆으로 꺾이면서 귓속에서 날카로운 울림이 일었다. 연주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마룻바닥을 짚었고, 손바닥에 박힌 나무 가시보다 입안에서 번지는 피 맛을 먼저 느꼈다.“형수님께서 얼마나 힘들게 지내시는지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느냐? 형님을 모시느라 밤낮없이 고생하시는 분이다.”윤겸은 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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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하인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연주는 그들 가운데 누구도 자신과 눈을 맞추지 않는 것을 보았다. 어제까지 작은마님이라 부르며 인사하던 이들이 이제는 마치 죄인을 보듯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소란은 그 광경을 느긋하게 지켜보다가 옥분을 가리켰다.“그런데 어머니, 동서가 쓴 글을 저 시녀가 숨기고 있었습니다. 제 주인의 망상을 믿고 집안의 추문을 퍼뜨리려 했다면 그냥 넘길 수 없지 않겠습니까?”연주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옥분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소란의 눈길이 연주에게 닿았다. 그녀는 대답 대신 노부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하인 하나를 바로잡지 못하면 집안의 법도가 무너지겠지요.”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옥분이 대청 앞으로 끌려 나왔다.옥분은 두 손을 모은 채 무릎을 꿇었다.소매가 잡아 뜯기는 바람에 팔목이 드러났고, 뜨거운 죽이 튄 발등에는 붉은 물집이 올라와 있었다. 연주는 시녀의 상처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뒤에 선 하인이 어깨를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노부인이 종이를 흔들었다.“네가 이것을 숨긴 까닭이 무엇이냐?”옥분은 한참 동안 입술을 달싹이다가 겨우 대답했다.“작은마님께서 제게 맡기신 글입니다. 잃어버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주인이 무슨 글을 쓰든 종은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 네가 주인의 잘못까지 감추었으니 한통속이 아니고 무엇이냐?”옥분은 고개를 들었다. 시녀의 시선이 연주를 지나 윤겸과 소란에게 향했다.“저도 그날 밤 두 분께서 별당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연주는 눈을 감았다.그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 이 집안에서는 사실을 말하는 사람보다 그 사실을 감추려는 사람들이 훨씬 큰 힘을 쥐고 있었다.윤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누가 네게 형수님의 처소를 엿보라 시켰느냐?”“아무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작은마님께서 밤늦게 돌아오시지 않아 걱정되어 따라갔을 뿐입니다.”“그렇다면 네 눈으로 무엇을 보았는지 말해 보아라.”옥분은 손을 꼭 쥐었다.“도련님께서 큰마님의 손을 잡고 계셨습니다.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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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저 계집은 벌을 받아야 한다. 네가 감싼다고 달라질 일은 없다.”“부군, 옥분은 제 시녀입니다.”“그러니 네가 보는 앞에서 벌하는 것이다.”연주는 그 말에 숨이 막혔다.윤겸은 시녀의 잘못을 가리려는 것이 아니었다. 옥분이 매를 맞는 모습을 아내에게 끝까지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하인들이 옥분을 마당의 형틀 앞에 엎드리게 했다. 연주는 몸부림쳤지만 윤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고, 첫 번째 매가 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옥분의 비명이 터졌다.시녀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두 번째 매가 떨어지자 옷감 위로 붉은 줄이 번졌고, 세 번째에는 옥분이 마루 끝을 붙잡은 손을 놓쳤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으려 했지만,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에서 고통스러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연주는 윤겸의 손등을 할퀴었다.“그만두십시오! 제발 그만두십시오!”윤겸은 손등에서 피가 나는데도 그녀를 놓지 않았다.“형수님께서 억울하게 모함당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면 멈추겠다.”연주는 남편을 올려다보았다.그는 조금도 흥분하지 않았다. 옥분의 비명이 울리는 동안에도 윤겸은 아내가 언제 굴복할지만 기다리는 얼굴이었다.“제가 인정하면 정말 멈추시겠습니까?”“네 입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고 말해라. 그리고 형수님께 사죄해라.”연주는 대청 아래에 앉은 소란을 보았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누르면서도 하인에게 매질을 멈추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다시 매가 올라갔다.연주는 온 힘을 다해 윤겸의 팔을 밀어내고 옥분에게 달려갔다. 하인이 미처 멈추지 못한 매가 그녀의 등에 내리꽂혔고, 순간 숨이 끊어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그러나 연주는 물러나지 않았다.옥분의 몸 위로 엎드려 시녀의 머리를 품에 감쌌다.“옥분아, 나를 보아라. 정신을 놓지 마라.”시녀의 얼굴은 눈물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다. 옥분은 주인을 알아보자 고개를 저었고, 떨리는 손으로 연주의 옷자락을 붙잡았다.“마님…… 그러지 마십시오. 제가…….”“아무 말도 하지 마라. 네가 무엇을 보았는지 내가 알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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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네가 내 명예를 더럽혔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하지 않겠니?”연주는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무릎 아래로 통증이 밀려왔고, 바닥에 묻은 피가 치맛자락을 적셨다.“형수님의 명예를 더럽힌 일을 사죄드립니다.”소란은 그제야 만족한 듯 웃었다.“그래. 이제야 내 말을 알아듣는구나.”그녀가 허리를 숙여 연주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왔다.“다음에는 저 아이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야.”연주의 손가락이 마루 틈을 파고들었다.소란은 다시 몸을 일으켜 윤겸을 돌아보았다.“도련님, 동서가 이렇게까지 뉘우치니 이제 옥분이를 의원에게 보내 주세요. 더 벌하면 제가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요.”윤겸은 하인에게 의원을 부르라고 명했다.연주는 곧장 옥분에게 다가갔다. 시녀의 등은 피에 젖어 있었고, 옷을 움직일 때마다 살갗이 달라붙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연주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옥분에게 덮어 주었다.“조금만 참아라. 의원이 오면 나아질 것이다.”옥분은 흐린 눈으로 주인을 바라보았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연주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자 시녀는 힘겹게 속삭였다.“마님께서 맡기신…… 그 종이…….”연주는 옥분의 손을 꼭 잡았다.“내가 네게 준 기록 말이냐?”옥분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그중 일부를…… 뒤뜰 물동이 밑에…….”연주는 옥분의 손을 더 단단히 감쌌다.“잘했다. 나머지는 내가 찾으마. 이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쉬어라.”“마님께서…… 살아 나가셔야…….”말을 끝내지 못한 옥분이 눈을 감았다.연주는 시녀의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겨우 숨을 내쉬었다.의원이 도착하고 옥분이 들것에 실려 나갈 때까지 연주는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하녀들이 대청의 피를 닦아 내는 동안에도 그녀는 자리에 앉아 있었고, 물이 여러 번 갈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그날 자신이 지킨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옥분의 목숨 하나였으며, 그것마저 온전히 지켜 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옥분이 알려 준 물동이는 뒤뜰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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