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내에게 99번째로 무시당하는 순간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그녀의 가방에서 우연히 콘서트 티켓 두 장을 보게 되었다.
“원래 네 생일날 같이 가려고 했어. 근데 어차피 본 거니까 그날 보자. 나 출장을 가야 해.”
말하는 태도조차 차갑기만 했다.
생일날, 나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색의 옷을 입고 떠들썩한 콘서트장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하지만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열어 보니 아내의 소꿉친구가 방금 SNS에 글을 올렸다.
[콘서트는 못 봤다. 누구를 달래주느라 걔가 보고 싶어 했던 영화를 대신 보러 왔네요.]
나는 조용히 휴대폰을 닫았다.
마음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데프 에도우즈가 거기 서 있었다.
그는 인터폰을 누르지도,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그저 문 앞에 정지된 화면처럼 서서 안쪽의 기척을 기다리는 듯했다. 진은 문고리를 잡았다가 잠시 멈췄다. 금속의 차가운 감각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진은 문을 열었다.
"왜 안 들어와요."
"부르지 않으셨잖아요."
"부르고 있잖아요. 지금. 문을 열었다는 건 들어오라는 뜻 아닌가요."
"그건 부르는 게 아니에요. 그냥 열어준 거지."
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문고리에서 손을 떼고 데프의 젖은 셔츠 소매 너머 손목을 잡았다.
"이게 부르는 거예요. 들어와요."
결혼 7주년 기념일, 남편의 첫사랑이 아들에게 고양이를 선물했다.
나는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온몸에 발진이 나고 유산의 징후도 나타났다. 그래서 아들에게 고양이를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
5살 된 이서우는 울면서 나를 밀어 바닥에 넘어뜨리며 말했다.
“안 돼! 엄마 나빠! 나는 엄마가 싫어! 지유 아줌마가 엄마가 되어줘!”
이준후는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꾸짖었다.
“왜 그때는 알레르기가 없고, 왜 이제서야 알레르기가 생겼냐? 지유가 고양이를 주니까 알레르기까지 나? 질투에 아들 생각은 전혀 안 하네. 너 그러면 안 돼!”
그는 아들을 안고 고양이를 데리고 유지유를 찾아갔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눈앞에서 피가 바지에 스며드는 걸 보며 두 번째 아이를 잃었다.
병원에서 나는 고통 속에 눈물만 흘리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내 남편과 아들은 유지유를 데리고 산과 바다를 다니며 마치 진짜 가족처럼 지냈다.
유지유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준후 오빠가 나를 좋아하는 걸 알아. 그럼 왜 너랑 결혼했냐고? 나는 아이를 낳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들과 딸을 갖고 싶어 했어. 안타깝게도 너 유산했네.”
그 순간, 진짜 절망감을 느꼈다.
나는 변호사를 통해 이혼을 의뢰하고, 비행기 표를 끊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저 그 아버지와 아들과 다시는 만날 일이 없기를 바랐다.
이런 주제는 항상 흥미롭게 다가오네요. 어릴 적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잡귀 이야기는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는 그저 무서워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이야기들은 인간의 두려움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반영한 것 같아요. 전통 문화에서 잡귀는 악의를 품은 존재로 묘사되곤 했죠.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과학적 설명이 가능한 현상들이 많아요. 어둠 속에서 보이는 그림자나 소리도 실제로는 자연 현상이나 우리 뇌의 착각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귀 이야기가 여전히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심을 자극하기 때문일 거예요. '파묘' 같은 영화를 보면 현대인들도 이런 요소에 흥미를 느낀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결국 잡귀 이야기의 진위 여부보다 중요한 건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심리와 문화적 의미가 아닐까 싶네요.
요즘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때면 종종 무언가에 시선이 가던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을 거예요.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나 갑자기 흔들리는 커튼, 이유 없는 소음까지... 이런 상황에서 제가 가장 먼저 하는 건 불필요한 공포감을 떨치기 위해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틀어놓는 거죠. 소리 채우기가 의외로 효과적이더라고요.
또 하나 추천할 만한 방법은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는 거예요. 어둡고 침침한 조명 대신 따뜻한 색감의 스탠드나 LED등을 활용하면 공포 영화 같은 분위기가 사라져요. '미싱: 잔혹한 도시' 같은 공포물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저는 특히 붉은색 계열 조명이 집중력도 높여주면서 불안감을 줄여준다는 걸 발견했어요.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악귀' 드라마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잡귀를 물리치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더라. 일단 가장 기본적인 건 소금이나 쌀을 뿌리는 거야. 한국 민속에서 소금은 정화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잡귀를 쫓는 데 효과적이거든.
또 다른 방법은 빛을 이용하는 거야. 햇빛이나 강한 조명을 켜두면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잡귀들이 도망간다고 하더라. 특히 동양에서는 거울을 활용하기도 하는데, 거울에 비친 빛이 잡귀를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믿었어. 개인적으로는 이런 민간療法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콘텐츠를 보면 정말 흥미롭더라.
한국 전통 문화에서 잡귀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요. 특히 '도깨비'는 유명한데, 장난을 좋아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모습이 종종 묘사되죠. '귀신'은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의미하며, 미련이나 원한을 품고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구미호'도 잡귀의 일종으로, 여우가 오래 살며 변신 능력을 얻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런 존재들은 대부분 자연물이나 동물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아요.
잡귀를 피하기 위한 미신도 다양하답니다. 예를 들어, 밤에 휘파람을 불면 잡귀가 따라온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는 휘파람 소리가 귀신을 부른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또, 이불을 뒤집어 자면 악몽을 꾸게 된다는 말도 있고, 거울을 침대 맞은편에 두면 안 좋다는 미신도 있죠. 이런 믿음들은 대부분 잡귀의 접근을 막기 위한 실용적인 지혜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한국 전통 문화에서 부적이나 주문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특히 '잡귀'를 쫓는 부적은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되곤 했죠. 실제로 제 친구는 이사 후 이상한 일이 계속되자 어르신들의 권유로 부적을 붙였더니 마음이 놓였다고 합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사람의 심리적 안정감에는 분명히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물론 모든 상황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겠죠.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관습보다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먼저 찾는 게 일반적이에요. 하지만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가치나 개인의 믿음에 대한 존중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마음의 위안을 주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될 때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