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조철을 찾았다더냐?”임세안이 물었다.이고가 고개를 끄덕였다.임세안은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하, 이 몸이 아직 죽지도 않았건만, 벌써 바깥 양반 노릇이 못 견딜 만큼 하고 싶더냐….”곧이어 입꼬리가 비틀렸다.“아니지. 애초에 그년은 물이 들끓는 천한 계집일 뿐이었지.”“이제 어찌 하시겠습니까?” 이고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임세안은 침상에 누운 채 팔을 베개 삼아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상관 말거라. 놈들의 흥을 깨트릴 필요도 없지.”“허나, 이건… 장군님 체면이….”이고는 이아령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그의 눈엔 그저 장군의 위엄이 모욕당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선명했을 뿐이다.장군의 위엄은 결코 더럽혀져선 안 된다!“이고야, 넌 나를 한심하게 보느냐?”이고는 입을 다물었다.임세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이 일은 너와 나만 아는 일로 남기거라. 더 이상 퍼져선 안 된다. 당장은 말이다.”“그리고 한청에게 말하거라. 그 여자가 좀 더 오래 놀 수 있도록 기회를 주라고.”“…….”이고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장군께서 어찌 저리도 태연하게 아내가 오쟁이 지는 걸 말씀하시는 건가?임세안은 눈을 감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명심하거라. 내 마음속에, 그 자는 더이상 내 부인이 아니야.”이고는 말없이 몇 순간을 서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임세안은 칼을 뽑지 않았다.“예, 소인 명심하겠습니다.”장군께서는 분명 속내가 따로 있으시리라 생각하였다.장군께서 그 여인을 부인으로 여기지 않으신다면, 그녀가 무엇을 하든 더는 문제 될 게 없으리라.하지만 이름만으론 여전히 그 여자는 장군의 부인이 아닌가.어사대부 가문의 딸이라지만 서출이라곤 해도 어찌 그런 천한 짓거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재수 없기는!이고는 속이 부글부글 끓은 채로 밖으로 나갔다.임세안은 침상 위에서 몸을 뒤척이며 눈을 떴다.깊고 어두운 밤, 그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그는 분노하지 않았다
임세안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다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 곁에 놓인 쟁반을 들어 경안향에게 건넸다.“부인, 가을이 오니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소. 이건 내가 상점에 들러 부인 치수에 맞춰 주문한 옷이오.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구려.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일 다시 가서 새로 지어주겠소.”옷을 바라보던 경안향은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서방님, 이 옷이… 저를 위한 것이었습니까?”임세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소, 부인 말고 또 누구를 위해 이런 옷을 준비하겠소?”그는 정말 자신을 위한 옷이라고 말한 것이다. 경안향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서방님. 마음에 들어요.”“정말이오? 그럼 다행이구려. 매번 돌아와 부인이 내가 고른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소소한 기쁨이라오. 내 여인이 곱고 화사하게 있기만 하면 족하오.”경안향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서방님.”그제야 마음 한켠이 조금은 놓였다. 그가 자신을 멀리한 것이 혹여 다른 여인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남자란 허리 아픈 소리는 남에게 절대 말하지 않는 법인데…오늘 자신이 그렇게까지 들이대지 않았다면, 아마 임세안은 끝끝내 말하지 않았을 터.그녀는 옷을 품에 안고 말했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매일 입고 서방님 앞에 설게요.”“부인이 좋아하는 색이나 모양이 있으면 더 말해주오. 내 가게에 전해 다시 맞춰 짓게 하겠소.”“서방님께서 좋아하는 색, 서방님께서 좋아하는 모양이 곧 제게 가장 어울리는 것입니다.”임세안은 웃으며 답했다. “부인은 참 아름답고도 현명하오. 그렇게 매혹적인데, 내가 방에 있는 부인 곁에 있다간 도무지 집중을 못 할 테니 오늘은 그냥 여기서 머물겠소.”경안향은 부끄러운 듯 웃으며 물러갔다. 예상한 대로였다. 남자란… 아무리 고고한 체해도 결국은 다 똑같은 법.혹 욕정을 감출 수는 있을지언정, 아예 없을 수는 없다. 그렇지 않다면, 허약하든지 아니면 남색 취향이든지.경안
경안향은 조심스레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서방님께서 요즘 정무로 몹시 분주하시다 하여, 소첩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들고 온 그릇을 내보이며 말했다.“방금 끓인 죽을 들고 왔습니다. 한 수저 드셔보시겠습니까?”임세안은 문 앞까지 나와 그녀를 마주했다.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얼굴에는 늘 묘한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그런 것은 부녀자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오? 부인께서 드시는 것이 나을 듯하오. 부인의 안색이 좋아지면 나도 기쁘지 않겠소.”경안향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미소를 머금었다가, 뚫어지게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정말, 기쁘십니까?”임세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그럼. 부인이 기쁘면 어찌 내가 기쁘지 않겠소? 혹여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소? 내게 말해주시오. 부인의 일이면 내가 마땅히 나설 일이니.”경안향은 속으로 혀를 찼다.‘나무토막 같은 사람아, 누가 봐도 내게 마음이 없는 것이 뻔한데!’그녀는 한청에게 고개로 신호를 주어 자리를 물리게 하고, 직접 문을 닫았다.임세안은 그 모습에 내심 경계심이 들었다.‘이건 무슨 분위기지... 설마 또 무슨 수를 쓰려는 건가?’그가 자리로 돌아가려는 찰나, 경안향이 발걸음을 재빠르게 옮겨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 손길은 힘없이 다정하고, 눈망울에는 억울함과 애절함이 서려 있었다.“서방님, 혹시... 제가 미우십니까?”임세안은 속으로 치를 떨었지만 겉으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은 그녀의 팔을 떼내려 했으나, 예상 외로 단단히 붙들고 있는 손을 쉽게 떼지 못했다.“부인이 어찌 그런 말씀을 하는 것이오.”경안향은 고개를 들고 꾹 눌러 참고 있던 감정을 꺼냈다.“혼례 이후, 서방님께서 절 찾으신 건 단 한 번뿐이었습니다. 오늘 시부모님을 뵈었사온데, 두 분께선 하루빨리 손주를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손주? 웃기고 있군.’임세안은 속으로 그 말을 씹었다. 그런 말을 꺼내며 정을 구걸하다니. 얼마나 뻔
“이혼이라니?”임곽수가 다소 당황한 듯 되물었다.“서로 맞지 않으면 헤어져야죠. 꼭 얽매여 살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임 부인이 단호히 잘라 말했다.“……”“……”‘아니, 어머니는 지금 도대체 누구 편을 드시는 겁니까? 저를 도우시려는 건지, 부인의 편이신 건지 알 수가 없군요…’경안향이 정말 경안향이 맞았다면, 만약 어떤 의도를 품고 본인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라면… 설령 이 길이 험난하더라도, 그는 그녀와 끝까지 함께하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정말 경안향이 맞을까?이 생각만 하면 가슴이 저릿했다. 자신의 순결한 몸이 혜아에게 그렇게나 가볍게 넘어갔다는 현실이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지금까지도 혜아의 행방은 묘연했다.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밀었다.임곽수는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됐다. 그럼 이 일엔 더 이상 간섭하지 않으마.”그는 임세안을 바라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람 마음은 헤아릴 줄 알아야지. 설령 경 대인의 체면만 생각한다 하여도 말이다. 너희 혼사는 폐하와 황후 마마께서 맺어주신 연이 아니더냐.”“그래, 아무리 정이 식었다 해도 인연은 귀한 법이지. 혼사는 전생의 덕이라 하지 않더냐. 쉽게 여겨서는 아니 된다, 아들아.”임 부인도 자애로운 어조로 덧붙였다. 마음 한켠으로는 아들 편도 들면서, 며느리도 안쓰럽게 여긴 것이다.임세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아 부친과 모친께 예를 갖춰 인사했다.“아버지, 어머니.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훗날 모든 것을 낱낱이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디 지금은, 저와 부인 사이 일에는 간섭 마시고 지켜봐 주시옵소서.”…괜찮다니. 두 노인은 그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임세안이 내실을 나서자, 남은 두 어른은 눈을 마주쳤다.“이게 무슨 꼴이람. 얼마 지나지 않아 손자를 안겨줄 줄 알았거늘… 지금 저 상태로야, 손자 구경은 몇 년은 물 건너간 것 같소.”임곽수가 탄식했다.임 부인도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그녀는
임곽수의 약속을 받은 경안향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고, 조용히 공손하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그녀가 떠난 뒤, 임 부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마루로 나와 임곽수를 바라보았다. “대인, 우리 세안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잖아요. 혼례 전에 분명 기뻐했었고, 평생 우리처럼 그리고 황제 폐하와 황후마마처럼 일편단심 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혼례 치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여인을 데리고 들어오다니요.”임곽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러게나 말이오. 대체 뭔 일인지를 모르겠구려. 얼굴을 보기 어려우니, 오늘 밤이라도 세안이한테 찾아가 물어보는 게 좋겠소.”임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며느리는 어사대부의 딸인데… 이번 일은 세안이가 너무 심했어요.”두 사람은 사태의 본질을 모르고 있었다.오후가 되어, 임세안은 조정을 마치고 곧장 만안당으로 향했다.마침 잘 왔다는 듯, 두 사람은 그를 따로 불러내어 어제의 '사촌여동생' 이야기부터 캐물었다. “세안아, 첩을 두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그게 무슨 사촌여동생이란 말이냐. 내가 보기엔 그 여인들과 사귀는 게지.”임곽수는 수염을 쓸어 넘기며 화를 내고 있었고, 임 부인은 손으로 그를 막아 세웠다.“잠깐, 여보 우선 일단 세안이 이야기를 들어봅시다.”두 사람은 모두 그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치 임세안이 변명이라도 들어놓길 바라면서…임곽수는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 이제 말해 보거라. 어영부영 넘길 생각 말고.”그들 가족은 황후의 보살핌을 받아 오늘에 이르렀고, 임세안이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된 것도 결국 황후의 추천 덕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에 대한 평판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임세안은 깊은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저와 부인 사이의 일은 지금으로선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두 분께서는 부인에게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그게 무슨 말이냐?”“그냥… 모든
“아버님, 오늘도 많이 바쁘셨습니까?”경안향은 단정하게 예를 올리며 공손히 물었다. 한껏 얌전하고 공손한 자태였다.임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저 그렇다. 이제 제자들이 제법 손을 놓아도 될 만큼 되었지.”요즘 들어 제자들이 의술을 익혀 자리를 잡은 덕분에, 그 역시 조금은 여유가 생긴 터였다.“무슨 일로 왔느냐?” 그는 다 아는 듯한 말투로 물으며 안채로 걸음을 옮겼다.경안향도 슬며시 웃으며 뒤따랐다. 바깥에는 눈이 많았기에 이내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사실은요, 어제 제가 여의서에 가서 의술을 배운 뒤 돌아오던 길에, 서방님의 먼 친척 여인들을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곱던지, 그야말로 절세가인이었지요.”경안향은 말하며 슬쩍 임곽수의 표정을 살폈다.임곽수는 다소 당황한 듯했으나, 곧 자신의 수하로부터 들은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 그 먼 친척 말이냐.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모양이더구나.”“서방님께서 이제 막 장군이 되셨으니, 아마 그걸 핑계로 연을 잇고자 온 듯합니다.”임곽수는 곧바로 손사래를 쳤다. “안심하거라. 우리 세안이는 부인 하나면 족하니. 무슨 사촌이며 팔촌이라도, 절대 마음 쓸 일 없을 게다.”경안향은 속으로 분이 끓었다. 무슨 먼 친척이겠는가. 분명 임세안이 꾸며낸 말일 것이다.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임세안은 초야 이후로는 그녀를 찾지 않았다. 그날밤, 방에 대신 들어간 건 바로 그 천한 계집, 혜아였다.임세안이 그녀를 시시하다고 여긴 것이 틀림없다.경안향은 혜아 같은 무미건조한 여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안 돼. 그 두 여인은 너무도 위협적이야. 서방님을 내 손아귀에 놓지 못하면, 머지않아 저 여자들에게 빼앗기고 말겠지.’이를 악문 경안향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사실, 오해일 수도 있사오니, 제가 직접 예를 갖추어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고자 합니다. 어제는 문 앞에서 스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