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동은 마음이 너무나 들떴다. 그녀는 만두 오라버니의 품에 안겨 놀던 때가 떠올랐다.“군영은 바쁩니까?”적동은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녀의 하얗고 홍조 띤 얼굴엔 눈부신 미소가 가득했다.“괜찮다. 아바마마께서 경성에 남아 정무를 배우라 하셔서, 이젠 군영에 가지 않는다.”만두는 웃으며 말했다.“군영에 가지 않으십니까?“적동은 곰곰이 생각하다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군영이 너무 힘들어, 매일 힘들었으니, 가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지요.”적동은 오라버니가 항상 걱정스러웠다.“괜찮다!”만두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예전 일을 떠올렸다. 훈련을 마치면 적동이 달려와서 그의 곁을 몇 바퀴 돌고는 그에게 머리를 기대곤 했었다. 적동은 고개를 들고 그를 빤히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만두는 적동이 입을 연다면, 지금쯤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 추측했다. 적동의 눈빛은 이전과 늘 똑같았다.그제야 만두는 적동이 그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만두는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적동은 자신의 일상을 조잘거리며, 예전엔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들을 아낌없이 쏟아냈다.하지만 어휘가 부족해, 한참 머뭇거렸지만, 만두는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그는 아무 말없이 조용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경단이 그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인연이 있으면 천 리가 떨어져도 만날 수 있고, 연이 없으면 얼굴을 봐도 모른다더니, 진짜 맞는 말이구나.”“천 리를 걸어온 거나 다름없잖아! 연은 막을 수가 없구나.”찰떡 역시 두 사람을 힐긋 보았다. 준수한 형님과 예쁜 적동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택란이 설랑과 함께 달려왔고, 그녀의 머리 위로 봉황이 날아올랐다. 택란은 숨차 보였지만, 설랑과 호랑이, 그리고 봉황은 기운차고 즐거워 보였다. 다들 언덕에서 재빨리 달려 내려와, 흥겨움을 감추지 못했다.적동은 그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도 당장 여우로 변해서, 함께 달리고 싶었다. 이런 산이 어찌 그녀를 가로막을 수 있을까?정말 답답하구나
아이들은 만두의 제안을 따라, 산에 오르기로 약속했다. 눈늑대봉을 정복하고 설랑도 고향에 데려갈 수 있었다.눈늑대봉은 해발이 높아, 여름이라도 산 위는 서늘했다. 그리고 워낙 험한 산이라, 출발 전 원경릉은 걱정 때문에 재차 당부했다.어머니라 아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눈늑대봉이 평범한 산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북당 우문 가문도 이곳에서 고생을 겪었고, 무엇보다 설랑이 나고 택란의 땅이라 영기가 흐르기에 여러 가지 특이한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이로 인해 원경릉도 처음엔 단호하게 반대했지만, 아이들의 애원에 마음이 약해져 허락한 것이었다.이 일로 우문호는 기회를 빌려, 원경릉을 혼내기도 했다. 늘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서 원경릉에게 야단맞았던 그가 드디어 기회를 잡은 것이다!하지만 원경릉은 매를 버는 우문호의 모습에, 무상황이 준 지팡이를 들었다. 그녀의 행동에 우문호는 황급히 도망쳤다. 아직도 그 지팡이를 버리지 않았다니?이번에는 적동도 함께 가기로 했다. 대순의 공주라, 다들 그녀를 보호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출발 전, 택란이 적동의 손을 잡으며 꼭 뒤를 따르고 모험하지 말라고 재차 당부했다. 적동은 흥분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얌전하게 답했다.“잘 따를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적동의 시선은 계속 만두를 향하고 있었다. 만두는 경단과 말을 타고 앞서가다가 가끔 마차를 뒤돌아보았다. 가림막을 올리고 있어서 마차 안이 환히 보였다.만두가 고개를 돌리면, 적동은 기쁜 마음으로 그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었다.우문예도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비록 적동의 정체를 동생들에게 밝히진 않았지만 워낙 똑똑한 아이들이었기에 단번에 알아차렸다. 게다가 적동은 아름다운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양공주의 눈을 보기만 하면 자기도 모르게 적동이 떠오를 정도였다.그저 적동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니,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적동도 만두와 다른 오라버니들이 그녀를 이미 알아봤다고 믿었다.하지만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
동생들이 아직 경성에 머무르고 있어, 함께 외출해야 하기에 우문호는 조양공주까지 함께 데리고 가기로 했다.우문예는 자기도 모르게 다시 공주를 힐긋 바라보았다. 그는 어딘가 낯익은 그녀의 눈빛을 보며, 어디서 본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로 그때 설랑이 당당하게 궁 안으로 들어왔다.조양공주는 설랑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다급히 달려가 설랑을 품에 안았다.“설랑 오라버니, 보고 싶었습니다.”원경릉은 그녀를 말리지도 못하고, 만두의 의아한 표정을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설랑도 반가운듯 앞발로 공주의 어깨를 누르고, 머리를 비비다가 기쁜 울음소리를 냈다.우문예는 설랑의 모습과, 붉은 여우 자수가 새겨진 치맛자락을 잡아당기는 공주의 모습을 본 순간,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감격하고 말았다.‘적동이 드디어 돌아왔구나. 아가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니!’하지만 어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우문예도 모른 척하기로 했다.그는 사실 너무 흥분되었다. 하지만 애써 조용하게 어머니의 옆에 앉아, 적동과 설랑이 껴안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조양공주가 이렇게까지 설랑을 좋아할 줄은 몰랐습니다.”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아는 원경릉은 흐뭇한 듯 옆으로 얼굴을 돌리고 미소 지었다.‘어린 나이에 벌써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법을 익혔다니.’평범한 집안의 아이라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우문예는 장차 황제가 될 사람이기에, 쉽게 다른 사람들한테 감정을 들켜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원경릉은 아들의 손을 잡고 살며시 물었다.“기분이 어떠냐?”“기뻐요.”우문예는 어머니를 보며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궁 안 모든 것이 빛을 잃는 듯했다.원경릉은 아들의 손등을 토닥이고,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다행이구나.”그때, 예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연한 노란색 비단에 구름무늬 자수가 놓인 치마를 휘날리며 택란이 궁으로 들어섰다.“오라버니, 무엇이 그
하지만 그들은 곧 만두의 그림 실력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두는 몇 명을 초대하여 현장에서 붓을 휘두르더니, 경성의 설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번화한 거리, 북적이는 인파, 노점과 장사꾼들, 평소에 보던 모습이 그대로 옮겨졌다.다섯 사람은 그림의 하단에 쓰인 우문예라는 서명을 보고서야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태자를 알게 되었다니, 다들 대대로 쌓은 복이라 생각했다.만두는 붓을 던지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들 과거 시험에서 좋은 성과를 얻길 바라오.”모두 숨을 죽이고 절을 올렸다.과거 시험을 앞두고, 태자 책봉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조정에서 천하에 우문예를 태자로 책봉하였다고 공식적으로 공포했다. 명분은 이미 정해졌지만, 이번에는 대관식까지 진행되었고 동시에 대사면도 시행되어 온 나라가 축하 분위기에 휩싸였다.비록 급하게 진행되긴 했지만, 다행히 다른 나라의 황실 인사들도 경성에 머물고 있었기에 함께 축하 행사에 참여할 수도 있었다.심지어 대순조에서도 북당 경성의 열기를 느끼러 조양공주가 왔다. 그래서 조양공주도 함께 관례에 참석하게 되었다. 다만, 조양공주 곁에 있는 시녀가 늘 그녀를 지키며 북당 황실과 너무 가까이하지 않도록 막았다.신임 태자는 나라가 평안하고, 풍년이 들어 이제 국고도 충실하니, 2년간 조세를 감면해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그렇게 태자로 막 책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민심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조세 감면은 예전부터 논의되고 있긴 했었지만 다섯째는 태자가 민심을 얻기 위해 책봉 때 발표하고자 했다. 이제 즉위할 황제가 백성들을 챙기고, 백성을 자식처럼 아끼면, 백성들도 안정감을 느낄 것이고, 그럼 자연스레 조정에 대한 신뢰도 더해질 수 있었다. 우문예가 이끌 조정은 비록 부담이 덜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나라의 번영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그리고 더 나아가 발전하려면, 더욱 큰 노력이 필요했다. 이미 발전이 정점에 도달해
만두는 겨우 그들을 정신 차리게 한 뒤, 당황스러운 그들의 눈빛을 보며, 진지하게 자기소개를 시작했다.“내 이름은 우문예오. 만두는 집안에서 부르는 이름이라 계속 나를 만두라 불러도 괜찮소. 이분은 나의 태조 할아버지로, 북당의 황제로 지내시다 물러나 무상황의 자리에 있소. 그리고 이분은 전직 수보로, 이제 은퇴하여 집에 계시오. 주 어르신이라 부르시면 되네. 그리고 이분은...”만두는 본청으로 갓 들어온 소요공을 끌고와서 소개를 시켜주었다. 소요공은 여전히 술기운이 남은 모습이었고, 손에는 술 항아리를 들고 있었다. 그는 어젯밤 무상황과 술잔을 기울이다 늦게 일어났고, 술기운을 술로 깨기 위해 항아리를 들고 있었다.“이분이 소요공이오.”소개를 마친 만두는 다시 친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만두는 다시 쓰러질 듯한 유생들의 모습을 보고, 다급히 말을 이었다.“기절해선 안 되오. 그렇지 않으면 어마마마께서 정말 침을 놓으시러 오실 것이오.”그 말에 그들은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고 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내 허리를 곧게 편 채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만두의 말을 이해하려 애썼다.소요공이 그들의 모습에 놀라 입을 열었다.“술이라도 먹으면 낫지 않겠소?”그리고 술 항아리를 주무 앞에 건네며 말했다.“자, 이리 와서 마시거라.”주무는 정신이 흐릿해져 눈앞에 붉은 안색의 사람과 호리병 같은 술 항아리만 보였다. 그는 바로 입을 벌렸고, 센 술이 목으로 쭉 넘어왔다. 주무는 삼키는 걸 잊을 정도로 벌컥벌컥 마신 탓에 술이 입가로 줄줄 흘러내렸다.비록 망신을 당하긴 했지만, 술에 용기를 얻어 말도 거침없어졌다. 그의 언행이 마음에 든 무상황은 만두에게 긍정의 뜻을 전했다.“주무를 추천하마. 잘 관찰하고, 다듬으면 쓸만할 사람이다.”과거 제도 이후 내각의 추천으로 뽑힌 조정의 신하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과거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능력을 뽐낼 수 있었다. 무상황이 직접 추천한 이들이니, 만두도 안심하고 쓸 수 있었다.대화는
주무는 순간 멈칫했다. 관직에 임했었거나, 그런 적 없다고 하는 것이 정상인데, 어찌 저런식으로 답한다는 말인가?하지만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니, 주무도 예의를 차리고 되물었다.“어르신의 과거 품계가 어떠합니까?”“품계는 없다!”무상황이 손을 저으며 답하자, 주무는 당황스러웠고, 추측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품계도 없이, 어찌 관직에 임했다고 할 수 있는가?이때 무상황이 머뭇거리다가, 안타까운 말투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아이고... 내 평생 한 번도 품계 있는 벼슬은 못했네. 어릴 적 집안에서 여섯째 공자라고 불리며 지내다가, 휘 형 덕분에 태자가 되었지. 태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황제가 되었고, 그렇게 태상황까지 된 것이네. 이제 손자가 즉위하였으니, 난 무상황이 되었지. 참, 아쉽게도 평생 품계가 있는 벼슬자리는 못 해보았구나.”이 말에 다섯 유생은 숨이 막힐 것 같았고, 다리가 나른해졌다. 어르신의 말은 다리가 풀리고도 남을 정도로, 존귀한 자리가 아니던가? 유생들은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비록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신분을 들었으니 꿇어야 하지 않는가?주 어르신은 잘난 척하는 무상황을 보며 눈을 흘겼다. 오늘 분명 신분을 밝히지 않기로 하지 않았는가? 유생들과 몇 마디 나누지도 않고 신분을 밝혔으니, 어찌 이야기를 더 나눈다는 말인가?어젯밤에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아직도 정신이 흐릿한 것이 분명했다.무상황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어찌 무릎까지 꿇는 것이냐? 그저 허풍 좀 떤 것뿐이다. 그리고 다들 남도 아니니, 소문내지 말거라.”다섯 유생은 더욱 숨이 막혀왔다. 황제의 자리로 허풍을 치다니, 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이런 장난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다들 만두의 집안 어르신이 노망이라도 난 것이 아닌가 싶었다.유생들은 서로 부축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하지만 그때, 무상황이 말을 이어갔다.“북당의 황제를 논하자면, 난 지금의 황제인 내 손자 우문호가 제일 마음에 드는구나. 하지만 나한테 관직도 하사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