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강서이는 대꾸할 생각이 없어 그냥 돌아서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노아리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도하야, 왔어? 한참 기다렸잖아. 안에 들어가서 엄마랑 지인들한테 인사하고 갈래?”강서이는 낮게 코웃음을 치고 다시 별실 쪽으로 걸어갔다.멀리하고 싶다는 기색을 굳이 감출 생각도 없었다.노아리도 강서이를 발견했지만 오래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정확히는 강서이를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겼다.민도하의 마음에는 자기밖에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강서이는 노아리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데 신경을 쓸 이유도 없었다.두 사람이 스쳐 지나가려던 때, 직원 하나가 펄펄 끓는 뚝배기 소갈비찜을 들고 별실 쪽으로 가고 있었다.“잠시 비켜 주세요. 뜨겁습니다.”말이 끝나자마자 직원의 발이 뭔가에 걸렸다. 균형을 잃은 몸이 그대로 앞으로 쏠렸다.뚝배기는 막 불에서 내린 참이라 겉면부터 뜨거웠고, 안의 갈비찜도 여전히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저게 사람 몸에 쏟아지면 심한 화상을 피할 수 없었다.직원 바로 앞에는 강서이와 노아리가 서 있었다.한 사람은 직원을 보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등을 돌린 상태였다.노아리는 직원과 마주 보고 있어 피할 여지가 있었다.반면 강서이는 등을 돌리고 있어서 뒤에서 벌어진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별실에서 강서이를 찾으러 나왔던 남유환이 마침 그 장면을 보자, 표정이 굳어지면서 바로 소리쳤다.“강 대표! 조심하세요!”강서이가 의아해할 틈도 없이 누군가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몸이 크게 돌아가면서 강서이는 그대로 누군가의 품에 부딪혔다. 코끝이 상대의 몸에 닿았다.익숙한 우디 계열의 서늘한 향기가 가까이에서 밀려왔다.머리 위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오자 노아리도 놀라 외쳤다. “도하야, 데였어?”남유환도 급히 달려와 강서이를 살폈다.“괜찮으세요?”강서이는 민도하의 품에서 물러난 뒤에야 뜨거운 국물이 민도하의 오른손에 쏟아졌다는 걸 알아차렸다.손등의 꽤 넓은 부위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강서이는 미간을
“당연하지. 여기 너무 재미없어. 앉아 있는 게 고역이야.”“못 데려갈 건 없지. 너도 아는 사람이니까.”서태우가 호기심을 못 참고 물었다. “누군데?”“강서이.”서태우가 입을 다물더니 표정도 바로 바뀌었다. “그럼 난 그냥 돌아가서 재미없는 사업 얘기나 들을래.”“말해 줘도 싫다고 할 거면서 꼭 물어보더라.” 남유환이 놀리듯 웃었다. “강서이 평판이 이 정도야?”서태우가 짧게 말했다. “내가 방해했네.”강서이에게 몇 번 크게 데인 뒤로는 이름만 들어도 움찔하는 수준이었다....남유환이 월하정에 도착했을 때 노아리도 막 들어서고 있었다.남유환을 발견한 노아리의 눈이 밝아지면서 반가운 목소리로 불렀다.“유환아, 왔네? 일이 있어서 못 온다며?”남유환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이렇게 공교롭게 노아리와 마주칠 줄은 몰랐다.어색함을 넘기려고 아무 말이나 꺼냈다. “도하는 왜 같이 안 왔어?”“집에 일이 좀 있대. 조금 늦게 와서 나 데리러 온다고 했어.” 노아리가 설명했다. “안에서는 벌써 시작했어. 같이 들어가자.”“미안한데 나 오늘 여기서 사람을 만나기로 했어. 어머님께 안부만 전해줘.” 남유환은 자연스럽게 거절했다.노아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지만 곧바로 말했다. “그럼 이따 잠깐이라도 얼굴 비춰. 알잖아. 난 계속 너를 친구라고 생각해.”“상황 봐서.” 남유환은 확답하지 않은 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멀어지는 남유환의 뒷모습을 보던 노아리의 눈길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식당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곧장 이예수가 있는 별실로 가지 않았다. 남유환이 향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그는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 뒤 문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았다.노아리는 그 앞을 지나가면서 안쪽에 앉아 있는 강서이를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노아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금세 표정을 다잡았다. 남유환을 향한 실망만 짙어졌다.남유환의 등장은 강서이에게도 뜻밖이었지만, 곧 변수린이 알려 줬겠거니 짐작했다.하지만 남유환은
변수린이 별실로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이예수가 무슨 경사가 있기에 제법 큰 축하 자리를 마련했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이예수는 좀처럼 이유를 말하지 않고 사람들의 궁금증을 부추겼다.결국 누군가 먼저 추측했다. “혹시 따님하고 민 대표님 약혼 때문에 마련한 자리예요?”변수린은 ‘민 대표’라는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예수가 웃으며 설명했다. “그건 다들 이미 아는 경사잖아요?”즉, 오늘 축하할 일은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대체 무슨 일인데요? 얼른 말해 봐요. 궁금해서 못 참겠어요.”이예수도 끝내 더는 감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우리 아리가 곧 영승반도체를 맡게 됐어요.”사람들이 놀라 탄성을 내자 이예수는 더욱 힘주어 말했다. “예비 사위가 우리 아리를 얼마나 아끼는지 영승반도체를 아예 딸한테 넘겨줬다니까요.” “이제 우리 아리가 영승반도체 주인이고, 보유 자산만 따져도 40조 원은 된답니다.”“세상에, 축하해요!”“프라임로드투자 민 대표님하고 따님이 사이가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정말 대단하네요.” “아직 약혼 단계인데도 40조 원 가치의 회사를 통째로 넘겨주다니, 따님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요.”“소중하게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죠. B시에 재력가가 얼마나 많은데 저렇게까지 크게 마음을 쓰는 사람이 또 있겠어요?”“저도 이런 얘기는 처음 들어 봐요.”“정말 부럽네요. 아리 씨는 복도 많아요.”“아리 씨 본인도 워낙 뛰어나니까 민 대표님 마음을 얻은 거겠죠. 다들 모르셨죠? 아리 씨가 WT비즈니스대학교 금융학 박사잖아요.”“공부도 정말 잘했네요. 민 대표님이 아끼는 이유가 있었어요. 두 사람 정말 잘 어울려요. 사모님, 축하드려요.”“...”연달아 쏟아지는 축하에 완전히 기분이 업된 이예수는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누군가는 재미있다는 듯 말을 보탰다. “그렇게 따지면 다음 달에는 B시 여성 자산가 1위도 바뀌겠네요. 강서이가 1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요? 역대 최단기 1위가 되는
강서이는 양정원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불편하면 다른 식당으로 옮겨도 된다고 했다.양정원은 자기는 상관없다고 답했다.두 사람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입구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아마 축하 모임 참석자들인 듯했다.강서이는 신경 쓰지 않고 메뉴판을 보며 주문했다.마침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던 이예수가 고개를 들었다가, 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앉아 있는 강서이를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이예수는 직원을 불러 몇 마디 지시한 뒤 일행을 데리고 별실로 들어갔다.강서이가 주문을 마쳤을 때,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이 다가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죄송합니다, 고객님. 아까 직원이 예약 상황을 잘못 확인했습니다. 오늘은 전 좌석이 예약되어 있습니다.”“그럼 다른 곳으로 가죠.” 강서이는 양정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두 사람이 입구까지 갔을 때 마침 변수린과 마주쳤다.먼저 강서이를 알아본 변수린이 반가운 목소리로 불렀다.“강 대표, 식사하러 오셨어요?”“사모님.” 강서이는 변수린에게 인사한 뒤 상황을 설명했다.“전에 말씀하신 게 생각나서 한번 와 봤는데 자리가 없다고 하네요. 오늘은 다른 데 가고 다음에 다시 들를게요.”“이 시간에 자리가 없을 리가 없는데요. 주말도 아니고 공휴일도 아니잖아요.” 변수린은 의아해하며 곧바로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변수린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하지만 강서이를 다시 바라보면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되찾았다.“매니저가 착각했대요. 자리 있어요. 내 전용 별실로 안내해 드릴게요.”‘밥 한 끼 먹는데 일이 참 많네.’변수린의 체면만 아니었다면 강서이는 정말 다시 식당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변수린은 직접 강서이를 식당 안으로 안내해서, 자신이 이용하는 전용 별실에 자리를 마련해 줬다.직원에게는 오늘 식사비를 자기 앞으로 하라고 일러두기까지 했다.강서이는 곧바로 사양했다.하지만 변수린은 끝까지 고집하며 강서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오늘 식사는 내가
공식 순위는 아니었지만 실제와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그래도 세 사람은 적당히 말을 아끼며 더는 그 이야기를 이어 가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 강서이가 회사에 도착하자 김설이 축하한다며 작은 케이크와 꽃다발을 내밀었다.강서이가 물었다. “뭘 축하하는데?”“대표님이 B시 여성 자산가 1위에 오른 거요!”“비공식 랭킹이잖아.”“비공식이어도 1위는 1위죠. 축하할 만하잖아요! 얼른 제가 직접 만든 케이크도 드셔 보세요.”케이크는 제법 잘 만들었다. 보기만 해도 꽤 공을 들였다는 게 느껴졌다.강서이는 포크로 한입 떠먹다가 문득 동작을 멈췄다.‘이 맛... 왜 이렇게 익숙하지?’강서이가 멍하니 있는 걸 본 김설이 긴장한 듯 물었다. “왜 그러세요? 맛이 없어요?”“아니, 괜찮아. 달긴 한데 느끼하지도 않고.” 강서이가 짧게 칭찬했다.김설이 활짝 웃었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네요!”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예쁜 꽃까지 받아서인지 강서이는 오전 내내 기분이 꽤 좋았다....오후에 양정원이 B시에 도착하자 강서이가 직접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양정원은 차에 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강서이에게 소식을 하나 꺼냈다.“5분 전에 들은 소식인데요. 민 대표가 영승반도체 지분 양도 계약서를 작성 중이랍니다. 영승반도체를 노아리 본부장에게 넘길 생각인가 봐요.”양정원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대가 없이 넘기는 거래요. 말 그대로 증여죠.”정말 회사를 통째로 주기 시작한 모양이었다.그것도 프라임로드투자 산하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핵심 사업을.강서이는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예전에도 말했듯 민도하가 언젠가 프라임로드투자 자체를 노아리에게 준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영승반도체를 넘기는 것과 프라임로드투자를 넘기는 건 사실상 큰 차이도 없었다.강서이는 이 일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양정원은 달랐다. 생각해 보니 양정원은 노아리와 경영 방침이 맞지 않아서, 화가 나 영승반도체를 떠난 사람이었다.그 탓에
[얼마나 올랐는데?!]한지수는 예상대로 바로 관심이 옮겨갔다.강서이가 금액을 알려 줬다.한지수가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질렀다. [자기야, 사랑해! 나 평생 네 오른팔 할래!]강서이가 웃으며 물었다. “이제 안 화나?”한지수는 바보처럼 생글생글 웃었다. [화? 무슨 화? 능력 없는 사람이나 화를 내는 거지! 부자가 되면 웬만한 병은 다 낫거든!]확실히 돈 버는 재미가 남자 만나는 것보다 훨씬 컸다.한지수는 이제야 강서이가 왜 남자에게 관심을 잃었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꿈결’ 정식 출시를 앞두고, 노아리와 창업자 이봉석은 유력 매체의 공동 인터뷰를 진행했다.노아리는 업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서태우는 현장에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단톡방에 잡지가 발행되면 2만 부를 사서 응원하겠다고 선언했다.지난번 일을 만회하려는 뜻도 조금은 있었다.그때 꽤 큰 망신을 당했기 때문이다.서태우는 단톡방에서 서한승과 남유환까지 태그하면서 같이 힘 좀 보태라고 했다.하지만 둘 다 답이 없었다.다들 바쁘기는 정말 바쁜 사람들이었다.인터뷰가 끝난 뒤 잡지사 편집장이 직접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하며, 최신호 한 권을 노아리에게 선물했다.노아리는 표지에 실린 강서이의 얼굴을 보자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그래도 억지로 웃으며 편집장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잡지를 받아 들었다.집에 돌아오자마자 참았던 화를 풀 듯 바로 잡지를 바닥에 내던졌다.노장훈은 모처럼 집에 들어와 거실에서 경제 뉴스를 보고 있었다.공교롭게도 뉴스에서도 강서이에 관한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아빠!” 노아리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TV 좀 꺼요!”노장훈이 걱정하며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노아리는 속에서 끓는 이유를 솔직히 말할 수 없어서, 머리가 아픈데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고만 했다.“아픈 거야? 병원 가 볼까?”“괜찮아요. 방에서 좀 자면 돼요.” 노아리는 평소처럼 노장훈과 차를 마시며 일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