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조폭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건설업계 정점에 오른 태강그룹 후계자 강태호. 그가 수많은 정략결혼 후보를 제치고 고른 여자는 평판 최악의 서지안이었다. 사랑도 관심도 없는 결혼이라 믿었다. 그래서 끝내려 했다. “우리 이혼해요.” 그런데 무심하던 남편이 돌변했다. “누가 이혼해 준대.” 낮게 웃은 태호가 그녀를 몰아붙였다. “내가 널 왜 골랐는지는 궁금하지도 않나 봐.” 끝내려는 여자와 절대 놓아줄 생각 없는 남자. 애초에 이 결혼에는 지안만 몰랐던 이유가 있었다.
もっと見る11월의 서울은 해가 짧았다.
며칠 전부터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사람들의 옷차림도 서서히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코트 깃을 세운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거리를 오갔고 가로수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잎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하나둘 보도 위로 떨어졌다.
오후 네 시를 조금 넘긴 시각.
한낮의 빛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하늘은 벌써 저녁빛으로 기울고 있었다. 흐릿한 햇살이 빌딩 숲 사이로 길게 번졌고, 태강그룹 본사의 유리 외벽에는 잿빛 하늘이 차갑게 비쳤다.
강태호는 서른여덟 층 회의실에서 막 나온 참이었다.
오전부터 이어진 계열사 사장단 회의가 예상보다 길어진 데다 곧바로 건설부문 실적 보고까지 이어졌다. 몇 시간을 꼬박 회의실에 붙잡혀 있다 나온 사이 창밖은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성북 재개발 건, 경쟁사에서 공사비를 한 번 더 낮춰서 들어왔습니다.”
태호의 전담 비서 민도윤이 태블릿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수주팀에서는 기존 제안가에서 삼 퍼센트 정도 더 낮추면 승산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태호는 앞만 보며 걸었다.
“안 해.”
짧은 대답이 떨어졌다.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그대로 가실 겁니까?”
“삼 퍼센트 더 낮추면 수주하고도 남는 게 없잖아.” “대신 시공권 확보 자체에 의미를 두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주변 구역까지 연계해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태호의 입가에 짧은 비웃음이 스쳤다.
“돈 못 버는 공사 따놓고 실적으로 포장하자는 소리를 길게도 하네.”
도윤은 더 말하지 않았다.
“처음 제안한 금액 그대로 가.”
“알겠습니다.” “그걸로 떨어지면 그냥 빠져.” “예.”태강그룹의 주력인 태강건설은 국내 건설업계에서 몇 년째 정상을 지키고 있었다.
주택사업을 시작으로 재개발과 재건축, 대형 복합개발, 플랜트, 해외 인프라 사업까지.
국내에서 굵직한 건설 사업을 이야기할 때 태강의 이름을 빼놓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시작부터 지금처럼 번듯한 기업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태강그룹의 이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반드시 따라붙는 말이 하나 있었다.
‘조직폭력배 출신 기업.’
지금도 인터넷에 태강그룹을 검색하면 연관어처럼 붙어 나오는 오래된 꼬리표였다.
강태호의 아버지이자 현 태강그룹 회장인 강덕수는 젊은 시절 서울 일대를 주름잡던 조직의 우두머리였다.
재개발 붐이 한창이던 시절 철거와 용역을 시작으로 건설업에 발을 들였고 이후 태강건설을 세우며 사업의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거칠게 시작한 회사는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
중견 건설사를 인수했고 주택사업에 뛰어들었으며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지금의 태강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강태호가 경영 전면에 나선 뒤부터 태강은 다시 한번 크게 달라졌다.
태호는 서른이 되기 전부터 주요 계열사 경영에 참여했다.
태강건설 사장에 오른 뒤에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을 정리하고 대형 개발사업과 해외 사업을 공격적으로 늘렸다. 몇 년 뒤 부회장에 오른 후부터는 그룹의 굵직한 의사결정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쳤다.
태호가 경영에 뛰어든 이후 태강건설의 매출은 가파르게 올랐다.
줄곧 상위권을 맴돌던 업계 순위 역시 결국 1위까지 올라섰다.
강덕수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별개로 경영자로서 강태호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내놓은 결과가 워낙 확실했으니까.
서른다섯.
젊은 나이에 부회장 자리에 오른 것도 자연스럽게 그룹의 후계자로 굳어진 것도 그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수순이었다.
지금의 태호만 보면 과거의 태강과는 제법 거리가 멀었다.
고급 정장을 입고 회의실에 앉아 숫자를 보고, 계약서를 검토하고, 수천억이 오가는 사업의 방향을 결정했다.
적어도 지금의 강태호만 놓고 보면 과거의 태강을 떠올릴 만한 구석은 많지 않았다.
다만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만큼은 달랐다.
큰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체격,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얼굴. 가만히 시선을 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긴장하게 만드는 눈매까지.
태호는 좀처럼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오히려 목소리가 낮아질수록 주변은 더 조용해졌다.
말투도, 행동도 이미 오래전에 기업인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간혹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나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오래된 흔적이 드러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주변 사람들은 새삼 떠올렸다.
아무리 번듯한 정장을 입고 기업인이 되어도 결국 이 남자가 강덕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부회장실이 있는 최상층은 아래층과 분위기부터 달랐다.
넓고 긴 복도 양옆으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적게 잡아도 여덟은 되어 보였다.
모두 태강그룹 소속 경호팀 직원들이었다. 과거 조직 시절부터 이어져 온 태강 특유의 문화가 아직 일부 남아 있는 탓이었다.
태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복도에 늘어서 있던 남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부회장님.”
태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저거 언제 치울 건데.”
“회장님 지시라서요.” “……이러니 아직도 깡패 소리를 듣지.”잠시 후 집무실에 들어선 태호는 재킷 단추를 풀며 곧장 책상 앞으로 향했다.
책상 위에는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의자에 앉은 태호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자 왼쪽 팔뚝 안쪽에 길게 남은 흉터가 드러났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서류 한 부를 집어 들었다.
그때 도윤이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양손에는 각각 다른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
“부회장님, 결재 건부터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이것부터 확인하시겠습니까.”
태호는 결재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짧게 답했다.
“결재부터.”
“근데…… 이것도 오늘 안에 확인하셔야 하는 건이라서요.”도윤이 조심스럽게 한쪽 태블릿을 내밀었다.
태호가 마지못해 시선을 들었다.
화면 가운데 큼지막한 제목 하나가 떠 있었다.
지안의 걸음이 멎었다. 설마. 고개를 돌리자 몇 걸음 떨어진 곳에 태호가 서 있었다. 딥 네이비 슈트 차림의 태호는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지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텔의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부회장님?” 태호가 긴 다리로 성큼 다가왔다. “왜 그렇게 놀라.” “아니, 갑자기 뒤에서 말하시니까 그렇죠.” 지안은 괜히 휴대전화를 손안에서 고쳐 쥐었다. 하루 종일 문자 하나 때문에 사람 신경 쓰이게 해놓고 정작 답은 없더니. 태호가 지안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내가 답장 안 해서 서운했어?” 지안의 눈이 동그래졌다. ……귀신인가. “전혀요? 제가 언제 서운해했다고 그래요.” “표정에 다 써 있는데.” “진짜 아니거든요.” 지안이 바로 받아치자 태호의 입가에 옅은 웃음기가 스쳤다. 태호는 오늘 오후 서한호텔 레스토랑에서 외부 업체와 미팅이 있었다. 일정이 끝나고 돌아가려던 참에 복도 끝에서 지안을 발견했다. 서류를 품에 끼고 직원과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쪼그만 게 제법 열심히도 다니네. “근데 여긴 무슨 일이세요?” “너 보러.” 지안이 잠시 말을 잃었다. 저런 말을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건지. 그러다 태호 뒤쪽에 서 있는 비서를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기서 미팅하셨어요?” “애기는 눈치도 빠르네.” 지안이 황급히 검지를 입술 앞에 세웠다. “쉿.” “누가 들으면 어떡하려고 자꾸 애기래요.” 뒤에는 태호의 비서가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지안은 괜히 신경 쓰이는 듯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꾸벅 인사했다. 도윤도 마주 고개를 숙였다. 가까이서 보니 맑고 단정한 얼굴에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가 유난히 또렷했다. 표정이 바뀔 때마다 분위기도 미묘하게 달라졌다. 평소 여자에게는 눈길조차 잘 주지 않던 태호가 왜 지안을 두고 제일 예쁘다고 했는지 이제야 조금
아침부터 서한그룹 안이 온통 뒤숭숭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탕비실에서도, 사내 메신저에서도 온통 같은 이름이 오르내렸다. 서지안. 그리고 강태호. 오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서한그룹은 공식 입장을 냈다. 태강그룹과의 혼담은 사실이며 현재 양가가 구체적인 일정을 조율 중이라는 짧은 내용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확인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던 홍보팀이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꾸자 사내는 더욱 술렁였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지안은 놀랄 만큼 태연해 보였다. 쏟아지는 연락은 진작 무음으로 돌려놓은 채 평소와 다름없이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쾅. 노크도 없이 집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지안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누군지 확인하기도 전에 알 것 같았다. 윤준표였다. “너 진짜 강태호랑 결혼해?” 준표가 거의 고함을 지르듯 따져 물었다.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고 손짓까지 커진 채 당장이라도 팔짝팔짝 뛸 기세였다. “기사 보셨잖아요.” 얼굴에는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고. 네가 어떻게 강태호를 꼬셔?” “그러게요. 어떻게 했을까요.” 지안은 여전히 심드렁했다. “아니, 네가 뭐 볼 게 있다고 갑자기 강태호가 너랑 결혼을 해. 설마 잤냐?” 지안의 잇새 사이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침부터 개소리 할 거면 좀 나가요. 내가 좀 피곤해서 오늘은 받아주기 힘들거든요.” “너 진짜 뭐라도 해보려고 이러는 거야? 그렇다고 회장님이 너 봐주기라도 할 것 같아?” 지안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기대도 안 하고요. 그 회장님께서 먼저 맞선을 주도하셨네요. 하나뿐인 딸 아주 단물까지 쏙쏙 빼먹으실 생각인가 보죠.” “아니, 회장님은 왜 이런 애를…….” “회장님이랑 연락하시거든 덕분에 좋은 거래 했다고 전해 주세요.” “뭐? 거래? 무슨 거래를 했는데!” 준표가 또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지안은 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책상 한쪽의 내선 호출 버튼을 눌렀다.
그날 저녁. 태호를 태운 차가 성북동 주택가 깊숙한 곳으로 들어섰다. 높은 담장 너머로 자리 잡은 강덕수의 저택은 오래된 부잣집 특유의 묵직한 분위기를 풍겼다. 넓은 정원과 오래된 소나무, 낮게 깔린 조명까지.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집주인의 위세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차에서 내린 태호가 현관으로 들어서자 집안을 맡아보는 중년 남자가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부회장님.” “아버지는.” “서재에 계십니다. 저녁도 아직 안 드셨습니다.” 태호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들어보나 마나 오늘 집안 분위기가 어떨지는 뻔했다. 그대로 서재 쪽으로 향하려는데 거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얘, 태호야.” 태호가 걸음을 늦췄다. 차유경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강덕수가 태호의 친모와 이혼한 뒤 재혼한 여자였다. 몸에 달라붙는 화려한 원피스에 큼지막한 보석 목걸이, 손목에는 시계와 팔찌가 번쩍였다. 비싼 것들로만 골라 치장한 건 분명했지만 이상하게 고급스러운 맛은 조금도 없었다. 유경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너희 아버지 오늘 얼마나 놀라셨는지 아니? 그렇게 갑자기 결혼 기사를 내버리면 어떡하니. 집안끼리 상의라는 것도 있는 건데.” 태호가 무심히 그녀를 일별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십니까.” “뭐?” “집안일에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아버지 돈이나 펑펑 쓰시면서 얌전히 사시죠.” 유경의 안색이 굳었다. 마치 이 집에서 제 위치가 어디인지 똑똑히 상기시키는 말이었다. “너,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발끈한 목소리와 달리 기세는 이미 한풀 꺾여 있었다. 태호는 더 상대할 생각이 없는 듯 몸을 돌렸다. 유경이 뒤에서 급히 말을 보탰다. “아버지 안에 계셔. 엄청 화나셨더라. 저러다 쓰러지실까 걱정이야.” “퍽이나 쓰러지시겠습니다.” 태호가 비식 웃었다. 강덕수는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기세만큼은 웬만한 장정을 눌렀다. 한때 조직의 우두머리로 수많은 사람을 거느렸던 사람답게, 가만
“그러니까 부회장님은 저랑 결혼해서 태강 이미지도 바꾸고, 재단이랑 자연스럽게 엮이겠다는 거네요.” “어.” 태호는 순순히 인정했다. “대신 재단 지원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거야.” 지안의 눈빛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태강이 붙으면 얘기가 달라졌다. 지원 규모가 커지는 건 물론이고 그렇게까지 판이 커진 재단을 윤준표가 제멋대로 없애기도 쉽지 않을 터였다. 그 인간도 이제 함부로 지랄은 못 하겠네. “지금 규모의 몇 배는 가능할 텐데. 고민할 시간은 줄 테니까—” “좋아요.” 태호의 말이 뚝 끊겼다. 지안은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다. “…….” 이번에는 태호가 말이 없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결혼은 절대 못 한다며 버티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태도가 빨랐다. “해요, 결혼.” 태호의 시선이 지안의 얼굴에서 불쑥 내밀어진 손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빠르네.” “좋은 조건은 빨리 잡아야죠.” 조금 전까지 결혼이니 동거니 하며 얼굴을 붉히던 사람은 온데간데없었다. 태호가 지안의 손을 맞잡았다. “그래. 잘해보자, 애기.” “……그 애기 소리는 그만하시면 안 돼요?” “싫은데.” 멈칫. 순간, 너무 덥석 좋다고 한 건 아닌가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 부회장실을 나선 태호는 도윤과 함께 복도를 걸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느긋한 걸음이었지만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도윤이 옆에서 슬쩍 눈치를 살폈다. “서 이사님께는 잘 말씀하셨습니까? 아까 보니까 엄청 당황하셨던 것 같던데요.” 태호는 대답 대신 입매를 희미하게 풀었다. 결혼은 절대 못 한다더니 재단 지원 얘기가 나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손부터 내밀던 모습이 떠올랐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셈이 빠른 애였다. 그 점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잘했어.” 짧게 답한 태호가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회장님께서 오늘 퇴근 후에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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