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강제 결혼

소문난 강제 결혼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08
作家:  움디たった今更新されました
言語: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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概要

재벌

능력남

능력녀

현대물

해피엔딩

사이다물

나이차

계약결혼

번개결혼

조폭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건설업계 정점에 오른 태강그룹 후계자 강태호. 그가 수많은 정략결혼 후보를 제치고 고른 여자는 평판 최악의 서지안이었다. 사랑도 관심도 없는 결혼이라 믿었다. 그래서 끝내려 했다. “우리 이혼해요.” 그런데 무심하던 남편이 돌변했다. “누가 이혼해 준대.” 낮게 웃은 태호가 그녀를 몰아붙였다. “내가 널 왜 골랐는지는 궁금하지도 않나 봐.” 끝내려는 여자와 절대 놓아줄 생각 없는 남자. 애초에 이 결혼에는 지안만 몰랐던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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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話

1화 태강의 후계자

  11월의 서울은 해가 짧았다.

 며칠 전부터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사람들의 옷차림도 서서히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코트 깃을 세운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거리를 오갔고 가로수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잎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하나둘 보도 위로 떨어졌다.

 오후 네 시를 조금 넘긴 시각.

 한낮의 빛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하늘은 벌써 저녁빛으로 기울고 있었다. 흐릿한 햇살이 빌딩 숲 사이로 길게 번졌고, 태강그룹 본사의 유리 외벽에는 잿빛 하늘이 차갑게 비쳤다.

 강태호는 서른여덟 층 회의실에서 막 나온 참이었다.

 오전부터 이어진 계열사 사장단 회의가 예상보다 길어진 데다 곧바로 건설부문 실적 보고까지 이어졌다. 몇 시간을 꼬박 회의실에 붙잡혀 있다 나온 사이 창밖은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성북 재개발 건, 경쟁사에서 공사비를 한 번 더 낮춰서 들어왔습니다.”

 태호의 전담 비서 민도윤이 태블릿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수주팀에서는 기존 제안가에서 삼 퍼센트 정도 더 낮추면 승산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태호는 앞만 보며 걸었다.

 “안 해.”

 짧은 대답이 떨어졌다.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그대로 가실 겁니까?”

 “삼 퍼센트 더 낮추면 수주하고도 남는 게 없잖아.”

 “대신 시공권 확보 자체에 의미를 두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주변 구역까지 연계해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태호의 입가에 짧은 비웃음이 스쳤다.

 “돈 못 버는 공사 따놓고 실적으로 포장하자는 소리를 길게도 하네.”

 도윤은 더 말하지 않았다.

 “처음 제안한 금액 그대로 가.”

 “알겠습니다.”

 “그걸로 떨어지면 그냥 빠져.”

 “예.”

 태강그룹의 주력인 태강건설은 국내 건설업계에서 몇 년째 정상을 지키고 있었다.

 주택사업을 시작으로 재개발과 재건축, 대형 복합개발, 플랜트, 해외 인프라 사업까지.

 국내에서 굵직한 건설 사업을 이야기할 때 태강의 이름을 빼놓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시작부터 지금처럼 번듯한 기업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태강그룹의 이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반드시 따라붙는 말이 하나 있었다.

 ‘조직폭력배 출신 기업.’

 지금도 인터넷에 태강그룹을 검색하면 연관어처럼 붙어 나오는 오래된 꼬리표였다.

 강태호의 아버지이자 현 태강그룹 회장인 강덕수는 젊은 시절 서울 일대를 주름잡던 조직의 우두머리였다.

 재개발 붐이 한창이던 시절 철거와 용역을 시작으로 건설업에 발을 들였고 이후 태강건설을 세우며 사업의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거칠게 시작한 회사는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

 중견 건설사를 인수했고 주택사업에 뛰어들었으며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지금의 태강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강태호가 경영 전면에 나선 뒤부터 태강은 다시 한번 크게 달라졌다.

 태호는 서른이 되기 전부터 주요 계열사 경영에 참여했다.

 태강건설 사장에 오른 뒤에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을 정리하고 대형 개발사업과 해외 사업을 공격적으로 늘렸다. 몇 년 뒤 부회장에 오른 후부터는 그룹의 굵직한 의사결정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쳤다.

 태호가 경영에 뛰어든 이후 태강건설의 매출은 가파르게 올랐다.

 줄곧 상위권을 맴돌던 업계 순위 역시 결국 1위까지 올라섰다.

 강덕수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별개로 경영자로서 강태호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내놓은 결과가 워낙 확실했으니까.

 서른다섯.

 젊은 나이에 부회장 자리에 오른 것도 자연스럽게 그룹의 후계자로 굳어진 것도 그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수순이었다.

 지금의 태호만 보면 과거의 태강과는 제법 거리가 멀었다.

 고급 정장을 입고 회의실에 앉아 숫자를 보고, 계약서를 검토하고, 수천억이 오가는 사업의 방향을 결정했다.

 적어도 지금의 강태호만 놓고 보면 과거의 태강을 떠올릴 만한 구석은 많지 않았다.

 다만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만큼은 달랐다.

 큰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체격,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얼굴. 가만히 시선을 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긴장하게 만드는 눈매까지.

 태호는 좀처럼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오히려 목소리가 낮아질수록 주변은 더 조용해졌다.

 말투도, 행동도 이미 오래전에 기업인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간혹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나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오래된 흔적이 드러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주변 사람들은 새삼 떠올렸다.

 아무리 번듯한 정장을 입고 기업인이 되어도 결국 이 남자가 강덕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부회장실이 있는 최상층은 아래층과 분위기부터 달랐다.

 넓고 긴 복도 양옆으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적게 잡아도 여덟은 되어 보였다.

 모두 태강그룹 소속 경호팀 직원들이었다. 과거 조직 시절부터 이어져 온 태강 특유의 문화가 아직 일부 남아 있는 탓이었다.

 태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복도에 늘어서 있던 남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부회장님.”

 태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저거 언제 치울 건데.”

 “회장님 지시라서요.”

 “……이러니 아직도 깡패 소리를 듣지.”

 잠시 후 집무실에 들어선 태호는 재킷 단추를 풀며 곧장 책상 앞으로 향했다.

 책상 위에는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의자에 앉은 태호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자 왼쪽 팔뚝 안쪽에 길게 남은 흉터가 드러났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서류 한 부를 집어 들었다.

 그때 도윤이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양손에는 각각 다른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

 “부회장님, 결재 건부터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이것부터 확인하시겠습니까.”

 태호는 결재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짧게 답했다.

 “결재부터.”

 “근데…… 이것도 오늘 안에 확인하셔야 하는 건이라서요.”

 도윤이 조심스럽게 한쪽 태블릿을 내밀었다.

 태호가 마지못해 시선을 들었다.

 화면 가운데 큼지막한 제목 하나가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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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태강의 후계자
11월의 서울은 해가 짧았다. 며칠 전부터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사람들의 옷차림도 서서히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코트 깃을 세운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거리를 오갔고 가로수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잎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하나둘 보도 위로 떨어졌다. 오후 네 시를 조금 넘긴 시각. 한낮의 빛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하늘은 벌써 저녁빛으로 기울고 있었다. 흐릿한 햇살이 빌딩 숲 사이로 길게 번졌고, 태강그룹 본사의 유리 외벽에는 잿빛 하늘이 차갑게 비쳤다. 강태호는 서른여덟 층 회의실에서 막 나온 참이었다. 오전부터 이어진 계열사 사장단 회의가 예상보다 길어진 데다 곧바로 건설부문 실적 보고까지 이어졌다. 몇 시간을 꼬박 회의실에 붙잡혀 있다 나온 사이 창밖은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성북 재개발 건, 경쟁사에서 공사비를 한 번 더 낮춰서 들어왔습니다.” 태호의 전담 비서 민도윤이 태블릿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수주팀에서는 기존 제안가에서 삼 퍼센트 정도 더 낮추면 승산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태호는 앞만 보며 걸었다. “안 해.” 짧은 대답이 떨어졌다.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그대로 가실 겁니까?”  “삼 퍼센트 더 낮추면 수주하고도 남는 게 없잖아.”  “대신 시공권 확보 자체에 의미를 두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주변 구역까지 연계해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태호의 입가에 짧은 비웃음이 스쳤다. “돈 못 버는 공사 따놓고 실적으로 포장하자는 소리를 길게도 하네.” 도윤은 더 말하지 않았다. “처음 제안한 금액 그대로 가.”  “알겠습니다.”  “그걸로 떨어지면 그냥 빠져.”  “예.” 태강그룹의 주력인 태강건설은 국내 건설업계에서 몇 년째 정상을 지키고 있었다. 주택사업을 시작으로 재개발과 재건축, 대형 복합개발, 플랜트, 해외 인프라 사업까지. 국내에서 굵직한 건설 사업을 이야기할 때 태강의 이름을 빼놓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시작부터 지금처럼 번듯한 기업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태강그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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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정략결혼 후보 리스트
 [정략결혼 후보 리스트]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이게 뭐야.”  “죄송합니다. 회장님 쪽에서 넘어온 파일이라…….” 태호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가뜩이나 사나운 인상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결혼이라니. 요즘 신경 써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이런 것까지 챙길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읽어봐.”  “예?”  “어차피 나 안 읽어.”  “…….”  “네가 읽고 요약해. 시간 아까우니까.” 도윤은 잠깐 당황한 얼굴을 했지만 이내 익숙하다는 듯 태블릿을 받아 들었다. “첫 번째, 한영백화점 윤 회장님의 손녀, 윤세림 씨. 스물아홉. 후계 구도 확실하고 이사회 내 입지도 탄탄합니다. 조건상 가장 유력한 후보입니다.”  “다음.” “두 번째, 대신그룹 최 회장님 셋째 따님입니다. 스물일곱. 현재 대신호텔 전략기획실에서 근무 중이고요. 해외 대학 출신에…….”  “다음.” 태호는 다시 결재 서류에 집중했다. 이름도, 조건도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안 좋고, 조건 좋고, 흠잡을 데 없는 여자들. 어차피 그에게는 전부 비슷했다. “그리고…… 아닙니다. 끝입니다.” 서류를 넘기던 태호의 손이 멈췄다. 민도윤은 태블릿에 남아 있던 마지막 파일을 슬쩍 넘기려던 참이었다. “그건 뭔데.”  “아, 그게…….”  “누구냐고.”  “서한그룹 서지안 이사입니다.” 도윤이 태블릿 화면을 태호 쪽으로 돌렸다. 서지안, 스물다섯. 그 아래로 학력과 경력, 짧은 개인 정보가 이어졌다. “그룹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이사님 개인 평판이 좀…….”  “평판이 뭐.”  “소문이 좋지 않습니다.”  “서정욱 회장님이 미국 지사에 오래 상주하면서 사실상 혼자 자랐고, 술자리도 잦고 유흥 쪽으로도 말이 많습니다. 회사에서도 이사 직함은 달고 있지만 실권은 거의 없는 편이라는 얘기가 있고요.” 도윤은 화면을 한 번 내려다봤다. “굳이 리스크를 안고 가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제외했습니다.”  “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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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서한그룹, 서지안
서한호텔 서울. 지안은 최근 리뉴얼을 마친 스위트룸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새로 들인 가구와 침구, 창가 쪽 소파까지 천천히 훑던 시선이 천장 조명에서 멈췄다. “생각보다 훨씬 괜찮네요.”  “감사합니다, 이사님.”  옆에 서 있던 객실팀장이 고개를 숙였다. “조명은 저녁에 한 번만 더 확인해 주세요. 낮에는 괜찮은데 밤에는 조금 어두울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네. 확인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나머지는 이대로 진행하셔도 될 것 같아요.” 점검을 마친 지안은 곧장 본사로 향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서한그룹 본사 로비는 오가는 직원들로 분주했다. 지안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듣기만 해도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서 이사.” 윤준표였다. 서한그룹 본사 대표이사이자, 서정욱 회장의 아내 윤서경의 사촌이었다. 서정욱 회장이 미국 지사에 머무는 동안 본사를 맡고 있었지만 경영 능력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준표는 유독 지안을 경계했다. 아무리 서정욱 회장이 그녀에게 관심이 없다고 해도 훗날 서한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은 결국 지안이었다. 그래서 지안이 회사 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일 때면 준표는 필요 이상으로 날을 세우곤 했다. “호텔 갔다 오는 길이야?”  “네.” 준표의 시선이 지안을 한 번 훑었다. “요즘 꽤 열심히 한다? 왜 이래, 그냥 평소처럼 하지?” 준표의 비아냥에도 지안은 지지 않고 곧장 받아쳤다. “왜. 내가 서한그룹 먹을까 봐 아직도 걱정하는 거야?” 윤준표가 당황한 듯 얼굴이 붉어졌다. “뭐…… 뭐래. 네가 아무리 해도 넌 서한그룹 못 먹어. 회장님께 버림받은 주제에.”  “그래, 그러니까 고아나 다름없는 애 불쌍하지도 않아? 그만 좀 견제해. 내 소문도 작작 퍼 나르시고.” “뭐? 내가 언제 견제를 했다고? 너나 이번에 남자 하나 꼬셔서 뭐라도 해보려는 거 아니야?”서한호텔 서울. 지안은 최근 리뉴얼을 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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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첫 만남
 지안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뭔 개소리야, 또. 진짜 딱 한 대만 칠까? 지안은 볼 때마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준표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능력이 부족하면 키울 생각을 해야지 왜 애먼 사람 붙잡고 견제부터 하는 건지. 본인이 잘하면 될 일을 꼭 남을 끌어내려 해결하려 드는 것도 참 한결같았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지안은 준표를 바라보다 싱긋 웃었다. “윤 대표님, 적당히 하세요. 서한그룹 확 먹어버리기 전에.” 뒤에서 발끈한 준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지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닫히는 문 사이로 씩씩대는 그를 향해 가볍게 손까지 흔들어 보였다. 문이 완전히 닫히자 지안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걷혔다. 내가 무슨 수로 서한그룹을 먹어. 서정욱이 제게 이사 자리를 내어준 건 그저 피붙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딸에게 별다른 관심도, 기대도 없었다. 준표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지안만 보면 제 것을 빼앗길 사람처럼 날을 세웠다. 진짜 지치지도 않나 봐. 지안이 좌우로 고개를 저은 뒤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른 민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비서이자 회사 내 유일하게 마음을 놓고 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쟤 오늘따라 왜 저래요? 무슨 일 있어요?”  “그게…… 사실 다음 주 목요일 저녁에 맞선 일정이 잡혔습니다.”  “네?” 지안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민준은 난처한 기색으로 안경을 슬며시 밀어 올렸다. “태강그룹 강태호 부회장님이십니다.”  “……강태호요?”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뜬금없이 무슨 맞선이야. “저희 아빠가 시킨 거예요?”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지안의 잇새 사이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역시. 새삼 놀랄 일도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늘 그랬다. 제 뜻이나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지안은 필요할 때 쓰기 좋은 카드에 가까웠으니까. 이젠 하다 하다 딸을 팔아먹으려고 하나 보다. 민준이 지안의 눈치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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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서프라이즈 기사
“서지안.” 도윤의 걸음이 잠깐 흐트러졌다. “……서지안 이사님이요?”  “어.” 대답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는 윤세림 씨를 가장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영 쪽에서도 긍정적인 분위기라고 하고요.”  “됐고.” 서늘한 음성이 말을 끊었다. 태호는 여전히 앞을 향한 채 건조하게 덧붙였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예.”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르자 도윤이 빠르게 호출 버튼을 눌렀다. “그럼 혹시…… 서지안 이사님으로 결정하신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태호는 슈트 바지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 넣었다. “예뻐.”  “……예?” 몇 년을 곁에서 지켜봐 온 도윤조차 처음 듣는 말이었다. 태호는 원래 웬만한 여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제일 예뻐.” 몇 시간 전 마주 앉아 있던 지안의 얼굴이 떠올랐다. 맑고 단정한 얼굴에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 얌전한 낯을 해놓고선 이 맞선에는 일말의 미련도 없다는 듯 굴던 앙큼한 태도까지. 제법 흥미로웠다. 도윤은 잠시 얼떨떨한 얼굴로 태호를 바라보다가 이내 태블릿 PC로 시선을 내렸다. “그럼 서한 쪽에 먼저 연락하고 기사 준비할까요?”  “아니.” 태호가 무심히 잘라 말했다. “그냥 바로 기사 띄워.” 태호의 짙은 눈동자에 미묘한 흥미가 어렸다. *** 요란한 벨소리가 고요한 침실을 울렸다. 지안은 이불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끊어질 만하면 다시 울렸다. “아…… 진짜.” 결국 이불 밖으로 손을 뻗어 한참을 더듬은 끝에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어젯밤 과음한 탓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목은 바싹 말라 있었고,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다. 나 어제 어떻게 들어왔더라. 희미하게 기억을 더듬던 지안은 이내 포기했다. 다신 걔네들이랑 마시나 봐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이사님, 지금 어디십니까? 다급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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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원래 예쁜 여자한테 소문은 액세서리 같은 거죠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아니요. 저도 방금 왔어요.” 태호가 맞은편에 앉았다. “주문은 편하신 걸로 하시죠.”  “네.” 지안은 메뉴를 몇 장 넘겨보다 무난한 코스를 골랐다. 잠시 뒤 직원이 주문을 받아 돌아가자 테이블 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부회장님은 평소에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먼저 입을 연 건 어색한 침묵을 견디다 못한 지안이었다. “가리는 건 없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지안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서지안 씨는.”  “저도…… 딱히 가리는 건 없어요.” 대답을 마친 지안은 잠시 맞은편의 태호를 살폈다. 사실 아까부터 궁금했던 게 하나 있었다. “그런데 제가 왜 맞선 후보인지 알고 계세요?”  “저도 모릅니다. 근데 그건 왜 묻습니까?” 태호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사실 좀 조사를 했었거든요. 다들 어마무시하던데. 제가 왜 거기에 껴 있는지, 혹시 아버지가 돈을 막 엄청 찔러줬나 싶어서요.”  “돈을 찔러줬다면 뭐가 달라집니까?” 태호의 말에 지안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달라질 건 없는데, 이젠 하다 하다 딸 팔아먹으려고 그러시는 건가 싶어서요. 평생 사랑이라곤 받아본 적 없는 제가 누구한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말을 잇던 지안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마음에 없는 맞선이라지만 상대 앞에서 할 얘기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꺼낸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뭐, 재벌가들 결혼이 다 그런 거겠죠.” 지안은 하하, 머쓱하게 웃으며 태호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태호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어색해진 공기에 직원이 마치 구세주처럼 두 사람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직원이 접시를 내려놓은 뒤 와인 리스트를 펼쳐 보였다. “와인은 어떤 걸로 준비해 드릴까요?” 태호는 건네받은 리스트를 느긋하게 훑어내렸다. 몇 줄쯤 시선을 옮기던 그가 눈을 들어 지안을 향했다. “드시는 와인 있으십니까?” 지안이 가볍게 고개를 내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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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소문의 원흉들
식사하는 내내 간헐적으로 울리던 진동의 정체는 예상대로였다. 오하린 5건. 강윤재 3건. 그 아래로도 익숙한 이름들이 줄줄이 떠 있었다. 도재현, 백승현, 노진혁. 열다섯 무렵부터 붙어 다닌 십 년지기들이었다. 하나같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집안의 자식들이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시작했고 성인이 된 뒤에도 지겹도록 붙어 다녔다. 그리고 지안을 따라다니는 온갖 소문의 주범들이기도 했다. 물론 당사자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지만. 지안은 잔뜩 귀찮은 낯으로 오하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통화음이 채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요란한 음악 소리가 먼저 귓가를 때렸다. “야, 서지아안! 왜 전화를 안 바다!” 술이 제법 들어간 모양인지 하린의 목소리가 잔뜩 꼬여 있었다. “또 술 먹었냐? 바빴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에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서지안! 빨리 넘어와! 완전 재밌어!” 누군지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윤재였다. 지안이 미간을 꾹 눌렀다. “싫어…… 나 피곤해.”  “야, 우리 너무 서운하다? 너 요즘 연락도 잘 안 받고 약속도 맨날 안 나오고.”  “요즘 바쁘다고 했잖아.” 하지만 이미 술기운이 오른 인간들에게 지안의 사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됐고, 주소 보낼 테니까 와. 안 오면 우리 오늘부터 절교야!”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없었다. “아니, 나 지금 운전도 못 해.”  “야, 택시 타. 택시! 돈도 제일 많은 애가 뭐 그렇게 쫌생이처럼 아끼냐?” 지안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여간. 정말 도움이 안 되는 인간들이다. 클럽 안쪽 프라이빗 룸은 문을 여는 순간부터 요란했다. 쿵쿵 울리는 베이스와 웃음소리가 한꺼번에 귀를 때렸다. 지안이 문을 닫기도 전에 소파에 기대 있던 정윤재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오셨네, 서지안.” 윤재가 지안을 위아래로 훑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너 어디 갔다 왔냐?”  “왜.”  “옷 보니까 회사 갔다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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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혜성병원, 정도현
 문 앞에는 말끔한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정도현. “뭐야. 오빠가 여길 어떻게 왔어?” 도현이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애들이 너 온다길래.”  “내가 온다고 오빠가 클럽까지 와?”  “오면 안 돼?”  “아니, 그건 아닌데…….” 윤재의 형인 도현은 지안보다 네 살 많았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얼굴을 봐왔고 지금은 혜성병원 소아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었다. 늘 흰 가운이나 반듯한 셔츠 차림으로 보던 사람이라 이런 곳에 나타난 모습이 영 낯설었다. 도현은 자연스럽게 지안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많이 마셨어?”  “조금? 별로 안 마셨어.” 도현이 지안 앞에 놓인 잔을 확인하듯 바라보더니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천천히 마셔.” 그 모습을 보던 하린이 입꼬리를 올렸다. “또 시작이네.”  “뭐가.”  “도현 오빠는 맨날 지안이만 챙겨.”  “얘가 제일 술 못 마시니까 그렇지.” 도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윤재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형, 나도 동생인데 나는?”  “넌 알아서 살아.”  “와, 차별 봐.” 익숙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 문득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교정은 아침부터 꽃다발을 든 사람들로 붐볐다. 아이들은 부모의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었고 곳곳에서 웃음소리와 셔터음이 끊이지 않았다. “지안아!” 멀찍이서 하린이 가족들 사이에 파묻힌 채 손을 흔들었다. “이따 나랑 사진 찍어!” 지안은 알겠다는 듯 손을 한 번 흔들어 보이고는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딱히 기대한 건 아니었다. 습관처럼 화면을 확인했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축하한다는 문자 한 통도, 짧은 안부조차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주변의 웃음소리가 유독 귀에 거슬렸다. 이대로 더 있어 봐야 괜히 마음만 복잡해질 것 같았다. 가방을 챙겨 교문 쪽으로 향하려던 순간이었다. “서지안!”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교문 너머로 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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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겁먹은 토끼
 “주가는 어떻게 됐어요?” 민준이 태블릿 PC 화면을 몇 번 넘겨봤다. “결혼 기사 뜨고 나서 오전 장에서 강세로 출발했습니다. 태강이랑 서한이 전략적으로 손잡는다는 기대감이 붙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까지 올랐어요?”  “그룹 전체가 움직인 건 아니지만 서한호텔이랑 태강건설 쪽 거래량이 평소보다 확실히 늘었습니다. 관련 계열사들도 덩달아 움직이고 있고요.” 지안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그럼 이게 오보로 밝혀지면…….”  “큰일이죠.” 민준의 말씨가 조금 무거워졌다. “정정 보도가 나가는 순간 차익 실현 물량부터 쏟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 오전에만 기사도 계속 붙고 있어서 단순 해프닝으로 끝내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아…….” 지안이 관자놀이를 눌렀다. 안 그래도 숙취 때문에 지끈거리던 머리가 다시 아파오는 기분이었다. “윤준표는 난리 났겠네요.”  “아마 이미 보고받았을 겁니다.” 기사에는 단순히 두 사람이 맞선을 봤다는 수준을 넘어 양가가 결혼을 전제로 구체적인 논의를 마쳤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 사실관계가 틀렸다고 밝히는 순간 기사 자체의 신뢰도 문제는 물론이고 두 그룹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억측까지 따라붙을 게 뻔했다. “회사 쪽에서는 아직 공식 입장 안 냈죠?”  “네. 제가 일단 홍보팀에 아무것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태강 쪽 확인이 먼저일 것 같아서요.” 지안은 수긍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강그룹 본사에 들어선 지안은 서한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잠시 걸음을 늦췄다. 절제된 공간 전체에 묵직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지안이 낯선 분위기를 훑어보던 그때였다. 로비 한쪽에 서 있던 남자 둘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검은 정장. 한눈에 보기에도 덩치가 큰 체격. 표정 하나 없는 험상궂은 얼굴까지. “서지안 이사님 맞으십니까?”  “……네.”  “모시겠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지안과 민준이 나란히 굳었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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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소문난 강제 결혼
잠시 뒤 안쪽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남자가 문을 열어주자 지안은 저도 모르게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쫄지 말자. 짧게 마음을 다잡은 뒤 안으로 들어섰다. 집무실은 예상보다 훨씬 넓고 조용했다. 짙은 회색과 검은색으로 정돈된 공간에는 불필요한 장식 하나 없이 묵직한 분위기만 내려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태호가 있었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훑고 있던 그가 지안이 들어서자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오늘은 짙은 차콜 컬러의 스리피스 슈트 차림이었다. 베스트까지 흐트러짐 없이 갖춰 입은 모습이 삭막할 만큼 정돈된 집무실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앉아.” 태호가 턱끝으로 맞은편 소파를 가리켰다. 지안은 태연한 척 소파에 앉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숨기지 못한 채 엉덩이만 살짝 걸터앉았다. 그러고 보니 제 몰골도 영 말이 아니었다. 서둘러 나오느라 화장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머리도 대충 묶은 상태였다. 지금은 술 냄새만 안 나면 다행이었다. 멀찍이 떨어진 책상 너머에서 태호가 잠시 이쪽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그 태도가 지안은 영 이해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결혼 기사가 터졌는데도 조급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서류를 넘기는 손길도, 무심한 낯빛도 지나치게 태연했다. 지금 애가 타는 건 나뿐인가? 지안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한가하신 거예요?” 태호의 미간이 희미하게 좁혀졌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한가한 건 네 쪽 같은데.” 태호가 손에 들린 서류를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형식적으로나마 존댓말을 붙이던 사람이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말 따위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지금 오보 기사가 났는데, 적어도 사과든 해명이든 먼저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안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가만히 앉아 있기엔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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