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임시 대피소의 밤은 깊어갔지만, 강태풍 대원의 마음속에는 태풍 제우스보다 더 무시무시한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그 소용돌이의 이름은 바로 이었다."강 대원님, 아까부터 왜 그렇게 입을 댓 병이나 내밀고 계십니까? 어디가 많이 불편하십니까?"눈치 없는 후배 구조대원이 컵라면을 후루룩 삼키며 물었다.강태풍은 무뚝뚝하게 창밖의 폭풍우를 노려보며 퉁명스럽게 말을 뱉었다."내가 언제 입을 내밀었다고 그래. 나는 원래 태어날 때부터 구강 구조가 이래.""아닌데..... 아까 강 선생님의 차 반장 감싸고 돌 때부터 딱 그 표정이셨는데 말입니다.""이 친구가 지금 근무 태만 아닌가? 가서 남은 보급품이나 더 확인해!"후배를 쫓아낸 강태풍은 창고 구석에 털썩 주저 앉았다.자칭 [태풍의 눈에서 태어난 토종 남자], 줄여서 인 그에게 내숭이나 밀당 따윈 사치였다. 하지만 지금 자기 가슴속을 콕콕 찌르는 이 유치찬란한 감정은도무지 컨트롤이 되지가 않았다.'내 남사친... 건들지 말아요...?하!!'강태풍은 서나래가 했던 말을 혼자 나지막이 따라 하며 입술을 삐죽거렸다."남사친은 무슨....... 흥..! 소방관이 자기 몸 하나 간수 못 해서 흙더미에 깔리는 게 그게 실력이지, 훈장은 무슨 훈장이야. 나 같으면 방파제도 통째로 들고 나왔겠다."혼자 궁시렁 거리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 달칵 소리와 함께 창고 문이 열렸다.구급 배낭을 정리하던 서나래가 쏙 들어왔다.강태풍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휙 돌리며 짐짓 냉정한 척 각을 잡고 있었다."여기 계셨네요, 강 대원님?"서나래가 다가와 인사처럼 물었지만, 강태풍은 대답 대신 콧방위를 뀌었다.'흥' 소리가 제법 묵직하게 들렸다."어? 지금 저 보고 삐치신 거에요?"서나래가 태풍의 앞으로 걸어와 허리에 손을 얹었다.강태풍은 시선을 억지로 천장에 고정하며 딱딱하게 말했다."해경 특수구조대원을 삐치지 않습니다. 다만 효율적인 구조 작전을 위해 사색을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임시로 마련된 군청 대피소의 한쪽 창고.서나래가 도훈의 찢어진 어깨를 응급 봉합하고 있었다.마취제도 부족해 도훈은 이를 악물고 신음을 삼켰고, 수아는 옆에서 안절부절하며 도훈의 식은땀을 닦아주었다.그때 강태풍이 젖은 수건과 따뜻한 캔 커피 몇 개를 들고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도훈의 곁에 찰싹 붙어 있는 서나래에레로 향했다."환자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강태풍이 묻자 서나래가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일단, 응급처치는 끝났어요, 당장 큰 병원으로 이송해서 정밀 검사받아야 하는데.. 지금 길들이 다 끊겨서 걱정이에요."강태풍이 도훈을 바라보며 무뚝뚝하게 한마디 던졌다."현직 소방관이 현장에서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하고 잔해에 깔리다니, 훈련 부족 아닙니까? 민 순경이 위험에 처하기 전에 주변 지형지물부터 확인했어야죠."강태풍의 뼈 있는 말에 창고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사실 강태풍은 도훈의 실력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서나래가 도훈 때문에 울었던 것에 대한 심통 섞인 옹졸함이 튀어 나온 것이었다.하지만 그 내막을 알 리 없는 서나래의 눈이 동그래졌다.서나래가 메스를 내려놓으며 강태풍 앞을 가로막아 섰다."강태풍 대원님, 말이 좀 심하신 거 아닌가요? 차 반장은 민 순경 구하려고 자기 몸 던진 거잖아요. 그 상황에서 지형지물 따질 시간이 어디 있어요? 강 대원님, 선을 넘으셨어요! 내 남사친 건들지 말아요! 저래뵈도 소방서에서 훈장까지 받은 유능한 대원이라고요!!"이라는 단어가 강태풍릐 가슴에 콕 박혔다.강태풍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삼켰다.서나래가 도훈을 과도하게 감싸고 돌자,강태풍의 마음속에서 유치찬란한 질투의 괴물이 그 바람에 완전히 깨어나 버렸다."남사친이라......... 아주 든든하시겠습니다, 강 선생."강태풍이 턱을 치켜들며 차갑게 비아냥대며 쏘아 붙였다."하지만, 여기는 엄연한 재난 현장이고, 감정이 앞서면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사람까지
구조 장비와 지지대를 이용해 상부 잔해를 고정하기를 수십 분.강태풍은 빗속에서 유압 장비를 조작하며 기어코도훈과 수아가 갇힌 공간의 입구를 확보해 나갔다.다행히 추가 붕괴 없이 도훈의 다리를 누르고 있던 잔해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어이, 소방. 인상 좀 펴지?"강태풍이 흙더미 속에서 도훈을 끄집어내며 툭 던졌다.도훈은 어깨의 극심한 통증 때문에 신음하면서도, 강태풍을 보며 피식 웃었다."해경 형씨, 구조 솜씨가 제법인데요. 소방으로 이직할 생각 없으십니까?""난 짠내나는 바다가 체질이라서 말이지. 민 순경님 ,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강태풍의 물음에 도훈의 품에서 빠져나온 수아가 고개를 저었다."전 진짜 괜찮아요, 차 소방관님이 온몸으로 막아주셔서...... 근데 차 소방관님 어깨가............."골목 입구에서 구급상자를 들고 대기하던 서나래가 달려와 도훈의 상태를 살폈다."차도훈! 너 정말 미쳤어? 어깨 탈구에 찢어지기까지 했잖아! 혈압 체크하고 지혈부터 해야 해."서나래의 손길은 다급하면서도 정확했다.도훈은 그런 서나래를 보며 애써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야, 불도저. 나 멀쩡하니까 울지 마라. 이 정도 가지고 소방관이 엄살 부리면 쓰겠냐?"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강태풍의 시선이 미묘하게 굳어졌다.도훈을 치료하는 서나래의 눈빛에 서린 깊은 걱정에는,두 사람 사이의 오랜 친밀함과 신뢰가 엿보였기 때문이다.평소 차갑고 냉철하기로 소문난 해경의 강태풍이었지만,지금 이 순간만큼은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는 것 같았다.은근한 기 싸움의 시작이었다.도훈을 부축해 임시 대피소로 이동하는 길,강태풍은 일부러 도훈의 반대쪽 어깨를 강하게 받쳐 안았다. "소방, 힘 빼지 말고 내 몸에 기대라. 강 선생 힘드니까."도훈이 강태풍을 째려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구조대 형씨, 눈빛이 아주 이글이글하네요? 우리 서나래한테 딴 맘 품은거 아니죠?""딴 마음이 아니라 본 마음입니
"비가 너무 와서 앞이 안 보여요! 차 소방관님, 조금만 천천히...!"수아가 흙탕물에 발이 미끄러져 중심을 잃었다.도훈이 재빨리 수아의 팔을 붙잡아 끌어 당겼다.할머니를 이미 이송 차량에 태운 세 사람은마지막 남은 주택의 상태를 확인하던 중이었다.바로 그때였다. 쿠구구구--.땅을 울리는 기분 나쁜 진동이 발밑에서부터 전해졌다."위험해! 피해!"도훈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주택가 뒤편을 받치고 있던 거대한 콘크리트 축대에 균열이 가더니,순식간에 토사와 함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그 거대한 장벽이 무너지는 바로 아래에 민수아 순경이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민수아!!"도훈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날렸다.흙더미와 깨진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찰나,도훈이 민수아를 거칠게 안아 품에 넣고 굴렀다.쾅-! 쿠르릉--!자욱한 먼지와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었고, 커다란 비명이 골목을 가득 채웠다."차도훈! 민 순경님! 도훈아! 수아 씨!"뒤늦게 골목으로 진입하던 서나래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축대의 절반이 무너져 내려 골목을 완전히 막아버린 상태였다.서나래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어떡해, 어떡해.... 도훈아!! 수아 씨!""비켜 봐여, 강 선생!"그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타난 강태풍이 서나래의 어깨를 밀치고 잔해 앞으로 나섰다.강태풍의 얼굴은 빗물과 땀, 그리고 극도의 긴장감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그는 즉시 무너진 틈새를 살피며 소리쳤다." 차 대원! 내 목소리 들립니까? 들리면 대답해!!"잠시 후, 잔해 너머에서 쿨럭거리는 거친 기침소리가 들려왔다."콜록콜록! 어.... 강 대원님.........? 나 여기.... 살아 있어요.""민 순경은? 민 순경 상태는 어떤가?""제 품안에... 감싸 안아서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다리 위로 큰 돌이 떨어져서 움직일 수가 없어요."곧이어 민수아의 울먹이는 목소리도 들려왔다."차 소방관님, 어깨에서 피가 너무 많이 나요..
하천에서 역류한 물은 이미 도로를 삼키고 있었다.연실군 저지대 마을의 골목길은 이미 무릎까지 차오른 흙탕물로 인해거대한 수로처럼 변해 벼렸다.물 표면 위로는 쓰레기통과 스티로품 상자들이 둥둥 떠다녔고,바람이 불 때마다 가로수가 부러질 듯 비틀거렸다."어르신! 계세요?! 당장 나오셔야 합니다! 물이 더 차오르면 문이 안 열려요!"민수아 순경이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며 연신 빌라 단지의 문을 두드렸다.하지만 노후된 주택가의 주민들은 평생 살아온 집을 떠나기 싫다며문을 걸어 잠그거나, 짐을 챙기느라 지체하고 있었다."민 순경, 저기 2층 창문에 사람 있다!"도훈이 소리치며 서나래와 함께 달려갔다.창문 너머로 한 할머니가 안절부절 못하며 울먹이고 있었다.도훈이 신속하게 문을 부수고 들어가 할머니를 들쳐 업었다.서나래는 즉시 할머니의 안색을 살폈다."할머니, 숨 가쁘거나 가슴 아픈 데 없으세요? 괜찮으니까 제 손 꼭 잡으세요!"그 시각, 강태풍은 가장 위험한 하천 제방 근처에서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물살이 무서운 속도로 소용돌이치며 제방을 갉아먹고 있었다."모두 앞사람 로프 꽉 잡으세요! 서두르셔야 합니다! 한 줄로 움직이세요, 한줄로!"강태풍의 굵고 정돈된 목소리가 폭우 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그의 냉철한 지휘 아래 혼비백산했던 주민들이 차례로 안전한 고지대로 유도되었다.하지만 자연의 공습은 인간의 예상을 뛰어 넘었다.콰과과광-! 하는 굉음과 함께 저 멀리서 지반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강 대원님! 저쩍 골목길 안쪽에 아직 대피 못한 가구가 있어요!"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민 순경의 다급한 목소리에 강태풍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그 골목은 서나래와 차도훈이 들어간 방향이었다."강서나래! 차 소방관! 당장 그 골목에서 빠져나와! 거긴 축대 붕괴 위험 지역이다!"강태풍이 무전기에 대고 고함을 질렀지만, 돌아오는 것은 지직거림과 폭우 소리뿐이었다.물은 이제 허리춤까지 차오르고 있었다.시야는 고작 코앞 1
하늘은 이미 검은색을 넘어 핏빛이 감도는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연실군 전역에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는 단순한 경고음이 아니었다.그것은 거대한 괴물, 처강력 태풍 가 마침내 이 작은 해안 마을의 턱밑까지 당도했음을 알리는 비명이었다.지익-, 지이익--.정전이 반복되던 합동 구조 본부 (TF) 통제실의 모니터가 거칠게 흔들렸다.기상청에서 보내온 위성 이미지는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태풍의 눈이 뚜렷하게 잡히다 못해, 마치 지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였다."현재 시각 17시 40분을 기해 연실군 전역에 최고 단계 주민 대피령을 발령합니다! 반복합니다. 상습 침수 구역 및 해안가 저지대 주민들은 지금 즉시 지정된 대피소인 연실 군청과 정합체육관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통제관의 다급한 목소리가 방송망을 타고 군청 스피커와 순찰차의 확성기로 퍼져나났다.통제실 한구석에서 밤새 대기하며 앙숙처럼 으르렁거리던 강태풍과 강서나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조금 전까지의 투덜거림은 온데간데없고, 두 사람의 눈빛은 무섭게 가라앉아 있었다."강 선생."강태풍 장비를 챙기며 서나래를 불렀다.무뚝뚝한 음성이었지만 그 안에는 묵직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지금부터는 진짜 실전입니다. 훈련이나 시뮬레이션 따위랑은 비교도 안 될 겁니다. 내 지시 없이 멋대로 움직이지 마십시오."서나래는 의사 가운을 벗어던지고 TF 전용 방수 재킷을 걸쳐 입으며 코방귀를 뀌었다."강 구조대원님, 걱정 마시죠. 나 불도저 의사 강서나래예요.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지옥이라도 들어갈 준비 되어 있으니까,그쪽이야말로 내 뒤나 잘 지켜요."두 강 씨의 시선이 허공에서 불꽃을 튀겼다.밤새 좁은 통제실에서 은근한 기류를 나누었던 분위기는 폭풍 전야의 긴장감 속으로 완전히 증발한 듯 했다.그때 통제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소방관 차도훈과 지구대 민수아 순경이 들이다쳤다.두 사람 모두 이미 온몸이 빗물에 젖어 있었다."강 대원님! 해안가 저지대 하천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