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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1화

Author: 은지아
송남지가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번쩍 눈을 뜬 그녀의 눈동자가 초조하게 흔들렸다. 혹시 관찰실에서 들었던 말이 꿈은 아닐지, 나쁜 소식을 견디지 못해 쓰러졌던 것은 아닐지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그 순간, 누군가 차갑게 식은 그녀의 손을 꽉 잡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남지야, 괜찮아...”

그제야 송남지의 겁에 질린 눈빛이 조금이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곁을 바라보니, 오가은이 그녀의 병상을 지키고 있었다.

송남지는 면목이 없다는 듯 이불에 얼굴을 파묻으며 나직이 읊조렸다.

“아주머니, 제가 참 한심하죠. 자꾸 이렇게 쓰러지기나 하고.”

하정훈에게 그토록 큰일이 생겼으니 모두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본인이 속도 없이 쓰러지는 바람에 오가은을 이곳에 붙잡아두고 자신을 보살피게 만들었으니 못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오가은은 송남지의 이마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겨주었다.

“바보같이.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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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면을 쓴 남편   제912화

    오가은의 얼굴에 짙은 수심이 스쳤다.송남지의 말을 들으며 그녀는 두 사람이 생사라는 거대한 고비는 넘겼을지언정 보이지 않게 얽힌 또 다른 업보의 매듭이 여전히 얽혀 있음을 직감했다.쉽게 풀릴 매듭이 아니었다.하지만 그때 송남지가 갑자기 눈가에 서린 원망을 거두고 안쓰러운 빛을 띤 채 말을 바꾸었다.“그런데 정훈 씨가 지난 반년 동안 겪었을 아픔이랑 외로움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제가 지옥에 다녀온 정도라면 그 사람은 지옥의 가장 깊고 어두운 나락에서 반년을 보냈을 테니까요. 그래서 차마 그 사람을 탓할 수가 없네요. 굳이 나무랄 점을 찾자면, 그 사람이 감히 저를 얕봤다는 거예요.”송남지의 말에 오가은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그 아이가 널 어떻게 얕봤다는 거니?”송남지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자기가 불치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숨긴 것 자체가 절 우습게 본 거예요. 제가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까 봐, 혹은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저도 따라 죽을까 봐 겁이 났던 거잖아요. 그렇게 나약한 여자로 생각했다니 그건 분명 저를 얕본 거 아니겠어요?”오가은은 송남지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요 며칠 사이 처음으로 홀가분하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그 녀석이 널 정말 얕봤구나. 정훈이가 좀 나아지면 내가 따끔하게 혼내줄게.”송남지는 오가은이 언제나 자기편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하정훈이 크롬친화세포종 확진을 받고 이혼을 요구했을 때도 오가은은 마치 하씨 가문의 그 무엇이라도 그녀가 원한다면 다 내어줄 기세였다.오늘도 관찰실에서 오가은은 노골적으로 송남지의 편에 서서 임승아를 쫓아내 주었다.사실 송남지는 이혼 사유를 알게 된 이상 임승아의 존재 따윈 안중에도 없었지만 오가은은 송남지의 눈에 모래 한 톨 들어가는 꼴을 못 볼 만큼 그녀를 지극히 아끼고 감싸주었다.그 사랑에 송남지는 다시금 가슴이 뭉클해졌다.그녀는 오가은의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쥐며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아주머니,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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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남지가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새하얀 천장이었다.번쩍 눈을 뜬 그녀의 눈동자가 초조하게 흔들렸다. 혹시 관찰실에서 들었던 말이 꿈은 아닐지, 나쁜 소식을 견디지 못해 쓰러졌던 것은 아닐지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그 순간, 누군가 차갑게 식은 그녀의 손을 꽉 잡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남지야, 괜찮아...”그제야 송남지의 겁에 질린 눈빛이 조금이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곁을 바라보니, 오가은이 그녀의 병상을 지키고 있었다.송남지는 면목이 없다는 듯 이불에 얼굴을 파묻으며 나직이 읊조렸다.“아주머니, 제가 참 한심하죠. 자꾸 이렇게 쓰러지기나 하고.”하정훈에게 그토록 큰일이 생겼으니 모두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어야 마땅했다.그런데 본인이 속도 없이 쓰러지는 바람에 오가은을 이곳에 붙잡아두고 자신을 보살피게 만들었으니 못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오가은은 송남지의 이마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겨주었다.“바보같이. 그게 왜 한심해? 너도 정훈이가 걱정돼서 그런 건데. 정훈이 곁에는 지키는 사람들이 많아. 나도 정훈이를 보고 오는 길이니 걱정 마라, 상태가 꽤 괜찮으니 몇 시간 뒤면 깨어날 거야.”그 말을 듣고서야 송남지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그녀가 서둘러 일어나려 애쓰자 오가은이 만류했다.“의사 선생님이 푹 쉬라고 하셨어.”하지만 마음이 급해진 송남지가 간절하게 말했다.“아주머니, 정훈 씨를 보러 갈래요...”오가은은 애정 어린 눈길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어쩜 너처럼 예쁜 아이가 다 있을까. 의사 선생님이 네가 너무 긴장하고 걱정한 탓에 숨을 제대로 못 쉬어서 산소가 부족했던 거래. 그러니까 얼른 푹 쉬어. 정훈이 보러 가겠다고 고집부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잠시 말을 멈춘 오가은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정훈이 그 녀석, 어릴 때부터 워낙 자존심이 세고 체면을 차리던 애였어. 그러니 지금 그렇게 약해진 모습은 너한테 더더욱 보여주고 싶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억지 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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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남지는 등을 돌리고 선 하종현을 지켜보았다. 그는 모두에게 등을 보인 채 조용히 손을 들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생사의 갈림길 앞에서는 하종현 역시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평소 정재계를 주름잡으며 치열하게 살아오던 거물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2시간 반 동안 모두의 피를 말리던 수술이 마침내 끝났고 수술실의 붉은 등도 꺼졌다.김서윤이 문을 열고 바그너 교수와 짧게 소통한 뒤, 교수가 참관실로 발을 들였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2시간 반 동안 수술을 마친 그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가 서려 있었다.마스크를 내리는 손이 본인도 모르게 떨릴 만큼 바그너 교수에게도 힘겨운 시간이었음이 느껴졌다.산전수전 다 겪은 세계적인 명의조차 이 정도인데, 참관실에서 기다리던 이들의 심정은 오죽했을까.“수술은 성공적입니다. 다만 중간에 심정지라는 돌발 상황이 있었기에 경과를 지켜보는 시간이 좀 더 길어질 겁니다.”임승아가 서둘러 교수의 말을 통역하려 하자, 오가은이 손을 내저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통역할 필요 없어요. 나도 젊었을 때 게르니에서 유학했으니까.”말을 내뱉으려던 임승아의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참관실 안에 서 있는 그녀는 통역조차 필요 없게 되자 마치 불필요한 존재가 된 듯했다.오가은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수리스에서 공부 중이라고 들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학업에 지장이 생기면 안 되잖아요? 애써 여기까지 와서 공부하는데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죠.”임승아는 붉어진 눈시울로 나지막이 해명했다.“학교 성적은 잘 유지하고 있어요. 제가 성루이야 병원에서 통역 일을 하는 건 집안 형편상 막대한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서예요.”그러자 오가은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아, 그래요? 그렇다면 우리 성은 그룹에서 승아 씨가 졸업할 때까지 수리스 유학 비용 전액을 지원하도록 하죠.”임승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녀에게 이것은 결코 기쁜 소식이 아니었다.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며 겨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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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면을 응시하던 송남지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뼛속 마디마디에서 배어 나오는 소름 끼치는 한기였다.송남지는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짧은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하정훈과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이 선명해졌다.하씨 저택, 하정훈의 생일날, 그녀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하정훈에게 선물을 전달하러 갔었다. 다만 그날 연회장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의 얼굴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았지만 송남지는 그날 선물 가방을 들고 있던 하정훈의 손목만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마디가 선명하고 유독 보기 좋았던 그 손목. 그것이 송남지가 하정훈에 대해 품은 첫인상이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참 이상해진다. 최근의 일들은 가물가물하면서도 아주 오래전의 일들은 이토록 선명하게 떠오르니 말이다.처음 본 순간 이미 마음을 빼앗아 버린 사람을 남은 생애 동안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송남지는 그 찰나에 깨달았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몰라도 정말로 힘든 건 그 사람을 흔적 없이 지워내는 일이라는 것을.그렇게 멍하니 몇 초가 흐른 뒤, 화면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겼다.의료진들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고 팽팽하게 굳어있던 안색에 비로소 여유가 돌았다.수술실 안, 그 차갑던 직선이 변하기 시작했다.다시 파동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약물 투여도, 심장 압박도 계속되었고 제세동을 세 번이나 시도했음에도 반응이 없었던 심장이었으니까.의학적으로는 할 수 있는 처치를 다 끝낸 상황이었기에 남은 건 절망적인 선고뿐이었다.그런데 그 직선이 움직였다.처음엔 기기 오작동인 듯 미세하게 떨리더니, 이내 한 번 두 번 박동하며 파도처럼 일렁였다.바그너 교수는 정밀 기구를 손에 쥔 채 심전도를 응시했고 곁에 있던 어시스트는 감격에 겨워 외쳤다. “세상에, 신이 도우셨어요!”모두의 시선이 하정훈의 흉부로 쏠렸다.공중에 노출된 심장이 스스로 뛰고 있었다.끝없는 경주를 갓 끝낸 주자처

  • 가면을 쓴 남편   제908화

    임승아는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그제야 하종현과 오가은의 마음속에 송남지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깨달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고의가 아니었다는 듯 변명했다.“죄송합니다. 하정훈 씨의 상태가 너무 위중해 보여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 실언을 했습니다. 송남지 씨, 부디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송남지는 이제 임승아의 사과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그녀의 시선은 이미 대형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세계적인 심혈관 외과 권위자가 정교한 메스를 쥐고 집도에 한창이었다.번역되어 올라오는 자막을 확인한 송남지의 심장이 누군가 꽉 쥐어짠 듯 조여들었다.“영상으로 본 것보다 크군.”“부신정맥을 휘감고 하대정맥 후벽에 밀착된 상태다. 혈관 차단 준비해.”어시스트들이 일사불란하게 기구를 조절했다.수술실의 지독한 정적과 참관실의 소란스러운 가슴 떨림이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세계 최고의 팀은 이보다 더 복잡하고 위험한 상황도 수없이 겪어왔을 터였다. 종양이 조금 큰 것쯤은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박리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크롬 친화 세포종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결코 크기 때문이 아니었다.그것이 ‘살아있기’ 때문이었다.메스가 종양의 피막에 닿는 순간, 잠들어 있던 괴물이 깨어났다.마치 자극받은 문어가 먹물을 뿜어내듯, 종양은 하정훈의 전신 혈관으로 해일 같은 카테콜아민을 쏟아냈다. 생리적 한계치의 수십 배에 달하는 에피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이 단 1초 만에 혈류를 장악했다.순간 모니터의 수치들이 미친 듯이 치솟기 시작했다.“고혈압 위기상태입니다!”마취과 의사가 다급히 소리쳤다.“혈압 260, 심박수 195, 심실 조기 수축 발생!”“혈압 강하제 펜톨라민 투여.”바그너는 메뉴판이라도 읽듯 무심하고도 침착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며 칼을 멈추지 않았다.“리도카인 준비해.”간호사가 서둘러 수액 라인에 약물을 주입했다.1초, 2초, 3초. 화면 위를 달리던 곡선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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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면을 쓴 남편   제3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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