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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윤보라
그 시각, 여수아는 재상부의 문 앞에 서서 눈앞의 높은 담과 웅장한 저택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저택의 주인은 바로 소휘, 이 나라의 재상이자 그녀가 어릴 적 혼약을 맺은 약혼자이기도 했다.

사실 그녀는 이 혼약 따위는 없었던 일로 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권세를 빌려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이 약혼자라는 명분도 다시 주워 담아야 했다. 세상일이 어디 뜻대로 되는가?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옛 정혼자, 먼지 쌓인 그 이름을 다시 꺼내 들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청지기가 느긋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태도는 무미건조했고 눈빛은 파문 하나 없었다.

“아가씨,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렇게 여수아는 청지기를 따라 재상부의 대문을 넘어 화청으로 향했다. 그 안은 다소 어두웠다. 발을 들이기 전에 고개를 들자 한 사람이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옷자락을 걸친 그 남자는 키가 컸고 나무 선반 앞에서 손을 씻고 있었다.

그가 손을 씻자 곁에 있던 수행인이 다가와 수건을 내밀었고 그는 천천히 손을 닦으며 몸을 돌렸다. 여수아는 그제야 그의 얼굴을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는 길에도 그에 대한 소문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실로 악명 높은 간신이자 권신.

그는 황제의 심복으로 권력을 거머쥐고 충신과 명장을 잇달아 처단했다. 그가 움직이면 조정에서는 줄줄이 목숨을 잃는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관료들은 그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이를 갈았지만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었고 백성들조차 귀신보다 더 두려워하는 존재가 바로 그였다.

여수아는 생각했다. 이토록 악명 높은 사람이라면 분명 노회한 얼굴을 지닌 중년 남성일 것이라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만 기억했을 뿐, 정확히 몇 살 차이인지는 알지 못했기에 적어도 띠동갑 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젊었다. 젊다 못해, 지나치게 잘생겼다.

얼굴선은 뚜렷했고 우아하면서도 날카로웠다. 눈꼬리는 은근히 올라가 있어 어딘가 요사스럽고도 치명적인 기운을 풍겼다.

그가 시선을 들어 여수아를 바라보았다. 그저 스치듯 한 번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담백한 정이 서려 있는 듯한 그 눈길에 여수아는 잠시 멈칫했다.

그는 이내 눈을 떨구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천천히 닦아내렸다. 청지기는 화청 입구에서 멈춰 서서 여수아에게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그녀가 문턱을 넘는 순간, 코끝을 자극하는 비릿한 냄새가 퍼졌다.

그와의 거리는 아직 제법 멀었건만 그에게서 풍기는 짙고 은은한 향, 그리고 그 속에는 아주 엷은 피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세하게 찌푸린 얼굴을 소휘는 정확히 보아냈다. 수건을 수행인에게 건네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

“약혼자 보러 온다더니, 왜? 무서운 것이냐?”

정말로... 이 약혼자는 다시 주워 담지 말걸. 누가 가져가겠다고 한다면 기꺼이 넓은 아량으로 넘겨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참 이상하게도 잘생긴 남자 중에는 멀쩡한 사람이 없단 말이지.

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소휘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유려하게 말을 이었다.

“그 옥패, 나한테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

여수아는 망설이다가 손가락 사이에 옥패를 걸어 내보였다. 정교하고 투명하며 따스한 윤기를 머금은 봉황옥패였다. 그의 허리춤에는 그것과 짝을 이루는 옥패가 매달려 있었다. 소휘는 수행인에게 말했다.

“저것 좀 가져오거라.”

그는 태사 의자에 느긋이 앉아 옷자락을 가볍게 정리하더니 수행인이 가져온 여수아의 옥패를 받아들고 손가락 사이에서 돌려가며 감상하듯 살폈다.

여수아는 평범한 시골 여인일 뿐이고 지금 눈앞의 그는 한 나라의 재상이다. 그가 이 혼약을 부정한다면 억지로 밀어붙일 힘 따윈 자신에게 없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소휘는 옥패를 내려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확실히… 내가 예전에 정혼한 여인이 맞군.”

이렇게 순순히 인정해도 되는 걸까? 너무 순조로운데?

소휘는 턱을 괴고 고개를 돌려 청지기를 바라보았다. 그는 즉시 허리를 숙이며 소휘의 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이 여인이 묵을 뜰 하나 마련해 주거라.”

여수아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 옥패, 제가 길에서 주워 온 거라고 얘기했다면 어쩌려고 하셨사옵니까?”

소휘는 여전히 부드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반문했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 그대는 어떠한가?”

여수아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그럭저럭.”

소휘는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말했다.

“부디, 내가 그대의 약혼자로 마음에 들길 바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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