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은 오늘도 나를 죽이려 한다

간신은 오늘도 나를 죽이려 한다

By:  윤보라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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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휘는 당대 최고의 권신으로 모두가 그를 두려워했다. 권모술수와 권세를 쥐고 흔드는 데만 흥미가 있었고 여색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그에게 느닷없이 한 아가씨가 찾아왔다. 그녀는 자칭 그의 약혼녀라며 자신을 소개하는데... “나랑 연애해 보지 않겠느냐?” “어떤 종류의 연애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한 것 말이다.” 그날 이후 여수아는 늘 깊이 후회했다. 왜 그때 충동적으로 그의 약혼녀라고 자청했을까? 긴 고민 끝에 그녀는 결국 파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주위 사람들에게 털어놓았지만 모두 그녀를 뜯어말리기 바빴다. “그래, 그 사람이 간사하고 잔인하긴 하지만, 뭐 그 외에도... 마음씨가 고약하고 인품이 글렀다고는 하지만 말이지. 그거 빼고는 흠잡을 데 없지 않나...” 여수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좋은 점이 없다는 뜻 아닙니까?” 그 질문에 모두 머리를 짜내어 생각하더니 그녀에게 겨우 위로의 한마디를 건넸다. “잘생기긴 했잖소?” “그럼 당신들 중 그 자를 갖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십시오. 그 대가로 저택 한 채는 그냥 드릴 터이니.”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진저리 난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아니지! 이건 저택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저택을 무료로 준다고 해도 그를 데려가겠다는 자가 없으니 웬. 여수아는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날 팔아먹는데 실패했느냐?” 늘 우수에 차 있는 눈빛으로 말하던 소휘에게 신경 쓰이는 일이 하나 생겼다. 바로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 나타나 그에게서 여수아를 가로채려 한다는 것이다. 그 후로부터 소휘의 낯빛이 바뀌기 시작하더니 그의 속에서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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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서재 한가운데, 바닥에는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사내 하나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겁에 질린 눈으로 사방을 살피며 몸을 벌벌 떨었다.

곁에 선 수행인이 자리에 앉은 소휘에게 공손히 보고했다.

“주인 어르신, 조사는 모두 끝났사옵니다. 이 자는 분명 제왕이 우리 재상부에 심어둔 첩자이며 두 달 전부터 잠복해 있었다고 하옵니다.”

소휘는 그 말을 들으며 느긋하게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찻잔 뚜껑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하얀 손이 멈추자 찻잔 뚜껑이 ‘짤칵’ 하고 찻잔 위에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바닥에 있던 하인이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움찔거렸다. 소휘는 느긋하게 눈꺼풀을 들어 그를 내려다보더니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했다.

“좀 더 가까이 오거라.”

하인은 감히 그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이 집에서 일한 지도 꽤 되었기에 소휘가 어떤 인물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무릎으로 기어가며 변명했다.

“재상 나리, 제발 현명하게 판단해 주시옵소서. 소인은 단 한 번도 나리께 해가 될 일을 한 적이 없사옵니다.”

소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놀랄 만큼 온화했지만 그 안에는 소름 끼치는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

“제왕은 너에게 무엇을 시키더냐?”

하인은 처음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소휘는 몸을 약간 숙이며 차가운 손으로 그의 목덜미를 낚아채듯 들어 올렸다. 그의 손은 싸늘했다. 마치 독사가 몸을 휘감는 듯한 감각에 하인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이윽고 소휘는 느릿느릿 말했다.

“말하거라. 그러면 살려줄 것이다.”

하인은 겁에 질려 울먹이며 실토하기 시작했다.

“제왕께서는 재상 나리께 잘 보여야 한다고…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악의는 없었고 다만… 다만 소인에게 나리의 일정과 일상을 주의 깊게 살피라 하셨습니다. 친분을 맺을 수 있을까 하여...”

소휘는 담담히 물었다.

“그게 전부인 것이냐?”

하인은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그러나 마지막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순식간에 무릎 아래 숨겨둔 단검을 꺼내어 소휘의 가슴팍을 향해 찌르려 했다. 마치 모든 것을 건 듯한 눈빛으로 말이다.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그를 죽이기만 하면 큰 공을 세운 셈이고 다시는 벌벌 떨며 살아갈 필요도 없을 것이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수행인은 놀라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그런데 단검의 끝이 소휘의 가슴에 닿기 직전 그는 단 한 손으로 칼날을 덥석 붙잡았다. 검날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스치듯 지나갔지만 소휘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하인의 얼굴은 이그러졌다. 온 힘을 다해 밀어붙였지만 단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휘의 표정은 단 한 줄기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마치 새의 날개를 접듯 사내의 손목을 뒤틀었고 단검이 방향은 무자비하게 하인을 향해 있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 소휘는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느긋하게 그 단검을 하인의 가슴 중앙을 향해 조금씩 밀어 넣었다.

그는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소휘는 자신의 눈밖에 난 자는 절대 편히 죽게 놔두지 않는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피부가 찢기고 살이 뚫리는 소리가 천천히 집요하게 울렸다. 마침내 단검은 완전히 그의 몸에 박혔고 오직 손잡이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핏물이 소휘의 손을 타고 뚝뚝 흘렀다. 그는 손잡이를 비틀듯 한 바퀴 돌린 뒤 무심히 손을 놓았다. 하인은 마치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소휘의 길고 고운 손가락이 미세하게 구부러졌고 그 사이로 핏방울이 조용히 바닥으로 흘렀다. 수행인이 다가와 하인의 시신을 살펴보더니 단검이 다리 부츠 속에 숨겨져 있었음을 확인하고는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소인의 불찰이옵니다.”

소휘는 그를 담담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따가 자진해서 벌받도록.”

수행인이 물러나려던 참에 다시 소휘를 향해 물었다.

“그럼 제왕 쪽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시옵니까?”

소휘는 덤덤하게 말했다.

“제왕의 뜻대로 하겠다. 친하게 지내 보자고.”

바로 그때 대문 쪽에서 집안 청지기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재상 나리, 나리의 약혼녀라고 하시는 분이 찾아오셨사옵니다.”

소휘는 손가락에 묻은 피를 훑듯 문질렀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되물었다.

“약혼녀?”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말했다.

“그 아가씨 말이 곧이곧대로 믿을 만한 것이냐?”

청지기가 공손히 대답했다.

“처음에는 소인도 의심했사옵니다. 하지만 그 아가씨께서 가지고 온 신표를 보니 나리께서 늘 지니고 다니시던 봉황 옥패와 짝이 맞더이다.”

소휘는 다시 질문했다.

“그 옥패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아가씨께서 재상 나리께 직접 보여드리겠다고 하옵니다.”

쉽게 넘겼다가 거절당할까 걱정되어 직접 보여주기 전까진 내주지 않겠다는 뜻이리라. 청지기는 속으로 그 아가씨는 아직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상 나리께서 마음만 먹으신다면 그런 옥패 따위는 안 본 척할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잠시 후, 소휘가 말했다.

“이 자는 처리하고 그 여인은 들여보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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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서재 한가운데, 바닥에는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사내 하나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겁에 질린 눈으로 사방을 살피며 몸을 벌벌 떨었다.곁에 선 수행인이 자리에 앉은 소휘에게 공손히 보고했다.“주인 어르신, 조사는 모두 끝났사옵니다. 이 자는 분명 제왕이 우리 재상부에 심어둔 첩자이며 두 달 전부터 잠복해 있었다고 하옵니다.”소휘는 그 말을 들으며 느긋하게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찻잔 뚜껑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하얀 손이 멈추자 찻잔 뚜껑이 ‘짤칵’ 하고 찻잔 위에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바닥에 있던 하인이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움찔거렸다. 소휘는 느긋하게 눈꺼풀을 들어 그를 내려다보더니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했다.“좀 더 가까이 오거라.”하인은 감히 그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이 집에서 일한 지도 꽤 되었기에 소휘가 어떤 인물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무릎으로 기어가며 변명했다.“재상 나리, 제발 현명하게 판단해 주시옵소서. 소인은 단 한 번도 나리께 해가 될 일을 한 적이 없사옵니다.”소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놀랄 만큼 온화했지만 그 안에는 소름 끼치는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제왕은 너에게 무엇을 시키더냐?”하인은 처음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소휘는 몸을 약간 숙이며 차가운 손으로 그의 목덜미를 낚아채듯 들어 올렸다. 그의 손은 싸늘했다. 마치 독사가 몸을 휘감는 듯한 감각에 하인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이윽고 소휘는 느릿느릿 말했다.“말하거라. 그러면 살려줄 것이다.”하인은 겁에 질려 울먹이며 실토하기 시작했다.“제왕께서는 재상 나리께 잘 보여야 한다고…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악의는 없었고 다만… 다만 소인에게 나리의 일정과 일상을 주의 깊게 살피라 하셨습니다. 친분을 맺을 수 있을까 하여...”소휘는 담담히 물었다.“그게 전부인 것이냐?”하인은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그렇사옵니다...”그러나 마지막 말이 채 끝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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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그 시각, 여수아는 재상부의 문 앞에 서서 눈앞의 높은 담과 웅장한 저택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저택의 주인은 바로 소휘, 이 나라의 재상이자 그녀가 어릴 적 혼약을 맺은 약혼자이기도 했다.사실 그녀는 이 혼약 따위는 없었던 일로 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권세를 빌려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이 약혼자라는 명분도 다시 주워 담아야 했다. 세상일이 어디 뜻대로 되는가?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옛 정혼자, 먼지 쌓인 그 이름을 다시 꺼내 들었다.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청지기가 느긋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태도는 무미건조했고 눈빛은 파문 하나 없었다.“아가씨, 이쪽으로 오시지요.”그렇게 여수아는 청지기를 따라 재상부의 대문을 넘어 화청으로 향했다. 그 안은 다소 어두웠다. 발을 들이기 전에 고개를 들자 한 사람이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옷자락을 걸친 그 남자는 키가 컸고 나무 선반 앞에서 손을 씻고 있었다.그가 손을 씻자 곁에 있던 수행인이 다가와 수건을 내밀었고 그는 천천히 손을 닦으며 몸을 돌렸다. 여수아는 그제야 그의 얼굴을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오는 길에도 그에 대한 소문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실로 악명 높은 간신이자 권신.그는 황제의 심복으로 권력을 거머쥐고 충신과 명장을 잇달아 처단했다. 그가 움직이면 조정에서는 줄줄이 목숨을 잃는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관료들은 그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이를 갈았지만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었고 백성들조차 귀신보다 더 두려워하는 존재가 바로 그였다.여수아는 생각했다. 이토록 악명 높은 사람이라면 분명 노회한 얼굴을 지닌 중년 남성일 것이라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만 기억했을 뿐, 정확히 몇 살 차이인지는 알지 못했기에 적어도 띠동갑 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눈앞의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젊었다. 젊다 못해, 지나치게 잘생겼다.얼굴선은 뚜렷했고 우아하면서도 날카로웠다. 눈꼬리는 은근히 올라가 있어 어딘가 요사스럽고도 치명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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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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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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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여수아가 뒷마당으로 돌아왔을 때 마침 마당 입구에는 하인들이 잔뜩 모여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녀가 다가오자 그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지으며 슬그머니 길을 내주었다.바로 그때, 청악군주가 안뜰 한가운데에 서 있었고 그녀의 방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방 안은 완전히 난장판이었고 온갖 물건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청악군주는 뒤를 돌아 여수아를 보며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곧 형수님이 되실 분이 드디어 돌아오셨군요.”한편 방안을 한참이나 뒤졌지만 소득이 없자 허 유모는 이내 분노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따져 물었다.“군주의 옥패를 대체 어디에 숨겨두신 것이옵니까?”여수아는 방 안의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피해 천천히 처마 아래로 걸어갔다.“정말로 내가 숨겼다면 이렇게 방을 뒤졌는데도 못 찾을 리 없지 않느냐?”그러고는 허 유모를 찬찬히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어쩌면 옥패는 네가 숨긴 걸지도 모르겠구나. 어차피 이 안에는 너와 나뿐이지 않느냐? 그리고 그 옥패는 이곳에서 사라졌다며.”허 유모는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버럭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옵소서. 제가 어찌 군주의 물건을 숨기겠사옵니까?”여수아는 태연하게 말했다.“어쨌든 제 방은 이미 다 뒤졌고 옥패는 발견되지 않았사옵니다. 부디 청악군주께서 알아서 판단하여 주시옵소서.”청악군주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옥패를 되찾아야 했기에 싸늘한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옆방을 수색하거라.”군주의 시녀 둘이 허 유모의 방에 들어가 뒤지기 시작했고 잠시 후 한 사람이 놀란 듯 외쳤다. 그녀가 급히 달려가 보니 시녀 하나가 낡은 손수건에 싸인 물건을 꺼내고 있었다. 그 안에는 바로 자신이 애타게 찾던 그 옥패가 들어있었다.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간 청악군주의 눈빛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허 유모도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두 다리가 후들거렸고 그대로 주저앉아 식은땀을 흘리며 울먹였다.“군주, 아니옵니다. 진짜... 진짜 저는 아니옵니다.”여수아는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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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청악군주는 조심스럽게 천을 펼쳐 깨져버린 자신의 옥패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그녀는 말이 없었지만 옆에 선 허 유모는 그 정적에 심장이 입안까지 튀어나올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러다 청악군주의 눈빛이 갑자기 사납게 번뜩이더니 손에 들고 있던 옥패 조각을 미친 듯이 허 유모의 이마에 던져버렸다. 옥패 조각의 날선 모서리가 그녀의 이마에 찍히자 금세 몇 줄기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도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군주… 정말로… 정말로 아니옵니다. 노비는 하늘에 맹세코 그 옥패를 그 여인의 베갯머리 아래에 두었나이다. 분명 그 여자가 옥패를 훼손한 후 제 방에 몰래 숨긴 것이옵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노비는 감히 그런 짓은 못합니다.”청악군주는 길게 숨을 들이쉬며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지울 수 없는 독의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처음엔 그저 시골에서 올라온 미천한 계집일 뿐이라 생각했다. 재능도 없고 얼굴도 평범한데 감히 오라버니의 아내 자리를 넘보는 어리석은 존재이리라.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쫓아낼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자신이 역으로 당하고 만 것이다.이 치욕을, 어찌 그냥 삼킬 수 있을까? 청악군주는 허 유모를 노려보며 말했다.“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제대로 끝내면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해주마. 실패한다면 네놈이 대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허 유모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짐했다.“군주께서 명하시면 노비는 뼈를 갈고 피를 말려서라도 따르겠나이다.”청악군주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내뱉었다.“그 자의 얼굴을 칼로 쥐어뜯거라.”그 기고만장한 얼굴이 얼마나 오래가나 두고 보자는 식이었다.그 시각, 여수아는 일시로 거처하고 있는 후원에서 슬슬 걸어 나와 넓디넓은 재상부를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다. 그녀가 함부로 저택을 돌아다닌다고 해서 막을 이는 없었다.재상도 그녀에게 딱히 금지령을 내린 바 없었기 때문이다.그녀가 어디를 그렇게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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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밤이 깊을 무렵, 허 유모가 처소로 돌아왔을 때, 여수아는 이미 자신의 방을 말끔히 정리해 놓은 상태였다. 그녀는 낮에 빼앗아 갔던 그 쉰내 나고 비린내 나는 찬밥을 다시 들이밀며 사납게 말했다.“오늘 낮에 저를 모함한 죗값을 아직 안 치렀잖습니까? 이 밥을 다 먹으면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 해주겠나이다.”여수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내가 바보도 아닌데 왜 그걸 먹어야 하는 것이냐? 나보다는 너에게 더 어울리는구나.”그 한마디에 허 유모는 곧장 불같이 화를 냈다. 그녀는 여수아의 뺨을 후려치기 위해 손을 휘둘렀고 그 기세는 마치 낮에 청악군주에게 뺨을 맞던 순간의 분노를 그대로 담고 있는듯 했다. 군주 앞에서 당한 모욕과 분풀이를 전부 되갚아주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하지만 그녀의 손이 여수아의 얼굴에 닿기도 전에 그녀는 가볍게 의자 옆쪽에 있던 걸상을 발로 툭 찼다. 그 의자는 절묘하게 허 유모의 무릎을 때렸고 그녀는 힘이 풀리는 느낌에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분노한 허 유모는 겨우 몸을 일으켜 뭔가 미쳐버릴 듯한 눈빛으로 여수아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용히 찻상 위에서 찻잔 하나를 집어 들며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허 유모는 더는 참지 못하고 소매 속에 감춰두었던 깨진 자기 조각을 꺼냈다. 오늘만큼은 반드시 이년의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놓겠다는 기세였다.여수아는 여전히 태연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차분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에 꽂아두었던 평범한 검은색 비녀 하나를 뽑아 손끝에 돌렸다. 허 유모가 흉기 들고 달려드는 그 순간 여수아는 손에 든 비녀로 찻잔을 톡 하고 두드렸다.그 소리는 맑고 투명했다. 끝맺음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더니 마치 뇌 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듯한 울림으로 번져갔다. 허 유모는 그 소리에 한순간 정신이 멍해졌다.곧이어 극심한 두통과 함께 머리가 뽑히듯이 아파왔다.여수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비녀로 두어 번 다른 박자로 찻잔을 두드렸다. 고저 장단이 어우러져 허 유모의 귓속을 파고들자 그녀는 머리를 감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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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재상부에서 사람이 죽은 일로 소동이 일어난 후 여수아는 다시금 소휘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가 친히 시간을 내 이 일의 전말을 듣고자 나선 것을 본 여수아의 마음속에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허 유모는 평소 원한 살 일도 없던 분이옵니다. 어제 여 아가씨와 좀 심하게 다툰 것 말고는 별일이 없었사옵니다.”“허 유모는 여 아가씨가 군주님의 옥패를 훔쳤다고 했지만 실은 그 옥패는 그 자의 방에서 나왔사옵니다.”“옥패가 깨졌는데 허 유모는 그마저도 여 아가씨의 탓으로 돌리더군요.”여기저기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하인들은 서로 말을 보태며 전날 벌어진 일을 줄줄이 쏟아냈다.소휘는 태사 의자에 앉아 담청색 도포를 입고 머리를 옥잠으로 묶고 있었다. 여수아는 속으로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그는 차를 음미하듯 마시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손가락으로 찻잔을 굴리는 동작은 유난히 길고 섬세했다.그러던 중 다른 하인이 말을 이었다.“어젯밤 허 유모가 마당에서 뛰쳐나오며 고래고래 외쳤사옵니다.”하인의 말이 끊기자 소휘가 고개를 들었다. 말 한마디 없이 내던져지는 시선에 하인은 저도 모르게 등골을 세우고 급히 말을 이었다.“아가씨께서 죽이려 한다며 살려달라고 외쳤나이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꽤 많사옵니다.”증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의심이라는 녀석은 그 틈을 비집고 여수아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느새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버렸다.소휘는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하고 싶은 말은?”여수아는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어제 그녀는 허 유모와만 불쾌하게 얽힌 것이 아니라 지금 저기 앉아 있는 재상과도 한 판 벌인 터였다.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허 유모가 물에 빠져 죽은 건 저와 무관하옵니다.”소휘는 목소리를 약간 높이며 되물었다.“네 말은…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인가?”그녀는 침착하게 대답했다.“그들이 말한 게 사실이라 해도 그것만으로는 제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되지 않사옵니다.”소휘는 이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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