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여수아는 재상부의 문 앞에 서서 눈앞의 높은 담과 웅장한 저택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저택의 주인은 바로 소휘, 이 나라의 재상이자 그녀가 어릴 적 혼약을 맺은 약혼자이기도 했다.사실 그녀는 이 혼약 따위는 없었던 일로 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권세를 빌려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이 약혼자라는 명분도 다시 주워 담아야 했다. 세상일이 어디 뜻대로 되는가?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옛 정혼자, 먼지 쌓인 그 이름을 다시 꺼내 들었다.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청지기가 느긋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태도는 무미건조했고 눈빛은 파문 하나 없었다.“아가씨, 이쪽으로 오시지요.”그렇게 여수아는 청지기를 따라 재상부의 대문을 넘어 화청으로 향했다. 그 안은 다소 어두웠다. 발을 들이기 전에 고개를 들자 한 사람이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옷자락을 걸친 그 남자는 키가 컸고 나무 선반 앞에서 손을 씻고 있었다.그가 손을 씻자 곁에 있던 수행인이 다가와 수건을 내밀었고 그는 천천히 손을 닦으며 몸을 돌렸다. 여수아는 그제야 그의 얼굴을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오는 길에도 그에 대한 소문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실로 악명 높은 간신이자 권신.그는 황제의 심복으로 권력을 거머쥐고 충신과 명장을 잇달아 처단했다. 그가 움직이면 조정에서는 줄줄이 목숨을 잃는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관료들은 그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이를 갈았지만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었고 백성들조차 귀신보다 더 두려워하는 존재가 바로 그였다.여수아는 생각했다. 이토록 악명 높은 사람이라면 분명 노회한 얼굴을 지닌 중년 남성일 것이라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만 기억했을 뿐, 정확히 몇 살 차이인지는 알지 못했기에 적어도 띠동갑 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눈앞의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젊었다. 젊다 못해, 지나치게 잘생겼다.얼굴선은 뚜렷했고 우아하면서도 날카로웠다. 눈꼬리는 은근히 올라가 있어 어딘가 요사스럽고도 치명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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