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리가 의심에 가득 찬 눈초리로 구승훈을 눈여겨보았다.저 미친 인간 입에서 나온 말이 사실인지 도저히 가늠이 안 된다.갑자기 구승훈 뒤로 다가오는 한 인영이 보였다.순간 강하리의 눈이 음식물 쓰레기 보는 눈길로 바뀌었다.“저기, 구 대표님.”장진영의 조심스런 목소리.“나 스스로 경찰서 찾아갈 거니까 신경 끄세요.”냉랭하게 한 마디를 남긴 채 강하리가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버렸다.“대표님, 유라가 또 약을 안 먹기 시작하는데, 좀 가서 봐주실 수 있을까요?”구승훈이 뒤돌아 장진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무 말도 없이 송유라의 병실을 향해 걸어갔다.“방금 그 분이 강하리 씨예요? 어쩜 저리도 예쁘게 생겼을까.”구승훈 뒤로 따라 걷던 장진영의 한 마디에 구승훈이 우뚝 멈췄다.부딪칠 뻔한 장진영이 고개를 돌자, 시퍼렇게 차가운 빛을 머금은 구승훈의 눈길과 마주쳤다.순간, 장진영은 심장이 멈추는 느낌이 들었다.애써 입가를 당겨 구승훈을 향해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고개를 수그렸다.‘놔두면 화근이야.’장진영의 눈동자에 악독한 빛이 스쳐지났다.송유라의 병실 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들려오는 울음소리.병실 문을 영자 거짓말처럼 울음소리가 뚝 멈췄다.“오빠아! 왜 이제야 저 보러 온 거예요.”문앞에 우뚝 멈춘 채 들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구승훈.“가서 유라 아가씨께 약 대접하도록.”구승훈의 손짓 한 번에 방 안에 서 있던 우람진 경호원 몇이 송유라를 누르고는, 억지로 입을 벌려 약을 쑤셔넣었다.어쩔 새도 없이 일어난 일에 장진영이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어, 어떻게……. 구 대표님. 어릴 적엔 우리 유라 끔찍히 아끼셨잖아요.”한참 뒤에야 떨리는 목소리로 항의 아닌 항의를 해 보았지만.“어릴 적엔 유라도 지금의 유라가 아니었으니까요.”구승훈의 말 한 마디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그, 그게 무슨 뜻이죠?”구승훈은 시선을 송유라에게 돌렸다.“적당히 하자 좀.”병상 머리맡에 기대어 앉은 송유라가 흠칫했다.입술이 덜덜 떨렸다.
”강찬수 부검 결과 나왔대.”혐오 섞인 강하리의 눈길에도 아랑곳 않은 채, 구승훈이 일어서서 다가왔다.“뭐라고 하던가요?”“사망 원인은 질식사, 사망 추정 시간은 우리가 그 골목에서 나온 시간대와 일치.”감전이라도 된 듯 강하리는 두피가 저릿해났다.피해자에서 한 순간 용의자가 된 기분은 뭐라 형용할 수가 없었다.“CCTV에 찍힌 화면은요?”주해찬이 한 마디 끼어들었다.“안타깝게도 그 시간대에 주위 모든 CCTV에는 나와 강하리만 찍혀져 있더군요.”구승훈이 ‘그걸 내가 확인 안 했겠냐’는 한심한 눈빛으로 주해찬을 힐끔 쳐다보았다.강하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대체 누가?목적은 또 뭐고?자신만 타깃인 건가? 아니면 구승훈까지 세트로 보내버리려고?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실마리가 될만 한 것들이 도저히 잡히지 않았다.가장 먼저 송유라를 의심했지만, 지금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송유라였다면 구승훈까지 건드릴 리는 없을 거니까.강하리가 고개를 돌려 주해찬을 바라보았다.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려고 입을 여는 순간.갑자기 몸이 주해찬 쪽으로 이끌리는가 싶더니, 넓고도 따뜻한 남자의 가슴팍이 볼에 닿는다.“하리야, 걱정 마. 내가 너 지켜줄게.”포근하지만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결연한 음성이 강하리의 귓가에 울려퍼졌다.저도 모르게, 강하리는 두 팔을 내밀어 주해찬의 허리를 둘러안았다.“걱정 마요 선배. 나 괜찮아요.”영낙없는 한 쌍의 커플이 껴안고 있는 다정한 모습.한 폭의 그림 같은 그 화면이 구승훈의 눈을 아프게 찔렀다.처음에는 강하리가 아무 남자나 만나서 자신의 화를 돋우는 거라고 셀프 최면을 걸었었다.하지만 지금 보이는 적나라한 저 모습은 도저히 자신을 속일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감정에 충실하다더니 그걸 자신 앞에서 실천하고 있었다.가장 직접적이고 효율적으로 자신의 염장을 지르는 방식으로.‘꼴값들 떨고 있네.’구승훈의 얼굴에 차디찬 서리가 내려앉았다. 이마에 핏대가 솟아났고 주먹에 저절로 힘이 꽉 들어갔다. 퍼억-!언
불과 몇 밀리미터를 남긴 채, 구승훈의 주먹이 강하리의 얼굴 앞에 멈춰섰다.“맞을 각오로 들이미는 거야?”구승훔의 눈에 지워지지 않는 아픔이 맺혔다.강하리는 꿋꿋하게 구승훈의 주먹을 노려보았다.겁이 안 났다면 거짓말이었다. 구승훈의 주먹질의 위력을 잘 아니까.하지만 주해찬이 맞게 가만둘 수는 없었다.자신 때문에 여러 번 수모를 겪은 주해찬이었다. 그 때마다 자신의 죄책감도 늘어났었다.“내 남친이 맞아서 가슴 아픈 것보단 그쪽한테 맞아 아픈 게 나을 것 같네요!”구승훈의 주먹이 한참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얼마나 지났을까, 냉소를 지으며 주먹을 거둬들이고는 직원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안도의 한숨을 내쉰 강하리는 주해찬을 몇 마디 위로하고는 뒤따라 들어갔다.조사는 세 시간 남짓이 진행되었고, 조사가 끝난 뒤 강하리는 유치실에 보내졌다.형식적인 조사를 마친 구승훈이 나와 보니 심준호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가라앉은 구승훈의 기운에 눌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조사관이 뒤따라 나와 도망치듯 사라졌다.“강찬수의 은행 계정들을 조사해 봤는데.”심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비합리적 계좌이체가 한 두번이 아니야. 최고 금액은 3년 전이었고. 소문 퍼뜨려 놨으니 누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지 살펴보기만 하면 돼.” 담배 한 대에 불은 붙인 구승훈이 심드렁하게 응, 대답했다.“표정이 왜 그래? 괜히 온 것 같아?”“무슨 헛소리야.”심군호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남들 다 외식하고 영화관 갈 때 데이트 코스가 경찰서인 게 좀 의례적이어서 그런다.”구승훈이 팽 콧방귀를 뀌었다.외식하고 영화관?나라고 안 그러고 싶겠냐고. 강하리가 기회를 줘야 말이지.자신을 거들떠도 안 보는데.생각할수록 기분이 더욱 엉망이 되었다.“주해찬에게 안겼어. 강하리.”푸념하듯 내 뱉은 말에 괘씸하게도 심준호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다.“둘이 사귀잖아. 허그가 다 뭐야. 더한 것도 할 수 있다고.”“저이씨, 뚫린 입이라고.”구승훈이 아픈 데만 골라 팩트
담배연기 속, 구승훈의 표정이 희미하게 보였다.어차피 끝날 계약, 지금 이러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강하리를 놓아주기 싫었다. 발버둥이라도 쳐서 그녀가 떠나가는 속도를 늦추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녀가 다른 남자 품에 안기는 건 더 싫었다.“이러면, 최소한 남은 시간이라도 내 것이 될 가능성이 있잖아.”심준호가 절친을 응시하며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그 계약이 불난 집에 도적질이었던 건 알고 있지?”구승훈의 알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둘 사이에 가장 큰 장애물이 송유라란 것도.”“지금 네 그 집착이 승부욕이라면 일찌감치 접어둬. 하리 씨 되찾아서 정식으로 사귀고 결혼까지 갈 거 아니라면.”말을 마친 심준호가 구승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유유히 사라졌다.유치실.흉흉한 표정으로 구승훈이 유치실에 들어섰다.심준호의 충고가 귓가에 맴돌아쳤지만 애써 무시했다.승부욕든 진심이든 간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계약이 끝나더라도 강하리를 자신 곁에 남겨둘 수 있는 수단은 차고 넘쳤다.무슨 이유든 강하리를 놔주기 싫은 구승훈이었다.강하리 곁에 다가가 앉자 조건반사적으로 한 뼘 물러나 앉는 강하리.구승훈의 눈에 오기가 서렸다. 강하리 쪽으로 더 가까이 몸을 붙였다.“껌딱지세요?”노기 서린 눈으로 강하리가 구승훈을 쏘아본다.“추워서 그래. 붙어 앉으면 따뜻하잖아.”“…….”하다하다 저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강하리는 더 움직이지 않았다. 더 움직일 데도 없었고, 그럴 힘도 나지 않았다.출혈 과다로 맥을 못 추는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아랫배가 쥐어짜는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항상 생리 주기가 불규칙적이던 그녀에게 급작스레 찾아온 생리통.“강하리.”미간을 찡그리는 강하리의 귓가에 울린 구승훈의 목소리.“또 뭡니까.”여러모로 아주 불편한 탓에 대답이 곱게 나오지가 않았다.“나랑 거래 하나 하자.”“싫어요.”“……들어보지도 않고?”구승훈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역정을 낸 탓일까. 강하리의 아랫배가 점
”강하리!”구승훈이 잽싸게 의자 아래로 떨어지려는 강하리를 낚아챘다.강하리는 대답이 없었다.구승훈은 그제야 강하리의 이마가 식은땀 투성이란 걸 발견했다.“강하리! 왜 이래!”무의식적으로 아랫배를 움켜잡은 강하리의 두 손이 보였다.순간 구승훈은 짚이는 데가 있었다.“생리야?”아랫배에 닿는 구승훈의 손을 쳐낸 강하리.그러자 구승훈이 이번에는 강하리의 등과 두 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올렸다.“이, 이거 놔…요.”중얼거리는 강하리의 말은 싸그리 무시한 채, 출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일단 문 좀 열어요. 심준호가 오면 수속 마저 마치는 걸로 하고.”구승훈의 말에 직원들이 급급히 문을 열었다.“나가셔서 왼쪽으로 얼마 안 가 병원이 있어요.”눈치 빠른 한 직원이 알려준 덕에 구승훈은 몇 분 만에 한 개인의원 앞에 도착했다.의사가 강하리에게 진통제 주사를 놔 주었고, 십여 분 동안 안정을 취한 강하리는 그제야 좀 나아진 느낌이 들었다.통증은 사그라들었지만, 몸이 오슬오슬 떨리기 시작했다.“추워?”낮게 깔린 음성.강하리가 대답하기도 전, 구승훈이 그녀를 끌어안았다.확 찌푸려지는 강하리의 미간에 구승훈이 재빨리 한 마디 덧붙였다.“좀 안고 있는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불쌍해 보여서 이러는 거니까 가만 있어.”“그 시커먼 속셈을 모를 줄 알고.”강하리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왜? 주해찬이 볼까 봐 두려운 거야?”“맞아요. 애인이 다른 사람과 껴안고 있는 거 좋아할 사람은 없잖아요.”강하리의 직설에 구승훈의 관자놀이가 미세한 경련을 일으켰다.“다 지나간 일을 들먹이는 게 재밌어?”강하리가 냉소를 지었다.다 지나간 일이라고? 누구 맘대로?찢겨저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그리 쉽게 아물 리가.하지만 구승훈에게 이런 것까지 얘기해줄 필요는 없었다.얘기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다.상처를 낸 사람과 상처받은 사람 마음이 같을 리가 없으니까.
구승훈의 품에서 안간힘으로 벗어난 강하리가 비칠거리며 밖으로 나갔다.경찰서에 구속은 안 당해도 될 것 같았지만, 핸드폰이 압수된 상태라 일단은 돌아가야 했다.그 뒤로 표정이 무겁게 내려앉은 구승훈이 따라갔다.경찰서에 거의 도착할 때 쯤, 구승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강하리. 내기 할까? 난 네가 주해찬과 얼마 못 가 헤어진다는 데 걸 거야.”강하리가 이건 무슨 심보냐는 눈길을 보내왔다.“헤어진다 해도 그쪽이랑 엮일 일은 없을 거거든요?”핸드폰을 돌려받은 뒤 강하리는 바로 주해찬에게 전화했다.근처에 있었던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주해찬이 강하리 앞에 나타났다.“이렇게 빨리 온다고요?”믿을 수 없단 강하리의 말투에 주해찬이 빙그레 웃었다.“그러잖아도 먹을 것 사가지고 이쪽으로 오는 길이었어.”주해찬이 손에 든 포장을 흔들어 보였다.“진짜요? 선배 최고.”“그나저나 잘 해결된 거야?”걱정스레 묻는 주해찬.“잘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괜찮을 것 같아요.”구승훈에게 반강제로 안겨 경찰서를 나올 때 얼핏 들은 게 있었다.심준호에게 부탁해 수속인가 뭔가를 하면 된다고 들었었다.“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배고프지, 일단 이거 먹을까?”한 시름 놓았다는 표정이 된 주해찬이 포장을 강하리 앞에 내밀었다.“돌아가서 먹어요.”“그래도 괜찮고. 내친김에 내가 맛있는 반찬 몇 가지 더 만들어 줄게.”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며 주해찬의 차로 다가갔다.그런 둘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만 보던 구승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생리대 필요하지 않아? 가서 사 올까?”주해찬이 멍해졌고, 강하리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그냥 무시하고 가요 선배.”“이봐 주 도련님. 생리 기간에는 하면 안 좋단 것 쯤은 알고 있겠지?”‘저 인간이 무슨 개소리를…….’성질난 강하리가 가방에서 집히는 대로 구승훈에게 날렸다.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맞은 구승훈.날린 것은 향수병이었고 맞은 곳은 구승훈의 이마.삽시에 구승훈의 이마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아,
구승훈이 서늘해진 눈길로 주해찬을 돌아보았다.“나랑 강하리 사이 일인데 그쪽이랑은 무슨 상관?”삐딱해진 구승훈의 말투. 딱 싸움이 또 일어날 각이었다.강하리가 급급히 두 사람 사이에 막아섰다.“치료비 대 줄게요. 얼마면 돼요?”“강하리. 내가 그깟 치료비가 없어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걸로 보여?”강하리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차단 해제할 테니까 치료비 나가는 대로 영수증 보내요. 계좌이체 해 드릴게요.”말을 마친 강하리가 주해찬의 차에 올랐다.구승훈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 차 한 대가 그의 앞에 멈춰섰다.심준호가 차에서 내려 강하리한테 다가갔다.“여긴 나한테 맡기고 얼른 들어가서 쉬도록 해요.”고개를 끄덕인 강하리가 차 문을 닫았고, 주해찬의 차가 멀어져갔다.점이 되어 사라지는 그 차를 바라보는 구승훈의 눈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병원 데려가 줄까? 피 많이 나는데.”눈살 찌푸리는 심준호를 보는체도 않고 구승훈이 차에 올라타 쌩하니 가 버렸다.주해찬의 차 안.분위기가 몹시 가라앉아 있었다.“미안해요 선배.”“왜 네가 미안한데. 말썽 피우는 건 구승훈인데.”주해찬이 웃으며 대답했다.“그게 다 나 때문이잖아요. 내가 없었다면 선배가 욕보일 일은 없었을텐데.”자책감이 강하리를 휩쓸었다. 주해찬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주해찬이 강하리의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하지만 그게 더 서글펐다.저 과분한 죄책감이 자신과의 거리감에서 나온 거니까.거리낌 없는 연인 사이었다면 자신에게 기대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우리 연인 사이잖아. 뭐든 함께 부딪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강하리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선배는 억울하지 않으세요?”“뭐 약간? 하지만 행복감이 더 많아서 별로 느껴지지도 않는걸.”잠시 멈췄던 강하리가 환하게 웃었다.“고마워요 선배.”“쓸데없는 생각 말고. 난 너만 있으면 돼.”주해찬이 강하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로터스가든.손연지는 야근이란 톡만 남긴 채 집에 없었다.밤
”또 무슨 일이죠?”미간을 잔뜩 찌푸린 강하리가 전화를 받았다.“핸드폰 주인 여자친구시죠? 남친분이 지금 많이 취하셔서 데리러 오셔야 할 것 같아요.”……어?멍해졌던 강하리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죄송한데 전화 잘못 거셨어요. 모르는 사람입니다.”“그럴 리가요. 연락처에 첫 번째로 저장된 번호인걸요. 게다가 손님분이 계속 이 이름을 부르고 계세요.”“연락처에 승재라고 저장된 번호에 전화해 보세요.”‘이 정도면 많이 도운 거다.’강하리는 바로 통화를 끊어버렸다.“구승훈?”주해찬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선배, 일찍 자요.”주해찬의 눈에 착잡함이 스쳐지났다.분위기 다 잡친 마당에 다시 키스를 시도할 수도 없었다.“그래. 하리 너도 일찍 자.”같은 시각, 어느 칵테일바.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바라보던 웨이터가 당황한 얼굴로 자리에 뻗은 남자를 돌아보았다.잔뜩 퍼마시긴 했지만, 구승훈은 아직 완전히 필름이 끊긴 건 아니었다.알코올로 그리움을 마비시켜 보려고 했지만 깔끔하게 실패한 상태.술기운에 제어가 잘 안 되는 머릿속에서 자꾸만 강하리의 모습이 새어나오는 바람에 오히려 더 괴로워졌다.남아있는 한 줌의 이성은 강하리에게 전화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기 바빴다.겨우 차단 해제했는데 또 차단당하면 영영 풀려날 것 같지 못해서.고달팠다. 눈가가 시큼해날 만큼.술자리가 끝난 밤, 전화하면 자다가도 데리러 오던 강하리는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괴로워하는 자신만 밖에 덩그러니 남겨놓은 채.정신줄 다잡고 강하리 대신 부른 게 대리운전이었다.알코올 냄새 풀풀 풍기며 아파트에 돌아온 구승훈의 모습에 가정부 아줌마가 경악했다.“대, 대표님? 대체 얼마나 드신 거예요. 세상에! 이마에 상처는 또 뭐고요?”구승훈이 콧방귀를 풍 뀌었다.“하아리, 아가씨가 선물해준 거.”“네에? 두분 또 다투셨어요?’“그으럴 리가요. 내가아, 강하리 을마나 아끼는데에.”혀 꼬부라진 소리로 대답한 구승훈이 피식 웃는다.구승훈을 부축해 겨우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