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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자신이 해야 할 일

Author: 노에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30 00:37:37

서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도윤 역시 더는 묻지 않았다.

그녀가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알고 싶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마주한 기분이었다.

서윤은 자신을 믿지 않았다. 자신의 고백도, 뒤늦게 보이는 다정함도, 지금 이 순간 곁에 앉아 있는 이유조차. 그 모든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든 사람이 자신이었다.

“의사 선생님 오시면 검사 결과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도윤이 먼저 침묵을 깼다.

“그 이후에는 서윤 씨가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요?”

“네. 제가 곁에 있는 게 불편하면 나가 있겠습니다. 집에 가고 싶으시면 모셔다드릴 수도 있고요.”

서윤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당신한테 그런 걸 부탁할 사이인가요?”

예상했던 말이었는데도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다. 도윤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

“하지만 저는 이제 모르는 척하고 싶지 않습니다.”

서윤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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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서 나온 뒤, 태하는 서윤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차 안에서 그는 여러 번 무언가를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서윤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태하는 그녀에게 더 조심스러워졌다. 자신이 아이의 아빠가 되어 주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 말이 서윤에게 얼마나 무거운 의미로 다가왔을지 생각하면 쉽게 재촉할 수 없었다.집 앞에 도착했을 때 태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마.”“나 할 일 많은데.”“그 할 일 내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건 해 줄게. 못 하는 건 내일 해.”서윤이 작게 웃었다.“네가 내 일을 어떻게 다 알아.”“몰라도 물어보면 되지.”태하는 시동을 끄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서윤아.”“응?”“나한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서윤의 웃음이 조금씩 사라졌다. 태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받아 주지 못하는 것. 아이의 아빠가 자신이 아니라는 것. 앞으로 자신과 함께할 수 있을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 그 모든 이유로 서윤이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네가 나한테 뭘 해 줘야 해서 곁에 있는 거 아니야.”태하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네가 힘들 때는 그냥 힘들다고 해. 괜찮은 척하지 말고.”서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말이 고마웠다. 너무 고마워서, 더 미안했다.“...고마워, 태하야.”태하는 작게 웃었다.“그래. 들어가서 쉬어. 내일 연락할게.”서윤이 차에서 내린 뒤에도 태하는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확인한 다음에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금 전 병실에서 마주했던 남자를 떠올렸다.강도윤. 그는 서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감정을 감추려 해도, 태하는 알아볼 수 있었다. 도윤의 시선에는 서윤을 향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단순한 책임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태하는 핸들을 꽉 쥐었다. 그 마음이 진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용서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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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도윤 역시 더는 묻지 않았다.그녀가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알고 싶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마주한 기분이었다.서윤은 자신을 믿지 않았다. 자신의 고백도, 뒤늦게 보이는 다정함도, 지금 이 순간 곁에 앉아 있는 이유조차. 그 모든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든 사람이 자신이었다.“의사 선생님 오시면 검사 결과부터 확인하겠습니다.”도윤이 먼저 침묵을 깼다.“그 이후에는 서윤 씨가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제가 원하는 대로요?”“네. 제가 곁에 있는 게 불편하면 나가 있겠습니다. 집에 가고 싶으시면 모셔다드릴 수도 있고요.”서윤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제가 당신한테 그런 걸 부탁할 사이인가요?”예상했던 말이었는데도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다. 도윤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대답했다.“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하지만 저는 이제 모르는 척하고 싶지 않습니다.”서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윤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당신이 아프다는 것도, 혼자 감당하고 있는 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으니까요.”“그건 제 일이에요.”“알고 있습니다.”그가 낮게 말했다.“그래서 함부로 끼어들지 않겠습니다. 다만 당신이 도움이 필요할 때,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습니다.”서윤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참 이상한 일이었다. 예전에는 그가 자신에게 조금만 더 다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한 번만 더 돌아봐 주기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지나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막상 그가 진심처럼 보이는 말을 건네자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그의 말이 진심이라면. 그동안 자신이 믿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번에도 믿었다가 또 상처받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저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서윤은 겨우 말을 이었다.“알고 있습니다.”도윤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서윤 씨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그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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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윤은 대기실 의자에 앉은 채 응급실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눈을 감자 서윤이 쓰러지던 순간이 떠올랐다. 자신의 눈앞에서 힘없이 무너지던 몸,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못하던 얼굴. 조금 전까지 괜찮다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 말을 믿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그때 응급실 문이 열렸다.“한서윤 환자분 보호자분 계십니까?”도윤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네. 여기 있습니다.”도윤은 의료진에게 다가섰다. 복도 한쪽에 멈춰 선 의료진이 차트를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산모분께서는 현재 임신 초기이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오늘 실신하신 원인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최근 과로와 탈수, 영양 섭취 부족 등이 영향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도윤은 그대로 굳었다.“...네?”“아직 의식은 회복하지 못하셨고, 수액 치료하면서 산모분의 상태를 살피고 있습니다.”임신 초기.산모.초음파 검사.단어들이 귀에 들어왔지만 머릿속에서는 좀처럼 의미로 이어지지 않았다.도윤은 의료진을 바라본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한서윤이 임신했다. 그 사실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무슨 생각부터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한서윤이 ? 대체 언제부터?’수많은 질문이 한꺼번에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엉뚱할 만큼 짧은 말이었다.“...임신이요?”“네. 임신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고, 초음파 검사로 임신 여부도 확인했습니다. ”도윤의 시선이 허공에 멈췄다. 산모. 의료진은 서윤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그는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구부렸다.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환자분께서 최근 피로가 심하셨던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무리한 일정을 피하고 충분히 쉬셔야 합니다.”도윤은 간신히 입술을 뗐다.“...몇 주 정도 됐습니까?”“초음파 결과로는 임신 8주 정도 되신 것으로 추정됩니다.”8주. 도윤은 그 숫자를 속으로 되뇌었다. 달력으로 계산하면 대략 두 달 전이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바닥을 바라봤다. 머릿속

  • 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약속했습니다.    76화. 눈 좀 떠 봐

    마지막 발표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서윤은 객석에 앉아 발표 자료를 다시 확인했다. 잠깐의 휴식 시간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협력사 담당자들이 찾아와 질문했고, 다음 일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계속 서 있어야 했다.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머리가 지끈거리고 손끝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책상 아래에서 손을 꽉 쥐었다 폈다. 조금만 더. 이번 발표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그때 도윤이 자리에 앉으며 그녀를 바라봤다.“한 대표님.”“네.”“발표가 끝나면 바로 귀가하시는 게 좋겠습니다.”서윤은 그를 돌아봤다.“아직 일정이 남아 있어요.”“후속 미팅은 실무진에게 맡기셔도 될 겁니다.”“오늘은 제가 직접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요.”“그 부분까지 직접 하셔야 합니까?”“제 회사 일이니까요.”서윤은 조금 단호하게 대답했다.“제가 책임져야죠.”도윤은 입을 다물었다.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일을 대하는지 알고 있었다. 한서윤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힘들다는 이유로 일을 내려놓을 사람도 아니었다. 도윤은 그 사실을 존중하고 싶었다.하지만 지금 서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대로 두어도 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알겠습니다.”그녀는 무대 위에 올라선 발표자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자료를 정리했다.곧이어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됐다. 한경라이프의 유통 전략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서윤은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이번 신제품은 초기부터 전국 단위로 유통망을 확대하기보다는...”첫 문장은 평소처럼 또렷했다. 서윤은 준비한 내용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시장 분석 결과와 유통 비용, 단계별 확대 계획까지 논리적으로 짚어 나갔다.도윤은 옆에서 그녀의 발표를 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훌륭했다. 몸이 좋지 않은 와중에도 질문의 요점을 빠르게 파악했고, 답변에 불필요한 말이 없었다. 자신이 책임지는 사업에 얼마나 진심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

  • 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약속했습니다.    75화. 괜찮다는 말의 끝

    행사장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나란히 놓인 좌석에 앉았다.서윤은 가방에서 자료집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오늘 발표할 내용은 이미 여러 번 검토했다.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도 정리해 두었으니, 평소처럼만 하면 문제없을 터였다.그녀는 의식적으로 옆을 돌아보지 않았다.강도윤이 바로 옆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팔을 조금만 움직여도 닿을 듯한 거리였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한 회사의 대표로 참석한 자리였다. 사적인 감정 때문에 업무를 망칠 생각은 없었다.그때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한 대표님.”서윤은 자료집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짧게 대답했다.“자료가 하나 빠진 것 같습니다.”당황한 그녀가 자료집을 확인하려는 순간, 도윤이 자신의 서류철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건넸다.“주최 측에서 배포한 추가 자료입니다. 아까 입구에서 받았는데, 한 대표님 자료에도 필요한 내용 같아서요.”서윤은 잠시 종이를 바라보다가 받아 들었다.“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도윤은 더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의 자료를 펼쳤다.서윤은 건네받은 종이를 확인했다. 다음 세션에서 다룰 유통망별 운영 비용과 관련된 자료였다. 확실히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이었다.말없이 자료를 정리하고 발표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잠시 후 행사 진행자가 무대에 올라 다음 세션의 시작을 알렸다. 객석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발표 자료가 스크린에 나타났다.서윤은 화면을 바라보며 메모를 시작했다.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았던 탓에 익숙해진 불편함이었다. 요즘 들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잠을 충분히 자도 피로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임신 초기의 증상과 계속된 과로가 겹치면서 몸은 이미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빠질 수 없는 자리였다.준비 중인 신제품의 유통 전략을 발표해야 했고, 중요한 협력사 관계자들도 참석해 있었다. 자신이 대표로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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