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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이면 충분했다.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서로에게 끌리는 걸 알면서도 누구 하나 먼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딱 한 번. 낯선 도시의 밤, 서로의 이름조차 모른 채 선을 넘었다. 그리고 아침. 그녀는 사라졌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시 만난 순간부터 두 사람의 진짜 게임이 시작됐다.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뭔데요?” “차해린 씨.” 그가 처음으로 존칭을 뺐다. 해린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 “당신도 나 기억하고 있어.”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그날 밤.” 한 걸음. “당신이 먼저 내 넥타이를 잡아당겼던 것도.” 또 한 걸음. “내가 키스했을 때 도망가지 않았던 것도.” 해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아침에 아무 말 없이 사라진 것도.” 태준이 그녀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전부 기억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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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5화. 오늘은 그냥 제 옆에 있어요
해린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향을 맡았다. 태준이 쓰는 우디 계열의 향수. 그리고 거실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왔어요?”소파에 앉아 있던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채 노트북을 보고 있던 그는 해린을 발견하자마자 화면을 덮었다.“아직 안 잤어요?”“해린 씨 기다렸는데요.”“늦는다고 연락했잖아요.”“알아요.”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래도 기다리고 싶었어요.”별것 아닌 말인데도 해린의 마음이 이상하게 간지러웠다.오늘 하루, 도하의 무너진 얼굴을 마주하며 온 신경을 곤두세웠던 탓일까. 자신을 향해 아무런 의심 없이 웃어 주는 태준을 보자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해린이 가까이 다가가자 태준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이리 와요.”“왜요?”“안아 주려고요.”해린은 작게 웃었다.“그런 걸 꼭 말해야 알아요?”“말 안 하면 안 와 줄 것 같아서요.”그 말에 해린이 먼저 그의 품으로 들어갔다.태준의 팔이 허리를 감싸 안았다. 익숙하고 편안한 체온이 온몸을 감쌌다. 해린은 그의 가슴에 이마를 기대고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태준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오늘 힘들었어요?”그 질문에 해린은 눈을 감았다.“조금요.”“조금 아닌 것 같은데.”“…많이요.”솔직하게 대답하자 태준의 팔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그럼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저녁도 안 먹었는데요.”“제가 해 줄게요.”“태준 씨가요?”“왜요. 저 요리 못 할 것 같아요?”“솔직히 조금요.”태준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사람을 뭘로 보고.”“유능한 변호사?”“그건 맞는데.”그가 웃으며 해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오늘은 유능한 남자친구도 좀 해 봅시다.”해린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그 웃음소리를 들은 태준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하루 종일 그녀가 어떤 얼굴로 사람들을 상대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웃게 해 주고 싶었다.그는 해린의 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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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4화. 한 번만 안아 주시면 안 돼요?
“제가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습니다.”도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해린은 알 수 있었다. 그가 지금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누구를 만나러 가시는데요?”“…오래 알고 지낸 사람입니다.”“혹시 공범인가요?”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방금 도착한 사진이 떠 있었다. 사진 속 남자는 최민석과 마주 앉아 있었다. 얼굴도, 옷차림도, 심지어 테이블 위에 놓인 손까지 선명했다.차이점이 있다면 단 하나. 그 남자는 도하가 지금껏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이도하 씨.”해린이 조심스럽게 불렀다.“혼자 가시면 안 돼요.”“괜찮습니다.”“괜찮은 사람 목소리가 아닌데요.”그 말에 도하는 눈을 감았다. 해린은 늘 그랬다. 자신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 넘어갈 법도 한데, 이상할 만큼 정확하게 그의 빈틈을 찾아냈다.그런 그녀에게조차 지금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변호사님,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말씀하세요.”“제가 확인할 때까지 오늘 받은 사진에 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습니다. 대신 저도 부탁 하나 할게요.”“네.”“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세요.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요.”도하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약속하겠습니다.”전화를 끊은 그는 다시 사진을 바라봤다. 사진 속 남자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서늘해졌다.서강현. 도하가 배우 생활을 시작한 이후 줄곧 곁을 지켜 온 매니저. 처음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시절부터 함께했고, 아무도 도하의 가능성을 믿어 주지 않던 때에도 끝까지 그의 편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데뷔가 무산될 뻔했을 때도.악성 루머에 시달렸을 때도.연예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던 때도.강현은 늘 같은 말을 했다.‘도하야. 네가 연기만 할 수 있게 내가 옆에서 다 정리할게.’도하는 그 말을 믿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일정과 연락처, 촬영장 위치, 이동 경로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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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3화. 당신이 믿는 사람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해린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여기서 말씀하세요.”남자의 미소가 희미해졌다.“경계가 심하시네요. 이도하 씨와 가까운 사이라서 그런 겁니까?”“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여기서 못 할 이유도 없겠죠.”“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저도 오래 이야기할 생각은 없거든요.”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단정한 셔츠에 검은 코트, 손목에는 고급스러운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었다.하지만 해린은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마주친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여유로웠고, 도하의 이름을 꺼내는 순간부터 그녀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성함이 어떻게 되시죠?”“최민석입니다. 이도하 씨 소속사에서 전략기획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해린의 눈빛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소속사 전략기획팀. 배우의 외부 일정과 광고 계약, 촬영 관련 자료를 관리하는 부서라면 내부 일정에 접근할 수 있을 터였다.“김도윤 씨를 아십니까?”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압니다. 같은 회사에서 일했으니까요.”“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으셨나요?”“친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고 있습니다.”“어떻게요?”“회사 내부에서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도하 씨를 노리고 접근했다는 이야기까지요.”해린은 그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그런데 변호사님.”최민석이 목소리를 낮췄다.“김도윤이 혼자 움직였다고 생각하십니까?”해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반응을 확인한 남자가 작게 웃었다.“역시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질문에 답하기 전에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팀장님은 왜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시는 거죠?”“진실을 알려 드리고 싶어서요.”“회사에 제보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그랬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겠죠.”남자의 눈빛이 서늘해졌다.“하지만 이도하 씨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알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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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2화. 의심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월요일 아침.해린은 출근하자마자 책상 위에 쌓인 서류부터 정리했다. 주말 동안 잠시 미뤄 두었던 사건 기록을 다시 펼치자, 머릿속에서 흩어져 있던 의문들이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김도윤. 그가 납치 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하지만 해린은 여전히 그의 진술을 믿을 수 없었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도하의 일정과 이동 경로, 촬영이 끝난 뒤의 동선까지. 우연히 알아낼 수 있는 정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구체적이었다.더구나 김도윤은 회사 내부에 공범이 있느냐는 질문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했다.혼자 저지른 일이라면 왜 그렇게까지 숨기려고 하는 걸까. 해린은 펜 끝으로 서류의 한 부분을 짚었다.도하의 회사에서 제공받은 촬영 일정표였다. 외부에 공개된 일정과 내부 직원들만 확인할 수 있는 일정이 나란히 정리되어 있었다.납치범이 알고 있던 정보는 대부분 후자에 속했다. 그렇다면 범인은 회사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거나, 내부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컸다.해린은 휴대전화를 들어 도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이도하 씨, 오늘 회사 일정이 어떻게 되세요?]메시지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변호사님, 아침부터 저를 찾으시다니. 혹시 제가 보고 싶으셨습니까?]해린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작게 웃었다.[중요한 일 때문에 여쭤보는 겁니다.][아쉽네요. 저는 중요한 일보다 변호사님이 보고 싶으신 줄 알았는데.][장난 그만하시고요.][오전에는 회사에 있습니다. 오후에는 외부 미팅 하나 있고요. 무슨 일이십니까?]해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냈다.[회사 내부 자료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직접 만나서 말씀드릴게요.]이번에는 답장이 바로 오지 않았다. 화면을 내려다보던 해린의 손가락이 멈췄다. 몇 초 뒤, 전화가 걸려 왔다.“변호사님.”평소보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회사 자료를 확인하시겠다고요?”“네. 김도윤 씨가 알고 있던 정보가 어디에서 유출됐는지 확인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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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1화. 다정한 남자친구의 자격
“해린 씨.”“네?”“저 안 보고 싶었어요?”해린은 눈앞의 남자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오늘 아침에도 봤잖아요.”“아침에 본 거랑 지금 보는 건 다르죠.”“뭐가 다른데요?”“아침에는 출근하는 해린 씨를 봤고, 지금은 저랑 데이트하는 해린 씨를 보잖아요.”태준은 태연하게 대답하며 해린의 앞에 놓인 물잔을 채워 주었다.“그러니까 지금이 더 좋다는 뜻입니다.”해린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태준 씨는 정말 못 당하겠어요.”“그건 칭찬으로 듣겠습니다.”“칭찬 아니에요.”“그래도 듣고 싶은 대로 듣을게요.”조금 전까지 진지하게 사건 기록을 검토하던 얼굴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태준은 오늘 하루 종일 바빴다. 오전에 처리해야 할 사건이 있었고, 오후에는 의뢰인과의 면담까지 잡혀 있었다. 해린 역시 김도윤의 심문과 회사 내부 공범에 관한 확인 작업으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그런데도 태준은 저녁 약속을 미루지 않았다. 오히려 해린이 도하의 상담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느라 늦는다고 했을 때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다. 그게 조금 미안했던 해린이 먼저 물었다.“많이 기다리셨어요?”“아니요.”“정말요?”“네.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해린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거짓말.”“…티 났어요?”“태준 씨는 거짓말할 때 왼쪽 눈썹이 조금 올라가요.”태준이 순간 말을 멈췄다. 그러더니 느릿하게 웃었다.“그런 것까지 알고 계셨어요?”“당연하죠. 제가 태준 씨를 얼마나 오래 봤는데요.”그 말에 태준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그러네요.”그가 테이블 위로 손을 뻗었다. 해린의 손끝에 자신의 손끝을 가볍게 맞댄 뒤,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저도 해린 씨에 대해서는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그런데요?”“아직도 새롭게 알게 되는 게 많네요.”태준이 그녀의 손을 천천히 감싸 쥐었다.“그래서 계속 보고 싶나 봅니다.”해린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연애를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태준은 이런 말을 아무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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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0화.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믿으시겠어요?”김도윤이 웃으며 물었다. 해린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이어지던 침묵도, 변호사를 부르는 태도도, 지금의 여유로운 미소까지. 전부 계산된 행동처럼 보였다.“믿고 싶지 않은데요.”해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김도윤 씨가 혼자였다는 말을요.”도윤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그럼 제가 누구랑 같이했다고 생각하십니까?”“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이죠.”해린은 테이블 위의 서류를 앞으로 밀었다.“촬영장 내부 사정을 어떻게 알았습니까?”“인터넷에도 정보는 많잖아요.”“공개되지 않은 정보였습니다.”“그럼 내부자가 유출했겠네요.”“그 내부자가 누구냐고 묻는 겁니다.”도윤은 어깨를 으쓱했다.“제가 어떻게 압니까?”“김도윤 씨.”해린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지금 저랑 말장난하자는 건 아니겠죠?”“제가 아는 게 없어서요.”“정말 아무도 모릅니까?”“네.”도윤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저 혼자 했습니다.”너무 빠른 대답이었다. 해린은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보통 궁지에 몰린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고른다. 그런데 김도윤은 마치 정해진 문장을 반복하듯 같은 대답만 내놓고 있었다.누군가에게 미리 준비된 답변을 받은 사람처럼. 해린은 서류를 다시 정리하며 물었다.“그럼 하나만 더 확인하겠습니다.”“말씀하세요.”“당신은 그 사람의 이름을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까?”도윤의 손가락이 멈췄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러나 해린은 보았다.“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모르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해린은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대신 기억해 두세요. 혼자 책임지겠다는 선택이 다른 사람을 지켜 주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당신이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그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 자리에서 일하고 있겠죠.”김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해린은 그제야 확신했다. 자신이 짚은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회사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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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아저씨, 저 좀 납치해주세요.

조폭아저씨, 저 좀 납치해주세요.

윤서아의 아버지가 도박으로 진 빚을 갚으러 온 남자들이 집을 뒤집어엎었다. 깨진 접시. 엎어진 식탁. 그리고 이미 어디론가 튀어버린 아버지. 한 남자가 서아의 턱을 거칠게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손 치워.”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문가에 선 남자 하나. 검은 셔츠.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이곳에 있는 누구도 감히 거역하지 못하는 눈. 강태준이었다. “애는 건들지 말랬지.” 그 한마디에 남자가 서아에게서 손을 뗐다. 태준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도망친 서아의 아버지를 찾으러 가려는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서아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태준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에게 내려왔다. “저 좀 데려가세요.” 남자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뭐?” “납치해 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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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7화. 내 여자에게 함부로 묻지 마
아침 8시 47분. 윤서아는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박지수 대리에게서 온 메시지.[윤서아 씨, 혹시 대표님이랑 저녁에도 따로 만나세요?]그 아래로 이어진 문장이 서아의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어제 퇴근할 때 대표님이 직접 내려와서 기다리시던데… 제가 모르는 특별한 관계가 있는 건가 해서요.]‘아, 진짜.’서아는 이마를 짚었다. 비밀 연애를 시작한 지 겨우 나흘째였다. 그것도 다섯 해 만에 다시 만난 남자와, 이제야 겨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참이었다.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다른 사람의 입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오르내리는 상황이 싫었다.강태준은 대표였고, 서아는 그가 참여하는 프로젝트의 실무 담당자였다. 괜한 소문이 생기면 태준에게도, 자신에게도 좋을 게 없었다.서아는 한참을 고민하다 답장을 작성했다.[업무 관련해서 이야기할 게 있으셨던 것 같아요. 특별한 관계는 아닙니다.]보내기 버튼을 누른 순간이었다. 띠링.[아, 그래요? 다행이다. 사실 저 대표님께 관심이 있어서요. 윤서아 씨가 혹시 저보다 먼저 가까워진 건가 싶어서 조금 신경 쓰였어요.]서아의 손가락이 멈췄다.‘다행…?’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뻔했다. 자기는 다행히도 아무 사이가 아니라는 대답을 들은 사람이 되었고, 박지수는 다시 태준에게 다가갈 명분을 얻은 셈이었다.서아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질투하지 않기로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질투한다고 해서 자신이 강태준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그가 자신을 선택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였다.“윤서아 씨.”고개를 들자 프로젝트 담당 직원이 서 있었다.“대표님께서 오전 열 시 회의 전에 기획팀 담당자들 잠깐 보자고 하시네요.”“아, 네. 알겠습니다.”서아는 노트북을 챙겼다. 그리고 회의실로 향하는 내내 한 가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오늘은 제발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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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6화. 대표님 여자 친구가 누구예요?
“두 분, 혹시 제가 모르는 사이에 많이 친해지신 거예요?”박지수의 질문에 윤서아는 들고 있던 마우스를 놓칠 뻔했다. 하필이면 아침부터. 하필이면 강태준이 사무실에 들어온 순간에.“업무적으로 친해진 거죠.”서아는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다.“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고 있으니까요.”“아, 그렇죠.”박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딘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런데 어제 회의실에서 두 분이 굉장히 가까이 계시던데요?”…망했다. 서아의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자료를 같이 보고 있었어요.”“아, 자료요?”“네.”“그런데 윤 대리님 얼굴이 엄청 빨개지셨던데.”“…….”“더우셨나 봐요?”박지수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서아는 그녀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전부 알고 일부러 떠보는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박 대리님.”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강태준이었다.“아침부터 개인적인 질문이 많은 것 같은데요.”박지수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아, 죄송합니다. 그냥 궁금해서….”“업무에 필요한 내용부터 확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태준은 더 말하지 않고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은은한 향수 냄새만 남았다. 서아는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속으로는 이미 난리가 났지만. 저렇게까지 선을 그을 필요가 있나? 아니, 선을 그어주는 건 좋았다. 좋은데. 어제 회의실에서 자신에게 키스하던 남자와 지금 저렇게 냉정하게 말하는 남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박지수는 멋쩍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서아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몇 초 지나지 않아 메신저 알림이 떴다.[괜찮아?]서아는 화면을 노려보았다.[네.][화났어?][아니요.][거짓말.][대표님은 업무 보세요.]잠시 뒤 답장이 왔다.[응, 윤 대리님.]그리고 마지막으로.[점심에 봐요. 보고 싶어서.]서아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정말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데는 도
최신 업데이트: 2026-10-14
Chapter: 45화. 대표님, 문 좀 잠그세요
오전 11시 58분. 윤서아는 모니터 오른쪽 아래에 표시된 시간을 세 번째 확인했다. 12시까지 2분. 평소라면 점심시간을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점심 먹고 10분만 따로 보자.키스하고 싶어서.]미친 사람. 정말 미친 사람이었다. 그런 메시지를 보내 놓고 아침 회의에서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자료 검토를 지시했다. 심지어 서아가 보고서를 제출하자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말했다.“확인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수고는 무슨.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윤 대리님, 점심 안 드세요?”옆자리 직원의 말에 서아는 화들짝 놀랐다.“아, 먹으러 가려고요.”“오늘은 같이 가요. 구내식당에 신메뉴 나왔대요.”“아… 죄송해요.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요.”“약속이요?”“네.”서아는 애써 웃었다. 그 약속의 상대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답답할 줄 몰랐다. 직원이 자리를 뜨자마자 휴대전화가 울렸다.[회의실 3번.]서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대표님. 회사예요.][알아.][사람들 다니는 곳이잖아요.][그래서 문 닫고 기다리고 있어. 안 오면 내가 갈까?]서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저 먼저 다녀오겠습니다!”그녀는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쥐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회의실 3번은 복도 끝에 있었다. 서아는 문 앞에서 잠깐 숨을 골랐다.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면 된다.그냥 업무 이야기하러 온 사람처럼. 상대는 대표님이고, 자신은 대리님이다. 절대 다른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똑똑.“들어와.”문을 열자 태준이 창가에 서 있었다. 재킷은 벗어 의자에 걸쳐 놓았고, 셔츠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혀 있었다. 한 손에는 서아가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 서아는 문을 닫으며 그를 흘겨보았다.“대표님.”“응.”“여기서 뭐 하세요?”“너 기다리지.”“그건 아는데요.”“그럼 됐네.”태준이 커피를 내밀었다.“네 거.”서아는 컵을 받아 들었다.“…감사합니다.”“초코우유는 안 샀어
최신 업데이트: 2026-10-13
Chapter: 44화. 회사에서는 모르는 척해 주세요
월요일 오전 8시 42분.윤서아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메시지가 한 통 와 있었다.[잘 잤어?]서아는 입술을 꾹 눌렀다. 아침부터 이러기야? 주말 내내 실컷 보고, 실컷 이야기하고, 헤어지기 직전까지 입을 맞춰 놓고는 월요일 아침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잘 잤냐고 물어보다니.더 얄미운 건 자신이었다. 그 메시지 하나에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서아는 주변을 살핀 뒤 재빨리 답장을 보냈다.[네. 대표님은요?]답장은 거의 즉시 도착했다.[네 생각하느라 조금 늦게 잤어.]“……!”서아는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했다.아니, 이 남자가 진짜! 무뚝뚝하게 굴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렇게 직진하는 건데? 그녀는 황급히 휴대전화를 뒤집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귀 끝이 뜨거웠다. 그때였다.“윤 대리님, 아침부터 좋은 일 있으세요?”옆자리 직원이 말을 걸었다. 서아는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네? 아, 아니요. 왜요?”“계속 웃고 계셔서요.”“제가요?”서아는 황급히 입가를 만졌다.“아닌데요. 그냥… 오늘 날씨가 좋아서요.”직원은 창밖을 한번 바라봤다. 흐린 하늘이었다.“…아, 네.”서아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출근 첫날부터 이게 무슨 꼴인가 싶었다. 그런데도 휴대전화가 다시 울리자, 손이 먼저 움직였다.[아침 먹었어?][먹었어요.][거짓말.][어떻게 알아요?][너 아침에 입맛 없다고 했잖아.]서아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정말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대학생이던 시절에 했던 말까지.[오늘은 먹었거든요.][뭐 먹었는데?]서아는 잠깐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답했다.[초코우유요.]잠시 뒤 답장이 왔다.[그건 밥이 아니야.][대표님.][응.][회사에서는 업무 이야기만 하세요.]답장을 보내자마자 서아는 후회했다. 괜히 보냈나? 그런데 태준의 답장은 더 빨랐다.[알겠어, 윤 대리님.]그리고 이어진 메시지.[점심은 같이 먹을까요?]서아는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 이 남자… 사람을 설레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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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3화. 당신의 모든 순간에
오전 아홉 시. 윤서아는 출근하자마자 휴대전화부터 뒤집어 놓았다. 어젯밤 강태준과 나눈 메시지가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네가 걱정해 주니까 꼭 먹을게.] 고작 그런 말 한마디에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잠들지 못했다. 심지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메시지를 다시 확인하기까지 했다. 정말 한심했다. ‘정신 차려, 윤서아.’ 서아는 제 뺨을 가볍게 두드린 뒤 노트북을 열었다. 오늘은 T.J.이노베이션과의 세 번째 실무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윤 대리님.” 고개를 들자 박지수가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오늘도 대표님 오시죠?” “네. 참석하신다고 전달받았습니다.” “아, 그래요? 저번에 대표님이랑 이야기해 보니까 생각보다 되게 다정하시더라고요.” 서아의 손끝이 멈췄다. “…그러세요?” “네. 일할 때는 엄청 냉철하신데, 웃으시면 분위기가 확 달라지잖아요. 저 그런 스타일 좋아하거든요.” 박지수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오늘은 꼭 개인적인 이야기도 좀 해보려고요.” 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우스를 움직여 화면을 넘겼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개인적인 이야기?’ 어제 태준이 분명히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아주 오랫동안 좋아했다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서아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믿는 것과 확신하는 건 달랐다. 5년이라는 시간은 사람의 마음을 의심하기에 충분히 길었다. *** 오전 열한 시. 회의는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길어졌다. 태준은 오늘도 완벽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자료, 군더더기 없는 설명, 날카로운 질문과 정확한 판단. 5년 전, 서아가 알던 강태준과 달라진 점은 많았다. 더는 조직의 어두운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지 않았고,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사업을 이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아주 잠깐 가늘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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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2화. 아주 오랫동안 좋아한 사람
서아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태준은 여전히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윤 대리님, 이 자료 대표님께 직접 전달해 주실 수 있어요?”“제가요?”“네. 대표님이 담당자분이 직접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셔서요.”서아는 잠시 자료를 내려다봤다. 프로젝트 담당자니까 직접 설명하는 것쯤이야 문제없었다. 문제는 그 상대가 강태준이라는 사실이었다.어제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그 전날에는 그의 품에서 울고, 키스까지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회사에서 마주친 태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중하게 인사했다.“윤서아 씨, 좋은 아침입니다.”“…안녕하십니까, 대표님.”그게 끝이었다. 개인적인 연락은 없었다. 사적인 말도 없었다. 약속한 대로 선을 지키는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어쩐지 조금 서운했다.물론 서운할 이유는 없었다. 자신이 먼저 연락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런데도 서아는 오전 내내 휴대전화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아무런 메시지도 없었다.‘하지 말랬다고, 진짜 안 하네.’서아는 입술을 삐죽였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내가 연락하지 말라고 했잖아!’혼자 생각하고 혼자 부끄러워하는 사이, 선배가 다시 그녀를 불렀다.“서아 씨, 자료 전달 부탁해요.”“네. 다녀오겠습니다.”서아는 서류를 챙겼다. 그리고 몰랐다. 그 자료를 전달하러 간 자리에서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경쟁자를 만나게 될 줄은.***T.J. Innovation 대표실.“대표님, 오전 회의 자료 전달드리겠습니다.”서아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서자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들어오세요.”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다. 서아는 책상 앞으로 다가가 자료를 내려놓았다.“수정된 일정표와 검토 의견입니다. 변경 사항은 표시해 두었습니다.”“확인하겠습니다.”태준은 자료를 받아 들었다. 서아는 잠시 망설였다. 어제 키스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태연했다. 물론 자신도 태연한 척하고 있었다.“추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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