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전음관을 통해 울려 퍼진 다니엘의 보고는 결국 두 사람을 일어나게 만들었다. 세레나는 칼릭스의 품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격정의 여파로 온몸의 관절이 뻐근하게 쑤셔왔으나, 사내를 바라보던 푸른 눈동자에는 어느새 시퍼런 서릿발이 맺혀 있었다.침상 곁에 무릎을 꿇은 칼릭스가 그녀의 땀에 젖은 흑발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직접 나가시겠습니까, 마마.”“그래. 내 뺨을 치며 버러지 보듯 비웃던 계집이다. 어떻게 기어 다니는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어.”칼릭스는 칼로 찢긴 갑주를 버리고, 새로운 흑철 갑주를 갖춰 입었다. 갑주를 입고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붉게 물든 붕대를 감추자 그는 다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제국의 전쟁 영웅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두운 지하 밀실의 철문이 열리고, 정오의 뜨거운 햇살이 저택의 긴 복도를 비추었다.세레나는 칼릭스가 준비해 둔 최고급 드레스를 걸쳤다.아르젠트 공작가를 상징하는 짙은 감청색 실크 위로 은빛 자수가 고상한 기품을 뿜어냈다.값비싼 드레스 아래 숨겨진 세레나의 피부에는 오랫동안 이어진 격정에 붉게 물든 상처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오만하고 고결했던 제국의 유일한 적녀.그녀가 마침내 온전한 주인의 모습으로 정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그녀의 반 보 뒤편에는, 흑철 갑주를 갖춰 입은 제국의 살귀이자 신흥 백작이 충직한 그림자처럼 뒤따랐다.철컥, 쿵.굳게 닫혀 있던 백작저의 거대한 철제 정문이 천천히 열렸다.문밖 차디찬 진흙 바닥 위에는, 한때 사교계에서 화려한 보석을 두르고 세레나를 멸시하던 여인이 엎드려 있었다.카밀라 폰 로렌.사채업자들에게 쫓겨 도망치느라 값비싼 비단 드레스는 흙탕물에 찢겨 걸레짝이 되어 있었고, 단정하던 금발은 진흙 범벅이 된 채 엉망으로 흩어져 있었다.“살려주십시오…… 제발 백작님을 뵙게 해 주십시오……!”카밀라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진흙탕에 이마를 처박으며 울부짖었다.세레나와 칼릭스는 카밀라의 처참한 몰골을 보면서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
“상 따위는 피부터 멎게 한 뒤에나 논할 일이다.”세레나는 붉게 달아오른 사내의 손아귀에서 떨리는 손목을 빼내었다.칼릭스는 거칠게 붙잡았던 손을 순순히 놓아주었으나, 맹수 같은 금빛 눈동자만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녀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세레나는 사내의 타오르는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대야에서 천을 건져 올렸다.사내의 단단한 쇄골과 각진 가슴팍을 타고 흘러내린 피와 땀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손끝에 닿는 사내의 살갗은 델 것처럼 뜨거웠다.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 애를 쓸수록, 세레나의 여린 손가락은 사내의 단단한 근육과 거친 흉터들을 적나라하게 쓸어내렸다.규칙적으로 요동치는 사내의 묵직한 가슴.그 뜨거운 호흡이 턱밑을 간질일 때마다, 세레나의 흰 목덜미와 뺨 위로 걷잡을 수 없는 붉은 홍조가 피어올랐다.칼릭스는 제 상체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그녀의 떨리는 손길과 붉게 물든 귓바퀴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어둠 속에서 사내의 동공이 위험하게 확장되었다.“마마께서 손수 만져주시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습니다.”“……닥쳐라.”세레나는 입술을 깨물며 붕대를 사내의 어깨와 옆구리에 단단히 감아올렸다.살을 에는 고통일 텐데도 칼릭스는 신음 한마디 없이 오직 그녀의 입술만을 뚫어져라 응시할 뿐이었다.마침내 마지막 매듭을 짓고 세레나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물러서려던 바로 그 순간.와락—!“앗……!”칼릭스의 두터운 팔이 세레나의 얇은 허리를 사납게 낚아챘다.저항할 틈도 없이, 세레나의 가녀린 몸이 푹신한 침상 한가운데로 거칠게 내동댕이쳐졌다.침대보 위로 헝클어진 머리칼과 함께, 얇은 실크 슬립이 허벅지 위로 어지럽게 말려 올라갔다.“칼릭스! 상처가 터진단……!”“소인이 지금 숨이 끊어질 것 같아서 그럽니다.”사내의 거대한 몸이 세레나의 다리 사이로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상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사내는 굶주린 짐승처럼 세레나의 젖은 허벅지를 양옆으로 벌려 제 단단한 골반 사이에 가두었다.죽음의 문턱
세레나의 차가운 발등 위로 뜨거운 체온이 무너져 내렸다.사내의 거대한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며 차가운 석조 바닥으로 고꾸라지려 했다.“칼릭스……!”세레나는 생각보다 먼저 몸을 움직였다.반사적으로 뻗은 가녀린 두 팔이 피투성이가 된 사내의 상체를 필사적으로 받아냈다.쿵, 하고 전해지는 중압감과 지독한 피비린내.상처에서 솟구치는 사내의 뜨거운 피가 얇은 실크 슬립을 빠르게 적셔가고 있었다. “하아…… 하…….”칼릭스는 턱 끝까지 차오른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의식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세레나는 이를 악물고 사내를 끌어안아 침상 머리로 이끌었다.휘청거리는 거대한 체구를 침대 위로 앉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진이 다 빠져나갈 지경이었다.침대 시트 위에도 검붉은 핏자국이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사내의 어깨와 옆구리 갑주 틈새에서 흘러나온 피가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죽을지도 몰라.’등골을 타고 오싹한 공포가 번졌다.침상 위에서는 여유롭게 저를 짓밟고 유린하던 지배자가, 지금은 한 줌의 생명 줄을 간신히 쥔 채 헐떡이고 있었다.과거 이 밀실에서, 사내가 피멍 든 제 몸을 차가운 수건으로 닦아주었던 기억이 번개처럼 스쳤다.이번에는 제 차례였다.세레나는 떨리는 손으로 칼릭스의 흑철 흉갑 버클을 더듬었다.가죽 끈은 사내의 피와 땀으로 미끄러웠다.손끝이 덜덜 떨려 쉽게 풀리지 않자, 세레나는 고개를 숙여 이빨로 가죽 끈을 물고 버클을 비틀어 잡아당겼다.철컥, 쿵.피 묻은 육중한 흉갑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드러난 셔츠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붉게 물들어 살갗에 엉겨 붙어 있었다.세레나는 망설임 없이 셔츠의 앞섬을 양손으로 쥐고 사납게 찢어발겼다.촤악—!천 조각이 뜯겨 나가며 사내의 다부진 상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피와 땀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각진 몸은 마치 조각상 같았다. 세레나의 숨이 턱 끝에서 멎었다.단단한 근육 위로 새겨진 셀 수 없는 흉터들.북부의 생지옥에서 저를 사들이겠다는 일념 하
말 탄 병사의 우렁찬 고함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것은 에드윈이 그토록 고대하던 황제의 즉결 처형 영장이 아니었다.펼쳐진 양피지 상단에는 제국 황실 감사원의 서슬 퍼런 붉은 인장과 함께 잉크가 번진 글귀가 선명했다. “황제 폐하의 정식 윤허 없는 사병 500명의 무단 징발, 및 제국 1등 공신 백작령 저택에 대한 불법 무력 침탈!”병사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안개 낀 정원을 뒤흔들었다.“발우아 상단의 불법 자금 세탁과 서부 협곡 비밀 사병 훈련소의 실체가 확인되었다! 이는 제국 형법 제1조를 위반한 명백한 반역 행위이며, 이 자리에 동조하는 자는 황족이라 한들 삼대를 멸할 것이다!”순간, 칼릭스의 심장과 목덜미를 겨누고 있던 수백 개의 활시위가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리기 시작했다.황자의 개인적인 사병 놀음에 동원되어 제국의 전쟁영웅을 쳤다가는, 역모의 하수인으로 몰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판이었다.선두에 섰던 근위대장이 사색이 되어 가장 먼저 칼을 칼집에 집어 넣었다.팽팽하게 당겨졌던 수백 개의 활시위가 맥없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칼릭스는 여전히 에드윈의 가슴팍을 짓밟은 채, 발밑을 서늘하게 내려다보았다.“들었느냐, 에드윈.”잿빛 머리칼 사이로 승리자의 미소가 번졌다. “네놈이 억지로 끌고 온 자들도, 제 목숨 귀한 줄은 아는 모양이다.”“이, 천박한 노예 놈이……!”안면이 함몰되어 피투성이가 된 에드윈이 진흙 섞인 핏물을 왈칵 뱉어냈다.제국 귀족들과 500명의 군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겪은 처참한 패배와 능욕.황자의 두 눈이 수치심과 살의로 벌겋게 뒤집혀 경련했다.칼릭스는 그 더러운 몰골을 짓누르던 군화를 거두며, 에드윈의 옆구리를 발끝으로 매섭게 걷어찼다.퍼억!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황자의 몸뚱이가 진흙 바닥 위를 보기 흉하게 굴렀다.“네놈의 더러운 목숨값은 나중에 공녀님께서 직접 받아내실 것이다.”칼릭스의 대검이 서슬 퍼런 칼끝으로 정문 방향을 가리켰다.“숨통이라도 붙이고 싶거든, 당장 내 땅에서 기
카아앙, 챙—!새벽안개를 찢어발기며 날카로운 쇳소리가 정원의 허공을 사납게 갈랐다.에드윈은 과연 황태자 답게 재빠르게 칼을 움직였다.그의 칼날은 눈이 부실 정도로 빠르고 집요했다.황실 정통 검술의 우아한 궤적을 그리며, 서슬 퍼런 칼끝이 칼릭스의 목덜미와 옆구리를 가차없이 파고들었다.그러나 칼릭스는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채앵!사내는 묵직한 대검의 두터운 면으로 황자의 칼끝을 쳐내며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온실 속에서 잘 벼려진 귀족의 검술 따위, 북부의 생지옥을 구르며 살점을 뜯어먹던 살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스걱!에드윈의 칼끝이 칼릭스의 어깨 갑주 틈새를 스치며 살점을 베어냈다.검붉은 선혈이 튀어 올랐지만, 칼릭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오히려 살점을 내어주고 뼈를 부러뜨리겠다는 듯, 사내는 피를 흘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기껏해야 살갗이나 긁어내는 게 황실의 칼이냐.”낮게 으르렁거린 칼릭스가 바닥을 박차며 대검을 비스듬히 쳐올렸다.두 사내의 거친 숨결이 엉키는 찰나, 묵직한 흑철의 궤적이 허공을 갈랐다.콰아앙—!대검의 무지막지한 무게가 에드윈의 칼날을 정면으로 후려쳤다.챙강!비명 같은 파열음과 함께, 에드윈이 쥐고 있던 칼날이 허공에서 두 동강 나며 부러져 나갔다.“이, 이놈이……!”에드윈의 눈동자에 일순 경악과 공포가 스쳤다.칼릭스는 반 발짝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았다.대검을 쥔 반대편 손이 맹수처럼 뻗어 나가 황자의 멱살을 거칠게 틀어쥐었다.퍼억!칼릭스가 투구를 쓴 채로 T자로 눈, 코, 입이 드러난 에드윈의 안면을 짓이기듯 들이받았다.“커헉!”코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칼릭스는 비틀거리는 황자의 몸을 그대로 낚아채 차가운 진흙 바닥으로 사납게 내리꽂았다.쿠웅—!흙탕물이 사방으로 튀며 황자의 화려한 비단 갑주를 난잡하게 더럽혔다.칼릭스는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에드윈의 가슴팍을 짓밟고 섰다.그리고 대검의 서슬 퍼런 칼날을 황자의 목덜미에 반 뼘 정 찔러
침대 위로 흩어진 벨벳 가운을 낚아챈 칼릭스가, 탈진해 있던 세레나의 나신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아…… 칼릭스.”사내의 단단한 팔이 얇은 허리를 들어 올리는 순간, 몸 안에 남아 있던 정사의 미열이 아래로 왈칵 흘러내렸다.비틀거릴 틈도 없었다.사내는 홑옷 차림의 세레나를 품에 단단히 가둔 채, 침실 벽난로 뒤편의 은밀한 석조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지하 깊숙한 곳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지하실의 한기가 훅 끼쳐왔으나, 세레나를 감싼 사내의 가슴팍은 여전히 불덩이처럼 뜨거웠다.마침내 도착한 곳은 저택 지하 요새의 최심부였다.사방이 두꺼운 화강암 벽으로 둘러싸인 밀실 침상 위로 세레나의 몸이 내려앉았다.“칼릭스, 설마 혼자 나설 셈이냐? 상대는 황실 근위대 오백이야!”세레나가 떨리는 손으로 사내의 흉터투성이 팔뚝을 쥐어 잡았다.자신을 구하기 위해 온몸에 칼자국을 새겼던 사내였다.또다시 제 눈앞에서 피를 흘리게 둘 수는 없었다.칼릭스는 대답 대신 세레나의 뺨을 틀어쥐었다.사내의 뜨겁고 젖은 입술이 그녀의 벌어진 입술을 부서뜨릴 듯 집어삼켰다.“읍……!”숨이 턱 막힐 정도로 깊고 지독한 입맞춤.사내의 혀가 세레나의 입안을 헤집으며 애타는 갈증을 쏟아냈다.마치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삼키려는 듯, 처절한 입맞춤이었다.간신히 입술을 뗀 칼릭스가 이마를 맞댄 채 낮게 으르렁거렸다.“소인이 돌아올 때까지…… 숨죽이고 계십시오.”사내의 황금빛 눈동자에 서린 것은 완전한 복종이자 결전의 맹세였다.“내 주인의 숨결 하나, 머리칼 한 올조차 그놈들에게 내어주지 않습니다.”쿵!육중한 철제 문이 닫히며 묵직한 빗장이 걸렸다.홀로 남겨진 세레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거울을 이용해 정원 쪽을 비추도록 파인 관측 구멍을 향해 다가섰다.지상으로 올라온 칼릭스는 셔츠조차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였다.단단한 근육과 무수한 전장의 흉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나신 위로, 북부의 서늘한 새벽바람이 들이닥쳤다.“대열을 갖췄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