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붙여준 도련님과 불륜 중입니다

시어머니가 붙여준 도련님과 불륜 중입니다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6-09-22
작가:  지호최근 업데이트
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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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유통 외동딸 윤서는 돈과 권력을 맞바꾼 정략결혼으로 정치 명문가의 아들 남태호와 결혼한다. 하지만 남편은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고, 결국 무정자증까지 밝혀진다. 윤서가 물려받을 막대한 재산을 탐내는 시어머니는 남씨 핏줄의 손주를 포기하지 않는다. “태호 아이가 아니어도 돼. 남씨 피만 섞이면 되니까.” 그녀가 고른 남자는 남편의 이복형제 배도혁. 시어머니는 두 사람을 한집에 가둔 채 명령한다. “임신하면 내보내 줄게.” 그렇게 남편의 형제와 아이를 가져야만 끝나는 끔찍한 동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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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챕터
1. 축사의 망언
"우리 윤서가 오늘 아주 큰 복을 받았지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집안의 이름을 얻었으니까요."최미연이 샴페인 잔을 들어 올리며 웃자 여기저기서 가벼운 웃음이 흘렀지만, 신부 측 테이블의 표정은 미묘하게 굳어졌다.샹들리에 아래에 서 있던 채윤서는 말없이 시어머니를 바라봤다."물론 한성유통도 훌륭하지요. 맨손으로 시작해서 그만한 회사를 일으켰으니, 윤서 아버님의 장사 수완은 저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장사 수완.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일군 회사가 순식간에 장사 잘해서 돈 번 집안이 됐지만, 윤서는 부케를 든 손에 힘을 주는 것으로 불쾌함을 삼켰다.오늘은 결혼식이었다. 저 말 한마디 때문에 양가 손님들 앞에서 자신의 결혼식을 진흙탕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두 집안의 내력까지 따지면 걱정하는 어른들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그래도 제가 이 결혼을 찬성했습니다."최미연은 기다렸다는 듯 윤서를 바라봤다."세상이 달라졌잖아요. 집안의 이름만큼 가진 것도 중요하고, 좋은 집안끼리 만나 대를 잘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니까요."윤서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최미연은 손주 이야기를 자주 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손주를 재촉하는 시어머니가 드문 것도 아니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결국 부모가 가진 것은 자식에게 가고, 자식이 가진 것은 또 그 아이에게 가는 법이잖아요. 그렇게 집안이 이어지는 거고요."객석의 웃음이 사라졌다."어머니."옆에 있던 남태호가 낮게 불렀다.윤서는 저도 모르게 남편을 돌아봤다."짧게 좀 하세요. 친구들 기다리잖아요."태호는 손목시계를 확인했을 뿐, 방금 자신의 어머니가 윤서와 친정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알았어. 우리 아들은 성격도 급하다니까."최미연이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그래도 우리 윤서는 정말 든든한 며느리예요. 지참금도 넉넉히 준비해왔고, 덕분에 진성갤러리도 계획했던 일을 빨리 진행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윤서의 표정이 굳었다.양가 사이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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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혼 첫날
"한 잔 따라봐."윤서는 태호가 내민 빈 잔을 바라봤다.결혼식이 끝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밤이었다. 강남의 프라이빗 바에서 친한 친구들에게 잠깐 얼굴만 비추는 자리라고 했다.처음에는 다들 웃으며 축하만 건넸다. 그런데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테이블 위에 빈 병이 늘어나면서 태호의 말투가 달라졌다."오늘 같은 날은 와이프가 따라주는 거지.""형수님, 얘 오늘 소원 성취했답니다."윤서는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잔을 채워주었다.딱 한 번이면 될 일이었다."윤서 노래 잘해. 한 곡 해봐.""태호 씨가 부르세요."친구들이 웃었다.그런데 태호는 웃지 않았다."왜? 내가 시키니까 싫어?""피곤해서 그래요.""친구들 앞인데 그 정도도 못 해줘?"연애할 때 알던 남태호와는 조금 달랐다.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 날이라 들뜬 데다 친구들 앞에서 기분이 올라간 것뿐이라고.그때 태호의 손이 윤서의 허벅지 위에 올라왔다.윤서가 바로 손을 치웠다."이러지 마세요.""부부인데 뭐 어때."테이블의 웃음이 끊겼다.친구 하나가 어색하게 끼어들었다."야, 형수님 싫다잖아.""넌 빠져."태호의 얼굴이 굳었다."내 와이프야."내 와이프.말은 그랬지만 그 어디에도 존중은 없었다.윤서는 가방을 들었다."저 먼저 갈게요.""뭐?""많이 취했어요. 술 깨고 얘기해요."태호가 윤서를 노려봤지만 윤서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밖으로 나오자 찬 밤공기가 얼굴에 닿았다.그제야 숨이 조금 편해졌다.휴대폰이 세 번 연달아 울렸다. 태호였다.윤서는 받지 않고 문자만 남겼다.[먼저 갈게요.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들어와요.]잠시 뒤 답장이 왔다.[맘대로 해.]신혼집에 도착했을 때는 열한 시가 넘어 있었다.윤서는 한참 뒤에야 잠이 들었다.술 때문이겠지.연애할 때 태호는 저렇지 않았다. 싫다는 일을 억지로 시킨 적도 없었다.내일 술이 깨면 이야기하면 된다.부부가 됐으니 서로 맞춰가야 할 것도 있을 것이다. 결혼 첫날부터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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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참금 통장
태호는 눈을 뜨자마자 미간부터 찌푸렸다."머리 왜 이렇게 아프지."관자놀이를 문지르던 그가 윤서를 바라봤다."나 어제 어떻게 들어왔어?"윤서는 대답하지 못했다.정말 기억을 못 하는 걸까.어젯밤 자신을 침대에 밀치던 사람과 지금 숙취에 찌든 얼굴로 앉아 있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태호의 시선이 문득 윤서의 손목에 멈췄다."손목은 왜 그래?"붉은 손가락 자국이 선명했다.윤서가 천천히 물었다."기억 안 나요?""뭐가?"태호의 얼굴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윤서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소매를 내려 손목을 가렸다."됐어요.""나 해장국 좀 끓여줘. 죽을 것 같아.""저 요리 못 해요. 시켜 먹어요."윤서는 더 말하지 않고 휴대폰을 들었다.술 때문이었을까.아니면 기억나지 않는 척하는 걸까.아직은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다.배달 온 해장국을 식탁에 올려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다.그런데 윤서가 일어나기도 전에 현관문이 열렸다.최미연이었다.윤서의 시선이 도어록으로 향했다.신혼집 비밀번호를 자신도 모르게 시어머니가 알고 있었다."이렇게 일찍 어쩐 일이세요?""내 아들 집에 오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니?"최미연은 자연스럽게 들어와 식탁 위에 서류 봉투를 내려놓았다."갤러리 확장 건 때문에 왔어. 업체에서 잔금을 재촉하잖니."봉투 안에는 자금 집행 동의서와 관련 서류가 들어 있었다.윤서의 눈이 마지막 장에서 멈췄다.채명수.아버지의 서명이었다."아버지가 동의하신 거예요?""그러니까 내가 왔겠지."최미연이 소파에 앉았다."결혼 전에 양가끼리 다 얘기 끝난 일이야. 네가 마지막 승인만 해주면 돼."윤서는 서류를 다시 살폈다.결혼을 준비하며 갤러리 확장에 일정 금액을 투자하기로 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버지도 알고 있었고 윤서 역시 동의했다.하지만 최미연에게 자신의 계좌를 마음대로 쓸 권한까지 준 적은 없었다."송금은 제가 할게요."최미연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뭘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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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른 얼굴
​태호가 먼저 연락해온 건 사흘 만이었다.[오늘 일찍 들어갈게.]평소라면 연락도 없이 늦게 들어오던 사람이었다.지난 사흘 동안 윤서의 머릿속에는 한빛정책연구소라는 이름도 떠나지 않았다. 갤러리 공사대금이라던 돈이 들어간 곳이었다. 아버지에게 물었지만 바쁘다며 말을 피했고, 인터넷을 뒤져도 별다른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저녁 여덟 시가 조금 넘어 태호가 스시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저녁 안 먹었지?"식탁에 음식을 내려놓던 그가 머뭇거리다 말했다."저번엔 내가 좀 심했지. 술 취해서 기억이 잘 안 나.""정말 기억 안 나요?""중간중간 끊겼어. 미안해."윤서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다시는 그러지 마세요.""알았어."그날의 태호는 평범했다. 회사 이야기를 하고 농담을 건네며 윤서가 좋아하는 초밥을 밀어주었다. 어느 순간 윤서도 따라 웃고 있었다.맞선 자리에서 만났던 남태호가 돌아온 것 같았다.'역시 술 때문이었던 걸까.'윤서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아직 이 결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태호가 윤서에게 다가왔다.침실의 스탠드 불빛이 나직하게 깔려 있었다.침대에 걸터앉은 윤서의 머리칼 위로 태호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미끄러지듯 감겨왔다.어깨를 살짝 움츠리는 윤서의 반응에 태호는 손길을 더 늦추었다.뺨을 쓸어내리는 손바닥의 감촉이 부드러웠다."긴장하지 마."태호는 윤서의 입술에 아주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아랫입술을 지그시 누르며 숨을 나누는 호흡에 윤서의 꽉 쥐었던 손이 서서히 풀렸다.윤서가 그의 목덜미를 조심스레 감싸자, 태호가 낮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허리를 안아 침대 위로 부드럽게 눕혔다.두 사람의 옷가지가 천천히 벗겨져 나갔다.스탠드 불빛 아래 드러난 살결 위로 태호의 입술이 느리게 내려앉았다.쇄골부터 가슴 아래까지 입맞춰가며 내려가는 숨결에 윤서의 호흡이 조금씩 가빠졌다.자극을 견디지 못한 윤서가 그의 어깨를 꼭 붙잡자, 태호는 허벅지 안쪽을 쓸어내리며 다리 사이를 열었다."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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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약
한빛정책연구소.며칠 전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이 향한 곳이었다. 윤서는 그날부터 그 이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휴대폰으로 검색창에 이름을 쳐봤다.홈페이지는 있었지만 짧은 인사말과 연락처가 전부였다. 발행한 보고서도, 소속 연구원 명단도 없었다.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는 알 수 없었다.대신 오래된 뉴스 기사 하나가 걸렸다. 정계 후원금이 '정책연구소'라는 이름을 거쳐 우회하는 경우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인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연결 짓기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윤서는 화면을 껐다.지금은 여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했다.태호는 매일 아침 진성갤러리로 '출근'했다. 명함에는 이사라는 직함이 박혀 있었지만, 정작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윤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전 열한 시에 나가서 오후 세 시면 돌아오는 날도 많았다."오늘은 뭐하고 왔어요?""뭐, 대충 둘러보고 왔지."태호가 넥타이를 풀며 소파에 던지듯 앉았다. 그날따라 유독 피곤해 보였다. 윤서는 그 이상 되묻지 않았다.연애할 때였다면 어디서 뭘 하다 왔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결혼하고 나니, 그럴 마음도 잘 생기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 태호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이 울렸다. 최미연이었다."태호는?""방금 나갔어요.""그래? 어젯밤엔 늦게까지 안 자던데, 오늘은 일찍 일어났나 보네."윤서의 손이 멈췄다."……네?""왜?""저희 어제 늦게 잔 건 어떻게 아셨어요?"잠깐의 침묵.곧 최미연이 웃었다."그냥 해본 말이지. 신혼부부가 밤에 일찍 자겠니?"최미연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넘기고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참, 내가 한약 하나 보냈어. 오늘 도착할 거야.""한약이요?""애 가지려면 몸부터 만들어야지."윤서의 미간이 좁혀졌다."어머니, 저희 아직 아이는 천천히 생각하고 있어요.""천천히?"최미연의 목소리가 바로 날카로워졌다."너 설마 피임하고 있는 건 아니지?""안 해요.""확실해? 요즘 애들은 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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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낯익은 손님
그로부터 보름 뒤, 몇 달을 끌어온 진성갤러리 확장 공사가 드디어 끝났다. 최미연은 그날을 위해 작은 축하 행사를 준비했다.새로 넓어진 전시장에는 화환과 축하 화분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다들 우리 갤러리 새 얼굴 보러 오신 거예요."최미연은 하객들 사이를 오가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윤서는 그 뒤를 따르며 인사를 받았다."이쪽이 그 유명한 며느리예요. 지참금 하나는 아주 든든하게 들어왔죠."최미연이 웃으며 소개했다. 여전한 말버릇이었지만, 오늘은 그냥 웃어넘겼다. 이런 날 굳이 트집 잡고 싶지 않았다.사람들 사이에서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온 건 그때였다. 카메라 플래시가 유난히 그쪽으로만 몰렸다.'저 배우, 어디서 봤더라.'낯이 익었다. 화면에서 본 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익숙함이었다.옆에 있던 손님들이 소곤거렸다."저기 배도혁 아니야?""진짜네. 실물이 훨씬 낫다."배도혁. 이름을 듣고 나니 화면에서 몇 번 본 얼굴이라는 게 그제야 떠올랐다. 진성갤러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유명한 사람이니 이런 자리에 초청받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어 더 생각하지 않았다.눈이 마주쳤다.배도혁의 걸음이 아주 잠깐 멎었다. 놀랐다기보다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을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친 얼굴이었다.'왜 저러지.'윤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 저런 얼굴을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그때 최미연의 남편, 남성구가 그에게 다가갔다."도혁 씨, 왔군."남성구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재단 행사 때 보고 오랜만이네.""네, 의원님."도혁은 예의를 갖췄지만 표정에는 반가운 기색이 없었다.윤서는 우연히 그 장면을 보다가 옆에 서 있던 최미연의 얼굴을 봤다. 웃고 있던 입매가 순식간에 굳어 있었다. 이를 악문 듯한 얼굴이었다.반대편에서는 태호가 그 모습을 보며 짧게 혀를 찼다."쳇."윤서는 두 사람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배도혁과 남성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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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병원검진
다음 날 아침, 태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욕실에서 나왔다.머리를 말리고 셔츠를 입고 시계를 찼다. 평소와 똑같았다.윤서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봤다.몸을 움직일 때마다 어젯밤의 기억이 따라붙었다. 싫다고 밀어냈던 것과, 태호가 그 말을 듣지 않았던 것까지 선명했다.그런데 태호는 달랐다."아침 안 먹어?"윤서는 대답하지 않았다.태호가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매다가 윤서를 돌아봤다."왜 그래?"그 말에 윤서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모르는 얼굴이었다."어제 기억 안 나요?""어제?"태호가 잠깐 생각하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내가 술을 좀 많이 마셨나?"그뿐이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질문도 없었다. 태호는 다시 거울로 시선을 돌려 넥타이를 고쳐 맸다."오늘은 일찍 들어올게. 저녁 먹자."윤서는 태호를 바라봤다.결혼 전에도 저런 사람이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법이 없었고, 식당에 들어가면 윤서가 먼저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차에 탈 때면 문을 잡아줬고, 윤서가 싫다고 하는 건 두 번 권하지 않았다.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예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은 없어도 함께 살 수는 있을 것 같은 사람.데이트할 때 태호는 와인 한두 잔, 맥주 한 병 정도면 잔을 내려놓았다."오늘은 여기까지. 운전해야 해서."그렇게 말하며 먼저 잔을 밀어두던 모습이 좋았다.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결혼하고 처음 취한 날, 태호는 윤서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젯밤, 또 그랬다.두 번 다 시작은 비슷했다. 태호가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셨고, 뭔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다음엔 다른 사람이 됐다. 그런데 술이 깨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태호로 돌아왔다.윤서는 그제야 자신이 결혼 전에는 태호가 취할 만큼 술을 마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저 사람의 어떤 모습을, 자신은 아예 보지 못한 채로 결혼한 것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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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선배님
"선배님?"윤서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비즈니스석,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자신을 그렇게 부를 사람은 없었다."채윤서 선배님, 맞으시죠?"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정중했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윤서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통로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를 확인한 순간 눈이 조금 커졌다.배도혁이었다.며칠 전 진성갤러리에서 봤던 남자."저를…… 아세요?"도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상하리만큼 반가워 보였다."모를 수가 없죠."그 대답에 윤서는 순간 말을 잃었다.갤러리에서 마주쳤던 시선이 떠올랐다.남성구는 도혁에게 유난히 다정했고, 최미연은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그리고 태호는 그날 밤 술에 취해 도혁의 이름을 붙잡고 늘어졌다.모두 이 남자를 중심으로 이상하게 얽혀 있었다.사흘 전이었다."저기, 부탁이 있어요."저녁 식탁을 치우던 윤서가 먼저 말을 꺼냈다.태호가 넥타이를 풀며 돌아봤다."뭔데.""어머니한테 우리 얘기, 특히 부부 사이에 있었던 일은 말씀 안 드렸으면 좋겠어요."태호의 미간이 좁혀졌다."내가 뭘 말했다고 그래?""저번에 어머니가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제가 말씀드린 적 없는 것들을 알고 계시던데요."태호의 얼굴에 순간 짜증이 스쳤다.그런데 그 짜증 밑에 다른 게 있었다.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나 그런 거 말한 적 없는데.""정말이에요?""내가 미쳤다고 엄마한테 그런 얘길 해?"그렇다면 더 이상했다.태호도 말하지 않았고 자신도 말하지 않았다.그런데 최미연은 두 사람이 관계를 가진 날짜와 간격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윤서는 태호의 얼굴에서 거짓을 찾으려 했다.찾을 수 없었다.그렇다고 완전히 믿을 수도 없었다."알겠어요. 그래도 앞으로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은 어머니한테 말씀하지 마세요.""안 한다니까.""부부 사이 일은 부부만 아는 거였으면 좋겠어요."태호는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전부였다.다음 날 아침,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다."상무님, 말씀드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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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스캔들
"그럼 정확히는요?"윤서가 물었다.창밖은 어느새 구름뿐이었다.도혁이 들고 있던 물잔을 내려놓았다."기억 못 하시는 게 당연해요. 선배님은 학생회장이셨잖아요.""그게 무슨 상관이에요?""선배님은 절 몰라도, 전 선배님을 알 수 있었으니까요."윤서는 잠시 그 말을 곱씹었다.전교생이 아는 사람과, 그 전교생 중 한 명으로 남는 것.그 정도 설명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그때 저는 선배님을 꽤 많이 봤어요.""왜요?"도혁이 잠깐 웃었다."눈에 띄었으니까요.""제가요?""네."대답이 너무 빨랐다."학생회장이라서?""그것도 있고.""또요?"도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오히려 윤서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윤서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말을 시작했으면 끝을 내야죠.""지금 다 말하면 다음에 만날 핑계가 없잖아요."윤서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이 사람의 화법은 지나치게 능숙했다.배우라서 그런 건지, 원래 이런 사람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원래 여자한테 이렇게 말해요?""아니요.""그것도 너무 빨리 대답하는데.""확실한 거라서요."도혁이 태연하게 대답했다.윤서는 더 묻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가벼운 농담이라고 생각하면 그뿐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도혁이 하는 말은 하나씩 마음에 걸렸다.십 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는 것부터 그랬다."그런데 선배님.""네.""뉴욕 일정은 길어요?""나흘 정도요. 실사 미팅이 있어서.""바쁘시겠네요.""아마도요."도혁이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혹시 일정이 비면 저녁 한 끼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윤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며칠 전이었다면 거절했을 것이다.결혼한 여자가 남편도 아닌 남자와 해외에서 따로 저녁을 먹을 이유가 없었다.그런데 지금은 달랐다.남성구는 이 남자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최미연은 왜 도혁을 보는 순간 얼굴이 굳었는지.그리고 태호는 왜 술에 취해서까지 도혁의 이름을 붙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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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확산
식사가 끝날 무렵, 윤서는 물잔을 내려놓았다.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게 있었다."배도혁 씨.""네.""남성구 의원님하고 무슨 사이예요?"도혁의 손이 잠시 멈췄다. 예상했던 질문인지 놀란 기색은 없었다."홍익문화재단에서 지원받았다는 인터뷰는 봤어요. 데뷔 전에 연기를 배울 수 있게 도움받았다고.""찾아보셨네요.""궁금했으니까요."윤서는 며칠 전 갤러리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도혁을 발견하자 반가워하던 남성구와 달리 최미연의 얼굴은 굳었고, 태호 역시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단순히 재단의 지원을 받은 배우에게 보일 반응은 아니었다."그것뿐은 아닌 것 같아서요."도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윤서가 기다리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재단에서 지원받기 전에도 알고 있었습니다.""남성구 의원님을요?""네."윤서의 눈이 가늘어졌다."언제부터요?"도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잔을 만지작거리다 손을 뗐다."아주 어릴 때부터요.""어떻게 알게 됐는데요?"이번에는 침묵이 길었다.윤서는 더 묻지 않고 그를 바라봤다. 대답하기 싫은 게 아니라,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결국 도혁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나중에요?""네."윤서는 피식 웃었다."자꾸 나중이네요.""죄송합니다.""됐어요. 말하기 싫은 걸 억지로 들을 생각은 없으니까."그걸로 대화는 끝났다.윤서는 다음 날 아침부터 다시 실사 일정이 있었고, 도혁 역시 이른 촬영이 잡혀 있었다. 두 사람은 오래 머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호텔 로비에서 도혁이 먼저 멈췄다."올라가세요.""그럼 잘 가요.""네. 선배님도 쉬세요."윤서는 가볍게 인사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문이 닫히기 직전 고개를 들었을 때, 도혁은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다.윤서는 별생각 없이 층수 버튼을 눌렀다.그날 저녁의 일이 한국까지 날아가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두 사람이 라운지를 떠난 뒤, 몇 장의 사진이 한국의 한 연예매체로 넘어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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