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3장. 난 반드시 이혼해야 해

Author: 라이사
밖에서는 말발굽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안에서는, 셀렌이 방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마치 방금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 결심을 못으로 박아 고정한 듯했다.

오늘부터 그녀에게 결혼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니었다. 전쟁터였다.

셀렌은 차가운 침대 위에 몸을 내려놓았다.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고, 목소리는 가까스로 속삭임만 흘러나왔다.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디리안 레벤티스 공작의 아내로 보낸 5년, 공작 부인으로서의 역할을 위해 그녀는 모든 노력을 쏟았다. 게으름 피우지 않았고, 열심히 공부하고, 꼼꼼히 정리하고, 성심껏 시중을 들었다.

남편의 식사부터 영지의 업무까지, 그의 모든 필요를 채웠다.

셀렌이 한 모든 일의 목표는 단 하나, 인정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공허한 시선, 얼음 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것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다섯 아이들이 모두 남편의 손에 짓밟혔다.

디리안은 셀렌을 아내로 거부한 것만이 아니라, 그녀에게 어머니가 될 기회까지 짓밟았다.

셀렌은 시트를 움켜쥐었다. 부드럽던 마음은 이제 바위처럼 굳어 있었다. 사랑이 언젠가는 모든 걸 바꿀 거라 믿었던 예전의 자신은 죽었다.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겪은 지금은 깨달았다. 사랑이란 결국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디리안의 모든 거짓은 드러났고, 그 모든 것의 끝에는 한 이름이 있었다. 비베니에 모로.

셀렌의 의붓자매. 결혼을 앞두고 달아난 후, 1년 뒤 돌아와 셀렌의 모든 것을 빼앗은 여자.

셀렌은 눈을 감아 숨이 목에 걸렸다.

어머니의 묘소에서 돌아오던 날, 남편의 셔츠를 걸친 채 서재에서 나오던 비베니에와 마주쳤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당시 셀렌은 어리석게도 '드레스가 더러워져서 잠시 갈아입었을 뿐'이라는 그 말도 안 되는 변명을 기어코 믿어주었다.

이제야 모든 조각이 하나로 맞춰졌다. 그 둘은 단순한 소꿉친구가 아니었다. 연인이었고, 배신자였다.

상처 같은 기억들이 속속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셀렌은 길게 숨을 들이켰다.

“이혼해야 해.”

그녀는 서랍을 열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산 서류들을 꺼냈다.

제국 밖의 작은 땅이자 유일한 탈출구였다.

이제는 백작 가문의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아버지는 비베니에의 어머니와 재혼했고, 그날 이후 셀렌은 집에서 그림자에 불과했다. 모든 호화로움은 비베니에의 것이 되었고, 원래 그녀의 약혼자조차 빼앗겼다.

셀렌은 문서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떠나야 한다.’

하지만 그때, 말발굽 소리가 다시 들려오더니 마차가 저택의 정원 앞에서 멈췄다. 누군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방문이 벌컥 열렸다.

디리안이 특유의 차가운 기운과 함께 들어왔고, 그의 옆에는 비베니에가 있었다.

셀렌의 목 끝까지 쓰디쓴 구역질이 치밀었다.

“언니.”

달콤한 목소리가 울렸다. 비베니에가 다가오며 연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마치 자상한 친척이라도 되는 듯 셀렌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유산했다는 소식 들었어… 괜찮아?”

셀렌은 즉시 손을 뿌리쳤다.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괜찮아.”

순간, 비베니에의 미소가 굳었다. 연극을 받아줄 셀렌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언니, 그러지 말고…”

“오지 않아도 됐어.”

셀렌이 냉정하게 끊었다.

“네 동정 따위 필요 없어.”

디리안이 한 걸음 나서며 명령 같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셀렌. 비베니에는 널 위로하러 일부러 온 거다. 그런데 이런 태도를…”

셀렌은 고개를 돌려 흔들림 없이 똑바로 디리안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이혼해.”

공기가 얼어붙었다. 시종 모나와 데이지는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였다. 폭풍이 곧 터질 것만 같았다.

“셀렌!”

디리안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위협적이었다.

“이쯤에서 터무니없는 말을 멈추지?”

셀렌은 비웃듯 얇게 웃었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나가.”

“셀렌!”

디리안이 목소리를 높이려던 순간, 비베니에가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공작님, 화내지 마세요… 제 잘못이에요. 제가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언니가 아이를 잃은 후라 감정이…”

셀렌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저 싸구려 연기일 뿐이었다.

디리안은 콧방귀를 뀌듯 비웃고 비베니에를 바라봤다.

“너의 관심을 받을 자격도 없는 여자다. 가자.”

문이 닫혔다. 방에 다시 고요가 들이쳤다.

그러나 밖에서, 디리안의 발걸음이 멈췄다. 비베니에가 그의 팔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방금 들었지?”

비베니에가 눈을 반짝이며 속삭였다.

“이혼하고 싶대. 우리에게 좋은 기회 아닌가?”

디리안은 여전히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방금 유산한 여자 말에 휘둘릴 생각 없어.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 헛소리를 하는 거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766장. 통제

    방 안을 살아 있는 무언가가 짓누르는 듯한 침묵이 뒤덮고 있었다. 무겁고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침묵이었다.모두가 입을 다물었다.처음부터 어떻게든 상황을 통제하려 애쓰던 그리고리조차 이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디리안에게 향해 있었고, 그 눈빛에는 미처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질문들이 깊게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의 조카를 알고 있었고, 디리안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 디리안이 이렇게까지 나아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돌아갈 길은 없었다.되돌릴 수 있는 것도 없었다.방금 일어난 일이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다.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알덴이 미소를 지었다.천천히.확신에 차서.그 미소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인 것과 같은 충격도 없었다. 그 대신 다른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만족감, 혹은 마침내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은 야망일지도 몰랐다.“공작이 원하는 건 전부 들어주지.”알덴이 말했다.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굳이 증명할 필요조차 없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는 조금 앞으로 다가섰고, 시선은 디리안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굳이 말로 꺼낼 필요도 없는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하는 듯했다. 방금 일어난 일이… 두 사람 모두에게 전환점이 되었다는 사실을.방 안의 몇몇 사람들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는지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화를 방해할 용기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디리안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알덴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차갑고 깊었으며, 다른 의미로 오해할 여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았다.“좋다.”그가 조용히 말했다.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한마디만으로도 방 안의 분위기는 다시 팽팽하게 긴장했다.그가 앞으로 다가갔다. 서두르지도, 급하게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 움직임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치 아직 긴장의 잔재가 남아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765장. 황좌를 차지하다

    광활한 남부 제국의 접견실 안에는 살아 있는 무언가처럼 사람을 짓누르는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높은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대리석 바닥 위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 놓인 거리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방 가장 안쪽에는 거의 흔들리지 않을 만큼 태연한 태도를 지닌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알리스톤 황제였다.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눈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닿았다. 마치 다른 누구도 볼 수 없는 무언가를 읽어 내려는 듯 상대를 세밀하게 살피고 있었다.디리안은 그곳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고개를 숙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두려움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는 망설임 하나 없이 그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황제 앞에 서 있다는 사실 따위는 그를 흔들어 놓을 만한 일이 아니라는 듯한 태도였다.잠시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그 침묵만으로도 이 만남이 평범한 만남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그리고리에게 모든 이야기는 들었다.”마침내 알리스톤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굳이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위엄이 그 안에 배어 있었다.“하지만… 디리안 레벤티스 공작이 직접 내 앞에 서게 될 줄은 몰랐군.”디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황제의 말투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시선을 똑바로 유지했다.알리스톤이 몸을 살짝 뒤로 기대었다.“네게 협력해 주지.”그가 말을 이었다.“흥미로운 거래를 제안한다면 말이야.”말 자체는 단순했다.그러나 그 의미는 분명했다. 이것은 도움이 아니라 거래였다. 디리안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원하는 건 뭐든 얻게 될 겁니다.”대답이 너무 빨리 튀어나왔다.그의 곁에 서 있던 그리고리가 즉시 날카롭게 고개를 돌렸다.“디리안!”하지만 디리안은 그를 잠깐 바라보기만 했다.“왜 그러십니까?”그의 목소리는 무덤덤했지만, 그 한마디만으로도 그리고리가 이어서 하려던 말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그리고리는 여전히 진지한 눈빛으로 디리안을 바라보았다.“말을 신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764장. 마지막 이야기

    한편, 샹들리에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빛으로 가득한 방 안에서 셀렌은 높은 거울 앞에 조용히 서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우아하게 늘어진 드레스와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카락, 그리고 평온해 보이는 얼굴까지…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평온한 모습이었다.셀렌은 마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이 정말 여전히 자신인지 확인하려는 듯, 한참 동안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뒤에는 사라가 태연한 모습으로 서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뵤른이 평소처럼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서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셀렌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 시선에는 서로 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다.마침내 사라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너무 오랫동안 이어진 침묵을 깨뜨렸다.“그 푸른 눈 말이야.” 그녀가 가볍게 말했다. “오늘 밤은 네가 훨씬 더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것 같네.”셀렌은 바로 돌아보지 않았다. 여전히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가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칭찬에 감사할 생각은 없어.”사라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대답이 조금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셀렌이 무언가에 반응하는 방식에는 이미 익숙해진 것 같았다.반면 뵤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셀렌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여자의 외모가 아니라, 그녀의 생각에서 무언가 달라진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셀렌은 오늘 밤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녀는 훨씬 더 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마침내 뵤른이 반걸음 앞으로 나섰다.“부인.”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셀렌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완전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모르겠어.” 그녀가 마침내 대답했다.“왠지… 오늘 밤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사라가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희미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763장. 합의에 이르지 못하다

    라제는 조금 전까지 드러내고 있던 몸을 서두르는 기색 하나 없이 다시 옷으로 가렸다. 그의 움직임은 침착했고, 방금 자신이 보여준 것이 누구라도 충격을 받아야 할 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태연하기까지 했다.하지만 그 모습은 이미 그들의 눈과 머릿속에, 그리고 무엇보다… 디리안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진 뒤였다.그 후 라제는 고개를 들고 디리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지금 그의 시선은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단순히 계략을 품은 눈빛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경계심과 경험, 그리고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두려움의 흔적이 뒤섞인 훨씬 복잡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다시 그리고리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점점 더 큰 문제로 향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다시 한번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듯한 모습이었다.“황제를 만나러 간다.”그가 단호하게 말했다.“그러니 지금부터 준비해라.”그의 목소리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이것은 제안이 아니었고, 이미 내려진 결정이었다.디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앞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표정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쉽게 읽어낼 수 없었다. 조금 전처럼 분노가 폭발하는 모습도 없었고, 그렇다고 거부하는 기색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하지만 오히려 그 침묵이 가장 무겁게 느껴졌다. 단순한 감정 따위보다 훨씬 거대한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방 안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라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공작 부인 말입니다…”그가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는데도 디리안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상당히 순종적이더군요.”디리안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말을 잘 듣더군요.”라제가 말을 이었다. 그것이 칭찬인지 비꼬는 말인지 쉽게 분간하기 어려운 어조였다.“자신이 저항하려 들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잠시 짧은 침묵이 흘렀고, 라제는 디리안의 아주 작은 반응이라도 확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762장. 황제를 만나다

    초대에 관한 정보가 전해진 뒤, 방 안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누구도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고, 마치 모두가 자신들이 마주하고 있는 이 상황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각자 가늠하고 있는 듯했다.디리안은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공허했지만, 오히려 그 공허함 때문에 더욱 위험해 보였다. 그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가 입을 열었다.“오늘 밤 바로 공격하겠다.”그 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방 안에 떨어졌다. 망설임도 없었고 고민도 없었으며, 마치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기 전부터 이미 그 결정을 내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그리고리가 즉시 디리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단호하게 굳어졌고, 이전보다 훨씬 진지한 기색이 역력했다.“안 된다.”그가 낮지만 강한 압박감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곧바로 공격할 수는 없어. 그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디리안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서 무언가가 갈라지기 시작했고,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이 서서히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었다.“무슨 말씀이십니까, 숙부?” 그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졌다.“어떻게 그자가 내 아내를 그런 식으로 자랑할 수 있습니까? 내 아내를 물건으로 생각하는 겁니까?”그리고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분노에 점점 사로잡히고 있는 디리안이 어떻게든 냉정하게 생각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려는 듯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지금 그자의 손에 네 아내가 ‘물건’이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마침내 그리고리가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네가 경솔하게 행동하면… 그자는 네 아내를 죽게 만들 수도 있다.”그 말은 그때까지 나온 어떤 말보다도 강하게 디리안을 내리쳤다.디리안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턱이 굳게 다물리고 손이 천천히 주먹을 쥐는 모습만큼은 모두가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그때 라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미소도 없었고 태연한 척하려는 기색도 전혀 없었다.“그자는 사이코패스입니다.”그가 차갑게 말했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761장. 과시

    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이전보다 훨씬 깊숙하고, 동시에 훨씬 더 고요한 방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장 앞에 서 있던 라제는 그 안에서 자신이 보고 있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처럼 걸음을 그대로 멈췄다. 그 침묵은 자연스럽게 뒤쪽까지 번져 나가 제이와 에릭, 시그, 피터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을 다문 채 조용해졌다.방 안에는 디리안이 서 있었다.그의 모습은 말끔하지 않았다. 입고 있는 옷은 여전히 눈에 띄게 구겨져 있었고, 험난했던 여정의 흔적이 온몸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자세만큼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꼿꼿하게 서 있었으며, 정면을 향한 그의 시선은 곧게 뻗어 있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데다 그와 마주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불편함을 느낄 만큼 강한 압박감까지 서려 있어, 아무리 태연한 척하려 해도 그 시선을 오래 견디기는 어려워 보였다.제이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고, 에릭은 그 자리에서 몸을 긴장시켰으며, 시그와 피터는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이 정말 현실인지 확인하려는 듯 짧게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누구도 디리안이 이곳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곳은 원래 외부에 닫혀 있고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장소였기 때문이다.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라제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침착한 척하려 했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가 금이 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느껴졌다.“공작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그 질문은 공중에 그대로 매달렸다. 단순한 놀라움만이 담긴 질문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깊은 불신과… 약간의 두려움까지 함께 섞여 있었다.디리안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차분한 눈빛으로 라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에는 판단하는 기색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가 몸을 숨길 여지를 내어주는 것도 아니었다.“놀란 것 같군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9장. 가짜

    오데트의 목소리는 너무도 우렁차서, 디리안은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어머니에게 감히 맞설 수 없었다.“이렇게 멍청한 자식을 두다니, 내 팔자도 참 사납구나!”오데트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디리안과 할머니를 남겨둔 채 떠나버렸다.할머니가 조용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나도 네 어머니 말에 동의해. 너는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 됐다.”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뜻은 분명했다.“할머니…”디리안이 조심스럽게 불렀다.할머니는 그를 바라보았다.“사람의 마음은 억지로 가질 수 없는 거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8장. 공작 가문의 며느리는 오직 셀렌뿐

    일라드 집사가 나간 후, 셀렌은 책상에 앉아 모든 서류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했다.곧 성을 떠날 그녀는 단 하나의 실수도 해서는 안 됐다. 모든 내용을 완벽히 숙지해야만 했다.시간이 흘러, 해가 기울 무렵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부인, 왕부인과 대부인께선 이미 도착하셨습니다.”일라드 집사가 알렸다.셀렌은 곧장 방을 나가 두 사람을 정중히 맞이했고, 응접실로 안내했다.늘 그렇듯 시어머니 오데트는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며 작은 것 하나까지 점검했다. 그녀는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셀렌은 언제나 그가 좋아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7장. 스와아룬델

    오늘 아침은 셀렌에게 유난히 다르게 느껴졌다.아침 식사 시간에 디리안이 성 안에 있는 것도 드문데, 같은 식탁에 앉아 있는 건 더더욱 흔치 않았다.평소라면, 그가 집에 있더라도 서재나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있었고, 셀렌은 다가가는 일을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무엇을 하든 그는 불편해할 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가슴의 상처는 그녀의 발걸음을 묶었고, 노력하려던 마음을 멈추게 했다.“…오늘 할머니와 어머니가 오실 거다.”디리안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셀렌은 그를 바라보며 차분히 물었다.“내가 아직 회복 중이라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6장. 이혼 서류

    그날 아침,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평소처럼, 셀렌은 디리안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제는 익숙했다. 그는 집에 머무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한때의 셀렌은 그가 성의 업무로 바쁘다고 믿으려고도 했었지만, 진실을 알고 난 지금 남은 것은 혐오뿐이었다. 마음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지만, 셀렌은 시간이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 거라 스스로를 다독였다.그러나 그날 아침은 더 무거웠다.공작 저택에 그녀의 아버지, 모로 백작이 예고 없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도대체 비베니에에게 무슨 말을 한 거냐?”백작의 목소리는 압박적이었고 비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