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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난 반드시 이혼해야 해

Auteur: 라이사
밖에서는 말발굽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안에서는, 셀렌이 방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마치 방금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 결심을 못으로 박아 고정한 듯했다.

오늘부터 그녀에게 결혼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니었다. 전쟁터였다.

셀렌은 차가운 침대 위에 몸을 내려놓았다.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고, 목소리는 가까스로 속삭임만 흘러나왔다.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디리안 레벤티스 공작의 아내로 보낸 5년, 공작 부인으로서의 역할을 위해 그녀는 모든 노력을 쏟았다. 게으름 피우지 않았고, 열심히 공부하고, 꼼꼼히 정리하고, 성심껏 시중을 들었다.

남편의 식사부터 영지의 업무까지, 그의 모든 필요를 채웠다.

셀렌이 한 모든 일의 목표는 단 하나, 인정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공허한 시선, 얼음 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것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다섯 아이들이 모두 남편의 손에 짓밟혔다.

디리안은 셀렌을 아내로 거부한 것만이 아니라, 그녀에게 어머니가 될 기회까지 짓밟았다.

셀렌은 시트를 움켜쥐었다. 부드럽던 마음은 이제 바위처럼 굳어 있었다. 사랑이 언젠가는 모든 걸 바꿀 거라 믿었던 예전의 자신은 죽었다.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겪은 지금은 깨달았다. 사랑이란 결국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디리안의 모든 거짓은 드러났고, 그 모든 것의 끝에는 한 이름이 있었다. 비베니에 모로.

셀렌의 의붓자매. 결혼을 앞두고 달아난 후, 1년 뒤 돌아와 셀렌의 모든 것을 빼앗은 여자.

셀렌은 눈을 감아 숨이 목에 걸렸다.

어머니의 묘소에서 돌아오던 날, 남편의 셔츠를 걸친 채 서재에서 나오던 비베니에와 마주쳤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당시 셀렌은 어리석게도 '드레스가 더러워져서 잠시 갈아입었을 뿐'이라는 그 말도 안 되는 변명을 기어코 믿어주었다.

이제야 모든 조각이 하나로 맞춰졌다. 그 둘은 단순한 소꿉친구가 아니었다. 연인이었고, 배신자였다.

상처 같은 기억들이 속속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셀렌은 길게 숨을 들이켰다.

“이혼해야 해.”

그녀는 서랍을 열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산 서류들을 꺼냈다.

제국 밖의 작은 땅이자 유일한 탈출구였다.

이제는 백작 가문의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아버지는 비베니에의 어머니와 재혼했고, 그날 이후 셀렌은 집에서 그림자에 불과했다. 모든 호화로움은 비베니에의 것이 되었고, 원래 그녀의 약혼자조차 빼앗겼다.

셀렌은 문서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떠나야 한다.’

하지만 그때, 말발굽 소리가 다시 들려오더니 마차가 저택의 정원 앞에서 멈췄다. 누군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방문이 벌컥 열렸다.

디리안이 특유의 차가운 기운과 함께 들어왔고, 그의 옆에는 비베니에가 있었다.

셀렌의 목 끝까지 쓰디쓴 구역질이 치밀었다.

“언니.”

달콤한 목소리가 울렸다. 비베니에가 다가오며 연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마치 자상한 친척이라도 되는 듯 셀렌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유산했다는 소식 들었어… 괜찮아?”

셀렌은 즉시 손을 뿌리쳤다.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괜찮아.”

순간, 비베니에의 미소가 굳었다. 연극을 받아줄 셀렌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언니, 그러지 말고…”

“오지 않아도 됐어.”

셀렌이 냉정하게 끊었다.

“네 동정 따위 필요 없어.”

디리안이 한 걸음 나서며 명령 같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셀렌. 비베니에는 널 위로하러 일부러 온 거다. 그런데 이런 태도를…”

셀렌은 고개를 돌려 흔들림 없이 똑바로 디리안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이혼해.”

공기가 얼어붙었다. 시종 모나와 데이지는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였다. 폭풍이 곧 터질 것만 같았다.

“셀렌!”

디리안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위협적이었다.

“이쯤에서 터무니없는 말을 멈추지?”

셀렌은 비웃듯 얇게 웃었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나가.”

“셀렌!”

디리안이 목소리를 높이려던 순간, 비베니에가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공작님, 화내지 마세요… 제 잘못이에요. 제가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언니가 아이를 잃은 후라 감정이…”

셀렌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저 싸구려 연기일 뿐이었다.

디리안은 콧방귀를 뀌듯 비웃고 비베니에를 바라봤다.

“너의 관심을 받을 자격도 없는 여자다. 가자.”

문이 닫혔다. 방에 다시 고요가 들이쳤다.

그러나 밖에서, 디리안의 발걸음이 멈췄다. 비베니에가 그의 팔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방금 들었지?”

비베니에가 눈을 반짝이며 속삭였다.

“이혼하고 싶대. 우리에게 좋은 기회 아닌가?”

디리안은 여전히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방금 유산한 여자 말에 휘둘릴 생각 없어.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 헛소리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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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754장. 무언가를 알고 있다

    셀렌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고, 망설이는 흔적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지나치게 정돈되어 보일 만큼 차분한 모습뿐이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그것을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단단히 감춰둔 듯했다.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자신이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적어도… 지금은.천천히 그녀의 시선이 움직였다. 눈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훑었다. 우연히 이곳에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그 자리에 서기로 선택한 사람들이었다.언제나 침착한 제이.피로를 감추려 애쓰는 뵤른.상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한데도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는 에릭과 피터, 그리고 시그.모두 이곳에 있었다.자신을 위해서.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셀렌의 마음속 무언가가 팽팽하게 조여들었다. 약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지는 결의 때문이었다.“몸조심해.”조용한 목소리였다. 강요하는 기색도,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는 모습도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그 말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약속도, 맹세도 없었기 때문이다.그저 믿음을 건넸을 뿐이었다.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것으로 충분했다.셀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몸을 돌렸다.걸음은 차분했다. 마치 자신을 따라오는 무거운 짐 따위는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사라는 이미 문 근처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은 평소처럼 차분하고 침착했지만, 눈에는 조금 더 깊은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정말로 주의 깊게 바라보는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그들 뒤에서는 가슴에 시계가 박힌 남자가 소리도, 표정도 없이 따라 움직였다. 자신의 의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처럼.문이 열리고, 셀렌이 밖으로 나섰다.그리고 방 너머의 세상은…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다.하지만 그녀의 걸음이 멈췄다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753장. 눈을 감지 않다

    셀렌이 말을 마치자 방 안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그 침묵은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공허함이 아니었다. 방금 오간 말들이 아직도 공기 속에 매달려 있는 듯, 묵직한 압박감이 가득했다. 셀렌은 그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렉산의 표정에서 일어난 미묘한 변화도 그녀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그 시선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더욱 날카롭고 깊어져, 마치 그녀가 말하지 않은 무언가까지 꿰뚫어 보려는 것 같았다.하지만 셀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숨을 내쉰 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치 방금 나눈 대화가 별것 아닌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태연한 모습이었다.렉산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셀렌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좋습니다.”낮게 말한 그의 목소리는 다시 여유를 되찾은 듯했지만, 눈빛에 남아 있던 날카로움은 완전히 누그러지지 않았다.“당신이 원하신다면요.”그가 조금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다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완전히 좁히지는 않았다.“그런데 말입니다.”렉산이 말을 이었다.“그 남자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지요?”셀렌은 바로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는 듯했지만, 사실 그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여기에 전시하고 싶어요.”그 대답에 렉산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그렇다면… 그 남자가 당신 곁에 더 가까이 있게 되겠군요.”이번에는 셀렌이 그를 바라보았다. 시선은 곧고 차분했으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그게 문제가 되나요?”단순한 질문이었지만, 그 한마디에 다시 분위기가 팽팽해졌다.렉산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셀렌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지만, 말뜻만큼은 분명했다.“내 생각에는 그저 쓸모없는 물건일 뿐이에요.”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조금 더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너무 아끼는 거라 나한테 주기 싫다면, 억지로 달라고 하지는 않을게요.”셀렌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렉산을 바라보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752장. 째깍째깍

    시선이 천천히 옮겨갔다. 마치 눈앞에 없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처럼, 철창 같은 벽과 공허한 눈빛의 여자들, 그리고 숨겨진 고통으로 가득한 답답한 공기를 떠올리고 있었다.전시실. 인간이 물건처럼 취급되는 곳. 자유라는 말이 의미를 잃어버린 곳. 그리고 이제 그곳은 만남이 이루어질 장소가 될 것이었다.셀렌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딱 맞는 장소네…”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사라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정말 거기로 가고 싶은 거야?”단순한 형식상의 질문이 아니었다. 사라의 눈에는 숨기지 못한 걱정이 묻어나 있었다. 셀렌이 고개를 들자 다시 차분한 눈빛이 돌아왔다.“처음부터 나한테는 선택지가 없었어.”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어떤 의심도 지워낼 만큼 단호했다.셀렌은 자신을 감싸고 있던 빛을 뒤로한 채 창가에서 천천히 물러났다.“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잠시 말을 멈춘 그녀의 눈빛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기다리게 하지는 않을 거야.”사라는 곧바로 방을 나가지 않았다.여전히 문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마치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셀렌에게 향했다. 단순히 계획만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그 계획을 실행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내가 공작에게 널 전시실로 보내 달라고 할게.”목소리는 전보다 낮았지만 훨씬 단호했다. 더 이상 망설임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셀렌이 살짝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러니까.”사라는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실수하면 안 돼.”셀렌이 몇 초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실수?”이해하지 못해서 되묻는 것이 아니었다. 사라가 말하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직접 듣고 싶어서였다.사라가 한숨을 내쉬더니 한 걸음 다가왔다.“공작은 눈치가 빨라.”이번에는 조금 더 신중한 목소리였다.“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소한 것까지도 살펴보는 사람이야.”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751장. 똑같이 나쁜 사람

    셀렌은 자신의 방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정작 무엇 하나 제대로 보고 있지는 않았다. 바깥에서 들어온 빛이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다고 해도, 그녀의 생각은 조금도 평온하지 않았다. 성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고요해 보였다.하지만 셀렌은 알고 있었다. 이 돌벽 안에서 모든 것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방문이 천천히 열렸다.셀렌이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사라가 방 안으로 들어온 뒤, 이어서 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누군가 자신의 방문을 눈치채지 않았는지 확인하려는 듯 움직임은 느렸고, 얼굴에는 평소보다 훨씬 긴장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셀렌은 기다리지 않고 곧장 그녀에게 다가갔다.“찾았어?”그 질문은 거의 쉼 없이 빠르게 튀어나왔다. 마치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억누르고 있었던 말처럼 다급했다.사라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셀렌에게 향해 있었고, 그 얼굴에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난 확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읽어 내려는 듯했다.그러다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너는 내가 도와줄 거라고 정말 확신했네.”그 목소리에는 반쯤은 놀라움이, 반쯤은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셀렌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네가 확신했으니까.” 대답은 짧고 차분했다. 마치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는 듯한 말투였다.그 말에 사라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셀렌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반박할 수도 없었다.“내가 너를 공작에게 말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들어?”사라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셀렌은 몇 초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안 들어.”대답은 너무 빨랐다. 너무나 확신에 차 있었다.사라는 입을 다물었다.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750장. 밀수꾼

    셀렌은 두려움 하나 없는 눈으로 그를 계속 바라보았다.“그래도 싫어요.”그 말은 과한 감정 하나 없이 차분하게 흘러나왔다. 마치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를 말하고 있을 뿐이라는 듯한 태도였다.렉산의 얼굴에서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그는 잠시 아무 말없이 셀렌을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이 여자가 정말로 자신의 앞에서 감히 거절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가 긴 식탁을 돌아가는 동안 걸음은 느렸다. 고요한 대리석 바닥 위로 그의 부츠가 내딛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그는 셀렌의 바로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셀렌은 움직이지 않았다.렉산이 몸을 살짝 숙였다. 셀렌의 귀에 그의 숨결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였다.“그렇다면…”그의 목소리는 이제 한층 낮고 차가워져 있었다.“내가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하더라도 나를 탓하지 마십시오.”셀렌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고, 어깨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 위협이 자신을 조금도 흔들지 못한다는 듯했다.렉산은 잠시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전보다 훨씬 거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당신은 복종해야 할 겁니다.”그의 시선이 차갑게 굳었다. 이제 그의 목소리는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그게 당신에게 가장 좋은 일이니까요.”그는 다시 몸을 곧게 세우고 셀렌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자신의 소유물을 평가하는 사람처럼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나를 믿으세요.”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다시 떠올랐다.“내 아내가 되는 게 이곳에서 다른 사람의 장난감이 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니까.”방 안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구석에 서 있던 몇몇 하인들은 감히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었다.셀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렉산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러나 그곳에는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오직 이상할 정도로 차분한 평온만이 자리하고 있었다.렉산이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749장. 이미 준비된 모든 것

    사라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 대답은 자신이 했던 말을 제대로 부정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설명해 주는 것 역시 아니었다. 셀렌은 벽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왔다. 그녀가 사라의 곁을 지나 걸어가자 드레스 자락이 부드럽게 흔들렸다.“가끔은.”셀렌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너무 알려고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어.”사라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복도를 따라 멀어지기 시작한 셀렌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쫓았다.몇 초가 지나고 나서야 사라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혼잣말처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문제는… 내가 이미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다는 거지.”하지만 셀렌은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고요한 방 안에서 셀렌은 창가에 놓인 의자의 가장자리에 홀로 앉아 있었다. 희미한 오후의 햇빛이 얇은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 차가운 바닥과 돌벽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방 안은 조용했고, 지나치게 조용해서 마치 성 전체가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하지만 셀렌의 생각은 방 안의 고요함과는 전혀 달랐다. 그녀의 시선은 텅 빈 듯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의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그 얼굴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대공이라고 불린 남자의 뒤에 서 있던 다섯 명의 남자들이었다.셀렌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눌렀다.“그러니까… 정말 여기 있었구나.”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고, 마치 혼잣말처럼 작았다.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귀족의 뒤를 따라 걷는 낯선 남자 다섯 명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셀렌에게 그 얼굴들은 너무나 익숙했다.그들은 언제나 디리안의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었다. 전장에서도 디리안과 좀처럼 떨어지지 않던 사람들이기도 했다.셀렌은 한동안 바닥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몸을 조금 뒤로 기대었다.“그들이 여기 있다면…”그녀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그럼 디리안도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1장. 우리 이혼하자

    "부… 부인!" "부인!"아래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성의 가장 높은 탑 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곳에는 핏물에 젖은 하얀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가장자리 끝에 서 있었다.셀렌 모로 레벤티스.공작 부인. 늘 조용하고 순종적이던 그녀가 지금은 가장 위험한 곳에 서 있었다. 뒤에 있던 경비병들은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그녀가 정말로 뛰어내릴까 두려워 조심스럽게 움직였다.셀렌의 처절한 울음이 터졌다. 셀렌은 아픈 배를 움켜쥐었다. 그녀는 방금 다섯 번째 유산을 했다. 이번만큼은 확신했다. 그 모든 비극은 병 때문도,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9장. 가짜

    오데트의 목소리는 너무도 우렁차서, 디리안은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어머니에게 감히 맞설 수 없었다.“이렇게 멍청한 자식을 두다니, 내 팔자도 참 사납구나!”오데트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디리안과 할머니를 남겨둔 채 떠나버렸다.할머니가 조용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나도 네 어머니 말에 동의해. 너는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 됐다.”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뜻은 분명했다.“할머니…”디리안이 조심스럽게 불렀다.할머니는 그를 바라보았다.“사람의 마음은 억지로 가질 수 없는 거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8장. 공작 가문의 며느리는 오직 셀렌뿐

    일라드 집사가 나간 후, 셀렌은 책상에 앉아 모든 서류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했다.곧 성을 떠날 그녀는 단 하나의 실수도 해서는 안 됐다. 모든 내용을 완벽히 숙지해야만 했다.시간이 흘러, 해가 기울 무렵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부인, 왕부인과 대부인께선 이미 도착하셨습니다.”일라드 집사가 알렸다.셀렌은 곧장 방을 나가 두 사람을 정중히 맞이했고, 응접실로 안내했다.늘 그렇듯 시어머니 오데트는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며 작은 것 하나까지 점검했다. 그녀는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셀렌은 언제나 그가 좋아

  •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7장. 스와아룬델

    오늘 아침은 셀렌에게 유난히 다르게 느껴졌다.아침 식사 시간에 디리안이 성 안에 있는 것도 드문데, 같은 식탁에 앉아 있는 건 더더욱 흔치 않았다.평소라면, 그가 집에 있더라도 서재나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있었고, 셀렌은 다가가는 일을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무엇을 하든 그는 불편해할 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가슴의 상처는 그녀의 발걸음을 묶었고, 노력하려던 마음을 멈추게 했다.“…오늘 할머니와 어머니가 오실 거다.”디리안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셀렌은 그를 바라보며 차분히 물었다.“내가 아직 회복 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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