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인생의 루저 한서아는 악마 펠에게 영혼을 담보로 '나를 사랑해달라'는 소원을 빈다. 펠은 계약 이행을 위해 사랑을 연기하지만, 점차 서아에게 진심으로 빠져들며 혼란을 겪는다. 한편, 서아를 모델로 발탁한 악마 그레모리는 그녀의 천재적인 재능을 발견한다. 그녀는 10년 뒤 계약이 끝나 서아가 죽기에는 그 재능이 너무 아깝다고 판단, 계약을 파기해 수명을 늘리고자 대천사 미카엘과 손을 잡는다. 미카엘 역시 서아를 사랑하게 되며 갈등은 깊어진다. 결국 펠은 진심 어린 사랑으로 스스로 계약을 파기하고, 두 사람은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연인이 된다.
Lihat lebih banyak어딘가 힘없이 가라앉은 그녀의 어깨를 본 펠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잠시 어디로 자리를 옮길까? 카페라도…. 아니다, 괜찮으면 우리 집으로 갈래?”말을 내뱉는 순간 서아는 아차 싶어 입술을 깨물었다.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그, 가, 가까우니까. 밖은 춥기도 하고….”서아는 변명하듯 어색하게 손짓을 해 보였다.펠은 잠시 서아의 낡은 빌라 쪽을 바라보더니 짧게 답했다.“좋아.”앞장선 서아의 발걸음이 아까보다 더 꼬이는 듯했다.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도착한 작은 자취방.서아는 서둘러 문을 열었다.“누추하지만 들어와. 편한 데 앉으면 돼.”서아는 아무 데나 가방을 급히 내려놓고는 정돈되지 않은 방 안이 부끄러워 서둘러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마실 거 필요 없어. 앉기나 해.”“아, 그, 그래.”누군가가 자신의 방에 들어온 것도 처음이었지만, 남자는 더더욱 처음이었다서아는 손바닥에 배어 나오는 땀을 바지에 슬쩍 닦으며 펠의 맞은편에 천천히 앉았다.방 안은 좁았다.그래서일까, 펠이 내뿜는 서늘하고도 짙은 향기가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서아는 눈치를 살피며 펠의 표정을 읽으려 애썼다.왠지 아침의 장난기 어린 모습과는 다른 침착함이 느껴졌다.‘전화를 잊어버려서 진짜 화난 건가? 아니면 집이 너무 좁아서 불쾌한 건가?’정적이 길어질수록 서아의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릴 듯 크게 울렸다.“할 말이 뭔데?”펠이 식탁 너머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의 짙은 눈동자가 서아의 얼굴을 빤히 비추자, 서아는 목 안이 바짝 타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아, 그게….”서아는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하루 종일 아르바이트에 시달려 몰골은 엉망이었고, 좁은 자취방의 공기는 두 사람의 존재감만으로도 이미 포화 상태였다.하지만 오늘 아침부터 머릿속을 맴돌던 이 생각을 털어버리지 않으면, 내일도 모레도 펠의 페이스에 휘말릴 것만 같았다.서아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는
오늘 서아의 일과는 오전 편의점 타임으로 시작해, 오후 치킨집 서빙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이었다.원래대로라면 주말 야간 PC방 아르바이트까지 총 세 개의 일을 전전해야 하지만, 평일인 오늘은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편이었다.주말에는 치킨집 알바가 따로 있어 쉬는 날이었지만, 서아는 그 비어버린 시간조차 견디지 못하고 PC방 아르바이트로 메꾸어 제 몸을 혹사시키고 있었다.오전의 편의점은 평소처럼 한산했다.유동 인구가 적은 외진 길목에 자리 잡은 탓에 다른 지점보다 훨씬 여유로웠지만, 오늘따라 서아는 그 정적이 고통스러웠다.차라리 정신없이 바빠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자꾸 왜 떠오르는 거야, 대체.’머릿속에는 자꾸만 펠의 잔상이 맺혔다.아침 햇살을 등지고 전봇대에 기대어 있던 모습, 거대한 검은 날개를 펼치며 앞을 막아서던 비현실적인 광경, 그리고 장난스럽게 건네던 목소리까지.서아는 잡념을 털어내려 일부러 몸을 바쁘게 움직였다.굳이 건드릴 필요 없는 음료 진열장의 줄을 자로 잰 듯 다시 맞추고, 출근하자마자 반짝이게 닦아둔 테이블을 괜히 한 번 더 박박 문질러 닦았다.할 일을 억지로 만들어내며 몸을 혹사시켰지만, 생각이라는 놈은 비웃기라도 하듯 틈만 나면 비집고 들어왔다.이미 그에게 홀린 기분이었다.사실 어제저녁, 그와의 계약에 대해 어느 정도 결론을 내렸었다.'연애는 생략해도 상관없다'라고 스스로 합의를 보았고, 펠이 인간이 아닌 초월적 존재라는 사실도 눈앞에서 확인했으니 믿기지 않아도 받아들이면 그만인 일이었다.하지만 서아는 스스로가 펠을 떠올리는 것조차 강렬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왜일까.그 의문에 대한 답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그저 그를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일렁이며 심란해질 뿐이었다.평생을 생존에만 몰두하며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의 벽 사이로, 펠이라는 존재가 묘하게 간지러운 몽글몽글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평생 받아본 적 없는 누군가의 일방적인 관심과 아침 인사 때문이었을까
“봉! 밥 먹자.”“아이고, 깜짝이야! 루루 님! 루루 님까지 왜 자꾸 창문으로 넘나드시는 겁니까?”식탁을 차리던 달봉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외쳤다.멀쩡한 현관문을 두고 굳이 창문으로 들어온 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네가 문단속을 잘하고 있는지 확인 차.”달봉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식당으로 향하는 펠의 뒤를 따라갔다.“루루 님, 확실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분명히 문단속을 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저 거실 베란다 창문으로 날아서 외출하신 건 루루 님이시라고요!”“내가 나가고 난 뒤에 바로 문단속을 했어야지. 그 사이에 엘이 들어왔으면 어쩌려고 했어?”펠이 입가에 비스듬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억울함에 답답함까지 더해진 달봉이 제 가슴을 탁탁 쳐댔지만, 고집불통 상전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였다.“됐고, 밥이나 먹자.”“네, 네. 드셔야죠.”달봉이 뾰로통하게 대답하며 수저를 놓았다.한참 식사를 이어가던 중, 펠이 갑자기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달봉을 불렀다.“야, 봉.”“네?”국 한술 뜨려던 달봉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펠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고 진지했기 때문이다.“너, 사랑해봤냐?”“사랑이요?”“그래. 사랑.”달봉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며 답했다.“당연히 해봤죠! 제가 환생만 다섯 번을 했습니다. 한 생에 가볍게 60살까지만 살았다고 쳐도 도합 300년입니다, 300년! 그 긴 세월 동안 그 뜨거운 걸 안 해봤겠습니까?”“그거… 어떻게 하는 거냐?”달봉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루루 님, 설마 좋아하는 여자라도 생기신 겁니까?”“아니! 좋아하긴 무슨! 그 인간이 날 좋아하면 좋아했지, 이 내가! 내가 감히 누굴 좋아해?”펠이 예민하게 반응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자, 달봉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번졌다.당황한 펠은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변명을 덧붙였다.“아, 아니라고! 소원 때문이야, 소원.”“소원이요?”“그래. 자기를 사랑해 달라는 게 계약 조건
지긋지긋한 인생이었다.평생을 혼자라는 감옥에 갇혀 무채색의 풍경만 보고 살 줄 알았다.그런데 오늘, 그 지루한 일상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렸다.서아는 눈을 감고 오늘 하루를 천천히 되짚었다.처음 본 남자의 커다란 손이 자신의 손을 감싸 쥐었을 때의 그 낯선 온기.어두운 극장 안에서 어깨를 스치며 영화를 보던 긴장감.귀동냥으로 들으며 입맛을 다셨던 그 근사한 파스타의 맛.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던 노을을 배경으로 즐겼던 드라이브와 향긋한 얼그레이 티의 향기까지.그리고 그 모든 장면의 중심에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던 그 남자, 펠이 있었다.“하아.”서아는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멈춘 줄 알았던 심장이 다시금 제멋대로 요동치기 시작했다.그가 잡았던 손끝이 여전히 저릿한 착각이 들었고, 심장 언저리에서는 정체 모를 감정이 뜨거운 거품처럼 몽글몽글 피어올랐다.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신데렐라가 된 기분일까, 아니면 정말로 로맨스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걸까.몸이 붕 떠오르는 듯 어지러운 부양감이 서아를 덮쳤다.하지만 환상 뒤에는 언제나 서늘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그 거대한 검은 날개.칠흑 같은 어둠을 형상화한 듯한 그 위용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평범한 사람과 손을 잡는 것도 서툰 내가, 인간의 영혼을 거두는 타락천사와 연애라니.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전개에 서아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과연 우리가 연애라는 걸 할 수나 있을까?사랑이 무엇인지, 그 간지러운 감정이 대체 어떤 경로로 생겨나는 것인지조차 나도, 그 남자도 전혀 모르는데.사랑을 모르는 두 존재가 만나 진심 어린 사랑을 해보겠다고 무모하게 덤벼든 꼴이었다.한 명은 영혼을 지키기 위해, 또 한 명은 영혼을 갖기 위해.“결국 다 내 소원이 문제지, 뭐.”서아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자책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하지만 이불 속 어둠보다 더 짙게 머릿속을 맴도는 건, 무표정한 얼굴로 "예쁘다"라고 말하던 펠의 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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