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소원을 빌었을 뿐인데… 왜 내가 그 남자 거야?” 단 한 번,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서였다. 그 수상한 남자와 계약을 맺은 건. “대가는 간단해. 네 영혼.” …미친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날, 그가 다시 나타났다. “이제 시작하자. 연애.” 도망칠 수 없다. 계약은 이미 끝났으니까. 차갑고 위험한 남자, 펠. 그런데... 왜 자꾸 설레는 거지? 이 연애, 끝나면 나는 살아있을까?
Lihat lebih banyak“신이 저주스럽다.”
입 밖으로 비명이 새어 나간 순간, 서아는 스스로도 놀라 제 입을 틀어막았다.
손바닥 너머로 비릿한 알코올 향이 훅 끼쳤다.
“…미쳤네, 나.”
텅 빈 골목이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길고양이가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소리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내뱉은 말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에 ‘닿은’ 것 같은 서늘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깜빡, 깜빡.
머리 위 전등이 임종을 앞둔 환자처럼 가쁘게 명멸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불빛이 골목의 그림자를 비정상적으로 늘어뜨렸다.
서아는 비틀거리는 걸음을 겨우 지탱하며 벽을 짚었다.
억지로 끌려간 회식 자리에서 꾸역꾸역 들이부은 소주가 속을 뒤집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더 괴롭히는 건 숙취가 아니었다.
내일, 그리고 그 모레.
시지프스의 형벌마냥 반복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비루할 일상이었다.
“하… 진짜.”
짧은 한숨이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와, 방금 그거 꽤 마음에 드는데?”
그 순간, 서아의 등 바로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전율이 일었다. 서아의 몸이 석상처럼 굳었다.
술기운에 무뎌졌던 감각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뭐야.”
서아는 녹슨 기계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밤의 어둠을 그대로 오려다 붙여놓은 것 같은 남자가 서 있었다.
가로등 불빛조차 빨아들이는 칠흑 같은 머리칼, 그리고 비현실적일 만큼 창백한 피부.
무엇보다 서아의 시선을 묶어버린 것은 인간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서늘하고 어긋난 눈동자였다.
“신을 저주하는 인간이라니.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수집품이거든.”
남자가 입꼬리를 뒤틀며 웃었다.
서아는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공포보다 먼저 치민 것은 불쾌감이었다.
‘미친놈인가. 요즘 도를 아십니까는 야근도 하나.’
“관심 없으니까 가던 길 가세요. 경찰 부르기 전에.”
무심하게 뱉어낸 서아가 다시 몸을 돌려 발을 뗐다.
하지만 남자의 존재감은 그림자처럼 그녀의 뒤꿈치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아쉽네. 큰맘 먹고 영업 나온 건데.”
남자가 한 발짝 다가왔다.
찰나의 순간, 주변의 온도가 영하로 곤두박질쳤다.
폐부로 들어오는 공기가 얼음 파편처럼 날카로웠다.
서아의 발걸음이 자석에 이끌리듯 멈췄다.
“네 소원, 들어줄 수 있어.”
“…뭐?”
“말 그대로야.”
남자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우아하면서도 기괴했다.
“돈, 명예, 복수. 네가 그 좁은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
서아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비릿한 조소가 입술 사이로 흘렀다.
“사기 치지 마요. 아저씨 같은 사람 많이 봤으니까.”
“사기가 아닌데.”
남자의 눈이 가늘어지며 기이한 빛을 냈다.
“대신 조건이 있지.”
“…조건?”
“네 영혼. 그건 내가 가져간다.”
골목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서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 진짜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아저씨, 내 영혼? 이미 회사에 팔아넘긴 지 오래거든요? 가져갈 게 없어서 사양할게요. 이미 내 인생은 지옥이니까.”
서아는 다시 몸을 돌렸다.
이번에야말로 이 기괴한 대화를 끝낼 작정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온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래서 더 탐나는데.”
그녀의 발걸음이 다시 멈췄다.
“뭐…?”
“지옥 같은 인생을 사는 인간이, 벼랑 끝에서 어떤 소원을 뱉어낼지.”
남자의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머리로는 무시하고 지나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듯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뭘 원할 줄 알고 그런 소릴 해.”
“몰라.”
남자가 어느새 서아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에게선 향수 냄새도, 사람의 체취도 아닌, 서늘한 숲의 냄새가 났다.
“그래서 궁금해. 네가 이 비참함을 대가로 무엇을 살지.”
잠깐의 정적 속에서 서아는 남자의 눈을 노려보았다.
오기가 치밀었다.
미친놈이라면 제대로 미친 소리로 받아쳐 주고 싶었다.
당황하는 기색이라도 보고 싶었다.
서아의 입꼬리가 천천히, 아주 가파르게 올라갔다.
“좋아. 거래해.”
남자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이제야 말이 통하네.”
남자가 허리를 숙여 서아의 시선 높이를 맞췄다. 숨결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 서아는 도망치지 않고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혹은 기이할 정도로 느리게 뛰었다.
“말해봐. 뭘 원해?”
서아는 떨리는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명확했다.
“…나를.”
마지막 단어가 나오기 전, 골목의 공기가 멈춘 듯 고요해졌다.
“사랑해 줘.”
외전 13.루나가 세상에 태어난 지 어느덧 90일.헬렐 호텔 기획팀은 비상이 걸렸다.사유는 단 하나.‘강루나 양의 백일 잔치’였다.한때 지옥의 군단을 지휘하던 시우는 이제 펜트하우스 거실에 대형 화이트보드를 설치하고, 달봉과 함께 백일 잔치 전략 회의를 열고 있었다.“봉봉, 다시 확인해. 당일 호텔 로비에 배치할 생화는 전부 새벽이슬을 머금은 최상급 작약이어야 한다. 루나의 피부는 소중하니까, 꽃가루 날림이 적은 품종으로 선별했나?”“대표님, 이미 네덜란드 농장 하나를 통째로 예약했습니다! 꽃가루는커녕 향기 입자까지 필터링 중입니다!”달봉은 이제 비서인지 돌잔치 플래너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열정적이었다.그의 태블릿 PC에는 백일 잔치 초대 명단과 메뉴 리스트가 빼곡했다.“그리고 루나가 입을 백일 한복 말이야. 실크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건 당연하겠지? 아이의 몸에 닿는 거니 화학 염료는 절대 안 돼. 천연 염색으로만 진행하라고 전해.”“물론입니다! 장인께서 지금 눈이 침침해지실 정도로 정성을 쏟고 계십니다. 그런데 대표님…… 하객 명단에 ‘아스모데우스’ 님은 어쩌실 건가요? 저번에 루나 보러 오셨다가 호텔 조명을 다 깨트리셨는데…….”시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마력이 사라진 인간 시우에게 아스모데우스 같은 불청객은 이제 통제하기 힘든 변수였다.“그놈은 입구에서 모리한테 맡겨. 마녀의 인장으로 힘을 억제하라고 해. 루나의 백일 잔치에 소란을 피우는 놈은 누구든 내 손으로 직접 축출할 거니까.”그때, 안방에서 루나를 재우고 나온 서아가 거실의 풍경을 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화이트보드에는 ‘루나의 동선’, ‘공기 청정 구역 설정’, ‘돌잡이(아니 백일잡이) 예상 시나리오’ 등이 복잡하게 적혀 있었다.“시우야, 우리 그냥 가족끼리 조촐하게 밥 먹기로 한 거 아니었어? 이건 무슨 국제 정상회담 수준인데?”“서아, 이건 단순한 식사가 아니야. 우리 루나가 이 험한 세상에 태어나 무사히 백일을 버텼다는 걸 증명하는 성스러운 의식이
외전 12.펜트하우스의 거대한 통창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차갑게 일렁이고 있었지만, 실내의 공기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톱모델 한서아의 출산 예정일을 앞두고, 강시우의 일상은 이미 ‘전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그는 호텔 전속 의료진 10여 명을 펜트하우스 바로 아래층에 24시간 상주시켰고, 분만실에 버금가는 최첨단 의료 장비들을 안방 옆에 비치해 두었다.“시우야, 제발…… 그만 좀 왔다 갔다 해. 바닥 닳겠다.”서아가 만삭의 배를 소중하게 감싸안으며 소파에 기대어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평소 런웨이 위에서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저 한 생명을 품은 숭고한 어머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시우는 얼음물을 들이켜며 초조한 눈빛으로 서아의 안색을 살폈다.“어떻게 가만히 있어? 네 몸 안에서 새로운 영혼이 밖으로 나오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마력이 있었다면…….”시우는 자신의 두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한때 지옥의 유황불을 다스리고 수만 명의 영혼을 단숨에 거두어들이던 손이었다.하지만 지금 그의 손은 땀으로 젖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이제 그는 아내의 고통을 10분의 1로 줄여줄 작은 마법조차 부릴 수 없는, 그저 무력한 인간 남편일 뿐이었다.그때였다.평온하게 숨을 몰아쉬던 서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그녀가 배를 움켜쥐며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아, 시우야. 시작된 것 같아. 아까랑은 달라.”시우의 심장이 쿵, 하고 발등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그는 사색이 되어 서아에게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봉봉! 당장 병원으로!”이미 마력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시우의 목소리에는 왕의 위엄과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 시우는 서아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은 채 그녀의 젖은 손을 꽉 맞잡았다.“서아, 나 봐. 내 눈 봐. 내가 여기 있잖아. 숨 크게 들이마시고.”진통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마다 서아의 비명이 거실을 메웠다.런웨이의 여왕이라 불리며 어떤 시련 앞에서도 당당했
외전 11.모리의 지적은 뼈아팠다.마력이 있었다면 손짓 한 번으로 서아의 입덧을 멈추거나 태교 음악을 허공에 띄웠겠지만, 이제 시우는 오직 자신의 두 발과 두 손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걱정 마라, 모리. 마력 따위 없어도 내겐 서아를 향한 집념과, 그리고…… 무한한 재력이 있지.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서아의 머리카락 한 올도 다치지 않게 할 거다. 내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어머, 아빠 됐다고 아주 대사가 신파네. 그럼 넌 이제 밤샘 육아도 몸으로 때워야 할 텐데, 괜찮겠어? 인간 몸뚱어리 그거 생각보다 금방 고장 난다고.”모리의 독설에도 시우는 끄떡없었다.그는 이미 집무실 한편에 쌓인 명품 아기용품 상자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서아는 모델이라 감각이 예민해. 아이도 분명 엄마를 닮아 미적 감각이 뛰어날 거다. 마력으로 꾸며준 환상 따위는 필요 없어. 내 손으로 직접 조립한 아기 침대와 내가 직접 고른 유기농 면 의류만 입힐 거다.”“대표님! 제가 당장 육아 백과사전 전 권을 구매해서 요약본을 만들겠습니다! 인간 아빠로서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제가 서포트하겠습니다!”달봉이 다시 한번 충성심을 불태우며 눈물을 닦았다.모리는 툴툴거리면서도 은근슬쩍 가방에서 보석이 박힌 작은 노리개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툭 던졌다.“이거, 마력은 없어도 인간 몸에 좋은 기운이 서린 진귀한 보석이야. 서아한테 전해줘. 임신 기간 동안 마음 안정되는 데는 직방이니까.”“모리 님…… 역시 츤데레의 정석이네요.”달봉의 감탄에 모리는 다시 선글라스를 내려쓰며 차갑게 대꾸했다.“닥쳐, 봉봉. 드라이브나 가. 나 지금, 이 염장질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당 떨어져.”집무실을 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시우는 다시 초음파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마력을 버리고 인간이 된 대가로 얻은 이 작은 생명.그것은 그가 지옥에서 누렸던 그 어떤 절대적인 권력보다도 무겁고 소중했다.시우는 사진 속 작은 점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쓸어내렸다.이
외전 10.톱모델 한서아의 아침은 언제나 차갑고 날카로운 자기검열로 시작되었다.그녀의 몸은 단순한 신체가 아니라, 수억 원대의 계약이 오가는 정밀한 예술품이자 가장 엄격한 전장이었다.평소라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떠 가벼운 스트레칭과 해독 주스로 몸을 깨웠을 그녀였지만, 요 며칠 사이 서아의 세계에는 기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이상해.”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던 서아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지럼증에 다시 베개 위로 쓰러졌다.머릿속에 수천 마리의 나비가 날갯짓하는 듯한 몽롱한 감각.평소 저혈압이 있긴 했지만, 이토록 전신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게 가라앉는 기분은 생전 처음이었다.거실에서 조찬 모임 관련 서류를 훑고 있던 시우가 침실의 미세한 공기 흐름 변화를 감지하고 번개처럼 달려왔다.“서아, 아직 안 일어난 거야? 혹시 어디 안 좋아?”시우가 침대 머리에 앉아 서아의 이마를 짚었다. 악마 특유의 서늘한 체온이 닿자, 서아는 작게 신음하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시우야, 나 좀 이상해. 몸이 내몸 같지가 않아. 자도 자도 졸음이 쏟아지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 아무래도 지난주 파리 화보 촬영 때 독감이라도 옮아온 걸까?”시우의 눈매가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그에게 서아의 건강은 지옥의 안위보다 중요한 절대 명제였다.“열은 없는데…… 공기가 너무 희박하게 느껴지는군. 봉봉! 당장 주치의를 펜트하우스로 압송해 와! ”“시우야, 제발…… 그렇게 호들갑 떨지 마.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서아는 시우를 말리며 겨우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입맛을 돋우기 위해 평소 즐겨 마시던 산미 강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내렸지만, 잔을 입가에 가져가는 순간 서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평소에는 세련되게만 느껴지던 원두의 향이, 오늘따라 지독한 타는 냄새와 비릿한 금속 향처럼 코끝을 찔렀다.“우욱……!”서아는 커피잔을 내팽개치다시피 하고 싱크대로 달려가 헛구역질했다.위장이 뒤집히는 듯한 강렬한 거부감.시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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