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막 돌아서려던 사라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추자, 방 안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붉은 머리카락의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움직임에는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마치 방금 전까지는 몰랐던 흥미로운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처럼 아까보다 훨씬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몇 초 동안 셀렌을 바라보았다.“어떻게 알았어?”셀렌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짙은 푸른색 드레스는 그녀의 몸을 따라 가지런히 흘러내리고 있었고, 은빛 머리카락은 궁전의 불빛 아래에서 부드럽게 반짝이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거든.”셀렌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잠시 동안 사라는 아무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입술에 천천히 미소가 떠올랐다. 얇은 미소였지만, 그 안에는 짙은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정말?”그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붉은 머리카락이 움직이는 불씨처럼 어깨 위에서 가볍게 흘러내렸다.“밖에는 나 같은 사람이 많아?”셀렌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움직임 하나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라의 미소는 조금 더 짙어졌다.“그거 잘됐네.”그녀의 목소리가 한층 가벼워졌다. 정말로 그런 말을 들어 기쁜 사람처럼 들릴 정도였다.“보통 여자들은 나를 보면 무서워하거든.”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셀렌의 얼굴을 훑으며, 마치 그녀를 평가하듯 움직였다.“그런데 너는…”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내가 마녀라는 걸 알고도 이렇게 태연하네.”셀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전과 똑같은 표정으로 사라를 바라볼 뿐이었다. 차분하고 무덤덤한 얼굴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드러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흐른 뒤, 사라가 마침내 작게 웃었다.“재미있네.”그녀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긴 뒤 완전히 몸을 돌렸다.“좋아.”사라가 긴 궁전 복도를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가자.”그녀가 손을 살짝 들어 셀렌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밖
철창 안의 어둠은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셀렌은 자신이 그곳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빛도 없었고 창문도 없었으며,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조차 철창을 뒤덮은 두꺼운 검은 천을 거쳐 희미하게 들려올 뿐이었다.그녀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움직임뿐이었다.발소리가 들려오기도 했고, 때로는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또 어느 순간에는 나무 바닥을 밟던 감각이 돌바닥으로 바뀌는 것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완전히 멈춰 있었다.마침내 철창이 어딘가에 내려놓였다. 쇠붙이가 단단한 바닥에 닿는 순간, 셀렌은 철창을 통해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몇 초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철창을 덮고 있던 검은 천이 걷혔다.빛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셀렌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너무 오랫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었던 탓에 쏟아져 들어온 빛이 지나치게 눈부시고 따갑게 느껴졌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이 따가운 것을 참으며, 천천히 눈꺼풀을 조금씩 들어 올려 시야가 빛에 적응하기를 기다렸다.희미했던 형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매끄러운 돌바닥과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높은 벽, 그리고 넓게 펼쳐진 천장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하지만 그 이상을 살펴볼 틈도 없이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철컥.철창 문이 열리고, 두 명의 남자가 곧바로 그녀의 팔을 붙잡아 강제로 끌어냈다. 셀렌은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거의 휘청거릴 뻔했다. 오랫동안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던 탓에 몸이 아직 뻣뻣하게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마침내 묶여 있던 손이 풀렸다. 손목을 붙잡고 있던 밧줄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입을 막고 있던 천 역시 제거되었다.셀렌은 곧바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그녀의 시선은 이미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남자에게 향해 있었다.자신을 납치했던 바로 그 남자였다.공작 렉산 코르빈.셀렌의 눈빛이 즉시 차갑게 변했다. 조금도 숨기지 않은 증오가 그녀의 눈에
작은 배가 어두운 바다 위를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피터가 저어 가는 노는 잔잔하고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물살을 가르고 있었고, 작은 파도가 이따금 배 옆면을 두드릴 때마다 선체가 가볍게 흔들렸다.하늘의 색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희미한 새벽빛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머지않아 아침이 찾아올 것임을 알리고 있었다.그동안 줄곧 묶여 있던 남자는 배 한가운데에서 이제 자유로운 몸으로 앉아 있었다.진짜 대공, 라제 코르빈이었다.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남쪽 지평선을 멀리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날카로웠고, 마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남부 제국을 눈으로 읽어 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그는 잠시 바다를 살펴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신호를 보내.”그와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던 제이가 고개를 돌렸다.“우리가 제국의 경계 안으로 들어왔다는 걸 저들이 알아야 해.”시그와 에릭이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 뒤, 다시 드넓은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제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표시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적어도 제국 경계를 표시하는 부표나 작은 등대 같은 것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요.”라제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없어.”목소리는 무덤덤했지만, 그런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했다.“여기에는 원래 경계를 표시하는 게 없어.”피터가 잠시 노 젓는 것을 멈췄고, 배 앞쪽에 앉아 있던 뵤른 역시 고개를 돌렸다.라제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그게 바로 저들의 목적이니까.”그가 앞쪽의 바다를 향해 희미하게 손을 뻗었다.“일부러 제국의 경계를 만들어 두지 않는 거야.”제이가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렇죠?”라제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전쟁을 시작하기 위해서.”바닷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는 가운데, 그가 말을 이어 갔다.“그리고 약탈하기 위해서.”그의 시선이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를 천천히 훑었다.“이 해역을 지나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남부 제국 안으
희미한 진동이 갑자기 선실 바닥을 따라 퍼져 나갔다.창가 근처에 서 있던 셀렌은 곧바로 그 변화를 알아차렸다. 배의 움직임이 달라진 것을 느끼는 순간, 그녀의 몸이 즉시 긴장했다. 이전까지 일정한 리듬으로 배를 흔들던 파도가 이제는 무언가 달랐다. 파도의 움직임이 더 짧고 무거워진 것이, 마치 배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배가 정박하고 있었다.셀렌은 자신의 방에 있는 작은 창밖을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희미하게 밝아지기 시작한 하늘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어두운 바다뿐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그들이 도착했다는 것을.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보기도 전에, 갑자기 바깥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평범한 경비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발소리였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고, 다음 순간 그녀의 선실 문에 꽂힌 열쇠가 돌아갔다.문이 열렸다.무장한 남자 몇 명이 먼저 들어왔고, 그들의 걸음에는 망설임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한 남자가 태연하게 걸어 들어왔다. 그의 길고 검은 외투 자락이 나무 바닥을 쓸며 뒤따라왔다.셀렌은 그를 단번에 알아보았다.렉산 코르빈.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셀렌은 차갑게 팔짱을 꼈다. 하지만 남자들이 들고 들어온 물건을 보는 순간, 가슴속으로 서서히 불길한 예감이 번져 나갔다.크지 않은 철창 하나였다. 사람 하나가 안에 앉아 있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셀렌이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날카롭게 묻자 렉산은 대답하지 않은 채 몇 초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셀렌의 얼굴에서 시작해 머리카락 끝까지 천천히 움직였고, 마치 무언가를 평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그러고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묶어.”셀렌의 몸이 즉시 굳었다.렉산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철창 안에 넣어.”그의 뒤에 있던 남자들이 곧바로 움직였다.“몸에 상처가 나지 않게 하고.
그 말은 갑판 위로 끊임없이 불어오는 거센 바닷바람의 소리와 함께 두 사람 사이로 떨어졌다.제이레스가 재빨리 라제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마치 그 남자가 정말로 방금 그런 말을 그렇게 태연하게 내뱉은 것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듯한 표정이었다.루시언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날카롭고 무언가를 신중하게 판단하려는 듯한 눈빛으로 라제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디리안의 조롱을 부정하지 않았다.그 말이 끝난 뒤에도 라제는 몇 초 동안 침묵을 지켰다.그의 턱에 힘이 들어갔고 뺨의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한 것이 눈에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기분이 상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예상했을 법한 격렬한 분노가 터져 나오지도 않았다.대신 그는 천천히 고개를 조금 더 높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디리안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차갑고 솔직한 눈빛이었다.“그렇습니다.”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흘러나왔다.다시 거센 바닷바람이 불어오며 디리안의 외투 자락이 등 뒤에서 펄럭였다. 라제의 머리카락 역시 바람에 마구 흐트러졌지만, 그는 그것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그의 시선은 디리안에게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은 채,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공작, 당신이 완벽하다고 부르는 그 사람이…”그의 말이 잠시 끊겼다. 마치 마음속에 품고 있던 무거운 무언가를 꺼내놓기 위해 힘을 내야 하는 것처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의 말을 끝맺었다.“내가 이렇게 밖에 살아갈 수 없는 이유입니다.”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제이레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말 뒤에 숨겨진 이야기에 더욱 흥미를 느끼는 것이 분명했고, 루시언 역시 이제는 한층 날카로운 시선으로 라제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나 디리안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묶여 있는 남자를 전과 똑같이 차가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흥미롭군.”그가 낮게 중얼거리더니, 방금 전보다 훨씬
그 말은 바다에 던져진 돌처럼 물속 깊이 가라앉았지만, 그 주변으로는 오랫동안 잔물결을 남겼다.그러나 디리안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는 전쟁의 위협 따위는 자신의 결정을 바꿀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라제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미 말했습니다만.”그가 마침내 낮고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그쪽이 쓸모가 있다면 살려주겠다고.”라제가 이를 악물었다. 다시 바람이 갑판 위를 가로질러 불어오면서 흐트러지기 시작한 그의 머리카락이 얼굴 위로 흩날렸다. 한순간 그는 지금껏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선택을 저울질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그러다 갑자기 입을 열었다.“나를 풀어주십시오.”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디리안의 몇 걸음 뒤에 서 있던 루시언이 재빨리 라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제이레스는 방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더욱 깊게 찌푸렸다.몇 초가 흘렀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디리안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시선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목소리는 여전히 무덤덤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언가가 그 질문을 훨씬 더 무겁게 만들었다.라제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디리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것이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내가 공작 당신을 안으로 데려갈 수 있기 때문이죠.”루시언이 즉시 팔짱을 꼈다. 그의 눈썹이 뚜렷하게 치켜올라갔다.“방금 그곳은 뚫을 수 없는 곳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라제가 그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린 뒤 대답했다.“외부인이라면 뚫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그리고 다시 디리안을 바라보았다. 두 손이 여전히 묶여 있었지만, 자신의 말이 분명하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듯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하지만 나는 외부인이 아닙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더욱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남부 제국의 대공
밖에서는 말발굽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안에서는, 셀렌이 방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마치 방금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 결심을 못으로 박아 고정한 듯했다.오늘부터 그녀에게 결혼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니었다. 전쟁터였다.셀렌은 차가운 침대 위에 몸을 내려놓았다.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고, 목소리는 가까스로 속삭임만 흘러나왔다.“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디리안 레벤티스 공작의 아내로 보낸 5년, 공작 부인으로서의 역할을 위해 그녀는 모든 노력을 쏟았다. 게으름 피우지 않았고, 열심히 공부하고, 꼼꼼히 정리하고, 성
셀렌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말이 나오자 디리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모든 사람들 앞에서 디리안의 체면을 짓밟는 말이었기 때문이다.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의사는 붕대를 감던 손을 멈췄고, 하인들은 숨을 삼켰으며, 심지어 시계의 초침 소리마저 긴장 속에 멎은 듯했다.디리안은 눈을 번뜩이며 아내를 바라보았다. 늘 차갑던 얼굴이 수치심과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한동안 말이 막혀 있던 그가 되물었다."당신… 뭐라고?" 질문은 곧 비웃음으로 바뀌었다.셀렌은 흔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디리안을 똑바로 쳐다보며 차분하고
"부… 부인!" "부인!"아래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성의 가장 높은 탑 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곳에는 핏물에 젖은 하얀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가장자리 끝에 서 있었다.셀렌 모로 레벤티스.공작 부인. 늘 조용하고 순종적이던 그녀가 지금은 가장 위험한 곳에 서 있었다. 뒤에 있던 경비병들은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그녀가 정말로 뛰어내릴까 두려워 조심스럽게 움직였다.셀렌의 처절한 울음이 터졌다. 셀렌은 아픈 배를 움켜쥐었다. 그녀는 방금 다섯 번째 유산을 했다. 이번만큼은 확신했다. 그 모든 비극은 병 때문도,
오데트의 목소리는 너무도 우렁차서, 디리안은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어머니에게 감히 맞설 수 없었다.“이렇게 멍청한 자식을 두다니, 내 팔자도 참 사납구나!”오데트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디리안과 할머니를 남겨둔 채 떠나버렸다.할머니가 조용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나도 네 어머니 말에 동의해. 너는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 됐다.”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뜻은 분명했다.“할머니…”디리안이 조심스럽게 불렀다.할머니는 그를 바라보았다.“사람의 마음은 억지로 가질 수 없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