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승희는 이승우를 잡아당기는 척하다가 또 슬쩍 손을 놓는 장난을 하려 했었다.그런데 진지하게 손을 닦는 이승우를 보며 그 마음을 버렸다.‘이승우 뒤로 꽃이 얼마나 많은데. 또 넘어지면 그 꽃들까지 상할 거야.’‘그러니까 꽃을 봐서 이번만 봐줄게.’이승우는 부승희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 반동을 이용해 부승희와의 거리를 좁혔다.푹 젖어버린 이승우를 보며 부승희는 질겁하며 뒷걸음질했다.“정말 똥강아지 같아.”그리고 이승우 몸에 묻은 진흙을 가리키며 말했다.“아니? 정말 똥강아지 맞잖아.”이승우는 화도 내지 않았다.“네 방으로 데려다줘. 옷만 갈아입을게.”“내 방엔 강아지 옷 없는데?”“네 옷이라도 좋아.”“말이 되는 소리를 해!”부승희는 몸을 돌렸다.“혼자 정훈이 오빠 찾아가서 새 옷 달라고 해.”“지금 이 시간에 정훈이 문을 두드리면 퍽이나 열어주겠어.”‘하긴.’부승희는 고민하다가 말을 바꿨다.“그럼 도우미나 경호원 찾아가. 아무나 도와줄 사람 한 명쯤은 있지 않겠어?”“내가 싫어.”다른 사람이 입었던 옷은 입기 싫었다.“네 방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사람 시켜서 가지고 오라고 할게.”부승희는 입을 삐죽였다.‘까다롭긴.’“그럼 오빠나 방으로 돌아가. 방문 안 잠갔고 난 이만 가볼게.”부승희는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대문으로 향했다.그러자 이승우가 따라왔고 부승희는 불만이라는 듯 몸을 휙 돌렸다.“왜 따라와!”“술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 운전하지 마. 사람 찾아줄게.”“오빠만 기사 있는 줄 알아? 웃기시네.”“...”부승희가 정말 떠나려고 하자 이승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다시 손목을 잡았다.“왜 자꾸 가시처럼 톡톡 쏴? 조금만 기다려줘. 옷만 갈아입으면 우리 야식도 먹고 새로 나온 게임도 밤새 하자.”“싫어. 오빠네 가서 야식 먹는 건 내가 아예 사람이길 포기한 거라고.”이승우는 혀를 차며 말했다.“그건 말이 너무 심하다.”“내가 아무리 한심한 녀석이라고 해도 너한테 무슨 짓 하겠어? 너한테 무
이른 새벽, 두 사람은 연씨 저택을 빠져나왔다.이승우는 자꾸 부승희를 졸랐고 부승희는 이승우의 차량이 더 넓고 편한 걸 이유 삼아 그 차에 올랐다.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부승희는 꾸벅꾸벅 졸았고 눈을 뜨니 어느새 이승우의 집 앞에 도착했다.그래서 고개를 돌려 차가운 시선으로 이승우를 바라봤다.이승우는 헤헤 웃어 보였고 부승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멍청한 이승우는 그런 일을 벌일 용기도 없었다.그래서 길게 기지개를 켜며 턱을 세운 채로 말했다.“먹을 것 좀 내와. 단 걸로.”“왜 단 걸 찾아? 살찔까 봐 걱정도 안 돼?”부승희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그러게. 왜 갑자기 단 게 당기지?’“내오라면 내오라고. 잔소리하지 말고.”이승우는 말괄량이 같은 부승희에 적응이 되었기에 고분고분 행동에 옮겼다.“네네. 바로 내오겠습니다.”부승희는 그 뒤를 따르며 말했다.“배달시킬 생각은 버려. 오빠가 만든 게 아니면 안 먹을 거니까.”“아 너 진짜 너무해. 몰래 시키고 내가 만든 것처럼 연기하려고 했는데 네가 벌써 그러면 나더러 어떡하라고!”“...”이 별장은 평소 이승우 홀로 지내는 별장이었다. 이씨 가문은 가족이 많았고 부모님 또한 잔소리가 많은 편이었기에 자식들은 성인이 되면 빠르게 집을 구해 본가를 떠났다. 그리고 주말마다 본가에서 모이기로 했다.부승희는 예전에는 자주 이 집을 찾았지만 해외로 나간 뒤로는 처음이었다.사실 집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부승희는 익숙하게 게임기 앞에 자리를 잡고 좋아하는 게임을 작동했으며, 이승우는 그 옆에 앉아 패드로 음식을 주문했다.그리고 배달 음식이 도착하기 전에 간단하게 게임을 시작했다.다른 건 몰라도 이승우와 부승희는 게임 메이트로 죽이 잘 맞았다. 두 사람의 게임 취향은 거의 일치했다.“2층에 몬스터 있어. 네가 해치워.”“나 총알 부족해.”“쯧. 쓸모없긴. 내 뒤로 숨어. 내가 해치울게!”펑!부승희가 마지막 보스까지 처리하고 게임은 끝났다.어느새 잠이 깬 부승희는 나른
밤하늘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자 부승희는 깜짝 놀라다가 감탄을 이었다.“정말 오빠도 인생 원 없이 사는 것 같아.”“글쎄. 누가 와서 이걸 봐주길 내내 기다렸는걸.”부승희는 웃음을 터뜨렸다.사랑 감정을 제외하고도 두 사람은 오랜 시절 함께 한 우정이 있었다.부승희는 두 팔을 크게 벌려 소파에 기대며 별밤을 바라봤다.그리고 고개를 휙 돌려 이승우에게 물었다.“초지현 나랑 동갑이지 않아?”“그렇지 않을까?”“그런데 결혼이라니.”“너 아직도 어리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젠장, 나 아직 28살밖에 안 됐다고.”“말 좀 이쁘게 해.”“젠장, 오빠나 닥쳐!”“...”이승우는 에그타르트를 집어 부승희의 입에 넣었다.부승희는 이승우를 힐끔 노려보다가 우걱우걱 씹었다.‘젠장. 젠장. 젠장.’단 음식만 먹었더니 속이 조금 부대낀 부승희는 와인 셀러에서 예쁘게 생긴 과일 와인을 골라 따랐다. 그리고 익숙하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그러자 이승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휙 뺏어갔다.“뭐 하는 거야?”부승희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담배 피우려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너희 부모님 앞에서 피워.”“오빠 정말 싸우려고 작정했어?”그러나 이승우는 담배를 빠르게 주머니에 숨기고 다시 소파에 누웠다.“차라리 나 때려.”“...”부승희는 담배가 많이 당겼지만 어쩔 수 없어 입을 삐죽였다.이승우는 한참 생각하다가 먼저 말을 시작했다.“초지현이 누구랑 결혼하는지 알아?”“이름은 익숙한데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진여울, 축구팀 주장.”“뭐라고?”부승희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그 오빠가 얼마나 잘생겼는데! 왜 하필이면 초지현이랑 결혼하는 거야?”이승우는 부승희가 이렇게 말할 거라 예상했다.“진여울 그때도 초지현 좋아했어. 네가 둔해서 몰랐던 거지.”“그럴 리가 없어.”부승희가 고개를 저었다.앙숙이 그렇게 잘생긴 사람과 결혼한다는 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잘생긴 선배가 눈이 삐었네.”“그걸 우린 사랑의 콩깍지라고 하
부승희는 술을 한 모금 더 마시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왜 갑자기 웃어?”부승희가 고개를 돌려 이승우를 향해 말했다.“오빠는 다른 사람들이랑 좀 달랐어.”“뭐가 달랐는데?”이승우는 바로 구미가 당겨 자세를 고쳐 앉았다.“오빠는 좀 발랑 까졌잖아.”“뭐라고?”당황해하는 이승우를 보며 부승희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그 단어는 좀 아니다.”그리고 한참 고민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좀 날티 났어.”“...”‘그게 뭔 차이가 있다고.’“난 또 착하고 바른 내 성심에 반한 건 줄 알았네.”“말이 되는 소리를 해.”“그때 우리 오빠 알지? 반듯하고 단정함의 표본이었잖아. 그런데 오빠는 연애도 실컷 하고 자유롭게 지내는 걸 보며 오빠가 좀 멋있다고 생각했어.”부승희는 이승우가 자신의 짝사랑을 몰랐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짝사랑은 다 티가 나는데 말이다.이승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후회가 찾아왔다.“혹시 내가 예전처럼 멋있지 않아서 날 안 좋아하는 거야?”부승희는 웃음이 터졌고 이승우를 힐끔 바라봤다.“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떠나기 전에 찐 사랑 만났다고 하지 않았어?”“그 사람 결혼해서 아이도 있는데 왜 갑자기 그 사람 얘기 꺼내는 거야?”“쯧쯧. 그 여자분이 오빠 찬 거지?”“찬 건 아니고, 감정이 식어서 평화 이별한 거지.”“오빠는 참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어.”부승희가 비꼬았다.“나도 알아. 그래서 지금은 고쳤어.”부승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걸 퍽이나 믿겠어.’“그럴 필요 없어. 오빠는 그냥 신선한 사람이 좋은 거야. 다음 사람이 영원히 오빠의 찐 사랑인 거지.”이승우는 술기운이 확 깨는 기분이 들었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이승우는 한참 부승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부승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사실 우린 같은 부류 사람이 아니었고 어릴 때부터 오빠 뒤 쫓아다니는 게 아니었어.”이승우는 입꼬리를 내린 채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다.“뭐가 같
달짝지근한 술이 목으로 넘어가고 이승우의 머릿속엔 여러 가지 기억 파편이 떠올랐다.이승우는 변명이라도 하려 했다.“나 최근 몇 년 동안 아무 사람도 안 만났어.”“나도 알아. 사업 때문에 바빴잖아.”부승희는 이승우의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몇 년 지나고 일이 안정되면 곧 생길 거야.”“나도 좋은 사람 만나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 수 있어.”부승희는 웃음이 터졌다.“오빠가 말하고도 웃기지 않아? 오빠는 절대 우리 오빠 같은 사람 아니니까 거짓말 마.”부승희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말했지만 속이 문드러졌고 눈가가 따가워 차라리 두 눈을 감았다.“잠시 아픈 거랑 평생 아픈 거 차이는 나도 알아.”“두 달 지나고 모연준 그 새끼가 준 상처가 사라지면 나도 소개팅 받을 거야.”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혹시 알아? 그러다가 나도 찐사랑 만나게 될지.”너무 솔직한 부승희의 말에 이승우는 벌써 웨딩드레스를 입은 부승희가 떠올랐다.그래서 자리에 벌떡 일어나 앉으며 머릿속의 악몽에서 깨어나려 했다.눈앞에 부승희가 보이자 부승희가 아직 다른 사람의 옆에 서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이승우의 말에 부승희가 손을 휘휘 저었다.“다녀와.”이승우는 빠르게 화장실로 향했고 찬물을 켜 얼굴에 끼얹었다.차갑고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까지 이승우는 멈추지 않았다.그러다가 세면대에 양손을 올려 지탱한 채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봤다.차가운 불빛이 비쳐오고 사방이 조용한 것이, 모든 게 현실감 없이 느껴졌다.똑똑똑.노크 소리와 함께 부승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졸린데 어느 방에서 자면 돼?”이승우는 빠르게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문을 열었다.부승희는 문 옆으로 기대 있다가 문이 열리는 찬 공기를 느꼈다. 그리고 이승우의 젖은 머릿결과 빨개진 눈가가 보였다.부승희는 못 본 척 외면하며 이승우를 재촉했다.“빨리. 나 나이가 들어 그런지 더 이상 밤새는 건 무리야.”이승우는 부승희의 옆으
부승희는 이승우에게 남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었다. 다만 이승우의 마음을 받아준다고 해도 그 끝이 아름답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이승우의 곁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나쳤고 아무도 그 곁에 남아 있지 않았다.이승우는 타고나길 만인의 연인이었고 부승희는 이승우가 만났던 수많은 여자 중 한 명이 되고 싶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이승우가 술 한잔하며 과거 얘기를 안주 삼을 때 거론되는 그런 사이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부승희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미모 좋고, 학벌 좋은 완벽한 여자였다. 그런데 굳이 그런 오점을 남길 필요가 없었다.부승희는 이런 생각을 하며 자신을 설득했다.그러나 다른 한편, 인생은 한 번뿐이니 끝이 좋지 않더라도 시도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떠나는 건 순서가 없다는 데 그러다가 영영 떠나보내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나이가 들어 본인이 이승우의 안주 거리가 될 수도 있고, 이승우도 본인의 안주 거리가 될 수 있었다.그러니 젊었을 때 첫사랑의 꿈을 이루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마침 이승우도 지금 부승희를 좋아하지 않은가?그러니 이 기회를 빌려 실컷 연애를 해보고 싶기도 했다.여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부승희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러나 눈을 뜨니 조용한 방이 보였고 머리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환상이 깨졌다.부승희는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 수가 없었으며 자칫하다가 평생 이승우만 좋아할 수도 있었다.아무것도 모르던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동안 해외를 떠나 자리를 비운 그 시간까지도 부승희의 마음속엔 이승우뿐이었다.그리고 자신을 뜨겁게 사랑하던 이승우가 점차 식어가는 상상을 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그러니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겠어?’부승희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진정한 사랑이 뭔지 알려주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이승우보다 더 끌리고 더 특별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더 이상 목메지 않을 텐데 말이다.하지만 포기하기엔
턱이 간질거리자 부승희는 이승우의 손길을 내치려고 했다. 그런데 이승우의 손은 쉽게 밀려나지 않았고 부승희는 아예 손목을 잡고 아래로 끌었다.“왜 그러는 거야?”이승우는 손은 어느새 아래로 끌려 부승희의 허리춤으로 내려갔고 부승희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절로 다른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다.이승우는 부승희의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술 꽤 많이 마셨는데 불편한 곳은 없어?”부승희는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손을 뻗어 이승우가 가져간 물컵을 도로 쥐려고 했다.하지만 이승우가 그 손을 찰싹 때렸다.“또 마시려고? 따뜻한 물로 다시 따라줄게.”“잔소리하긴.”부승희는 이승우와 실없는 다툼을 하고 싶지 않아 아예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러나 이승우가 손목을 살짝 잡아 떠나려는 부승희를 잡았다.부승희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돌렸다.‘뭐야? 한판 하자는 건가?’이승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전등 켜줄게. 돌아가는 길에 넘어지지 말고.”부승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손을 뻗어 이승우의 머리를 뒤로 쭉 밀었다.그러나 부승희가 별로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이승우는 아픈 소리를 냈다.부승희가 이승우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엄살은.”이승우는 작게 탄식하며 가까이로 상처를 보여줬다.“엄살 아니야. 네가 어젯밤 물어서 정말 아픈 거라고.”“...”‘잘 지내다가 왜 또 그쪽으로 대화가 돌아가는 거야?’어두운 거실, 부승희는 이승우의 이글이글 불타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승우가 결코 좋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부승희도 알고 있었다. 거실로 나오기 전에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지금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쌤통이지 뭐. 오빠가 키스하지 않았으면 그럴 일도 없었잖아.”“네가 먼저 시작한 건데 날 탓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쉽게 봐주지도 않았을 거야.”“웃기시네.”“빨리 봐봐.”이승우는 자연스레 부승희의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피 나는 거 아니야?”부승희는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헛소리하지 마. 벌써 몇
어떤 기분이라...키스가 전체적으로 달콤했던 것 같았다. 또 이승우가 마신 과일 알코올 향이 느껴져 달짝지근하니 거북하기만 했다.부승희는 애써 쿵쿵거리는 기분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게 하려 노력했다.하지만 빠르게 뛰는 심장과 불규칙한 호흡이 벌써 부승희가 긴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그때.쪽.이승우는 부승희의 볼에 짧게 뽀뽀했다.부승희가 당황한 찰나, 이승우는 두 번째 뽀뽀를 강행하려 했고 부승희는 빠르게 손으로 가려 입술을 막아섰다.그러다 보니 이승우는 부승희의 손바닥에 뽀뽀했고 그와 동시에 한 손은 부승희의 허리에, 다른 한 손은 부승희의 손목을 잡고 뒤로 눕혀버렸다.등에 소파가 닿는 것도 잠시 부승희는 이승우가 도로 소파에 누우며 그 몸 위로 올라타게 되었다.두 눈이 마주치고 이승우는 고개를 돌려 부승희의 턱에 짧게 뽀뽀했다.부승희는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었고 주먹질이나 하며 어색한 기분을 숨기려 했다.그러나 먼저 눈치챈 이승우가 부승희의 손을 잡아 자기 가슴 앞으로 내려놨다.“그만 때려. 벌써 매만 몇 번째인지 알아? 우리 대화로 하자, 응?”“지금 이게 나랑 제대로 대화하려는 사람 태도 맞아?”부승희가 낮은 소리로 말하자 이승우는 입꼬리를 올렸다.“응. 대화도 하고 다른 것도 하고.”“...”부승희는 거의 이승우의 몸 위로 겹쳤고 이승우가 덮고 있는 얇은 담요도 바닥에 떨어져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겨우 옷을 사이 두고 이승우의 변화가 선명하게 느껴졌다.이어 작은 몸 다툼이 벌어졌다. 부승희가 손을 빼내면 이승우가 다시 손목을 잡았고 허리를 일으키려 하면 이승우가 허리를 잡고 눕혔다. 어쨌든 절대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부승희는 어느새 땀이 났고 두 사람 주변의 분위기도 후끈 달아올랐다.이승우는 여전히 부승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승희야, 그때 나한테 몰래 뽀뽀하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어?”부승희는 이제 머릿속이 텅 비었고 아예 이승우를 꽉 깨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혁수는 변여름을 품에 안은 채로 서재 창가에서 예쁜 노을과 노을이 비친 잔잔한 호숫가를 바라봤다.“시연 언니 컨디션은 괜찮아요?”변여름의 질문에 양혁수가 대답했다.“좋아 보이던데. 컨디션도 그렇고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어.”변여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양혁수를 쳐다봤고 양혁수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왜 쳐다봐?”“오빠, 행복해요?”양혁수는 최근 몇 달 동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걸 떠올리며 품 안의 변여름을 꼭 껴안았다.“행복하지.”“정말요? 왜요?”“왜긴...”두 눈을 감고 잠시 뜸을 들인 양혁수가 대답했다.“아침에 누가 나한테 해물 제철 탕을 해준다고 했거든.”“...”변여름은 손을 뻗어 익숙하게 양혁수의 두 볼을 잡아당겼다.양혁수는 변여름이 뭘 하든 가만히 받아줬고 또 변여름의 이마에 짧게 키스했다.양혁수의 눈동자에는 오직 변여름만 담겼고 변여름을 향한 사랑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변여름은 입꼬리를 올린 채로 양혁수의 목에 팔을 걸었고 또 빠르게 떨어지며 말했다.“그러고 보니 오빠, 아직도 나한테 좋아한다는 말도 안 했잖아요.”양혁수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좋아해.”그리고 고민하다가 말을 고쳤다.“내가 널 좋아해.”변여름은 금세 헤벌쭉해졌고, 첫사랑이고 뭐고 잊어버린 채로 양혁수의 두 볼에 번갈아 뽀뽀했다. 그리고 양혁수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듯 품에 안고 떨어지지 않았다.“오빠.”양혁수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이어질 변여름의 말을 기다렸다.“난 오빠가 너무너무 너무 좋아요.”양혁수는 이런 변여름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나란히 소파에 기대앉았다.‘아, 삶이 이렇게 행복할 수도 있구나.’‘너무 행복해.’한강시에서의 삶은 점점 더 흥미진진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양혁수는 사람을 자주 만나지 않았지만 변여름과 함께한 뒤로 변백호네 가족이 시도 때도 없이 집을 들락거렸다.변여름은 한강시 연구실에서 고작 6개월의 시간을 보냈지만 벌써 성공적으로 데이터를 확보했다.그래서 남은 6
변여름은 2층 베란다에서 뛰쳐나오며 양혁수와 양지원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마침, 요즘 한가한데 여름이 데리고 경인시로 놀러 갈게요. 시연이도 볼 겸.”‘한가하긴! 고양이 배변도 아직 치우지 않았는데!’고개를 돌린 양혁수는 변여름이 입을 삐죽이고 있는 게 보였다.그래서 핸드폰을 잠시 귀에서 떼고 변여름을 향해 걸어오며 말했다.“서재 다 치워뒀으니 거기에서 논문 보면 돼.”“네.”변여름은 무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렸고 쿵쿵거리며 서재로 들어갔다.양혁수는 피식 웃었고 통화를 종료한 양지원은 다시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화면에는 양지원뿐만 아니라 양시연도 함께였다.막 아이를 낳았지만 양시연은 컨디션이 꽤 좋아 보였고 죽을 먹는 중이었다.양지원이 핸드폰을 넘기자 양시연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지금 퇴근하는 거야?”“막 집에 도착했어.”핸드폰 너머로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양승윤과 다른 아이들도 함께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양혁수가 잠시 숨을 고르다가 말했다.“축하해. 잘생긴 아들에, 귀여운 딸까지 생긴걸.”과거에는 도저히 입 밖으로 내뱉기 힘들었지만 정작 하고 보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양시연은 양혁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너도 축하해.”“엄마한테서 전해 들었어. 너랑 여름이 말이야.”양혁수는 창밖의 핑크빛 노을을 보며 가슴이 쿵쿵 뛰는 걸 느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우리 공주님 보여줄까?”“좋아.”화면을 돌리자 침대 끝에 앉은 연정훈이 아이를 안고 있었다. 주변에는 양승윤을 제외하고 꼬마가 둘이나 더 있었다.“아빠, 나도 안아보고 싶어요!”“삼촌! 예지도 안아볼래요!”‘참 시끌벅적하네.’양시연이 연정훈을 낮게 부르자 연정훈이 딸을 품에 안고 걸어왔다.그리고 화면을 통해 양혁수는 연정훈과 시선이 마주쳤고 두 사람은 무언의 시그널을 주고받았는지 또 표정을 찡그렸다.연정훈은 예전처럼 차가웠지만 제 딸을 볼 때에는 입꼬리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시간 되면 경인시로 놀러와. 시
“그 사람도 별반 다를 게 없어요. 낳아준 어머니는 뒤로 하고 장모님한테 왔잖아요.”양혁수가 투덜거리며 말했다.양시연을 향한 감정이 남아있지 않더라도 양혁수는 늘 연정훈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변여름은 조용히 그 옆에서 눈치를 살폈다.그러다가 며칠 전 변여름과 진지하게 나눴던 첫사랑 얘기가 떠오른 양혁수는 오늘 이 기회를 빌려 변여름에게 장난을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변여름은 크게 화도 내지 못하고 입만 삐죽일 것이다.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고 연정훈이 전화를 걸어 거의 집에 다 와간다고 알렸다.변여름은 양혁수의 손을 잡고 뒤뜰에서 잡초를 손질하는 양석진의 옆으로 다가갔고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오빠, 우리 산책하러 가요.”양혁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지금?”“네!”“곧 다 모일 텐데 밥 먹고 산책하러 가자.”그러자 변여름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눈앞에 보이는 잡초를 마구잡이로 휙 잡아 뽑았다.양혁수는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웃음을 꾹 참았다.그때 누군가 양혁수를 불렀고 두 사람은 다시 거실로 돌아가야 했는데 변여름이 갑자기 양혁수를 벽으로 툭 밀쳤다.그러자 양혁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벽에 기댄 채로 변여름의 턱을 잡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첫사랑을 잊는 방법은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거라며? 현실보다 상상 속 첫사랑이 더 완벽하고 이쁠 테니까.”“...”‘짜증 나.’양혁수가 변여름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이건 네가 말했던 거잖아.”“...”“그런데 지금 표정이 왜 그렇지? 설마 한번 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고 싶은 거야?”변여름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세상에 영원한 정답은 없는 거니까요.”“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계속 피해 다니며 만나지 않을 수도 없고.”“나 질투 난다는 말이에요.”“내가 평생 시연이 좋아한다고 해도 괜찮다고 했던 사람이 누구더라?”“그건 예전이잖아요!”“그럼 지금은?”‘지금은...’변여름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 양혁수의
새벽 다섯 시가 다 되어서야 양혁수는 변여름을 껴안고 잠이 들었다.아침이 되어도 아무도 두 사람을 깨우지 않았고 실컷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아침 열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두 사람은 잠에서 깬 뒤에도 한참 침대에서 뭉그적거렸고 양혁수가 먼저 몸을 일으켜 아래층으로 내려가 간단하게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양혁수가 음식을 챙겨 돌아왔을 때, 변여름은 세수하고 다시 침대에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양혁수가 침대 끝자락에 앉으며 변여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뭐라도 좀 먹고 다시 자.”변여름은 지금 자신의 옷차림이 어떤지 전혀 상관하지 않고 바로 이불에서 빠져나와 양혁수의 품에 안겼다.양혁수는 서둘러 변여름의 옷매무시를 정리해 주고 눈을 감고 있는 변여름에게 한 입씩 떠먹여 줬다.변여름은 몇 입 먹더니 금방 싫증을 느꼈고 양혁수는 변여름이 남긴 걸 입에 넣었다.그런데 양혁수가 아침을 먹는 사이 변여름이 품에서 잠이 들어버렸다.‘그렇게 졸린가?’양혁수는 변여름을 다시 이불 안에 넣어주고 옷을 갈아입은 뒤 헬스장을 다녀왔다.돌아와서 샤워를 마쳤을 때도 변여름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양혁수는 침대 앞으로 다가가 곤히 잠든 변여름을 바라봤고 젖은 머릿결이 마를 때까지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그러다가 본능을 못 이긴 양혁수는 수건을 내려두고 침대 옆자리로 올라갔다.변여름은 금세 이상한 점을 눈치챘고 귓가에 들려오는 양혁수의 뜨거운 숨소리에 몸을 돌려 품에 안기며 말했다.“오빠...”양혁수는 숨을 고르다가 변여름에게 속삭였다.“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없어요...”변여름은 온몸에 열기가 돌았고 저도 모르게 양혁수의 어깨를 깨물었다. 양혁수가 작게 신음 소리를 뱉자 변여름도 점점 이성을 잃게 되었고 눈가가 빨개진 채로 물었다.“우리 새해 인사드리러 가야 하지 않아요?”“필요 없어. 친척들도, 친구들도 많지 않아서 상관없어.”변여름은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말했다.“우리 세운시로 가야 하잖아요.”양혁수는 새해 인사 따위는 이제 안중에 없었다.
침대 시트를 교체하지 않아 방안에는 아직도 그 향이 가시지 않았다. 양혁수는 단팥죽이 끓는 동안 서둘러 시트를 교체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단팥죽의 단 향이 코를 자극했다.양혁수는 한 그릇 따라 변여름에게 건넸고 변여름은 소파에 나른하게 누워 양혁수가 한입씩 떠먹여 주는 걸 삼켰다.그렇게 천천히 기운을 되찾은 변여름은 또다시 장난기가 발동했다.양혁수의 품에 안겨 양혁수의 핸드폰을 뒤적이던 변여름이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했다.양혁수는 변여름의 두 볼을 쭉 잡아당기며 이 순간의 행복을 즐겼다.그런데 변여름이 꽤 진지한 얼굴로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오빠, 정말 무슨 약이라도 먹은 거 아니에요?”양혁수는 인상을 팍 찌푸리다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바로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싸늘해진 양혁수의 시선에 변여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약을 따로 챙겨 먹지 않은 거면 너무 오랫동안 금욕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양혁수는 변여름이 이어서 어떤 질문을 할지 눈에 뻔했고 미리 준비해 둔 떡을 집어 냉큼 변여름의 입에 넣었다.변여름은 입안 가득 우물거렸고 반쯤 남긴 떡은 양혁수가 처리했다.“계속 까불면 너 이거 다 먹일 거야.”변여름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이 떡 전부요?”“...”역시 못 말리는 변여름이라 생각하며 양혁수는 입안 가득 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술 도장을 꾹 찍었다.어느새 해가 뜰 시간이 되었지만 두 사람은 하나도 졸리지 않았다.한참 꼭 붙어 있다 보니 또 어느새 애매모호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다.양혁수는 변여름을 위해서라도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변여름이 핸드폰을 뒤적이며 말했다.“시연 언니가 아직 새해 인사를 보내지 않았네요?”질투하는 듯한 변여름의 말투가 오늘따라 더 귀엽게 느껴졌다.하지만 지금 말을 잘못하면 변여름이 삐질 게 뻔했으니 양혁수는 말을 가려서 하기로 했다. 그래서 한참 말을 골라 입을 열었다.“시연이는 새해 당일에 인사를 보내는 편이야. 우리 가족들도 대부분 그렇게 하거든. 너
거사를 치르기 전에 변여름도 나름 많은 조사를 걸쳐 충분히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실전과 이론은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변여름은 자신이 주동권을 잡으려 노력했지만 모두 가볍게 양혁수에게 들통이 나 물거품이 되었다.양혁수는 변여름의 두 손을 잡아 머리 위로 고정시켰고 변여름이 점차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할 때까지 꼭 붙잡아줬다.변여름의 머릿속에는 양혁수가 거친 숨을 내쉬며 귓가에 뱉은 말뿐이었다.“긴장하지 말고 힘 풀어.”긴장을 풀자 바로 쾌감이 이어졌다.처음 사과를 베어 문 에덴에 이런 기분이었을까, 변여름은 눈앞이 흐릿해지고 이 세상과는 단절된 쾌감만 느껴졌다.변여름은 나른하게 침대에 누웠고 잠시 의식을 되찾고 양혁수와 시선을 마주했다.양혁수는 변여름 이마의 땀을 닦아주고 또 달래듯 입술에 키스했다.금방 지나갈 소나기같았지만 또 벼락이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양혁수도 쾌감에 절여 절로 미소가 나갔지만 자꾸 변여름을 놀렸다.그러자 변여름이 바로 양혁수의 입술을 깨물었다.양혁수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두 사람의 자세를 바꿔 또 새로운 쾌감을 찾았다.변여름은 촉촉해진 눈가로 양혁수를 바라봤고 마치 처음 치즈를 선물 받은 고양이가 어디서부터 손을 대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는 것 같았다.“네가 자세 바꾸고 싶다며?”양혁수는 손을 뻗어 변여름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나른한 시선으로 유혹했다.“자, 네가 원하는 대로 해봐.”변여름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아까도 변여름에게 기회를 줄 것처럼 굴다가 또 선수를 빼앗아 본인이 흐름을 주도했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농락에 변여름은 이제 그럴 마음도 사라졌다.하지만 양혁수가 얌전히 누워주니 변여름은 또 덮칠 마음이 스멀스멀 생겼다.‘내가 잡아먹어야지!’서로를 탐닉하고 뜨거운 숨을 몰아 내쉬기를 반복했고 어느샌가 이불도 바닥 위로 떨어져 있었다.변여름은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고 입술을 막아도 걷잡을 수 없었다.결국 변여름은 이불에 얼굴을 묻어버렸고 지금 본인
변여름은 낮에 물건을 뒤적이다가 양혁수가 서랍에 새로 준비해 둔 걸 발견했었다.양혁수가 참 보수적이라 생각했지만 변여름은 그런 점도 귀엽게 느껴져 눈치껏 본인이 준비한 물건은 서랍에 넣어두지 않았다. 뭐든지 차근차근 순서를 밟는 게 좋을 것 같았다.그러나 갑자기 자신을 안아 들고 위층으로 향하는 양혁수를 보며 변여름은 의아해졌다.‘오늘 밤엔 순정남이 아닌 건가? 아, 벌써 기대돼.’그러나 위층으로 올라가서 키스도 한참 했지만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변여름이 양혁수의 품 안에서 기어 나오며 말했다.“오빠, 먼저 샤워나 할래요?”“...”‘이 흐름이 아닌데.’양혁수는 쯧 하고 혀를 차다가 변여름을 잡고 다시 아래에 깔았다.또 쉴 틈 없는 키스가 이어지고 변여름은 온몸이 나른해졌으며 입가가 얼얼해질 무렵, 양혁수가 마지막으로 입가에 뽀뽀하고 욕실로 향했다.변여름은 몰래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래. 내가 기다리지 뭐.’얌전히 침대에 누운 변여름은 다리를 달달 떨며 시간을 보냈다.그때, 양혁수가 준비해 둔 옷으로 갈아입고 걸어왔다.바로 변여름에게 다가간 양혁수는 순식간에 변여름을 이불 안에서 꺼내 안아 들었다.‘뭐야 샤워하러 간 거 아니었어? 또 준비한 게 있나 보네?’의아해하는 변여름의 생각을 읽고 양혁수는 입술에 도장을 꾹 찍고 욕실로 향했다.“같이 씻자.”변여름은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욕실 안에는 뜨거운 김이 가득해 시야가 흐릿했다.양혁수는 어제 무슨 이유인지 안방에 새로 가구를 배송받았었다. 목재로 된 흔들의자였는데 하나는 안방에 두었고 특수 코팅을 거친 의자는 욕실에 두었다. 변여름은 안방에 둔 흔들의자에 누워 햇살을 느껴봤는데 그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욕실에 둔 의자에 누우면 마치 발가벗겨진 생쥐 꼴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변여름은 욕실로 향하는 내내 별 별 난 생각이 다 들었지만 양혁수를 상대로 그런 음흉한 상상을 하면 안 된다고 자신을 채찍질했다.그러나, 변여름은 곧 자신의 상상이 틀리지 않았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고양이 하나 때문에 그렇게 혼을 내던 오빠 친구가 오늘엔 제 옆에 앉아 평범한 여느 연인들처럼 자신을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는 것을.변여름은 다른 사람에겐 흥미를 잃었고 오직 양혁수만 눈에 보였다. 그리고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술이 술술 넘어갔다.회식을 끝내고 근처를 걸으니 거리에서 새해 느낌이 물씬 났다. 변여름은 양혁수의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털썩 누워서도 양혁수의 이름을 불러댔다.“양혁수... 혁수 오빠...”대체 뭘 어떻게 더 해야 이렇게 커진 제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변여름은 정말 하늘만큼, 땅만큼 양혁수가 좋았다.올해는 양혁수가 근 10년 동안 가장 기대되는 새해라고 할 수 있다.새해에 맞춰 양홍두도 세운시로 향해 양지원과 함께 새해를 보내기로 했다.그리고 양혁수는 양지원에게 곧 변여름과 함께 세운시를 찾아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겠다고 말했다.새해 전날, 집사는 양혁수의 기분이 퍽 좋은 걸 발견하고 다 같이 만두도 빚고 송편도 빚을 것을 제안했다.변여름도 아침 일찍 양씨 가문을 찾아 일을 거들었다.양혁수는 집 안팎을 돌아다니며 새해 분위기가 물씬 나는 조명이나 인테리어를 세팅했다.“조명을 켜기엔 아직 일러요. 조명은 오후부터 켜야 한다고 했어요.”변여름은 어디에서 들은 정보를 한 손에 만두를 쥔 채로 양혁수에게 말했다.양혁수는 사다리 위에 서서 말했다.“누가 그래? 우린 우리만의 법을 따르는 거야.”양혁수는 변여름을 달래듯 말했다.“꼬맹이는 얼른 가서 만두 빚고 있어. 예쁘게 빚으면 내가 새해 용돈도 챙겨줄게.”집사는 괜히 큰소리하는 양혁수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양씨 가문 남자들, 누구 하나 큰소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텐데.’그러나 변여름은 고개를 끄덕였고 또 양혁수를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사다리 아래까지 내려온 양혁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왜?”변여름은 바로 이때다 싶어 양혁수의 두 볼에
양지원은 바로 세운시로 돌아갔다.양씨 가문에는 오직 변여름과 양혁수만 남겨졌고 그날 밤부터 변여름은 아주 자연스레 양혁수의 방을 드나들었다.며칠 뒤면 새해인지라 연구실도 곧 휴가가 시작될 것이다. 변여름은 하루 시간을 내어 선물을 들고 연구실을 찾았다.선배들은 변여름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줄만 알았는데 돌아온 변여름을 보며 아주 기뻐했고 선물을 받으며 어디에 다녀왔는지, 무엇을 했는지 물었다.“연애하고 왔어요.”솔직한 변여름의 대답에 사람들은 조금 당황했고 과거에 변여름에게 고백했었던 선배는 마음이 부서졌다.교수님은 변여름의 교제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해했다.“저희 오빠 친구예요.”‘그래. 오래 붙어있을수록 정분이 나는 법이지.’사람들은 변여름의 옆자리를 차지한 그 상대가 궁금했고 교수님도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변여름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점심시간이 되자 도시락을 들고 양혁수를 찾아갔다.“회식?”양혁수는 변여름이 연구실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은 게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좀 더 생각을 해보니 고작 며칠 사이에 얼굴도 보지 못한 제 비서와 사이좋게 지내는 걸 보며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변여름이 말했다.“남자 친구 생겼다고 말했거든요.”그러자 양혁수는 변여름이 자랑하고 싶어 하는 걸 바로 눈치챘다.그리고 불현듯 과거에 변여름이 연구실 선배한테 고백을 받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변여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한두 사람이 아니었는걸요.”어깨를 으쓱거리는 변여름을 보며 양혁수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한두 사람이 아니었다?”“네!”“어떤 사람이었는데? 다들 똑똑할 거고, 뭐 잘생겼어?”“똑똑하기도 하고 잘생기기도 했죠.”옆에서 문서를 정리하던 비서가 그 말을 듣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대표님, 예쁘고 요리도 잘하시는 여름 씨가 얼마나 인기가 많겠어요. 대표님이 조심하셔야겠네요.”변여름이 양혁수를 힐끔 훔쳐보자 양혁수가 바로 연기를 이어갔다.“그러게. 갑자기 짜증이 나서 입맛이 하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