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물러나. 당신들은 이 화진 사람의 상대가 되지 않아.”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세나미는 검을 뽑은 뒤 호통을 쳤고, 남아있는 광전사들과 제사장들은 세나미의 말을 듣고 뒤로 물러났다.세나미는 검을 꼭 쥐고 싸늘한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오늘 당신의 상대는 나야.”세나미가 말을 마치자마자 두 장검에서 갑자기 기묘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한눈에 봐도 평범한 물건은 아니었다.설국 군신인 세나미의 두 검이 반짝이는 순간, 그녀의 몸에서 절정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윤구주는 덤덤한 눈길로 세나미를 바라보더니 차갑게 웃었다.“겨우 네가?”세나미는 윤구주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걸 알고는 코웃음을 쳤다.곧이어 은색 갑옷을 입은 설국 군신 세나미는 훌쩍 뛰어올랐고 동시에 그녀가 쥐고 있던 두 장검에서 무시무시한 불꽃이 눈부시게 뿜어져 나왔다.“염도결!”세나미가 외치자 두 검에서 일그러진 화염이 순식간에 길게 뿜어져 나왔다.검은 섬뜩하게 빛나면서 뜨거운 화염과 함께 윤구주를 베려고 했다.역시나 설국의 군신다웠다.그녀의 공격은 화진의 절정 삼중천의 강자와 맞먹을 정도였다.특히 그녀가 들고 있는 핏빛의 검은 보기 드문 보물이었다.핏빛의 검이 뜨거운 화염과 함께 허공에서 내려와 윤구주를 공격하려고 했다.그러나 윤구주는 그녀가 안중에도 없었다.비록 세나미의 실력은 절정 삼중천과 엇비슷한 정도였지만 사상이나 오악, 육도 수준의 절정 강자도 윤구주 앞에서는 맥을 못 췄으니 세나미는 말할 것도 없었다.검이 날아오는데도 윤구주는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살짝 튕겼고 쿵 소리와 함께 금색 빛줄기 두 개가 세나미의 장검을 공격하며 쾅쾅 소리를 냈다.세나미는 윤구주의 공격에 충격을 받고 허공에서 날아갔다.그렇게 수십 미터쯤 물러나서야 그녀는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착지할 수 있었다.지면이 쩌적 소리를 내면서 갈라졌다.검을 쥔 세나미의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뼈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손목에서 전해졌고, 정령 같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
“방금 뭐라고 했어?”세나미는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네가 무고한 유목민들을 풀어주는 걸 보지 못했더라면 난 일찌감치 너희를 전부 다 죽였을 거야.”윤구주가 다시 말했다.세나미는 그 말을 듣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설마... 두 시간 전쯤 우리 주변에 있던 게 당신이었나?”윤구주는 호탕하게 웃었다.“드디어 조금 똑똑해졌네.”그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설국인들 모두 넋이 나갔다.예전에 세나미의 북극 늑대가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을 때 설국 제사장과 광전사들은 세나미가 너무 의심 많은 성격이라 근처에 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윤구주가 그들의 앞에서 그 얘기를 언급하자 다들 깜짝 놀랐다.“이... 이럴 수가... 우리는 무려 80여 킬로미터의 길을 걸었는데, 어떻게 당시에 근처에 있었다는 거지?”한 제사장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차갑게 웃었다.“벌레만도 못한 놈들, 내가 원한다면 아무리 먼 곳에 있는 것도 난 다 볼 수 있어!”설국인들은 윤구주의 신념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지 못했다.윤구주의 말을 들은 제사장들은 다시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런데 세나미가 갑자기 말했다.“설마 전설 속 유체 이탈의 경지에 오른 건가?”“유체 이탈이요?”제사장은 세나미를 바라보았다.“맞아. 우리 선생님께서는 능력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유체 이탈이 가능해서 백 리 밖으로도 갈 수 있다고 하셨어.”세나미는 중얼거리며 말했다.그녀가 선생님을 언급하자 그 자리에 있던 제사장들은 모두 흠칫했다.세나미의 선생님이 설국 광명 신전의 제1 대신관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젠장, 저 자식 정말로 화진의 절정 강자인가 보네요!”다룬 제사장이 소리쳤다.절정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드리워졌다.그러나 윤구주는 오히려 웃었다.“설국 놈들 정말 너무 약하네. 절정 따위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야.”윤구주의 말을 들은 설국인들은 전부 분노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그러나 왠지 모르게 다들 바짝 긴장해서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했다.세나미는 설국의 군신으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무적이었다.그러나 오늘 윤구주 같은 악마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손을 쓰려고 했다.그녀가 들고 있던 두 장검에 현기가 주입되었고 장검은 점점 더 놀라운 불꽃을 뿜어댔다.세나미가 몸을 움직임과 동시에 두 검에서 적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세나미는 검망을 교차시키더니 버럭 외쳤다.“베어라!”무시무시한 불꽃이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윤구주는 꼼짝하지 않았다.그는 심지어 왼손을 등 뒤로 가져갔고 오른손으로는 일그러진 천지 원기를 순식간에 한데 모아서 흰색의 지현을 만들어냈다.지현이 세나미의 검망에 닿는 순간 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천지의 원기가 세나미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첫 번째 공격.”윤구주는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설국 전사들과 제사장들은 윤구주가 정말로 두 발을 움직이지 않고 세나미의 공격을 받아내자 전부 깜짝 놀라서 새된 소리를 질렀다.“괴물이야!”“젠장, 저놈은 괴물이 틀림없어!”“두 발을 움직이지도 않고 세나미 아가씨의 공격을 받아냈어!”세나미는 첫 번째 공격이 먹히지 않자 갑자기 길게 소리를 지르면서 모든 힘을 두 검에 주입했다.이 순간 그녀의 몸은 두 검과 한 몸이 되었다.검망이 다시 한번 하늘에서 내려왔다.이번 공격은 첫 번째 공격보다 훨씬 더 강해 보였다.난폭한 검의 기운이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고 윤구주는 구양진기를 이용하여 구양진기가 나타나는 순간 거대한 보호막을 만들어 몸을 감쌌다.쿵!세나미의 두 검이 윤구주의 금빛 보호막에 닿았다. 순간 무시무시한 검망이 주변 눈꽃들을 휘날리게 했고 대지도 심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윤구주는 여전히 두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두 번째 공격.”윤구주가 두 번째 공격이라고 하자 설국인들은 모두 겁에 질렸다.세 번째 공격까지 실패한다면 그들은 죽게 될 것
“불사조!”설국 제사장들은 세나미가 시전한 불사조를 본 순간 전부 흥분해서 소리쳤다.“이건 우리 광명 신전의 금기 비술인데 세나미 아가씨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배웠을 줄이야!”다룬 제사장은 가장 먼저 흥분해서 외쳤다.“맞아요. 소문에 따르면 우리 대신관님은 과거 이 열반술로 강과 바다를 불태웠다고 해요. 우리 신전의 최고 기술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그걸 이미 세나미 아가씨께 전수해 줬네요! 저 빌어먹을 화진 놈은 틀림없이 패배할 거예요!”다들 흥분한 와중에 세나미는 거대한 불사조를 조종하여 윤구주를 공격하게 했다.자신을 향해 매섭게 돌진하는 불사조를 본 윤구주는 갑자기 고개를 홱 들어 올리면서 차갑게 코웃음 쳤다.“나랑 놀고 싶은 모양인데, 그러면 이 몸이 실컷 놀아주겠어! 용이여, 나오거라!”윤구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고대 용의 울음소리가 그의 체내에서 울려 퍼졌다.그 울음소리는 귀청을 사정없이 때리면서 멀리 퍼져 나갔고 설국 병사들은 전부 충격에 빠졌다.바로 그 순간, 금빛의 거대한 용의 허상이 갑자기 윤구주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용이다!”“세상에, 저거 용이야?”설국의 한 제사장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말 용이야!”다룬 제사장도 넋이 나갔다.금빛 용은 하늘로 올라가서 세나미의 불사조와 대립했다.윤구주의 금빛 용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울음을 토하며 세나미의 불사조를 향해 날아갔다.불사조는 투지가 가득해 보였다. 금빛 용이 달려들자 불사조는 길게 울면서 두 개의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엄청난 불길로 금빛 용을 속박하려고 했다.그러나 금빛 용은 불사조의 공격에도 꿈쩍하지 않았다.금빛 용이 거대한 꼬리를 말자 돌풍 같은 충격파가 불꽃들을 걷어냈다. 그런 뒤 용은 불사조의 날개를 물었다.깍!용에게 물린 불사조는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뒤로 물러나려는데 금빛 용의 거대한 몸이 불사조의 몸과 한데 얽혔다.용과 봉황이 하늘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그 광경에 아래쪽에 있던 설국의 광전사들과 제사장들은 전부
남은 네 명의 신전 제사장이 입을 떼자마자 금빛 용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며 그중 한 명을 삼켜버렸다.나머지 세 제사장은 술법을 이용하여 반격할 생각이었지만 그들의 공격은 금빛 용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결국 금빛 용은 모든 제사장을 집어삼켰다.“안 돼! 안 돼! 안 된다고!”설국 군신인 세나미는 윤구주가 자신의 정예군들을 모조리 죽이자 피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악마 같은 놈! 가만두지 않겠어!”용기를 낸 세나미는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 내서 바닥에 떨어진 두 검을 들고 윤구주를 향해 달려들었다.그런데 윤구주의 곁에 도착하자마자 윤구주가 손을 휘저었고 그 순간 세나미는 충격 때문에 멀리 날아갔다.세나미는 헐떡이면서도 다시 일어나려고 했다. 그녀는 계속 싸울 생각이었다.그러나 윤구주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날 건드리지 마. 내가 오늘 널 살려준 이유는 네가 그 유목민들을 풀어줬기 때문이니까. 난 6년 전 이미 얘기했어. 만약 설국인들이 감히 또 한 번 우리 화진의 땅을 밟는다면 설국을 없애버릴 거라고. 그런데 설국은 우리 화진의 세가들과 작당하여 화진의 무학을 훔쳐 배웠고 심지어 화진의 영토까지 침략하려고 했어. 네가 말해 봐. 설국인들은 죽어 마땅하지 않아?”칼과 같은 날카로운 말들이 세나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세나미는 몸을 벌벌 떨면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오늘 내가 널 살려줬으니 운이 좋은 줄 알아. 하지만 지금부터 넌 내 노예가 되어야 해.”노예라는 말에 세나미는 넋이 나갔다.그녀는 설국의 군신이며 세나스의 딸이었고, 동시에 설국 광명 신전 대신관의 수제자이자 현임 설국 국주의 약혼녀로 곧 설국의 여황후가 될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윤구주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니?세나미는 뭔가 더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윤구주가 허공에 대고 손을 움켜쥐자 보이지 않는 힘이 세나미를 속박했고 결국 세나미는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세나미는 그러한 상황에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이거 놔! 마귀 같은 놈! 이거 놓으라고...
흑여산맥, 화진 병영.다무는 윤구주에게 임명받아 진정한 구주군의 멤버가 된 뒤로는 자긍심을 느꼈다.비록 그는 나이도 많고 다리도 불편했지만 다시금 화진의 군복을 입게 되자 70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풍당당했다.주변에 있던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이미 모두 윤구주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그들은 흥분되기도 하고 또 두렵기도 했다.한때 화진의 왕이었던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흥분되었고, 군법을 엄격히 지키지 않은 나태한 태도 때문에 벌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웠다.“아저씨, 혹시 우리 구주왕이랑 아주 친한 사이인가요?”이때 국경수비대 병사 몇 명이 다무의 곁으로 다가갔다.다무는 그 말을 듣더니 자랑스럽게 말했다.“당연하지. 우리 저하는 이 늙은이를 구해준 적이 있다고!”“정말 대단하시네요! 아저씨, 만약 저하께서 저희를 벌하겠다고 하시면 꼭 저희 대신 말 좀 해주세요!”국경수비대 병사 몇 명이 다무에게 말했다.다무는 웃으며 대꾸했다.“걱정하지 마! 법을 잘 준수하며 우리 화진의 국경을 지킨다면 저하께서는 절대 너희를 벌하지 않을 테니까!”“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목숨 걸고 화진의 영토를 지킬 거예요!”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군용차량 한 대가 그들 쪽으로 달려왔다.군용차량이 멈춰서자 군복을 입은 유기철이 차에서 내렸다.“지휘관님께서 돌아오셨어!”“지휘관님을 뵙습니다.”근처에 있던 병사들은 유기철을 보더니 곧바로 경례를 했다.유기철은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저하께서 잡으라고 했던 놈들은 전부 잡은 거야?”“지휘관님, 전부 잡았습니다. 그들 모두 지금 구금실에 구금되어 있습니다.”“좋아! 빌어먹을 배신자들, 저하께서 돌아오시면 그놈들 목을 전부 베어버려야지!”다무는 이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지휘관님, 저하는요?”다무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바로 윤구주였다.유기철과 윤구주는 함께 떠났는데 유기철만 돌아왔기에 다무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유기철은 웃는 얼굴로 설국 방향을 바라보며 자랑스럽게 말
“세상에, 전투기가 왜 저렇게 많이 왔지?”“지휘관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하늘 위 헬리콥터들을 본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모두 넋이 나갔다.지휘관인 유기철 또한 눈이 휘둥그레져서 헬리콥터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대단한 분이 오셨나 봐. 어서 모든 병사에게 나와서 대열을 맞추어 맞이하라고 해!”“네!”곧이어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서 줄을 섰다.하늘에 있는 헬리콥터들은 전부 화진의 헬리콥터들이었고 대충 봐도 백여 대는 될 것 같았다.거대한 프로펠러가 요란하게 돌아가면서 천천히 평원에 착륙하기 시작했다.잠시 뒤, 백여 대쯤 되는 헬리콥터들이 하나둘 착륙했다.그리고 곧 검은색 갑옷을 입은, 기세가 남다른 병사들이 허리춤에 검은색 검을 차고 헬리콥터에서 일제히 내려왔다.그들이 갑옷을 입고 나타나자 유기철은 당황했다.“세상에, 저 사람들은 우리 서울 황성의 흑기 금위군들인데!”유기철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뭐라고?’“흑기 금위군이요?”옆에 있던 병사도 외쳤다.“그래! 황성 3대 금위군은 흑기, 홍기, 황기 금위군으로 이루어져 있지. 3대 금위군은 우리 국주님을 보호하는 가장 강한 금위군이야!”“세상에, 우리 황성 금위군이 왜 국경 지역으로 온 걸까요?”다들 놀라워하는 사이 천여 명 가까이 되는 흑기 금위군이 질서정연하게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선두에 선 사람은 우람한 몸집에 차가운 표정을 가진 남자였다.남자는 얼굴이 넓은 편이었고 온몸에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그가 바로 황성 금위군 통령 염수천이었다.금위군 통령 염수천은 홀로 10만 금위군을 장악하고 있으며 3군 통령이라고 불렸다.그가 바로 과거 윤구주의 10대 장수 중 한 명이었다.유기철은 구주군 제6군단에 있을 때 이미 염수천을 알고 있었다.이 순간, 염수천이 멀리서 걸어오는 걸 본 유기철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염수천 장군님! 염수천 장군님이 오시다니! 구주군 제6군단의 유기철 염수천 장군님께 인사드립니다.”유기철은 멀리서 염수천
그렇게 국경수비대 지휘관 유기철은 지휘실로 끌려갔다.커다란 지휘실 안.안팎으로 염수천의 흑기 금위군이 쫙 깔렸다.황성을 지키는 3대 금위군 중 하나인 흑기 금위군 병사들은 모두 최소 대무사 급이었고 어떤 이들은 무대 대가 경지였다.통령인 염수천은 절정 삼중천 실력으로 민규현과 막상막하였다.지휘실 안쪽에는 염수천이 차가운 얼굴로 앉아 있었고 유기철은 마치 범죄자처럼 두 손과 발이 묶여 있었다.다무와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다들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유기철, 네 죄를 알아?”염수천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염수천은 과거 구주군 10대 장수 중 한 명이었기에 살기도 강했고 또 난폭하기로 유명했다.질문을 받은 유기철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네... 알고 있습니다.”“안다면 죽어야지! 여봐라, 이 자식을 끌고 가서 죽여!”염수천이 말했다.‘뭐?’염수천이 유기철을 죽이려고 하자 국경수비대 병사들은 전부 당황했다. 다무도 마찬가지였다.“염수천 장군님,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번만 저하를 뵙게 해주십시오!”유기철이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염수천은 싸늘한 눈빛으로 유기철을 노려보았다.“구주군이면서 이토록 쓸모없는 놈이 감히 무슨 낯짝으로 저하를 뵙는다는 거야?”“전... 전...”부끄러움을 느낀 유기철은 두 눈이 빨개졌다.그가 평생 가장 숭배하던 우상은 바로 윤구주였다.그런데 윤구주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겨우 그와 하루밖에 함께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죽어야 한다니 억울했다.“장군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전 그동안 줄곧 저하께서 돌아오시기만을 바랐습니다. 드디어 어렵게 저하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뵙게 해주세요... 저하를 뵙는다면 지금 당장 죽으라고 해도 저는 기꺼이 죽을 겁니다.”유기철은 눈이 벌게진 채 염순천을 향해 애원했다.염수천은 정말로 유기철을 죽일 생각인 걸까?당연히 아니다. 그는 그저 화가 났을 뿐이다.당당한 화진 국경수비대의 지휘관이 설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