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은아, 널 보러 왔어.”현관 입구에 있던 윤구주가 웃음 띤 얼굴로 눈물범벅이 된 소채은을 바라보자, 소채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두 손으로 윤구주를 껴안았다.손을 놓으면 그가 사라질 것만 같아서 꽉 잡고 있었다.“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윤구주도 자기 앞에 있는 소채은을 껴안으며 말했다.그가 기억하고 있던 소채은은 순수하고 착해서 나쁜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다.비록 연규비, 이홍연, 그리고 연예인인 은설아와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 윤구주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자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 소채은이란 사실이 추호도 변함이 없었다.그들 옆에 있던 까망이가 이 모습을 보더니 마치 윤구주의 귀환을 환영이라도 하듯 ‘멍멍’하며 짖어댔다.“드디어 돌아왔네! 난 또… 네가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는데.”소채은이 흐느끼며 말했다.그녀도 사랑과 증오, 그리고 걱정과 두려움을 가진 평범한 여자인지라 윤구주의 정체를 알았을 때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윤구주가 너무 훌륭하고 완벽해서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원망했었다.“이 등신아. 내가 왜 안 올 거로 생각한 거야? 서울에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제야 오게 된 거야.”윤구주는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그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소채은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그나저나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흐르는 눈물을 닦은 소채은이 윤구주를 바라보며 묻자, 윤구주는 미소를 지었다.“여기가 우리 둘이 함께 살았던 곳이잖아.”그 말을 들은 소채은은 방긋 웃었다.‘구주의 마음속에 여전히 내가 있나 보다.’“서울에서 무슨 일을 겪은 거야? 왜 이렇게 몰라보게 변했어?”소채은은 눈을 깜빡이며 눈앞의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내가 변했다고? 어떻게 변했는데?”윤구주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전보다 더 멋있어진 것 같아.”소채은은 솔직하게 답했다.그녀의 말대로 전성기를 되찾은 윤구주
은설아는 마음속으로 윤구주를 존경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사모하는 마음이 더 컸다.무예가 출중하다면 윤구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그녀가 그와의 실력 차를 줄이기 위해 열심히 수련한 것이었다.붉은 치마를 입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던 재이가 열심히 수련하는 은설아의 모습을 보고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설아 씨, 실력이 많이 늘었으니 인제 그만 쉬도록 하세요.”윤설아가 말했다.“괜찮아요. 아직 할만해요.”윤설아의 말에 재이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설아가 열심히도 수련하네. 내가 어렸을 때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수련하는 윤설아를 바라보며 용민이 혼자서 중얼거리자, 강철 몸을 가진 철영도 한마디 했다.“사랑 때문에 저 짓거리 하고 있는 거예요.”“뭣이라?”철영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 용민은 어리둥절했다.한마디만 내뱉고 철영은 정원 밖을 빠져나왔다.“야! 이 자식아. 말하다 말고 어디 가? 사랑 때문이라니?”용민이 그를 뒤쫓아가며 물었다.은설아가 한창 수련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민규현과 천현수가 얘기를 나누며 방 안에서 나왔다.“이놈아, 수이 소식이 아직 없다고?”말을 꺼낸 사람은 민규현이었다.“없어요. 형님.”천현수가 답했다.“수이 때문에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민규현이 계속 말했다.“흑여산맥 쪽의 저하 소식은 없고?”“그쪽에서 보내온 소식통에 따르면 저하는 이미 그곳에서 떠났대요.”“그렇다면 서울로 돌아온다는 말이냐?”민규현이 서둘러 묻자, 천현수는 고개를 저었다.“그들의 말로는 서울 아니고 강성으로 갔대요.”“강성?”강성이란 말에 민규현은 어리둥절했다.“형님, 잊으셨어요? 형수님이 강성에 있잖아요.”천현수가 그에게 상기시켜 주자, 민규현은 자기 머리를 툭 치며 말했다.“내가 이렇게 멍청하다니까. 맞아. 저하가 서울에 온 이후로 형수님을 본지가 꽤 되었으니, 강성에 가는 것도 이해는 되지.”“그건 그렇고 형님, 암부가 최근에 이상한 것을 발견했대요.”천현수가 갑자기 화제를 돌
한참 지나서야 민규현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내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종문이 움직인 것은 분명 저하 때문일 거야.”그 말에 천현수도 한마디 했다.“화진의 무도 3대 서열의 실력 차가 분명하다고 해도 어찌 됐든 같은 줄기에서 뻗어져 나온 것이잖아요. 종문이 움직인 것은 저하가 전에 노룡산에서 세가를 학살한 것이 누설되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현수야. 3개 종문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라고 암부에 전해.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보고하라 하고.”민규현이 지시를 내렸다.“네!”…서울의 어느 숨겨진 지하 궁전, 절세미인인 문아름이 봉황관을 쓴 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문창정이었다.“할아버지.”“현문, 만불종, 칠수방 사람들이 모두 서울에 도착했어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문아름이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문창정을 바라보며 물었다.“서두를 것 없어. 6대종문이 모두 모인 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아.”문창정이 차분하게 답했다.“하지만 서요산은 물론 천도궁과 자운각도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요. 이들을 계속 기다려야 한단 말이에요? 제가 알기로는 구주가 설국을 수복한 이후 국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요. 그리고 육도진도 태산에 갔고요. 아마 곧 큰 일이 터질 것 같아요.”문아름의 말에 문창정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육도진이 태산에 갔다고?”“네.”“무슨 연유로?”문창정이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문아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황성 사람들이 비밀로 하고 있어서 무엇 때문에 갔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들 말로는 조만간 국주의 움직임이 있을 거래요. 하지만 그 사람 때문에 국주가 움직인 것은 확실해요.”‘그’라는 말에 문창정의 안색이 아까보다 더 어두워졌다.“할아버지. 만약 국주가 정말로 구주의 편을 든다면 저의 왕위가 온전치 못할 것 같아요.”문아름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놨다.‘하긴 화진의 왕으로서 위대한 업적이 없다면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긴 하
“네 말이 틀리지는 않아. 하지만 종문이 우리 편에 서지 않을지도 몰라. 특히 만불종과 서요산 검종.”문창정은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았다.만불종은 영리하여 주도적으로 전쟁에 개입하는 일이 없었고, 화진에서 명성이 자자한 서요산 검종은 베일에 싸여있어서 문씨 세가조차도 그들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문아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안심하세요. 화진에는 6대종문이 있어서 이 두 종문이 아니더라도 4개의 종문이 남아있어요. 특히 역사가 유구한 현문 회장인 창현진인은 이미 백 년 전에 절정 경지에 오른 인물이에요. 그래서 현문을 선봉으로 내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문아름의 말을 들은 문창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현문을 인간 방패로 쓰겠다는 말이냐?”“바로 그거예요. 할아버지께서도 현문 도자의 본성을 잘 알잖아요. 그를 최대한 이용해 먹어야죠.”현문 도자에 대해 말할 때 문아름의 얼굴에는 요염한 미소가 번졌다.손녀의 생각을 잘 알고 있던 문창정이 말했다.“한 번 시도해 볼만한 방법이긴 한데 현문에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아. 특히 구씨 성을 가진 늙은 장로는 문무를 겸비하여 얕잡아보면 안 돼.”“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문아름이 말했다.“그래. 그러면 현문의 일은 너에게 맡길게.”문창정이 결론을 내렸다.…서울에 온 이후로 현문의 사람들은 문씨 세가의 지하 궁전에 머물고 있었다.이 순간, 십여 명 현문의 제자들이 화려한 거실 양쪽에 서 있었고, 가운데 벽화 앞에는 현문 도자인 손형재가 서 있었다.벽화에 그려진 인물은 다름 아닌 절세미인인 문아름이었다.선녀 같은 문아름을 바라보며 이 도자가 혼자서 중얼거렸다.“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인이 여기 있었네.”“콜록콜록.”이때 그의 옆에서 갑자기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형재 씨, 이 늙은이가 할 말이 있는데 말해도 될지 모르겠네요.”말을 꺼낸 사람은 손형재와 함께 산에서 내려온 현문 장로인 구진철이었다.“어서 말해보세요. 구 장로님.”시선을
손형재가 차갑게 웃었다.“무슨 일이 있어도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된다고 이 늙은이는 생각합니다. 또한 6대종문이 의논을 거친 후에 움직이라고 회장님께서 저에게 신신당부도 했고요.”구진철의 말에 손형재는 콧방귀를 뀌었다.“또 6대종문. 천 년이나 더 된 우리 종문은 왜 단독으로 일 처리를 못하고 매번 다른 종문들과 논의해야 하는 겁니까?”구진철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갑자기 현문 제자가 뛰어왔다.“도자님, 밖에 도자님을 뵈러 온 분이 계세요.”“누군데?”손형재가 물었다.“문씨 세가의 문아름 씨요.”문아름이라는 말에 손형재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그녀가 나를 찾아왔다고? 어서 들여보내.”“네!”현문 제자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봉황관을 쓴 절세미인 문아름이 들어왔다.마치 천하를 호령하는 고대의 황후 같았지만,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손형재를 향해 예의를 갖췄다.“아름이 도자님을 뵙습니다.”문아름을 보자마자 손형재는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갔다.“아름 씨, 너무 예를 차리실 필요 없어요.”“아니에요. 도자님은 하늘이 내리신 현문의 미래니 당연히 예를 갖춰야죠.”문아름이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만하기 짝이 없던 손형재가 이런 말을 들었으니, 입이 귀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아름 씨가 어인 일로 예까지 발걸음하셨는지?”손형재가 물었다.“당연히 그 윤 씨 성을 가진 사람 때문이죠.”문아름은 천천히 말했다.“윤 씨요? 혹시 백성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은 그 구주왕 말인가요?”손형재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네. 맞아요. 도자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와 구주는 혼인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여기까지 말했을 때 그녀는 억울한 듯 눈물을 흘렸다.문아름이 눈물 흘리는 것을 본 현문 도자는 서둘러 그녀를 위로했다.“아름 씨, 어서 그 눈물을 거두세요. 혹시 그가 아름 씨를 괴롭혔나요?”“아니요. 저를 괴롭힌 적은 없지만 구주는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데다 고집불통이에요. 평생을 그와 함께하고 싶었지만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오만방자한 손형재가 절대로 용납할 리 없었다.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더욱 그러했다.“몰락한 왕인 주제에 오만하기 짝이 없네요. 제가 그의 목을 베서 아름 씨의 원한을 풀어드릴 것이니 안심하세요.”살기 가득한 눈빛을 한 손형재의 말을 들은 문아름은 자신의 계략이 먹혔다는 걸 알아챘다.윤구주를 처리하기 위해 종문이 나서준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을 무도 3대 서열의 종문 두목인 그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고마워요. 만약 도자님이 정말로 미쳐 날뛰는 구주를 없애준다면 저희 문씨 세가는 도자님의 은혜를 잊지 못할 겁니다.”문아름이 말했다.“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그가 어디 있는지 안다면 지금 당장 미친 구주에게 달려가 그의 모가지를 따겠는데.”살기 어린 눈빛으로 보아 손형재가 정말로 윤구주를 죽이고 싶어 한다고 문아름은 생각했다.“구주가 어디 있는지 제가 알아요.”문아름이 갑자기 말했다.“어디 있는데요?”손형재가 서둘러 그녀에게 물었다.“서울 외곽에 있는 그의 어머님 댁에 있어요.”윤구주의 개인정보를 문아름은 손형재에게 알려주었다.“그 미친놈이 어디 있는 것을 알았으니, 그의 명도 여기까지인가 보구나. 아름 씨,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당장 그를 죽이러 가겠어요.”이 현문 도자가 정말로 윤구주를 죽이려는 하자, 문아름이 말했다.“도자님, 잠깐만요!”“왜요?”손형재가 뒤돌아보며 물었다.“구주가 당시 수련한 봉왕팔기로 천하를 제압했잖아요. 혼자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만약을 대비해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소개해 드릴 게요.”문아름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너희들도 이제 나와.”그네의 말에 절정의 기운이 감도는 6명의 강자가 갑자기 지하 궁전에 나타났다.이 6명의 리더는 검은 머리와 흰머리가 반반인 노인이었다.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있던 노인의 주름투성이 얼굴에는 희끄무레한 음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노인의 뒤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절정 강자들이었다.“형재 씨를 만나 뵙게
문아름의 설득에 손형재는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그러면 아름 씨의 청을 받아들여 이 자들을 데려가도록 할게요.”손형재의 말에 얼굴에 미소가 번진 문아름은 6명의 절정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어서 도자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려.”“도자님, 감사합니다.”말을 마친 6명의 세가 절정은 손형재의 뒤에 다가갔다.“구주야, 네가 이번에 어떻게 죽는지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볼 거야.”손형재는 눈빛에는 살의가 가득했다.문아름이 떠나자, 현문의 장로인 구진철이 다급히 물었다“형재 씨, 정말로 저 화진의 구주왕을 죽일 생각인가요?”“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손형재가 말했다.“형재 씨의 생각이 짧은 것 같아서요. 문씨 세가의 목적은 오직 형재 씨를 이용하려는 것이에요. 그리고 다른 종문이 아직 나서지 않고 있는 마당에 우리 현문만 나서는 것이 이 늙은이는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드네요.”구진철이 계속해서 충고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말을 손형재는 전혀 듣지 않았다.“구 장로님이 지나친 걱정을 하는 것 같아요. 3대 서열 중의 1순위인 우리 현문이 하찮은 구주왕조차도 없애지 못한다면 어찌 종문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단 말입니까?”“도자님…”구진철이 또다시 그를 설득하려 하였으나 손형재의 얼굴에는 이미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그만하세요. 저는 이리 하기로 정했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세요. 장로님이 저와 함께하기 싫다면 산으로 돌아가든지.”말을 마친 후, 손형재는 구진철을 무시하고 밖으로 향해 걸어갔다.제멋대로 행동하는 손형재를 보며 구진철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서울의 외곽.정태웅이 공수이를 데리고 떠난 후, 장원에는 용민, 철영, 재이, 그리고 은설아, 민규현, 천현수 등이 남았다.장원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용민이 재이에게 말했다.“재이야, 작은 주인님의 소식은 아직 없는 거냐?”그의 입에서 나온 작은 주인님이란 윤구주를 말하는 것이었다.윤신우가 손수 키웠던 3명 사사의 목숨이 윤신우가 준 것이니 윤구주에게 충
“빌어먹을! 절정이라니!”용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재이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당신들 누구야? 어딜 감히 침범해?”용민이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우리는 구주왕을 찾고 있으니 싸우기 싫으면 썩 비켜! 그러지 않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야.”손형재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뭐라? 작은 주인님을 찾는다고?”용민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손형재와 그의 뒤에 있는 절정들을 쏘아보았다.“잘못 찾아왔네. 작은 주인님은 이곳에 없어.”용민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손형재의 뒤에 있던 1명의 세가 절정이 코웃음을 쳤다.“말이 많구나!”이 절정은 말하자마자 번개처럼 빠르게 용민을 향해 달려갔다.용민은 비록 실력이 있다고는 하나 신급 수준에 불과했다.이 세가 절정의 공격에 그는 황급히 두 손바닥을 모으더니 온몸의 힘을 손에 집중시킨 후 절정을 향해 공격했다.하지만 그가 손바닥으로 절정을 치려는 순간 그 절정도 손바닥을 내밀며 맞받아쳤다.펑!두 손바닥이 마주치자, 용민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뒤로 십여 미터 튕겨 나갔다.그리고 땅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용민 씨! 괜찮나요?”튕겨 나간 용민이를 본 재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난… 난 괜찮으니 어서 규현에게 가서 이 상황을 알려.”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용민은 바닥에서 일어났다.“곧 황천길로 갈 텐데 뭔 발악이야?”독수리 눈을 가진 세가 절정이 말을 내뱉자마자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2개의 장영을 발산하며 용민에게 일격을 가하려고 했다.그 모습을 본 재이가 장영을 막으려고 긴 채찍을 휘두르며 달려갔다.“제 주제를 모르나 보네.”장영이 재이가 들고 있던 긴 채찍을 휘감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펑’하는 소리와 함께 재이 역시도 절정의 힘에 밀려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죽여주마.”독수리 눈을 가진 이 세가 절정은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재이와 용민이에게 상처를 입힌 것도 모자라 살기 어린 눈빛으로 두 사람에게 일격 가할 준비를 하고 있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